부름받은 12 제자

부름을 받은 12제자/마10:1-4

부름을 받은 12제자
마10:1-4





경제가 어렵다보니 과거처럼 방학이라고 해서 무조건 놀고 보자는 대학생들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이 방학기간동안 무슨 아르바이트든 해서 용돈도 벌고, 학비의 일부도 마련하려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아르바이트 가운데 좀 이색적인 아르바이트가 있습니다. 일명 \'넘돌이\' 혹은 \'넘순이\'라 불리우는 아르바이트가 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무슨 아르바이트인지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이 아르바이트는 주로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 연주회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옆에 앉아서 악보를 넘겨 주는 아르바이트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가리켜 남자는 \'넘돌이\'이라 부르고, 여자는 \'넘순이\'로 부르고 있습니다.

피아노를 동반하는 실내악에 있어서 이들 아르바이트생들의 존재는 필수적이라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피아노의 악보는 다른 악기에 비해 음표가 많아 자주 페이지를 넘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회 공연에 적게는 5만원에서 많게는 7만원까지 받는다고 합니다. 이정도면 대학생 아르바이트로서는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는 아르바이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무대에서 화려한 옷을 입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관객들의 시선을 끌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악보를 넘길 때 손이 악보를 가리거나 연주자의 턱을 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세 번째는 악보를 넘길 때 조금의 오차가 있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연주에 있어서 타이밍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르바이트는 쉬운 아르바이트가 아닙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또 이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단지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돈을 좀 더 많이 받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잘만하면 거장의 연주를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 볼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의 주인공이 누굽니까? 우리 주님이십니다. 모든 인류의 인생을 연주하는 가장 위대한 연주가도 누굽니까?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의 인생을 연주하는 그 거장 바로 옆에도 역시 \'넘돌이\'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굽니까? 12제자들입니다. 물론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시적으로 고용된 아르바이트생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그런데 이 본문은 지난주에 이미 살펴보았던 9장의 마지막 38절에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추수할 일군으로 12제자를 부르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 선두에 서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추수할 일군을 보내어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일군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었습니다. 주님은 다른 곳에서 일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도한 제자들을 일군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들이 기도하면서 종종 범하는 실수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일군이 되기를 원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한 걸음 물러나 있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예를 든다면 주일학교에 교사가 부족해서 함께 기도를 합니다. 기도하는 대부분의 성도들은 주님께서 그 일에 헌신할 교사를 보내주시리라 기대를 합니다. 한번도 자신이 그 일에 부름을 받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채 말입니다.

제가 신학교 1학년에 재학중일 때 대전 침신대학을 졸업하고 총신에 오신 전도사님 한분이 계셨습니다. 저보다는 나이가 연상이셨지만 한반에서 공부를 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조금 늦게 신학을 공부한 까닭에 공부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분의 꿈은 열심히 공부를 해서 학교 강단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셨습니다.

1학년 1학기를 마친 그해 여름에 그 전도사님은 그토록 원했던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나라를 택하지 않고 필리핀을 택하셨습니다. 필리핀을 택하신 이유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바울신학\'에 관한 한 세계적인 석학이었던 김세윤교수님이 필리핀을 거쳐 영국으로 유학하셨던 것에 영향을 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분도 필리핀에 잠시 머무는 동안 영국이나 미국에서 유학할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필리핀을 먼저 택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유학을 떠나시고 난 다음에 저와는 한학기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겨울방학때 국내에 잠시 들어오시게 되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간에 있었던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필리핀에 계시는동안 필리핀에 파송된 선교사들과 만나 필리핀선교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함께 기도회에 참석하시게 되었는데 기도의 제목은 언제나 \"국내에서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해서 필리핀이 복음화 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도사님도 하나님께서 하루속히 국내에 있는 많은 분들을 선교사로 보내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한번도 그 일에 자신이 부름을 받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채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께서 필리핀선교를 위해 다른 일군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 그 곳에 있는 자신을 선교사로 세우기를 원하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고민과 갈등속에서 몇날을 보내었습니다. 학교 강단에 서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필리핀에 선교사로 남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원래 계획대로 필리핀에 머무는 동안 미국이나 영국쪽에 유학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인가? 결국 그 전도사님은 주님의 부름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유학의 꿈을 포기하고 필리핀의 선교사로 그곳에 남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때 잠시 국내에 들어오게 된 것은 선교사로 남기 위한 여러 가지 서류와 준비가 필요해서 잠시 들어온 것이었다고 저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뒤에 그 전도사님으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필리핀 \'바기오\'에서 열심히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니 기도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종종 우리의 기도속에서 다른 사람을 부르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추수할 일군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는 정작 그 일을 위해 다른 사람이 올 것을 기대하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도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은 다른 사람의 헌신이나 다른사람의 순종이 요구되는 때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 개인 개인을 부르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려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사야 선지자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는 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그 일을 위해 12명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왜 12명을 부르셨을까요? 어느교회에서 성경퀴즈 시간에 이와 똑같은 문제를 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12명을 제자로 택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라는 문젭니다. 왜 12명을 택하신 것 같습니까? 11명도 아니고, 13명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12명입니까? 퀴즈시간에 한 청년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엿장수 마음입니다\"

엿장수는 자기 마음대로 가위질을 합니다. 하루에 열번 할수도 있고, 백번 할수도 있습니다. 아니 아예 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엿장수에게 가서 \"왜 오늘은 가위질을 열번만 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엿장수는 자기 마음대로 가위질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식으로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어떤분은 해석하기를 12명이라는 숫자는 한 사람이 관리하기에 가장 적절한 인원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적으면 그 그룹에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인원이 부족해서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사람이 너무 많으면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사공이 너무 많아 배가 산으로 올라갈 지경이기 때문에 12라는 숫자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가장 적절한 숫자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종종 구역장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습니다. \"목사님! 몇 명되지 않는 구역식구들을 챙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생각도 다 달라서 구역봉사때 반찬 한가지 하는것도 통일이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우리교회에 한 구역이 12명을 초과하는 구역은 없습니다. 그래도 구역장이 구역식구들을 섬기고, 보살피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교회에서는 제자훈련을 할 때, 한 팀을 12명으로 구성을 하고 그 중에 리더를 세워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도 12명은 한사람의 리더나 혹은 구역장이 관리하기에는 많은 인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일을 추진하는데에는 12명이라는 숫자가 오히려 적은 숫자가 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사람이 관리하기에 가장 적절한 숫자라든가, 어떤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가장 알맞는 숫자라든가 하는 그런 개념의 해석은 설득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생각으로 12명의 제자를 선택하신 것일까요? 학자들마다 조금씩 해석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내용은 12명의 제자들은 구약시대 12지파를 상징한다는 해석입니다. 주님은 의미없이 단지 숫적인 개념으로 12명의 사람을 제자로 삼으신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 12지파를 상징하는 의미로 정확하게 12명을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12명의 제자를 통해 12지파를 상징하려는 주님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우리들에게는 \'12\'라는 숫자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차라리 \'4\'자는 죽을 사(死)로 해석을 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병원에 가면 4층이 없습니다. 엘리베이터에도 4층이라는 표시는 없고 \'F\'라는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시험칠 때 수험번호가 \'4\'자가 많으면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런가하면 미국은 \'13\'이라는 숫자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13일의 금요일\'은 최악의 날입니다. 귀신이 나타나는 날도 꼭 \'13일의 금요일\'입니다. 신종 컴퓨터 바이러스 중에는 꼭 13일에만 침투하는 바이러스가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나라마다 숫자에 대해 갖는 의미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12\'라는 숫자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 숫자입니다. 물론 앞에서 말씀드렸던 그런 나쁜 의미의 개념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12\'라는 숫자는 12지파를 생각하게 했고, 그러므로 그들에게 \'12\'라는 숫자는 매우 친숙해 있는 숫자였습니다.

주님은 이미 \'12\'라는 숫자에 대해 친숙해 있는 그들 가운데서 12명의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12지파를 통해서 통치되어지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부름을 받은 12명의 제자를 통해 주님이 통치하실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신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몇몇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4명씩 3부류로 나누신 것에 주목을 하기도 합니다.

본문 2절에서 4절까지 보면 제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4명씩 3조로 나누어서 이름이 기록되어져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태만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가와 누가도 몇몇사람의 순서를 달리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4명씩 3조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는 것은 동일합니다. 첫 번째 그룹은 베드로, 안드레,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고 두 번째 그룹은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마태이고 세 번째 그룹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가룟유다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2\'라는 숫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징하는 \'3\'이라는 숫자에, 세상과 인간을 상징하는 \'4\'라는 숫자를 곱해서 된 숫자이기 때문에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신비한 숫자가 \'12\'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신비한 숫자에 가룟유다와 같은 악한 사람이 끼어 있느냐?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악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나라를 선포하는 일에 사용되어졌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룟유다가 자신의 잘못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자살을 했을 때 그로 인해 생긴 빈자리를 제자들은 \'맛디아\'를 선출해서 다시 \'12\'라는 숫자를 채우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2\'라는 숫자는 상당히 의미있는 숫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점에서 우리자신을 한번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각기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따라다녔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자가 되겠다고 스스로 신청서를 제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은 12명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누구나 아르바이트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피아니스트의 악보를 넘기는 아르바이트는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인\'이 어디 별겁니까? 성경책 들고 왔다갔다하면 교인이 됩니다. 교회는 일년에 한두번 나와도 종교난에는 \'기독교\'라고 쓰는 사람도 교인입니다.

신앙좋은 아내 때문에 어쩔수 없이 나오는 사람도 교인입니다. 심지어 뇌물받고 부정한 일을 저질러도 교회에 나오면 교인입니다. 누구나 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부르심이라는 것은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역\'에 관한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될 수 없다\'라는 말로 이 본문을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목회자가 되는 것과 장로로 세움을 받는 것,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런의미가 아닙니다. 과연 내가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정말 주님앞에 의미있는 숫자에 내가 포함되어져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성경책 들고 왔다갔다 하는 것은 누구나 할수 있습니다. 시간나면 교회오고, 바쁘면 빼먹고, 누구나 할수 있습니다. 그 정도는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할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정도를 가지고서 주님앞에 의미있는 숫자에 포함되어지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2-14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문, 북편에 세문, 남편에 세문, 서편에 세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방금 읽었던 말씀대로 새예루살렘성에는 이스라엘 열두지파 자손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열두사도들의 이름도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이 새예루살렘에 의미있는 숫자에 포함된자들입니다.

어떤학생이 저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세상에서 제일 재수가 없는 사람이 어떤사람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누가 제일 재수없는 사람입니까? \"쓰레기차 피하려다가 똥차에 받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옆에서 듣고 있던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목사님! 제일 재수 없는 사람은 똥차 피해가려다가 속도위반으로 경찰차에 붙잡힌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그분이 그런 경험이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오늘 말씀에 근거해서 저도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누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까?\" 누굴까요? 성경책 들고 교회에 왔다갔다가만 하다가 하나님나라에 못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기왕에 성경책 들고 교회 다닐바에야, 기왕에 종교난에 기독교인이라 기록할바에야 열심히 믿고 충성해서 천국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이름 석자가 새예루살렘 기초석에 기록되어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운동선수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영광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10년 이상 활약을 한 \'홍명보\'선수가 A매치 100게임 출장이라는 자격으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에어로빅으로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한 \'박광수\'씨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농구선수로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60년대 활약했던 \'박신자\'씨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개인에게는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유명해도 자격이 되지 않으면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에게는 큰 영광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름이 새예루살렘에 기록된다는 것은 이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어떻게 이름이 기록됩니까? \'교인\'이라는 자격이 아니라 \'제자\'라는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왕 믿을바에야 교인이 되지 말고, 제자가 됩시다. 제자가 되어서 내 이름이 새예루살렘성의 기초석에 기록되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영광이며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와같은 특별한 능력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추수하는 일은 영적인 전투의 현장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귀신을 쫓고, 약한 자를 고치시는 것은 주님이 이미 행하셨던 사역의 일부였습니다. 그 일을 이제 제자들에게 맡기고 계십니다.

오늘날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주님의 귀한 사역을 맡기고 계십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치유하는 사역은 아닐지라도 이 사회의 병든 것을 치유하는 사역을 우리에게 맡기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연주가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 곁에 있는 넘돌이들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우리들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연주했던 그 피아노앞에 앉아보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된 사람이 아니라 그 거장의 제자가 되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