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길 마10:1-15
오늘은 예수님의 12제자들에 대하여 함께 상고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고 믿는 제자의 길, 제자의 도에 대하여 말씀드리면서 주님이 원하시는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세상에 많은 성도들이 있었지만 우리 주님을 잘 믿고 바르게 따른 사람들은 예수님이 택하신 12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이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잠을 자던 한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그 사실을 전파하다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말로 전해듣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것이 훨씬 쉬운 것을 느낍니다. 자기들과 함께 생활하던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더니 승천하셨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는 그렇게 잘 믿은 사람들 같지는 않았으나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하시는 것을 목격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에는 전세계를 구원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복음을 전파한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의 유명한 유세비어스 교회사를 읽어보면 열 두 제자의 순교일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읽다보면 숙연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1.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했습니다. \"내가 어찌 예수님과 같은 모습의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는가, 나를 거꾸로 매달아 달아라\" 하여 거꾸로 달려 죽은 것입니다.
2. 안드레는 헬라에 가서 전도하다가 남부지방 아가야 성에서 십자가에 줄로 매달려 죽임 당했다. 안드레의 달린 십자가는 X형이었습니다.
3. 야고보는 예루살렘성에서 헤롯왕에게 칼로 목 베임을 당하여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장 먼저 순교하신 분으로, 행12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4. 요한은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부탁하신 대로 주의 모친 마리아를 끝까지 모시고 살았으며 유대 국내에서 전도하다가 예루살렘이 주후 70년 로마군대에게 멸망당한 후 소아시아의 수도 에배소에 가서 전도했습니다. 거기서 핍박을 만나 저를 끓는 기름 가마에 집어넣었지만 기적적으로 튀어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를 박해하던 무리가 놀래서 지중해에 있는 밧모섬에 귀양보냈습니다. 거기서 저는 묵시를 받아 쓴 후 자기 수명대로 살다 죽었습니다. 그도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천수를 누렸습니다. 제자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리기도 했지만, 천수를 누리므로 하여 가장 나중에 하늘나라에 들어가신 분입니다.
5. 빌립은 소아시아 부르기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6.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 당했습니다.
7. 도마는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창에 맞아 죽었습니다. 지금도 인도에는 성 도마의 교회가 있고, 그 교회 안에는 도마의 손가락이 아직도 썩지 않고 남아 있다고 합니다.
8. 마태는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9. 알패오의 아들 야곱은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10. 열심당 셀롯인 시몬은 애굽에 가서 전도하고 유대국에 돌아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죽었습니다.
11. 야곱의 아들 유다 즉 다대오는 페르시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다. 그는 성경에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한 제자였습니다.
12. 맛디아는 가룟 유다 대신 12제자에 들어온 제자로서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어떻게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였고, 마지막 죽음까지도 돌아보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순교적인 신앙 위에 오늘의 기독교회는 서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사도들이 닦아놓은 터 위에 세움을 입었습니다.
(고전3:10-11)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교회의 터를 닦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교회를 위한 기둥이었습니다. (갈2: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12사도들은 교회의 초석이 되었고, 기둥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예수 믿는 바른 자세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으며, 이 교회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이들의 이름도 알아야 하고, 이들은 하늘나라에서 12보좌에 앉아 전 세계 모든 성도들을 심판하는 자리에 배심원들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 곁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움직이실 때마다 많게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보통 우리들은 예수님 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만, 예수님은 언제나 그 사람들은 무리와 제자로 나누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무리와 제자는 함께 예수님 주변에 자리를 같이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지만, 확연히 다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있으며 예수님이 부르신 제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이 지구촌 많은 교회에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 당시나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의 성도들이 있지만 무리와 제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도 어떤 이들은 무리에 속하신 분들이 있으며 또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제자에 속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누가 무리이고 누가 제자인지는 제가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구별하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들 각자가 내가 무리인지 제자인지를 깨달으며, 모두가 제자가 되기 위하여 몸부림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앞에 있던 사람들이 다 제자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모두가 제자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제자로서 살아갈 수도 있고, 다 무리에 불과한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 성도님들은 무리에 들지 마시고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처음에는 다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제자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리는 자기의 위로와 복을 받으려고 스스로 자진해서 예수님에게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부르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무리는 어느 날 수천, 수만의 사람으로 불어날 수도 있고, 돌변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에게서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에 한 사람 두 사람 떠나갔습니다. 많이 물러가고 다시는 주님과 함께 다니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말씀드렸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리와 제자의 차이입니다. 무리는 주님을 위하여 손끝 하나 움직일 마음이 없이 주님이 자기만을 위하여 일해 달라고 조르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필요에 의하여 주님을 붙들어 두는 정도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철저한 이기적인 신자들이 있습니다. \'나도 할만큼 다 했다\'고 주장합니다. \'이제는 나도 할말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목적만 달성하면 떠나버리고, 다시 나올 이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다릅니다. 끝까지 희생하면서 따르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무리와 제자, 지금도 같은 자리에 같은 시간에 함께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 앞에 있는 목적이 각자 다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랐습니다. 주님께 무엇 하나라도 더 얻으려는 자와 이미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주님을 위하여 일하고픈 열정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12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쉽게 부르신 것이 아니라, 마가복음에 의하면 산에 올라가셔서 온 밤을 새우시면서 기도하시고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택하신 제자들입니다. 이들은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죽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찍이 이들은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부르신 주님은 이제 12제를 함께 불러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셔서 전도도 하게 하시고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내려 주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사건이 본문의 말씀과 막3:13-19과 눅6:13-19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12제자의 명단은 성경에 네 번에 걸쳐 나오고 있습니다. 마10:2-4, 막3:16-18 눅6:14-16, 행1:13입니다.
(마10:2-4)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
(막3:16-18) \"이 열 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
(눅6:14-16)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16)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
(행1: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 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
이 명단을 가지고 비교해볼 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름이 최초에 나오고 가룟유다의 이름에 맨 나중에 나오고 있습니다. 네 사람씩 아주 열심을 나타내고 있는 선두그룹과 중간 그룹, 후미 그룹 이렇게 3단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각단의 첫머리에는 베드로, 두 번째 그룹의 리더는 빌립, 세 번째 그룹의 리더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열두 사람은 주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입어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3년간 함께 다니면서 숙식을 같이하면서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막3:13-15)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오늘 십자가는 외면한 채 면류관만을 추구하며 현세적 이해 타산에 따라 부화 뇌동(附和雷同)하는, 그리고 약삭빠르기 이를 데 없는 소위 귀족적 신자들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명목상의 교인은 많으나 주님의 제자는 적은 것이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은 아닙니까?
1. 제자의 길은 한마디로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의 것에 대하여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꼭 나의 몫으로 돌아와야 하지만, 너 먼저 가지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저마다 성공을 추구하며 이 세상에서 부(富)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부요하셨는데도 우리를 부하게 하시기 위해 도리어 가난해지셨습니다. 우리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찾으며 훌륭한 안식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들도 깃들일 보금자리가 있지만, 주님은 머리조차 둘 곳 없이 사셨습니다(마 8:20). 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으며 박수갈채도 받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셨고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어려움과 고통을 피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허물 때문에 상하셨고 우리의 죄 때문에 매를 맞으셨습니다.
두 번째로 실제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장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는 죄인들의 사형을 집행하는 사형대였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를 위해서 죽습니까?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주를 위해서 자신이 죽는 것이며 이로써 주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 2:20). 우리는 죄의 종노릇을 하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여야 합니다.
세 번째 일평생 주님을 좇아가야 합니다.
끝으로 주님의 제자가 되는 조건은 주를 좇는 것, 즉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주를 따르기 위해서는 먼저 있던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죄의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떠날 뿐만 아니라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열 두 제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과 동고 동락(同苦同樂)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사람이 흠모하는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정든 고향과 친척, 아버지의 집을 버려 두고 약속의 땅을 향해 걸어갔으며, 어떤 면에서는 자기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며 주를 따라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한 마디로 고난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 \'제자\'(disciple)라는 말은 \'훈련\'(discipline)이란 말과 같은 어근을 갖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제자가 된다는 것은 훈련을 받아야 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며 훈련은 곧 고난과 수고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딤후 2:3).
\"자녀는 태어나지만, 제자는 훈련으로만 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가면서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능력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평안을 빌라고 했습니다. 지혜롭고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영혼을 건지는 일에 부름받은 이들이 제자들입니다.
신문지상이나 인터넷 상에 나오는 \"무료\"라는 말에 솔깃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탕발림이고, 유치한 유혹이라는 사실에 실소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거저\"라는 말을 새로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런 댓가를 따지지 않고 고스란히 주는 것\"이라고 읽어야 합니다. \"거저\"라는 단어를 말입니다. 그것이 가치 없는 껍데기일 뿐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도 손색이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면서도 값을 따져 묻지 않고 거저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저\"라는 말을 \"정작 있어야 할 곳에 있도록 돌려주는 것\"으로 본다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게다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주는 방법밖에 없는 경우\"에 \"거저\"라는 표현이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값은 어떻게 얼마라고 따지지 않고 거저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진곡의 왕\"이라고 불리우는 [죤 필립 슈저] 씨는 어느 날 그가 좋아하고 있는 \"성조기는 영원히 빛나리\"라는 자신의 곡이 연주되고 있는 것을 그의 호텔 방안에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코디언 손풍금 악사가 호텔 밖에서 타고 있는 그의 곡은 느리고 나른하며 졸리는 듯한 가락이었습니다.
죤 필립 슈저는 곧 밖으로 뛰쳐 나가서 \"여보, 여보 내 곡을 그렇게 연주하는 게 아니요!\"라고 그 졸리는 듯이 연주하는 악사에게 소리쳤습니다. 그는 악기를 달라고 하여 힘있게 연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곡은 활기를 되찾고 생명감이 넘쳐흘렀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그 악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슈저씨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였습니다. 그날 그 악사는 작곡자에게 사사를 받았습니다. 조금 지도를 받았어도 영광스러운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저녁 슈저씨는 그 곡이 다시 연주되는 것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 속도가 정상이었고 곡을 이해하고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니, 그 손풍금 위에 그 연주자의 이름이 씌어 있었고, 그 아래 \"죤 필립 슈저의 제자\"라고 크게 사인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찾았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거저 받은 이 사랑을 우리의 이웃에게 거저 나누어주면서 생명을 살리는 역사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의 의미가 무엇이며, 다시 오심의 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내야 합니다. 제자는 선생님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그분의 생애를 본받으며, 그분의 인격을 닮아 가는 것이 제자들입니다. 나를 부인하고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거저 받은 사랑을 나눠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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