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제자 세리 마태

주님의 제자 세리 마태/마9:9-13

주님의 제자 세리 마태
마9:9-13





마태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마타이오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누가복음 3장 25, 26절에 있는 마타티아스 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 것으로서,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마태는 알패오의 아들로서 처음에는 사람들에게서 천대를 받는 세리였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약 주님의 사도,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이 마태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1. 마태는 자신과 하나님 앞에서 솔직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절을 보면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라고 12제자의 이름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명부에 보면 다른 제자들은 이름만 썼지만 자기 자신의 차례에 와서는 자신의 신분을 밝혀 이름 앞에 \"세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본명은 \"레위\"였는데, 그는 로마 당국의 위임을 받아 세금을 징수하는 청부인으로서 다메섹과 포에니 항구 사이를 잇는 무역로에 위치한 갈릴리 주변 가버나움에서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당시 세리는 \"가바이\"라고 하여 세금을 받으러 다니는 자가 있었고 \"모케소\"라고 하여 세관에 앉아 관리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정해진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거둬 착복하거나 거둬들인 세금을 횡령하는 등 둘 다 세금으로 사복을 채우는 자들로서 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압잡이라 취급되었고 사회-경제적으로는 도둑놈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 뭐냐\'고 하면 \"산에서는 곰과 사자요, 시가에서는 세리라\"(Theocritus)고 할 만큼 주민들에게서 냉대를 받았습니다.

마태는 이런 세리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자기 자신이 천대받고 미움받던 세리였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제자명부에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더욱이 자신의 신분이 보잘 것 없고 낮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오히려 없는 것도 있다고 과장하지요.

얼마전 한 재판이 있었습니다. 지난 지방의원 선거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경력을 기록할 때 정규학력이 아닌 무슨무슨 대학의 1년 과정 특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그 수료생 모임의 회장이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가 선거 전단에 자신을 그 대학 동문회 회장이라 쓰고, 그 대학 출신이라고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명예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는지 모릅니다. 돈 몇십만원 잃어버린 것보다 터무니없는 비방과 욕설을 들을 때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는 분노를 느끼게 마련입니다. 자기의 결점과 약점, 부끄러움을 나타내기 싫어하는 것은 숨길수 없는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마태는 굳이 자신의 신분을 기록하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이 비난받는 세관원 출신임을 정확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나는 세리 마태\"라!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죄인입니다. 누구나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입어야 살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 이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품은 생각까지도 다 아시고 우리 삶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숨기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새로운 출발은 자신의 상태를 직시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출발할 때 복이 됩니다.

자신의 무능력이나 실패, 죄성을 인정해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사용된 많은 신앙의 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부수고 새롭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오늘의 마태로 그러했습니다. 주님 앞에서 솔직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우리의 모습이, 심령상태가, 신분이 어떠하다 하더라도 주님 앞에 부끄러움없이 솔직히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십니다. \"나 주의 도움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이 찬송이 삶과 신앙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십자가 상의 강도는 죽기전에 자기가 죽어 마땅한 강도라고 솔직히 인정하며 고백했고, 바울은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내 죄가 중하든지 가볍든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던지, 내 신분이 어떠하든지 간에 솔직하게 주저없이 고백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고백하는 여러분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다 이해하시고 용서하시고 불러 주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면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천주교에서는 교인들이 신부에게 자기의 죄를 고백합니다. 고해성사라고 하는 것이지요! 사람인 신부 앞에서도 자신을 고백하거든 하물며 하나님께 자신을 감출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솔직히 고백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읍시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신분이나 공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놓고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고 일을 맡기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2. 마태는 부르심에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거기서 떠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쫓으니라\" (마9:9)

예수님은 세관에서 마태를 불렀습니다. 정당한 세금에 더많은 돈을 얹어 착복하며 살던 그 죄의 자리에서 불렀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마태는 그 부르심에 아무 이유나 조건없이, 지체하지 않고 곧 순종했습니다. 사람은 습관과 인습된 자리에서 벗어나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환경이나 조건의 지배를 받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직장 이상의 직장을 약속한 것도 아니고, 장래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나를 좇으라,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 한 마디에 일어나 좇았습니다. 곧 순종했습니다.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에 무조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따랐습니다. 마태의 심령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알았습니다. 그의 눈은 메시야인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지체하지 않고 순종한 것입니다. 여기에 마태의 제자로서의 진면목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태의 결단성 있는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 직장, 체면, 장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좇아간 마태, 그의 결단성을 봅니다.

참으로 믿음의 생활은 결단의 연속입니다. 세상의 일과 하나님의 일 사이에서, 자신의 이익과 하나님의 유익 사이에서, 끊임없이 결단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출애급기에 보면 모세는 자신의 최후가 다가왔을 때 여호수아를 불러 놓고 \"오늘날 너희 섬길 자를 택하라\"고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섬길자를 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는 올바른 선택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돈을 섬기던 그가 주님을 섬기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결단을 요청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십자가를 지는 일은, 예수믿는 일은 때로 세상에서 손해보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난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억울한 비난도 묵묵히 감내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의인 노아도 방주를 짓기로 결단했을 때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본문은 마태의 과단성있는 결단을 한마디로 기록합니다.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쫓으니라\"

여러분! 세상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로 가면 새상의 바다에 빠지지 않고 당당히 걸어 주님의 손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을 좇으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체하지 말고 지금 일어나 주님을 좇읍시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3. 마태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마9:9-13).

사회적으로도 대우받지 못하고, 인간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던 세리 마태를 주님께서 불러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아무도 상종하지 않으려 하는 자신에게 친히 찾아오시고 자신을 불러 영광스럽게도 제자가 되게 하셨으니 마태의 마음이 얼마나 흥분되고 기뻤겠습니까? 자신을 향한 이웃의 태도가 차가우면 차가울수록 마태의 심령은 더욱 분노하고 더욱 냉담해졌을 것입니다. 그런 마태에게 다가온 주님의 부르심은 마태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습니다. 기쁨을 이길 수 없어서 자기가 받은 은혜에 1/10,000이라도 감사의 표현을 드리고자 큰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많이 탕감받은 자가 더욱 감사한 법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이웃이 되어주지 않는 고독한 현실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사람취급조차 해주지 않는 절망스런 현실 앞에서 자포자기하며 살아가던 마태에게 주님의 부르심은 얼마나 눈이 번쩍 뜨이고 감격스런 일이었겠습니까? 감사로 가슴이 미어졌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배가 고파본 일이 있습니까?

제가 학부를 다닐 때 하루종일 학업에 시달리고 써클활동에 매이다 보면 하루종일 밥도 못고 일킩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 귀가하는데 주머니를 뒤져도 돈 100원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길거리에서 쥐포를 사서 씹어먹는데 그 맛이 일품입니다. 시장기도 가셔집니다. 주머니에 100원이 있는 게 그렇게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저는 배가 고프면 쥐포가 먹고 싶어집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알면 알수록 주님의 대속의 기쁨이 더욱 큰 법입니다. 구원을 감격이 넘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감사가 끊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마태가 베푼 이 잔치는 마태 주변의 사람들, 그 동료들과 유사한 대접을 받고 살던 천덕꾸러기 인생들에게 주님을 만나 변화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 29절은 이 일에 대해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라고 했고, 마가복음 2장 15절은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저를 좇음이러라\" 라고 했습니다.

마태는 자기가 받은 은혜의 가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돈이 제일인줄 알았던 그가 큰 돈을 들여 잔치를 연 것입니다. 이제 그에게는 돈이 제일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기쁨이었고 주님 곁에 있는 것이 자랑스런 자리였습니다.

마태는 그 때부터 일평생을 주와 같이 보내면서 주의 신실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3절을 보면 \"이르시되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와 및 빌립과 도마와 바돌로매와 마태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있은 후 핍박이 극에 달해 있던 때에도 그는 예수를 버리지 않고 말씀하신 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대의 교회 사가인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유세비우스 H.E.3:24). 마지막에는 유다에서 전도했고 또 에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목베임을 당해 순교했다고 합니다.

마태는 죄의 자리에서 떠났습니다. 주님을 따르고, 좇고, 또 순종하다가 골고다까지, 십자가까지 따랐던 것입니다. 순교의 제물로 바쳐질 때까지 한 평생 변함없이 주님을 따르고 또 따랐던 것입니다. 세리 마태!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지만 주님은 그를 알아주셨습니다. 마태는 자기를 알아주신 주님을 위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누가 제2의 마태가 되겠습니까? 이름 그대로 \"여호와의 선물\" 마태! 누가 이 세상을 위한 \'여호와의 선물\'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모두 21세기의 마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