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된 제자의 자격 마8:18-22 IMF 이후 실직한 사람들이나 혹은 명예퇴직한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선택하는 길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창업(創業)을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입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소자본 창업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적은 비용으로 창업을 해서 고소득을 올릴수 있다는 여러 가지 광고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실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소자본 창업에 매력을 느껴 실제로 창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장사를 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적은 자본으로 많은 이윤을 남길수 있는 인기있는 장사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사람은 광고에 난 것처럼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가하면 어떤사람은 실패를 해서 비록 적은 돈이기는 하지만 투자한 자본까지 손해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똑같은 사업을 하면서도 어떤사람은 성공하는데, 어떤사람은 실패를 하는 것일까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단지 몇몇사람들의 성공한 사례만 생각하고, 또 인기있는 장사라는 것만 생각하고 사전에 사업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나 대비가 없이 뛰어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끄는 분들을 보면 그냥 인기있는 사업이라고 무턱대고 뛰어들지는 않습니다. 사전에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상이 있고, 또 그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구상이나 노력이 없이 단지 남들이 그 사업을 통해 성공한 결과만 보고 뛰어들었다가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날 한국에 난립하고 있는 무인가 신학교는 정리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축복하셔서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정말 놀랄만한 일이며 은혜로운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렇게 성장을 하다보니까 한 해에 배출되는 신학생의 수도 우리교단만 800여명 가까이 됩니다. 아마 무인가 신학교까지 합치면 수천명의 신학생이 졸업을 합니다. 그들중에는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신학교에서 인격적인 훈련을 받아 졸업하는 학생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사회에서 문제를 야기시키는데 교회가 앞장을 서게 되고, 그 중심에는 소명의식 없이 교역자가 된 분들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한 소명의식도 없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학교에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대형교회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를 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목사가 이발사 다음으로 인기없었다면 지금은 판·검사 부럽지 않는 인기있는 일종의 직업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가 커지고 재정이 풍부해졌을 때,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권력을 가지는 것만큼 매력적인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본문에는 두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두종류의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사람은 결과만 보고 예수님을 쫓으려 했던 사람이며 또 한사람은 분명한 소명의식없이 예수님을 쫓고자 했던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본문 18절과 1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본문말씀에 의하면 지금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에워쌓여 있습니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쌓습니까? 조금전에 어떤일이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한 문둥병자를 깨끗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그 집에 방문하지도 않고 말씀으로 고치셨습니다. 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는 그녀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귀신들린자들이 나아왔을 때 권세있는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그들이 보고 들었습니다. 이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수년전에 이상구박사가 \'엔돌핀\'에 대한 강연으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습니다. 몇 년전엔 황수관박사가 \'신바람 건강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작년엔 구성애씨가 \'아우성\'강연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텔레비젼앞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한가지 질병에 대해 박사내지는 전문가라도 수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습니다. 엄청난 인기와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걸어다시는 종합병원 원장이십니다. 그분은 한 두가지 병에 전문의가 아니라 그 어떤질병도 치료하실 수 있는 의술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그분앞에만 가면 고침을 받습니다. 이 정도면 사람들이 얼마나 몰리겠습니까? 아마 오늘날 예수님께서 병원을 개원하셨다면 한번 진료를 받기 위해서 예약을 해놓고 수십년을 기다려도 진료를 받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특진을 받으려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도 우리 같은 서민은 잘 사는 사람들에게 밀려서 진료한번 제대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전세계에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모두 몰려서 이 병원은 마치 시장처럼 장사진을 칠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이런 일이 있으면 그 주변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을 고침받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인기에 영합해서 무언가 자기 이득을 챙겨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을 때 그중에 서기관 한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정식으로 예수님께 신청을 한 것입니다. 왜 그가 굳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신청을 한 것일까요? 만약 그가 산위에서 말씀하시는 산상수훈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좋아서 제자가 되겠다고 했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는 그 현장에 있었더라면 예수님의 능력이 부러워서 제자가 되겠다고 했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 서기관처럼 예수를 좇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 입술로 고백은 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가 이곳에 나와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의미합니다. 싫은데 이곳에 나와 앉아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가끔 순교하는 마음으로 죽을 각오하고 어쩔수 없이 나오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정말 싫어면 이 자리에 나오지 않습니다. 뭔가 기대하는 것이 있고, 뭔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나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기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예수가 정말 싫었다면 예수께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가 싫은데 어떻게 예수의 제자가 되겠다고 신청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잘알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제일많이 비판했던 사람들이 누군가하면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비판의 대상되었던 서기관이 예수님을 좇겠다고 말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신청한 것은 참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엉뚱했습니다. 2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예수님은 자기를 좇겠다는 서기관에게 \"그러면 나를 따라오라든지, 너는 부족하니 받아 주지 못하겠다\"라든지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는데 나는 머리 둘곳조차 없다\"라고 동문서답하듯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대답은 동문서답이 아니라 서기관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내신 우리주님의 너무도 명쾌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이 대답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먼저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던 그 마음의 동기를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으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 서기관은 단지 지금까지 있어왔던 일의 결과만 보았다는 것입니다. 서기관이 지금까지 보았거나 들었던 내용은 무엇입니까? 산상수훈의 주옥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병자를 고침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가는 곳에 따라다닙니다. 인기도 있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도 받습니다. 하루아침에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유명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만 본 것입니다. 적어도 예수님을 좇겠다고 말한 서기관의 마음속에는 \"내가 이 분을 따라다니면 자신도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보장받고, 유명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생각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하찮은 짐승도 다 자기가 찾아갈 곳이 있지만 나는 머리둘 곳조차 없는 자다. 그래도 나를 따르겠느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인자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는 말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나를 따라다녀봤자 돈 생기는 일 없고, 나를 따라다녀봤자 좋은 직장 알선해 줄수 없고, 나를 따라다녀봤자 별볼일 없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와있으십니까? 예수를 믿으면 사업이 좀 더 잘 될 것 같아서입니까? 아니면 예수를 믿으면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예수를 믿으면 세상적으로 어려웠던 문제들이 술술 잘 풀릴 것 같아서입니까? 만약 그런동기를 가지고 이곳에 나와있다면 우리주님은 우리에게도 \'인자는 머리둘 곳조차 없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제자의 삶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 일 때문에 돈이 별로 생기지 않아도 예수를 좇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일 때문에 사업이 어려워져도 오직 예수만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일 때문에 좋은 직장을 못구해도 그분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물론 진실로 주를 따르고자 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있는 문제들을 분명히 해결해 주실 것이지만 우리들이 주님을 따르는 동기가 \'더 나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참된 제자의 삶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인자는 머리 둘곳이 없다\'는 말씀은 제자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치루어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창업하는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그저 겉으로 드러난 성공만 보고 뛰어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무엇보다 치루어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사업에 대한 구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업에 대한 사전지식과 더불어 전문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서기관이 주님을 좇겠다고 고백한 그 뒤에는 그가 치루어야 할 대가가 있음을 주님은 밝혀 두고 있습니다. 농부가 땀흘리는 노력없이 열매만 거두어 들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서기관이 주님을 좇겠다고 했다면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어떤 대가입니까? 주님이 지금 사람들로부터 얻고 있는 인기를 볼 것이 아니라 머리둘 곳조차 없는 신세에라도 능히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박국선지자의 고백을 참 좋아합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고백이 있으십니까? 사업이 잘되지 않고, 경제적 이윤울 많이 남기지 못하고, 직장에서 어려운일을 만나더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실 수 있으십니까? 참된 제자란 주님께서 머리둘곳이 없다고 말씀하실 때, 나도 그 자리에까지 함께 내려갈 수 있는 대가를 능히 치룰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 본문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21절에 \"제자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첫 번째 서기관과 두 번째 사람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 앞에 \'제자\'라는 단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제자\'라는 말이 예수님의 열 두제자중에 한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사람에 대해 \'제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기관보다는 훨씬 더 예수님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는 서기관이 예수를 좇겠다는 표현과는 달리 자신이 금방 주님을 좇을 수 없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어떤면에 있어서는 굉장히 솔직한 듯 합니다. 앞 뒤 아무생각없이 무조건 따르겠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 현실감이 있어보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의 말에 더 호감을 가질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책임도 질수 없는 말을 마구 남발했다가 지키지 못해 곤욕을 치루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의미에서 본다면 이 말은 상당히 호감을 가질만한 말입니다. 더구나 그가 예수님을 곧 바로 따를 수 없는 이유로 내건 내용이 무엇입니까? 부친을 장사하는 문제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부친의 장사를 먼저 치른 후에 따르겠다는 말입니다. 상당히 효심도 지극한 것 같은데 누구 이 사람의 결정을 잘못되었다고 말하겠습니까?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우리주님은 칭찬을 하신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만 생각하면 도저히 용납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유교문화권에서 자란 우리들로 봐서는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부모도 없고, 조상도 몰라보는 배은망덕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부친의 장사도 치르지 않고 주를 따른단 말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은 부모를 무시해서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장례를 치루는 것이 필요없다는 말씀도 아닙니다. 이 말씀의 본질은 조건을 내걸어서 주를 따르는 일을 미루지 말라는 뜻입니다. 더구나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는 일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며 주를 따르고자 하는 자라면 육체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주석가들에 의하면 이 사람이 부친의 장사를 치르고 난 뒤 주를 따르겠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해석하기를 \'아버지가 죽은 이후에 물려 받은 재산때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무생각없이 예수를 따라나서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유산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돌아가신후 유산을 물려 받고 난 다음에 예수를 따르겠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해석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아버지의 유산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것을 미루었다면 유산을 받은 후에는 더 더욱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유산때문이라기 보다는 순수하게 아버지에 대한 효성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같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으로서 내 도리를 다하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그때 주를 따르겠다\'는 뜻인 듯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예수님을 따르려고 한다면 다른 조건을 내걸어서 미루지 말고 즉시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음에\'라는 말을 너무 잘 씁니다. \"다음에 하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주어지면 그때가서 하겠습니다.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며칠만 기다려주세요, 내년에 하겠습니다.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람처럼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이 사람의 사정을 몰라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물론 주님이 이 사람의 사정을 몰랐을 것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은 그의 사정을 아십니다. 그의 효심도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따르는 일에 조건을 내걸어 미루는 일은 옳지 않은 것임을 분명히 해두셨습니다. 만약 이 제자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으로 교훈하실 때,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는 분명히 \"너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주님의 말씀보다는 \'먼저 부친을 장사하게 해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우선순위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을 따르는 일을 미루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떠합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내가 정해놓은 우선순위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을 먼저 하고 나서 주님을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까? 참된 제자의 자격은 내가 정해놓은 우선순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정하신 우선순위를 올바로 깨닫는자입니다. 주님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저것 조건을 달아서 다음기회로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왜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서기관처럼 영광만보고 고난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 제자처럼 내가 정한 우선순위가 먼저고, 주님이 말씀하신 우선순위를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참된제자의 자격을 갖추셨는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