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됨의 조건


예수님의 제자됨의 조건
마8:18-22



마태복음 8장만해도 예수님의 사역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쇼킹할만한 일이었습니다.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백부장의 하인의 병을 말씀으로 고치시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수많은 귀신들린 자들을 말씀으로 고치신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러한 신비스러운 사건이 일어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며 따랐고 그로 인해 예수님은 다른 지역으로 가시기 위해 배를 타고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저 편으로 건너가려고 할 때 두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요청하였습니다.
우리는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저들의 모습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고, 또한 저들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의 제자 됨의 조건\\\"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자신을 말씀으로 진단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참제자로서의 결단을 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1. 세상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본문 2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서기관은 지금 막 떠나려는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누가 요구한 일도 없는데 주님을 따르겠다고 자청하였습니다.
사실 이 서기관의 고백만 들으면 이 사람은 사명감이 불타고, 주님께 대한 열심이 남다른 것처럼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겠습니다\\\'라는 고백은 제자로서의 필수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서기관의 마음을 아시고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서기관의 착각을 보게 됩니다.
서기관의 직책은 종교적으로 상류계급에 속한 자이기에 존경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는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종교적 우월감에 사로잡힌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결단만 하고,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알 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은 분명한 소명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내 의지, 내 결단보다도 주님의 부르심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내가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서기관의 또 하나의 착각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치러야 할 대가가 있음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서기관의 용기는 너무나도 맹목적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군중들과,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들을 보면서 예수님과 같이 있기만 하면 굉장히 유익하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에게 어떤 영웅심리가 작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영광도 얻고, 생기는 것도 많아지고, 자기의 이름과 지위도 지금보다는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무조건 축복을 받고, 병도 낫고, 모든 것이 잘 되고, 무엇을 하든지 성공하고 형통한 일만 있을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 믿기 때문에 희생해야 할 몫이 더 커지고, 예수 믿기 때문에 세상 것을 포기해야 하고,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내어놓아야 하는 제자로서의 치러야 할 대가가 있음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눈에 보여지는 화려한 현상에만 집착한 서기관에게 주님은 나를 따르고, 제자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처할 집도 없을 만큼 고난의 삶이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욕심과 야망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서기관을 경계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20절의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영광과 부귀보다는 고난을 겪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 언제부터인가 세속적인 매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교회가 대형화가 되면서부터 교회 안에 서기관과 같이 자기 영예를 위해 제자가 되려는 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 기도하는 삶보다는 교회를 이용해 뭔가를 얻어보려고 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보다는 내 유익을 위해서 교회로 찾아오는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십자가 없는 부활만을 고집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가 가진 문제가 무엇입니까?
무조건 교회로 와서 헌신하고 봉사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받아들이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 겪은 일이기 때문에 다 아시겠지만 천안에 있는 C대학교 신학생을 우리가 두 사람이나 교육전도사로 채용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모습은 사명감이 있고,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이 아니라 그저 오갈 때 없어서 신학교에 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신학교가 무작위로 돈벌기 위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신학교를 지원한 학생이라면 검증이 더욱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들의 의식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장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 부정을 할 줄 알 때 가능합니다.
주님을 위해 희생도, 고난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무엇이든지 잘 된다는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그것은 기복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은 참으로 위험한 신앙입니다.
주님이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를 때 저들은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좇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들의 생업을 포기한 체 주님을 따랐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 앞에 부끄러움과 함께 큰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를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주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겠다는 바울의 신앙고백이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본문 22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자 중에 또 한사람이 주님을 따르려고 하면서 조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제자 중에 또 한사람\\\'이라는 문장에 시선을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불신자가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는 사람 중에서 항상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자라고 하는 사람이, 이미 예수 믿기로 결심하고 헌신하기로 다짐한 사람이 예수님께 조건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우리는 이 말씀을 언뜻 대하면 이 제자는 대단한 효성을 가진 사람처럼 보여집니다. 상당히 합리적인 요구인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세상적인 직무는 세상 사람들에게 맡기고 네가 해야 할 일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기독교는 불효를 가르치는 종교인가? 부모의 장례도 치르지 말라니 너무하지 않는가? 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의 배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 당시의 관습은 부모가 나이가 많거나 혹은 중한 병에 걸려 있을 때 자식은 부모에게서 멀리 떠나는 것을 삼가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친을 장사하겠다는 것은 지금 부친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장례식을 마치고 주님을 따른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부친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부친이 별세하기까지는 주님께 헌신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또한 세상적 욕심에 끌려 미혹된 소리입니다.
부친이 돌아가심으로 받을 유산 때문에 부친이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유산 받으면 그 때 주님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조건부가 아닙니다.
신앙생활 속에 조건을 내미는 사람은 아직도 주님께 드릴 헌신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그때 멋지게 주의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성도가 계신다면 지금 당장부터 그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일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채워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제자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추구해야 할 우선 순위를 혼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혼돈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안됩니다.
때로는 자기의 취미도, 자기의 개성도, 친구도, 물질도 다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 때문에 때로는 세상적인 의무도 포기할 때가 있습니다.
가정 일을 다하고, 직장일 다하고, 친구들 다 만나면서 언제 예수님을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의 일에는 핑계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전도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핑계가 많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하면 \\\'돈 좀 벌어놓고요\\\', \\\'나중에 죽을 때쯤 되어서 믿을께요\\\', \\\'자식들 다 키워 놓고요\\\'라고 핑계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왜 이렇게 바빠졌나 모릅니다.
우리의 삶이 바빠지면서 영적인 일에 너무 소홀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영원한 가치를 위해서 투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조건을 내세우고, 핑계하는 자에게 주님은 \\\'너는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나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주님을 위해 살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에서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는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곧 자기의 육적인 욕구를 뿌리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팽개치고 주의 일을 한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항상 낭만이 있고, 달콤한 삶을 보장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난도 받고, 제자이기 때문에 육적인 일보다는 영적인 일에 우선 순위를 둘 줄 알아야 합니다.
진정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날마다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원하시는 참된 제자가 되어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축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