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자 마7:15-23 신앙과 믿음은 분명히 정도의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길을 말씀을 통해서 날마다 제시하고 있는 셈이지요. 어떤 길이든지 정도의 길은 어렵고 고난의 길입니다. 법조인들의 정도의 길, 정치인들의 정도의 길, 교육자들의 정도의 길이 있는데 그 정도의 길을 걷지 못하니까 문제가 생기고 결국은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도 정도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고난의 길이고 어려운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요구하는 길속에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은혜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의 의미를 아시지요. 스승의 모든 것을 본받아 실천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스승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제자고요. 그러면 제자로서 정도의 길이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합니다. 그에 앞서 제자가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교리는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한마디로 말할 수 없을 만큼 그 크기는 엄청납니다. 그런데 감히 저가 의미를 축소해서 설명을 한다면 해방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자유함이지요. 죄가 우리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였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죄짓는 것 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다만 구약에서 지은 죄를 일시적이나마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제사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림으로 이스라엘백성들의 죄를 양이나 짐승들에게 담당시켰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도 죄에서 완전히 자유함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죄를 지을 때 마다 그들은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가서 죄사함의 의식을 치러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죄를 다 담당하시어 죽으셨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인류의 죄를 다 담당하시고 대신 심판을 받은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다시 사신 것입니다. 우리의 원죄는 다 사함을 받고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묶여 있든 죄에서 빠져나갈 곳이 없었든 우리는 이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돌아가셨으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맡을 분이 계셨고 사해주실 분이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죄의 속박에서 빠져나와 자유함을 누리는 심령들이 된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죄가 없으므로 심판받을 것이 없고 지옥형벌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 백성으로서의 자격 있는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것이지요. 그 자격있는 삶이 바로 제자의 삶입니다. 미국이 세계부의 58%차지하고 있습니다. 세계보험의 78%를 미국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계60%의 자동차를 미국인이 타고 다닙니다. 미국사람 일년 쓰는 변비약이 3억불이며 버리는 신문지 5800톤이나 되고 360억개의 병을 하루에 버립니다. 미국사람 코카콜라 하루에 8억 잔을 마십니다. 소화제는 7억8천만불 소비합니다. 일 년에 사용하는 향수는 9억6천만불이나 됩니다. 그 많은 부를 가지고 뉴욕의 92%의 청년이 교회를 안 나갑니다. 매 22초마다 범죄 한건이 생깁니다. 매 34분마다 살인사건이 한 건씩 일어납니다. 8분마다 사상아가 태어나고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 절반이 이혼합니다. 과연 하나님이 미국이란 나라에 모든 부를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는 세상 사람들과 나누지만 영적으로 타락한 가운데 많은 부분에서 소비하고 있는 그들을 하나님이 언제까지 축복해 주실 것인가? 이 말입니다. 한국도 자가용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고 성장 일변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지금도 세계에서 10위에 더는 경제 국가라고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굉장한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환경과 조건을 초월한 믿음으로 삶의 질을 바꾸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사짐센타에 맡겨놓은 이사짐을 아예 찾아가지를 않는답니다. 이사짐센타에서도 골치를 앓고 있는데 맡겨놓은 물건을 정리해도 맡긴 비용을 감당 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사짐을 풀지 않고 이사짐을 맡겨 놓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다는 것입니까? 급성장하든 한국교회도 지금은 마이너스 성장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일천이백만이 교회를 들락날락 그리지만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진실한 제자는 몇 사람이 되는지 그리고 내가 진실한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 이런 암담하고 어려운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이 한번쯤은 집고 넘어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록펠러가 종이에 사인만 하면 몇 만 불이 왔다 갔다 합니다. 벰브같은 사람은 그림만 그리면 몇 십 만 불식하고 조각하는 사람들이 조금한 물자를 가지고 조각해 놓으면 부르는 것이 값입니다. 누구의 손에 들어가느냐 따라서 인생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하나님께 붙들릴 때 모세에게 잡혔던 그 지팡이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일천이백만 성도를 자랑하는 한국교회와 수 만명의 성직자이 배출된 이런 한국교회에 예수제자가 몇 사람이나 되냐? 하는 것은 지금 이런 상황에서, 진리를 심는 사람들이 있는가? 남의 양심으로 기준을 삼고 이웃에 빛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복음의 외침이 지금도 살아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무엘 한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웃나라로부터 보호를 받았습니다. 다윗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이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에스더 한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죽음을 면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를 통해서 세계에 복음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웃과 사회와 이 민족을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참 제자들이라는 사고를 가져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참 제자로서의 삶이 요구되고 있고 또한 참 제자의 삶은 어떤 삶인가에 대해 말씀을 통해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십자가를 진자가 예수의 제자입니다. 눅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자기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자기 십자가’란 무엇입니까? 자식 속 썩이는 것, 남편이 애먹이는 것 이런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 십자가는 있습니다만은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십자가는 분명히 있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하면 십자가는 총체적으로 자기 사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침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된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복음전함에 있다는 말이지요. 불교가 자비의 종교라면 유교가 윤리의 종교라면 흰두교가 신비의 종교라면 마호매트가 행실의 종교라면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을 상징하고 고독을 상징하고 죽음을 상징하고 동시에 사랑이요, 용서요, 축복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습니까? 눅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선 뜻입니까? 예를 들어 ‘오늘 교회 가기 싫은데 가지말자’그래서 교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교회 한번 빠지는 것이 지옥가는 일도 아니고 엄청나게 죄를 짓는 일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왜 문제가 됩니까? ‘알기는 알겠는데 하기 싫어서 안 했어, 알기는 알겠는데 그렇게 할 믿음이 아직 안돼.’ 이런 단어에 문제가 무엇이냐 이 말입니다. 자기가 주인이라는 뜻이지요.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말 아닙니까? 그러니까 자기를 ‘부인’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 자기십자가를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부인을 상징합니다. 1471년에 누룬복이란 조그만 독일의 도시에 에어붓둘로라는 소년이 태어났습니다. 가정이 너무 가난하고 아버지는 대장장이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학교가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동네 친구 중에 같은 처지로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둘이 만나서 이런 상의를 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노동을 해서 학비를 보내주면 한 사람이 공부를 하자, 그리고 한 사람이 학업을 마치면 또 다른 사람이 돈을 벌어 학비를 보내주면 될 것이 아니냐’ 그렇게 상의를 하고 서로 노동을 먼저 하겠다고 우기다가 에어붓둘로 친구가 노동을 해서 그 학비로 공부를 하게 됩니다. 엄청나게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잠도 한하고 공부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친구가 돈을 붙어서 공부를 하는터라 빨리 공부를 마쳐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이 한 폭 두 폭 팔리기 시작합니다. 이제 친구에게 공부하라고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친구는 집에서 한 참 기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친구의 기도를 우연히 듣게 됩니다. ‘하나님 저는 심한 노동으로 손이 굳어져 그림공부를 할 수없으니 대신 내 친구는 세계적인 화가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여기에 감동을 받아 친구의 기도 손을 그린 것이 그 유명한 걸작이된 기도의 손입니다. 친구의 희생으로 기도의 손이 나왔습니다. 기도의 손은 지금 박물관에 없습니다. 그림을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보려고 하니까 다른 박물관에 소장하고 일주일에 2번만 공개를 한다고 합니다. 기도의 손이란 유명한 그림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희생을 통해서 나왔습니다. 주님의 희생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희생의 삶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은혜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짐을 지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말씀 안에 거해야 제자가 된다고 합니다. 요한복음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에 거할 때 제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교회를 수 십년 나왔다 해도 하나님 말씀에 거하지 않으면 제자가 아닙니다. 신명기 28은 축복의 말씀이 기록된 장입니다. 그런데 축복을 아무나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이 ‘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삼가 듣고 말씀을 행하면’ 이런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면 복을 받습니다. 멕아드장군은 성경 한 장을 읽지 않고는 잠자리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비행기를 몰 때 시계가 제로가 되고 폭풍이 몰려오면 계기판의 인공수평장치를 바라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폭풍이 몰려온다든지 안개가 끼면 계기판과 다른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각을 잃어버리기 때문이지요. 조종사가 이 지역은 내가 눈 감고도 조종할 수 있다고 자신을 하고 자기 느낌대로 비행기를 몰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올라가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계기판에는 내러가라고 하면 무조건 계기판을 따라야 산다는 말입니다. 죤 F케네디2세가 마르다섬을 비행하다가 추락해서 부인인 게드린과 누이까지 죽고 말았습니다. 원래 자가용 비행기는 운전하기가 까다롭지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케네디2세가 비행기 조종을 배울 때 폭풍이 몰려오고 안개가 끼고 하는 것에 대한 적응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위험할 때 계기판을 응시하지 않고 자기 느낌이나 감각을 의지하다 보니까 죽게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영적 계기판은 말씀입니다. 말씀하고 현실하고 부딪힐 때 우리는 우리의 느낌이나 감각이나 고집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망한다는 것이지요. 말씀을 실천하는 것보다 현실이 더 현명하고 내 생각과 느낌으로 살아가면 더 잘 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을 경고하고 있단 말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느낌이 다를 때 전적으로 말씀을 따르는 심령들이 되어야합니다. 낙심될 때 시편126편을 보십시오. 마음이 냉냉 할 때 요계3장을 보십시오 , 외로울 때 시편91편에서 위로을 받으십시오, 신앙을 잃었을 때 고린도전서10장을, 불쾌한 일이 있을 때 히12장을 , 비난 받들 때 요한15을 보십시오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계기판이 될 것입니다. 베이컨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피곤 할 때 성경이 침대가 되고 어두움이 있을 때 빛이 되고 배고플 때 떡이 되고 무서울 때 감옥이 되고 병들었을 때 양약이 되고 일류역사에서 성경만큼 인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고2학년 학생이 대학을 가야 되는데 성경책도 안 보고 공부도 안하고 태평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 너 대학에 붙으면 자동차 한대를 사주겠다’이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자기가 계획한 대학을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동차는 안사주고 성경책 한권만 사 줍니다. 그리고 ‘매일 한 장식 성경책을 읽어라 특별히 빌립보서4:19 읽어보라’고 당부까지 합니다. 자동차는 안 사주고 성경책 하나만 사 주신 아버지가 밉기도 하고 그래서 아버지가 먼저 약속을 어겼기에 성경이 얼마나 미웠든지 4년 동안 한번도 펴보지 않았습니다. 대학4년을 마치고 졸업식에 부모가 갔습니다. 짐을 챙겨서 집으로 와야 되는데 아버지가 ‘내가 준 성경책 어디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이 주섬주섬 찾았는데 구석에 성경책이 처박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빌립4:19절을 한번 펴 보아라’아들이 펴보니까 자동차 한대 살돈 인 수표가 들어있습니다. 아버지는 분명히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동차 살 돈을 성경에 꽃아 놓고 다녔든 것입니다. 누구 잘못입니까? 하나님께서 3000개의 언약이 여기에 들어있습니다. 이것이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어 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말씀 안에 있으면 예수의 제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시인 김지하와 두레마을의 김진홍목사님이 유신정권반대 대모로 인해 감옥에 갔는데 둘 다 0.7평짜리 독방에서 있었답니다. 그 독방은 맨손체조도 못할 그런 좁은 공간인데 그기에 모든 책과 소지품은 다 압수하면서 성경책은 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김진홍목사님과 김지하시인이 서로 독방에서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은 교도소에서는 이스라엘무협지라고 하는데 둘은 좋아서 읽었다기보다 딱히 할일이 없으니까 성경을 읽은 것이지요. 그런데 김지하시인은 성경에서 정말 멋진, 인간 중에 가장 훌륭한 인간, 인간예수 성인인 인간예수를 알게 되었다고 최근에 나온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반면에 김진홍목사는 예례미야서를 6번 읽으면서 그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과 영이 만나는 영적체험을 했답니다. 그래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책에 눈물이 젖을 까봐 성경책을 위로 올려놓고 읽을 정도였답니다. 그기서 김진홍목사님은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다 치유되었다는 고백입니다. 목사님이 감옥에서 나올 때는 아주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반면에 김지하시인은 감옥에서 나와 10년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알콜 중독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왜 김진홍 목사는 더 강인한 사람으로 나오고 김지하시인은 패인이 되어서 나왔느냐하는 것은 말씀이였습니다. 말씀의 능력이란 말입니다. 이 말씀을 붙들때 제자가 된다고 합니다. 네 번째 열매를 많이 맺으면 예수의 제자가 된다고 합니다. 요15:7-8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과실을 많이 맺으면 네 제자가 된다고 합니다. 올해 우리가 뿌린 씨앗에 열매가 얼마나 됩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전도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5대전도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증인된 삶에는 분명히 열매가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합니다. 신부님이 이발소에 이발하려 오셨습니다. 이발을 다 끝내고 돈을 지불하려고 하니까 이발사가 하는 말이 ‘신부님 좋은 일하시는데 오늘 이발을 공짜입니다.’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 다음날 초콜릿 한 상자가 이발소 문 앞에 있습니다. 열어 보니까 메모가 적혔는데 ‘어제 이발 무료로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 날 또 스님이 이발을 하려 왔습니다. 돈을 지불하려니까 이발사가 ‘스님 좋은 일 하시는데 오늘 이발비는 비료입니다.’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 다음날 이발소 문 앞에 이런 메모와 함께 도넛이 한 상자 있는 것입니다. 펴보니‘어제 무료로 이발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글귀입니다. 그날 저녁 목사님이 이발을 하려 오셨습니다. 이발이 끝나고 이발비를 지불하려고 하니까 또 이발사가 ‘좋은 일 하시는데 이발비는 공짜입니다.’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이발사가 아침에 이발소에 왔더니 12명 정도의 목사들이 줄을 서 있더랍니다. 주책이지요. 그런데 이런 면에서 생각 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좋은 소식을 빨리 빨리 전해야 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수원침례교를 시무하시는 김장환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권사님이 의자에서 기도가 안나오니까 마루바닥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 김씨라 분이 나와서 바닥을 두드리면서 통곡을 하면서 기도합니다. 미장하든 사람인데 김장환목사님 사택을 지을 때 전도하니까 통 먹히지 않았던 분입니다. 그런 사람이 새벽에 기도하려 나왔기에 ‘어떻게 새벽에 다 나왔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목사님 살려 주세요’하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합니다. 막내아들 좋은 대학 나와서 덕을 좀 보려고 유신 고등학교에 넣었는데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소리도 내고 노래 부르면서 길을 걷고 있는데 고3아이들이 붙들어서 예의가 없다고 땅에 원산폭격도 시키고 때리기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아들이 맞을 차례인데 그때 부슬 부슬 비가 오던 때였 다고 합니다. 아들이 가지고 있든 우산 쇠 꽂이로 휘두르다가 고3 아이 급소를 찌르게 되었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갔지만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두 아이가 업무상 치사로 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 그 아버지가 사정을 다 이야기하고 목사님께 살려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전도하려고 성의를 보이기 위해 검사장을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고 ‘제가 책임지고 사람 만들겠으니 풀어주십시오’했더니 담당검사를 만나서 이야기 해 보라고 해서 담당 검사를 만나는데 30대 초반 정도 보였습니다. 그래도 영감님 해야 좋아하니까 영감님이라 불러가면서 사정 이야기를 하니까 한 발 늦었다는 것입니다. 어제 이미 감별소로 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 김익준장로님을 모시고 서대전교도소에 가서 두 아이를 면회를 합니다. 아이들은 목사님을 보더니 ‘살려주세요’하면서 사정사정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예수 믿으면 최선을 다 하겠다 믿을래 안 믿을래’그랬더니 살려만 주면 목사님 하라는 대로 다 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이제 판사에게 넘어간 상황이니 아는 판사를 알아보니까 한증진판사가 있었습니다. 그분께 전화를 하니까 지금 합의중에는 누구와도 만날 수 없는데 퇴근길에 오시면 만날 수 있다고 해서 부라부라 가다가 그만 신분증을 모르고 안가지고 간 것입니다. 신문증이 없으면 출입부터 불가능한데 그래서 차 안에서 꼭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검찰청에 도착했더니 마침 그때 중요한 사람이 방문을 했는지 금태 두른 수위가 한참 인사를 하고 있는 그 분들 뒤를 따라 올라갔답니다. 7층에 부장판사를 만났더니 이것은 소년원 판사 소관이니 그 분께 안내 해 주겠다고 해서 비서와 함께 소년원담당판사를 만났습니다. 그 판사앞에서 90도로 인사를 하고 극동방송 사장이라고 소개를 한 다음 사정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 난후 일주 일만에 석방된 것입니다. 석방 후 그 집에 가서 식구들을 다 모여 놓고 일일 부흥회를 하고 전도사를 매 주 한번씩 파견에서 성경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급한 전화가 옵니다. 김씨라는 학생 아버지가 임종하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임종시에 아들에게 ‘목사되는 것이 소원이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유신고등학교에서는 퇴학을 당해서 수원공업고등학에 들어가 졸업을 하고 대전신학교를 나와 지금 목사가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그분이 바로 김광호 목사님이십니다. 참 제자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정도의 길이며 제자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된 삶을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는 복된 심령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