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자들의 행동 ! 마5:38-48 본 설교는 진실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인격을 갖추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고, 말하게 하고, 행하게 해주는 주님의 말씀을 주의 종이 대언 하는것 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네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이제 매주마다 한 제목씩 선택하여 말씀을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3월 달은 제자들의 인격을 다시찾고 언제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마음대로 쓰임을 받는 종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Part Ⅲ:제자의 인격 1. 사 고(눅12:22-31) 2. 대 화(눅24:13-35) 3. 행 동(마 5:38-48) 4. 성 격(막 8:1-10) -목적 `제자의 인격`이라는 본 주제를 통해 의도하는 목적은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생각, 말, 행실을 나타내 보여야 할 것을 알게 하고 자신의 사고, 대화, 행동의 문제점을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에 이르도록 성서적 사고, 은혜로운 대화, 관대한 행동을 하도록 이끌어 주는데 있습니다. 오늘 삼일기도회에서 전해 드릴 말씀은 제자들이 갖추어야 하는 인격 중에서 \"성서적행동\"에 대해서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Sermon(설교) 3:행동 -목표 1.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사는 제자는 그 행동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달라야 함을 알게 한다. 2.제자의 행동 반응은 그리스도께서 원수들을 대하실 때 보여주신 초월의 자세로 대할 것을 깨닫게 한다. 3.제자들이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게 되도록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드러내며 살아가게 한다. -본문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주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38-48) -예배의 부름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2-24) -기원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신실히 지키시는 하나님 ! 오늘도 축복의 언약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행위는 오만과 반역과 거스려 악을 행함 그것뿐이오나 주님의 역사는 피흘림으로 정결케 하심이니이다. 주여 ! 성령의 열매로 주님께 드리기를 원하나이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듯 우리의 행실이 하나님의 자녀됨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이 한 시간의 예배를 통해 선한 행위의 동기와 방법과 결심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본문연구- 1.관 찰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아 봅시다. (1)악한 자들에 대한 구약 율법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떻게 다릅니까 ?(출21:22-25, 레24:20, 신19:21, 마5:39-42) 답:구약 율법에서는 보복을 정당시하였으나 예수님은 악한 자들에게 대하여 보복하지 말고 무저항과 관대함으로 대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2)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에게 주님께서 제시하는 3가지 이야기가 각각 어떤 문제입니까 ?(39-42절) 답 :1)명예(뺨) 2)재물(옷) 3)의지(거리) (3)신자를 핍박하는 원수에 대한 구약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떻게 다릅니까 ?(43-44절) 답:레 19:18, 신7:2-3등에서 이방족속인 원수를 미워하라는 뜻의 구절이 나오지만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원수로 여기던 이방 족속들까지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4)우리가 온전하게 되어야 할 표준은 누구인가 ?(48절) 답:하나님 2.해 석 -본문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1)우리 인간생활에 행동과 반응의 관계를 생각해 보십시오(3절). 답:우리의 행동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이나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2)오른 뺨과 왼 뺨을 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39절) 답:오른 뺨을 친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상대방을 친다는 의미이고 왼뺨을 친다는 것은 손등으로 상대방을 친다는 것인데 전자보다 후자의 행동은 두배의 모욕적인 행동을 나타냅니다. (3)인간의 반응을 이성의 단계, 선행의 단계, 신앙의 단계로 구분하고 그 표현 양상을 한 마디씩 쓰시오. 답:이성의 단계에서는 노여워 하고 선행의 단계에서는 인내하고 신앙의 단계에서는 초월합니다. (4)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는 생각들 4가지를 언급하십시오. 답: 1)하나님에서는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하라고 하실지 모른다. 2)하나님께서 나에게 최상의 유익을 주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3)하나님께 드린 것은 다시는 되돌려 받지 못할 것이다. 4)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자기가 알고 있다. 3.적 용 -본문을 오늘 나에게 적용시켜 봅시다. (1)당신의 성격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반응에 있어서 장단점을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문제점이 있습니까 ? (2)\"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을 묵상하고 온전케 되기를 갈망하는 기도문를 쓰십시오. * 설교전 부를 찬송:361장(주의 주실 화평) 해설: 기도의 계속성 / 눅 18:1-8; 고후 12:7-9 기도의 필연성 / 출 3:7,8; 겔 36:37 바울의 기도 / 행 9:10,11; 22:16 믿음의 원천 / 행 3:16; 히 12:2 마음의 욕심 / 마 5:24; 19:16-22 불화를 해소하기 전 / 마 5:23-26; 6:14,15 진리의 빛을 따라 / 시 119:105; 잠 6:23 빛 가운데서 / 요 12:35,36,44-46 모든 사람에게 선을 / 마 5:43-48; 살전 5:15 선을 행한 자에게 / 갈 6:9,10; 딤전 6:17-19 방종에 대한 경계 / 갈 5:13-15; 약 1:21-27 진리 안에서 자유를 / 잠 3:21-26; 요 8:32 주의 백성의 일 / 엡 2:8-10; 딛 2:4 빛 가운데서의 교체 / 고전 1:9; 요일 1:3-10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 490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 353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 352 날 대속하신 예수께 - 351 나의 생명 드리니 - 348 예수 따라가며 - 377 산제사 - 예수께서 당신의 살과 피를 희생 제물로 바치신 것이 바로 산제사(living sacrifice)의 전형인 바, 그분의 뒤를 쫓는 모든 자들 역시 몸과 마음을 온전히 그분께 바쳐야 하리라. 엘리샤 알브라이트 호프만(1839-1929) - 미국 펜실베니아주 태생의 목사. 그는 유니온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목사 안수를 받고 여러 교회에서 목회하였다. 특히 그는 여러 음악 서적 출판의 편집인으로 봉사하였으며 이외에도 찬송에 관련된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만년에 그는 가난한 빈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목회하면서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일에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본 찬송시는 마 5:24의 말씀이 배경이 된 것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 또는 화목이야 말로 주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영적 예배의 중요한 부분임을 분명하게 교훈해 준다. 본 찬송은 자신의 것들(물질, 지식 등)을 철저히 고집하면서, 그리고 자신의 본분(빛의 생활, 기도 생활, 선한 사업)을 다하기 전에 먼저 하늘의 축복부터 바라는 신자들에게 일침(一針)을 가한다(1-3절). 이러한 신자는 자신의 전 소유를 버리고자 하는 용단없이 복을 누리고자 했던 부자 청년에 비유될 수 있다(마 19:16-30). 이러한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깊은 은혜에 동참할 수도 없다. 그리스도의 크신 은총을 절감하고 사는 자라면 먼저 주의 제단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믿음의 산 제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다. Sermon(설교) 3:행동 지옥이란 사람들이 남과 조금도 공통점을 갖지 않은 곳입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서로 미워하는 것, 서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들에게는 협조나 봉사, 희생이라는 건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여 자기 욕구를 채우려고 안간 힘을 쓸 뿐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이 서로 벗어나려는 이유는 그들이 남한테서 보는 것들을 미워하는 것에 못지 않게, 남들이 자기네 안에서 보는 것을 미워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한테서 자기가 미워하는 것 이기심, 무능, 고민, 공포, 실망을 봅니다. 이렇듯 우리의 행동은 무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에 대한 반응(Reaction)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뻐하는가 하면 때로는 노여워 하고 어떤 때는 좋게 반응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나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행동을 분석해 보면 아마 절반 이상은 이 반응의 행위 속에서 산다고 할 것입니다. 여기에 한가지 그리스도의 제자된 사람에게 주어진 과제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불신자의 행동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감정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 아래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불신자들은 자기 감정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오는 방망이에 가는 홍두깨\"란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조금만 손해를 입혔을 때 도저히 참을 수 없으며 어떻게 하든 복수를 해야만이 속이 시원하게 되는 공격적인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작금에 이란과 이라크의 끊임없는 보복 전쟁이 보여 주듯이 보복은 보복을 낳고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만이 생깁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아 키움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오히려 큰 위로와 교훈을 주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신자만이 실천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이며 최후 승리의 비결입니다. 본문은 이유없이 신자를 핍박하는 자와 괴롭히는 자들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악한 자들에 대한 구약 율법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즉 모든 보복을 정당시 한데 대하여 예수님은 악한 자들에 대하여 보복하지 말고 무저항과 관대함으로 대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레 19:18, 신 7:2-3등에서 이방족속들인 원수를 미워하라는 뜻의 귀절이 나오지만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원수로 여기던 이방 족속들까지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 죄인을 용서하는 사랑, 끝까지 인내하는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가 흉내내는 것도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랑에 있어서 온전하신 것 같이 하나님의 자녀인 신자들도 온전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심지어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 원수 맺은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듣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얼마나 어려운 말입니까? 원수를 위해 기도하며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과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기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에게 주님은 다음 3가지를 우리의 행동의 표본으로 제시해 주셨습니다. 첫째 \"누구든지 제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바클레이(Barclay)는 해석하기를 오른 뺨을 친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상대방을 친다는 의미이고 왼뺨을 친다는 것은 손등으로 상대방을 친다는 것인데 전자보다 후자의 행동 즉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두 배의 모욕적인 행동을 나타냅니다. 결국 이 말씀의 교훈은 상대방이 가한 모욕의 두 배 이상의 모욕을 받을 자세를 갖고 관용하라는 교훈입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명예나 지위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부당한 행위를 포용할 수 있는 반응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존심이 상했다손 치더라도 예수님께서 당하신 치욕에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이 원수들을 어떻게 대하셨는가를 우리가 알진데 감히 우리가 보복할 수 있겠습니까 ? 둘째는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속옷은 셔츠(shirt)를 말하고 겉옷은 코트(coat)를 말합니다. 당시에 일반 유대인들의 경우 속옷은 몇벌씩을 갖고 있었으나 겉옷은 한벌만 갖고 있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그야말로 단벌 신사였지요. 그래서 겉옷은 전당잡혀도 그날로 반환토록 규율로 정해놓곤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큰 빚을 져도 겉옷을 입을 권리를 주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말씀의 의미는 다른 사람의 침범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자유스러운 생활태도를 가지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주변 사람들과의 물질적인 관계에서 인색하거나 냉정할 것이 아니라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물건들이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하게 간주되는 물질주의 시대입니다. 세상이 물질을 얻으려고 미친듯이 얽혀지는 가운데 제자들은 시편 기자와 같이 \"여호와는 내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시 16:5)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소득의 분깃인 예수 그리스도는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려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 오늘도 개방되어 있습니다. 우리 소득의 분깃은 그의 생명, 그의 능력, 그의 기쁨, 그 분 모두를 포함하며 이 모든 것이 다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당신은 내 분깃이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시 119:57)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시 73:26하). 셋째는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회적 배경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지배하에 노동을 강요받고 살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현실적인 생활의 문제였습니다. 때문에 5리는 고사하고 그 절반을 가는 것도 화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리를 동행하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 41절에 `억지로`는 시민의 편지를 나르는 의무를 맡김으로써 운영되는 로마의 우정제도의 습관에 대한 언급입니다. 아마도 5리만 가자는 사람과 10리를 함께 갈 작정이 되어 있으면 이미 5리를 가는 건 문제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적극적인 자세와 강한 주체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이유를 45절에서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고 하십니다. 구약에서 사랑하라는 명령은 레위기 19:18의 문맥에서 분명한 것 같이 이는 동포 이스라엘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 밑에서는 모든 격리된 담이 파괴되었습니다(갈3:28, 골3:11). 그러므로 이 제한도 제거되어 이 명령은 보편적으로 적용됩니다. 신약성경은 그 국제적(눅10:25-37), 사회적(약2:1-9), 개인적(눅13:8-10) 적용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행동이 46-47절에 있는 것처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는 질문의 내용은 우리의 낮은 수준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생활은 이러한 단계를 넘어설 때 하나님과 같이 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48절: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말씀은 레위기 19:2의 가필 인용입니다. 그 요지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생애는 한정된 율법의 표준과 대조적인 복음이라는 완전한 윤리적 표준에 의하여 인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반응(행동)을 3단계로 구분하면 제일 낮은 단계가 이성의 단계(The level of reason)이고 다음이 선행의 단계(The level of good conduct), 그 다음이 신앙적인 삶의 단계(The level of God`s life)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세가지 양상에 대해 만약 첫 단계에 있는 사람이 반응했다면 노여워(angrily)했을 것이고, 두번째 단계의 사람이 반응했다면 인내(Patiently)했을 것이고, 세번째 사람이 반응했다면 초월(transcenden-try)의 행동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요청을 능가하여 반응할수 있는 것은 초월한 하나님이 내재하여 있을 때입니다. 주님께서 이 명령을 내리신 도덕적 근거는 주님 자신이 율법의 명하는바를 모두 골고다에서 충족케 하셨고 모든 악을 바르게, 자신이 일체의 보복, 형벌, 보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무저항의 원리는 그 속죄의 죽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단 한번만의 행위로 완전히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그와 같은 윤리는 도덕적 근거를 가지지 못합니다. 만일 사랑과 무저항에 대립한 공평과 정의의 윤리만이 골고다 뒤에 남아 있다면 그 결과는 그리스도의 완성하신 사업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기억하십시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초월이 없다면 우리는 너무나 불충분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인내하는 정도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명예에 대한 문제, 소유에 대한 문제, 자기 의지에 대한 문제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인내할 뿐 아니라 이런 문제에 대해 초월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에 복종해야 합니다. 예컨대 거주지, 자녀, 반려자, 친구, 여가, 교육, 계획, 시간, 직업, 재산, 돈 등입니다. 그리스도의 주권에 굴복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전투, 즉 영적인 싸움에 돌입하게 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단과 자신의 의지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싸움에 나가기를 꺼려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 중에 대표적인 4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하나님께서는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하라고 하실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이들에게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데 실제적인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더러 친구로 사귀고 싶지도 않는 어떤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또는 다른 곳으로 이사하라고 하시거나, 외국에서 살도록 요구하실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네, 주님. 기꺼이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제가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공급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2)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보다는 자신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봅니다. 웬일인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미 그 결과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계십니다. 3)우리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최상의 유익을 주고자 하신다는 사실은 믿지 않습니다. 이것은 앞의 내용과 유사하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는 문제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레미야가 기록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 29:11)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 바꾸어 버렸으면 하는 것들이 더러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였다고 믿는 것 중에 바꾸고 싶은 게 있습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행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4)우리는 하나님께 드린 것을 다시는 되돌려 받지 못하지 않을까 두려워 합니다. 이 문제는 굴복, 즉 하나님께 실제로 양도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에 대한 참된 척도가 되는데 이는 자신이 아끼는 것을 하나님께 완전히 양도한다는 것은 믿음을 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성관계일 수도 있고 자신의 소유물이나 어떤 활동 또는 계획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는 매일 매일 보다 더 큰 삶으로 성장해 가야 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커가고 성장할 위대한 기회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큰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주변 사람들로부터 예수 믿는 사람이 더 인색하고 옹졸하고 짜다는 말을 듣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너무 적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것은 크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 혹은 반역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요 ? 세상적인 표준(Worldly Standards)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표준이 아닙니다. 우리의 표준은 영적 표준(Spiritual Standards)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표준에 의해서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관대한 사람들이 되도록 신자다운 월등한 모습을 늘 나타내 보이면서 살아가십시다. * 설교후 부를 찬송:276장(하나님의 진리등대) 해설: 하나님의 진리 / 시 31:5; 요 8:32 그리스도의 빛 / 마 5:16; 요 1:5 주 안에서 빛의 아들 / 요 12:35; 엡 5:8 서로 사랑하라 / 요 13:34,35; 요일 4:7 사랑은 죄를 덮음 / 잠 10:12; 벧전 4:8 사단의 권세 / 엡 2:1,2; 행 26:18 진리를 떠난 자가 돌아옴 / 약 5:20; 유 23 죄의 깊은 밤 / 잠 21:8; 요 8:21 생명의 길로 인도 / 행 2:28; 시 16:11 말씀의 빛을 밝히라 / 시 105: 빌 2:16 진리의 밝은 빛 / 요 3:21; 시 25:5 생명과 평안 / 롬 8:6; 히 7:16 내 영혼을 구원하신 주 / 욥 33:28; 시 91:4 끊이지 않는 등불 / 출 27:20; 눅 12:35 일어나라 비추라 / 사 60:1; 엡 5:14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 - 258 빛의 사자들이여 - 259 온 세상 위하여 - 268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 275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 265 저 북방 얼음 산과 - 273 인생의 등대 - 철학자는 이성을, 과학자는 법칙을, 세속인은 물질과 쾌락을 삶의 등대로 삼는다. 그러나 성도는 영원히 불변하며 광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진리를 등대 삼는다. 필립 P. 블리스(1838-1896) - 미국 펜실베니아 태생. 가난하여 정규 교육은 받지 못하였으나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함께 틈틈이 음악 수업을 쌓아 갔으며 성가대 지휘, 독창자, 음악교사 등으로 두드러지게 활약함. 그러다가 당시의 위대한 부흥사 무디를 만나 그의 권유로 순회 전도 복음송 가수가 되어 부흥 집회시 독창자 혹은 찬송가 인도자로 헌신했다. 한편 이 찬송은 무디 목사의 집회시 그로부터 실제적인 등대예화, 즉 고장으로 등대가 빛을 비춰주지 못한 이유로 여객선이 난파당하여 많은 인명을 잃었다는 예화를 들은 블리스가 감명을 받고 작시 작곡한 곡이다. 예수께서는 `내가...세상의 빛이로다`(요 9:5)라 하셨고 또한 자기를 믿고 따르는 자들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마 5:14).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 안에 성령께서 친히 내주(內住)하시기 때문에 곧 `빛`(마 5:14)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1,3절). 그 빛은 인위적 노력이나 도의적 수양에 의해 발산되는 것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것은 숲속의 옹달샘처럼,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라면 누구에게서나 자연스럽게 넘쳐나는 신선한 `넘침`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쥐인 작은 촛불은 과연 자기 몫의 빛을 충실히 발하고 있는가? -기도 우리에게 온전한 사랑을 나타내 보여주신 하나님 ! 그 사랑을 감사 찬양드립니다.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받고 살면서도 쉽게 욕하고 미워하고 정죄했던 저희들을 용서하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 원수 맺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음과 용기를 주옵소서. 모두가 공격적인 심리를 갖고 살아가는 복수의 불길이 타는 이 현실에 뛰어 들어가 오히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온전한 사랑의 실천자가 되게 하옵소서. 재산, 명예, 의지 그 어떤 문제도 주님이 이미 우리의 주권자이심을 인정하고 그 주권에 온전히 내어 맡길 수 있게 하옵소서. 오늘도 저희에게 \"온전하라\"고 부탁하신 그 말씀이 저희들의 모든 행동마다 들려오게 하셔서 진정한 용기와 최후의 승리의 비결을 터득하게 하옵소서. 주여, 오늘 저희가 과연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인지요 ?\" 깨어 근신하게 하셔서 주님의 본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우리가 이를 온전의 표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말씀의 위탁 지도자: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을 받고 사시는 여러분! 그 사랑으로 자신을 제어하여 남들을 사랑으로 대하십시오. 제 자:아멘! 나는 온전함에 이르는 수련을 닦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믿음과 용기로 남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행동을 하며 살겠습니다.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사랑으로 자신을 제어하여 남들을 사랑으로 대하며 살고자 하는 이 시간 고개숙인 그리스도의 제자들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