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제자를 부르시는 예수님 마4:17-22 금번에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세계적인 상인 노벨 평화상은 그 평화상 부분에서, 역사상 단 두 명의 여성 수상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임스 아담스라는 여인과 켈커타의 테레사 수녀입니다. 제임스 아담스라는 여인은 시카고 빈민가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기자들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빈민굴에 온 것은 내 의지가 아니고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에 여기에 왔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캘커타 빈민굴에서 일생을 보낸 테레사 수녀도 \\\"하나님이 나를 보내 주셨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말에 순종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의 안일과 자신의 평안, 자신의 출세보다 하나님께서 불렀을 때 모든 것을 버려 두고 그 부름에 응답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제임스 아담스나 켈커타의 테레사 수녀처럼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여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주님을 좇은 네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갈릴리 바다라고 불리는 큰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살던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시작한 바로 초창기에 이 곳을 지나가시다 그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러자 그들은 그물과 배와 가족 모두를 버려 두고 곧 예수님을 좇았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예수님께서 최초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사건이었으며, 기독교 역사상 뒤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 부름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가르쳐주는 귀한 교훈이 되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부르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모든 것을 포기할 것에 대한 요구가 있습니다. 성경은 베드로와 안드레에 대해 20절에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그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서는 22절에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했습니다. 평생을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로 살았던 그들에게 그물과 배는 귀중한 재산으로만 그치지를 않습니다. 그 바다와 함께 그것에는 그들의 삶이 있고, 가족 이웃과의 끈끈한 관계가 있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고 꿈이 있습니다. 또한 축적되어진 경험과 그 속에서 배어난 삶의 지혜가 있고, 때로 아픔과 슬픔도 있지만 커다란 행복도 있었습니다. 그물과 배, 그리고 그 바다는 그들의 삶이요 생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과 함께 그 모든 것에 대한 포기를 요구받은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좇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다 버렸습니다. 모든 주머니를 탁탁 털어서 마지막 판에 모두 것을 한 곳에 다 걸은 도박꾼처럼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다 예수님께 걸은 것입니다. 사실 사람은 포기할 때에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고집, 자신의 소유, 자신의 즐거움, 자신의 삶 등을 포기할 때 아름다워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더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모두가 다 풍요로워지고 기뻐하게 됩니다. 얼마전 팔순의 장경자라는 할머니가 전재산 1억을 불우한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한국외국어대학에 기증한 적이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19살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한지 1년만에 남편이 폐병으로 죽어 자식도 없이 홀로 가난하게 평생을 사셨습니다. 배우지도 못한 할머니는 젊었을 때, 폐품을 수집해서 연명해 나갔고 늙으신 후에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되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근근이 사셨습니다. 이제 연세가 80이며, 암투병 중에 계십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평생 폐품을 모아 마련한 전재산 1억원을 불우한 학생을 위해 써달라고 외국어대학에 기증한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을 듣고 찾아온 기자에게, 홀로 단칸방을 지키며 사는 할머니는 주름진 얼굴에 환한 얼굴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병원비도 없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런데 포기라는 말과 반대되는 개념이 집착입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사람이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할 때에 추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가장 연세가 많은, 올해 110세가 되는 키가 자그마한 쌍둥이 할머니가, 언젠가 우리 TV에서도 방송된 일이 있었지요. 한번은 많은 돈이 들어있는 저금통장을 자랑하는 그 할머니들에게 방송국 기자가 물었답니다. \\\'할머니들은 돈이 생길 때마다 왜 쓰시지 않고 그렇게 열심히 저축하십니까?\\\'하고요, 그러자 한 할머니가 말씀하시기를 \\\'노후를 위해 저축하지요\\\'라고 하더랍니다. 웬지 씁쓸하고 허망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곧 \\\"자신의 것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포기 선언\\\"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눅14:33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포기 하셨습니까? 얼마나 버리셨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얼마나 집착하고 사십니까? 예수님의 부르심은 모든 것을 포기할 것에 대한 요구입니다. 사람들은 때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도, 아주 적은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남겨둠으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커다란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래전 제가 오랫동안 살았던 봉천동의 봉천 3동에서 보았던 일입니다. 지금은 현대아파트가 멋지게 들어서 있지만 사실 그곳은 달동네 중에서도 지독한 달동네였던 곳입니다. 그곳에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설 때의 일입니다. 조합이 결성되어지고, 계약이 체결되어서 현대 건설이라는 큰 회사가 공사를 맡게 되었고, 모든 설계도도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습니다. 모든 집들도 멋진 아파트라는 자기 집에 대한 꿈을 안고, 저마다 2-3년 동안의 고통을 오히려 기쁨으로 감수하며 이사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사 나간 집들은 이사 나가자마자 커다란 중장비들이 와서 낡은 집들을 부수어 버리고, 모든 건축물 쓰레기들은 덤프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파트를 세우기 좋게 넓은 공터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가도 공사를 시작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땅과 시설 장비와 소요 경비와 일할 일꾼들, 그리고 건축허가도 나와 모든 준비가 다 되어있는데 몇 달이 지나도 공사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고보니 그 넓은 땅 중앙에 다 쓰러져가는 조그만 하꼬방이 하나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조그만 집이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재개발에 동의하지 않아 헐어 낼 수가 없었고, 그로인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엄청난 아파트 공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다 포기하였다 할지라도 작은 것, 아주 작은 것 한두 가지를 포기하지 못하고 집착해 있다면 그로 인해 우리의 포기와 수고가 헛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사장 되어버리고 맙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사명이 있습니다. 포기라는 것이 비우는 것을 의미한다면 사명은 채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기라는 것이 낡은 옷을 벗는 것이라면 사명은 새 옷을 입는 것입니다. 낡은 옷을 벗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벗기만 한다면 차라리 낡은 옷이라도 입는 것이 낳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 자신을 비운 그리스도인은, 단정코 예수님이 주신 사명으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 4:19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 그것이 곧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새롭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께 부름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가, 그리스도인 됨의 의미가, 그리스도인 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바로 이 \\\'사명\\\'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은 그 사람이 맡은 사명의 헌신도에 의해 평가되어 집니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했느냐가 평가의 기준이지 그가 똑똑하냐, 건강하냐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했느냐가 평가의 기준이지 그가 운동을 잘 하느냐, 돈을 많이 벌었느냐가 평가의 기준은 아닙니다. 정치가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얼마나 충실하게 정치했느냐가 평가의 기준이지 얼마나 많은 학위를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말을 잘하느냐가 평가의 기준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요?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주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때의 그 무섭고도 엄정한 심판이 있을 때, 주님은 무엇으로 우리를 평가할까요? 재물, 아닙니다. 권세, 그것도 아닙니다. 학위, 오 그것은 정말 아닙니다. 세상에서의 성공, 결코 아닙니다. 그럼 무엇일까요? 오직 한가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충실한 삶을 살았느냐 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다 했느냐 입니다. 얼마만큼 사명을 위해 충실했냐 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분이며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또 마태복음 28장에서 이렇게 직접 표현하시기도 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 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가리켜 우리는 \\\'지상 대명령\\\'이라 합니다. 인류역사상 이 지구상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명령 중, 가장 큰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가장 큰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이 명령을 지키는 것이 그리스도인된 우리들의 가장 큰 사명입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의 한 작은 교회를 섬기던 죤 하퍼 목사님은 1912년 3월 시카고 무디 기념교회의 초빙을 받고 미국에서 목회하기 위해 당시 영국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에 승선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대로 그 배는 캐나다 근처에 이르러 빙산과 충돌함으로 2,207명의 승객이 물속으로 가라앉게 되는 위험에 처했습니다. 죤 하퍼 목사님은 딸과 조카를 구명정에 옮겨 태운 후 구명정의 자리가 모자라 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타이타닉 호는 침몰하였고 죤 하퍼 목사님은 배와 함께 차가운 얼음 물 속으로 던져 졌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목사님은 물 속에서 떠올랐고 멀지 않은 곳에 크지 않은 널판지가 있어 그것을 겨우 붙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청년이 가까운 곳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청년을 끌어당겨 함께 널빤지를 붙잡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둘이 함께 붙잡기에는 크지 않은 널빤지여서 자꾸 가라앉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조용한 음성으로 그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의외의 물음에 당황하기도 한 그 청년은, \\\'아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반드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나중에 꼭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리고 죤 하퍼 목사님은 널빤지에서 손을 놓으시더니 깊은 물 속으로 잠기셨다고 합니다. 살아난 그 청년은 그 후 미 전국을 다니며,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자신을 구원의 길로 인도한 이 죤 하퍼 목사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귀하고도 놀라운 사명이 있습니다. 전 생애를 다 투자하고, 모든 소유를 다 바치며, 하나밖에 없는 생명까지 받쳐도 결코 아깝지 않은 참으로 크고도 놀라운 값진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은 위대합니다. 이 사명은 우리에게 인생의 참 의미와, 삶의 참 기쁨을 줍니다. 또한 영원한 천국에서의 큰 상급을 약속합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생명을 살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건설하는 이 사명은 하나님이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위대하고도 놀라운, 영광스러운 사명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셋째,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부르심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그들은 살아오는 동안 평생 수없이 많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함치는 소리, 싸우는 소리, 비방하는 소리, 다정한 소리, 친절한 소리, 신이 나서 떠드는 소리, 가르치는 소리, 물건 파는 소리 등등, 그리고 그 외에도 파도 소리, 물결치는 소리, 갈매기 소리, 바람 소리 등등 수없이 많은 소리를 매일, 매시간 들었습니다. 지겹게 끝없이 들려오는, 때로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려오는 수없이 많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는 아무 의미없는 소리들이었습니다. 저녁시간이면 우리의 귀에다 가지가지의 소리를 쏟아 부어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고 잊혀져 버리는, 바보상자의 소리처럼, 대부분의 소리들은 그들의 삶에 조그만 영향도 주지 못하는 소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은, 전혀 다른 소리를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의 삶을 채우고 맴돌았던 그러한 소리들이 아닌, 새로운 비젼을 가지고, 새로운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할, 새 삶을 향한 포기와 사명으로의 헌신을 요구하는, 엄청난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것은 그들의 전 삶을 향해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권능의 소리요, 온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음성이었습니다. 순종하지 아니하고는 견딜 수 없는, 영혼의 한 중심에 말뚝처럼 깊숙히 박혀 오는 두려운 신의 소리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 중의 한 분인 어거스틴은 청년시절까지 온갖 쾌락과 향락에 젖어 방탕한 삶을 살던 방탕아였습니다. 그는 이미 10대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정도였습니다. 타고난 구변술로 수많은 사람들을 망신시키고 자신의 교만에 꽉 찬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정원을 거닐 던 중에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자신에게만 들려오는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들어서 읽어보아라, 들어서 읽어보아라\\\' 거역할 수 없는 권위에 찬 그 음성에, 그는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펼쳐 있던 성경을 들고 눈이 닿는 곳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 말씀이 로마서 13:13-14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 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자신의 영혼을 찌르는 비수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그 음성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자신의 영욕과 쾌락만을 위해서 살았던 과거의 모든 삶의 양식을 다 버렸습니다. 완전히 청산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자신을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수많은 소리를 들었었고, 또 들어 왔지만, 그리고 타락한 방탕한 삶을 살았지만, 자신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어거스틴이,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했다면, 그는 방탕아로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부끄러운 일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하늘에서 들려 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는 그 음성에 자기자신을 받치기로 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는 왕족 출신이기에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부귀영화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가장 위대한 예언자 중의 한 사람으로 믿음의 역사에서 영원토록 존경받는 인물로 남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이사야가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했다면, 그는 배부르고 편안하게 살찌는 모르지만 죽은 후 하나님 앞에 갔을 때는 엄청난 부끄러움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세는 죽음의 땅, 광야에서 80세의 노인이었을 때, 자신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는 그의 80평생을 대변하는 죄로 더러워진 그 낡은 신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거룩한 땅에 섰습니다. 알지 못하는 미지의 새로운 세상을 향한 새로운 세계에 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80의 노인에 그것은 어려운 결단이었지만 한 민족의 건국자가 되는 엄청난 은혜였습니다. 만약 모세가 80이라는 자신의 많은 나이를 핑계로 하나님의 음성을 거절했다면, 그는 양치기로서 죽을 때까지 광야를 헤매다가 이름도 없이 광야의 먼지로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자녀도 하나 없이, 늙어 삶의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할 75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은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했습니다.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형제와 집안을 떠나 65세나 되는 노년의 부인 사라를 데리고 갈바를 알지 못한체 하나님이 가라는 곳으로 무작정 갔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민족의 조상이 되는 엄청난 축복이 되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했다면, 그는 형제와 친척들의 돌봄 속에 편안한 노후를 보냈을는지 모르지만 아들 하나 없이,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섬기는 죄인으로 살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합니다. 수없이 많은 세상의 소리에 하나님의 음성을 묻혀 버려서는 안됩니다. 어거스틴에게 하셨듯, 이사야에게 하셨듯, 모세에게 하셨듯, 아브라함에게 하셨듯, 그리고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인 마태복음4:17-22 중에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하셨듯,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분명, 우리가 읽은 본문의,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주인공들입니다. 그러나 그 본문을 읽는 오늘, 지금 이 시대에는, 그 주인공이 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일 것을 하나님은 요구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오늘의 우리가 주인공이 될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분명 예수님의 부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응답한 주인공이었지만, 그들은 지나간 2000년 전, 예수님이 주신 그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이제는 하늘 나라에 가있는 \\\'과거의 주인공들\\\'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지금 이 시대를 위해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순종할 주인공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 주님의 부르심을 들은 주인공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어지러워도 검은 구름을 뚫고 나오는 한 줄기의 햇살처럼, 이 세상에는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우리 자신에 대한 포기의 요구와 새로운 사명에 대한 헌신으로의 부르심인 하나님의 음성이 있으며, 또 그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응답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크고도 놀라운 하나님의 부르심에 온 삶을 다하여 응답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