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자들을 부르심 마4:18-22 얼마 전 저희 교회에도 몇 번 참석했던 황명숙 선생이 대호 화장품 회사를 차렸다기에 사업장 십방을 갔었습니다. 예배 마친 후에 식사를 하는데 함께 있는 여직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먼저 회사에서 데려 왔는데 업무 능력이 떨어진 다는 것입니다. 나이도 30이나 되었고 집안 형편도 어렵기 때문에 웬만하면 데리고 있었으면 좋은데 이제는 내 보내야겠다는 것입니다. 회사에 오면 회사 일에만 신경을 쓰리고 하는데 방문하는 지사장들과 슬슬하고 농담이나 하고 손님이 와도 한 손으로는 친구 전화를 받아 가면서 업무를 처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님과 이야기 하다가 내용을 잊어버리면 손님에게 다시 물어 가면서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손님이 왔으면 전화를 끊고 그 손님에게 집중해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친구 전화를 받아 가면서 동시에 손님과도 상담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지요. 세상은 사람을 쓸 때 능력 위주입니다. 이 사람이 주어진 업무를 잘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아무리 성실하고 재능이 있어도 업무 처리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데리고 있지 않습니다. 업무 능력만 인정받으면 사표를 내도 사표 수리도 잘 안됩니다. 세상은 능력이 있는 사람은 발굴해서 쓰고 능력이 떨어지면 나가 달라고 유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우리를 쓰실 때에 세상 사람들과 같은 기준을 가지고 쓰시는가. 아니면 다른 기준을 가지고 우리를 쓰시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능력이 있느냐 혹은 능력이 없느냐 하는 것은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능력을 갖고 있는 그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무능력하기 때문에 버림받는 것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준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능력 없으면 하나님이 능력 주셔서 일을 시키면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족하면 우리 부족을 메워 주어 가면서 일을 시키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는 능력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뽑으신 내용에 관한 말씀입니다. 2002년 4월 21일 주보에 실린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이력서를 가지고 컨설팅 회사를 방문했습니다. 내가 열 두명의 제자를 가지고 복음 사업을 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이 합당한가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연구 소장이 예수님이 준 이력서와 적성 검사표를 컴퓨터에 집어넣고 알아보았습니다. 학력도 자격 미달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복음 사업을 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얼른 바꿔 좋은 사람들을 데리고 복음 사업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컴퓨터에 나온 검사 결과입니다. 마태는 사회 평판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지탄을 받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데리고 일을 하면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지독한 이기주의, 협동심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만 아는 사람입니다. 도마는 매사에 부정적인 인물, 남의 말을 절대 믿지 않는 사람. 항상 안된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안드레는 지도력과 창조력이 없는 무능력한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과격하고 덤벙대는 성격, 정서 불안입니다. 야고보는 요 주의 인물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상 검증이 필요한 사람. 컴퓨터가 내린 결론입니다. 그런데 연구 소장이 말하기를 쓸모 있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롯 유다라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해박한 학문을 갖고 있고, 사람들과 탁월한 사교성이 있고, 현실 감각이 좋은 사람이다. 또한 변화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쓸만한 사람입니다. 열두명 중에 쓸만한 사람이 없는데 이 사람은 쓸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적성 검사표에 가장 가롯 유다. 능력이 제일 많았던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적성 검사표에는 쓸모 없는 사람이란 결과가 나온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은 일을 하셨는데 지구 전체를 복음화 하셨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큰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옳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한 것은 세상 사람들처럼 능력이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어떤 기준을 가지고 제자들을 뽑아서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뽑아 쓰신 기준을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일하는 것을 보시고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로를 뽑으실 때 사용한 기준은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신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의 일하는 모습을 보시고 제자들을 뽑으셨다는 것입니다. 눅5:1-11절에 보면 베드로가 부름 받을 때에 모습을 더 정확하게 묘사한 내용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배를 몰고 나가서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는데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배를 몰고 나왔는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배를 빌려 달라고 했더니 베드로가 배를 빌려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설교를 마친 후에 베드로에게 말씀하기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배를 몰고 가서 깊은데 그물을 내렸더니 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내용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날 때에 밤새도록 그물질을 해서 고기도 잡지 못했을 때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 말은 베드로가 인생에 실패했을 때에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물질하는 베드로의 능력을 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니 그물질을 잘하니 고기 잘 잡는 베드로를 데려다가 쓰면 사람도 잘 낚는 어부가 되겠다고 그렇게 생각해서 베드로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날 때에 그물질을 못했던 사람입니다. 고기도 잘 잡지 못했습니다. 인생의 낙오자였던 베드로를 불러서 쓰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물질하는 능력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돈 벌이도 잘 못하던 시원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도대체 그물질 하는 베드로에게서 무엇을 보았을 까요. 고기를 잘 잡으려면 꼭 필요한 일이 몇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협동심이 있어야 됩니다. 고기는 혼자 못 잡아요. 낚시는 혼자서도 낙시대를 넣었다 뺐다 하면 되지만 그물질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그물을 끌어올려야 되요. 그래서 협동심이 아주 필요합니다. 우리 주님이 그물을 던지는 베드로를 통해서 본 것은 서로 협력하는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축구를 재밌게 보고 있잖아요? 16강 축구하는데 이을용이라는 선수가 패널티킥을 얻었는데, 그만 넣지를 못했습니다. 패널티킥 못 넣는 선수가 거의 없어요. 쏘면 거의 다 들어가는 것이 페널틱킥입니다.그런데 그것을 집어넣지 못해 가지고 미국을 못 이겼잖아요. 그런데 이을용이라는 선수가 황선홍한테 볼을 패스패 주어서 볼이 들어 갔습니다. 또 안정환이가 골 넣은 것도 이을용이가 패스해 주어서 들어간 것 아시죠? 그리고 최용수가 들어 갈 수 있는 볼을 헛발질 한 것 그것도 이을용 선수가 패스 해 준 것입니다. 그런므로 지금 우리 나라의 승리한 뒤에 이을용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볼 넣은 안정환이 최고다. 잘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골이 들어가기에는 뒤에서 그 공을 밀어 준 사람은 이을용입니다. 그러므로 칭찬받아야 할 사람은 이을용입니다. 축구선수들 욕심내고 자기가 들어가서 넣으려고 하다가 골대에 골 못 넣는 사람들 많아요. 이런 마음을 버려야 해요. 골을 패스 해주면 내가 넣어야지 하는 마음 가지면 안 되요. 협동정신이 있어야 골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협동심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예수님이 그물 던지고 있는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본 것은 협력하는 것을 본 것이니다. 협력하는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끝까지 쓰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독불장군으로 혼자 잘해서 잘된다는 것은 안 됩니다. 미국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그 옆에 한국 사람이 장사를 하러 오기로 하면 이제 망했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이 장사하면 얼마나 부지런히 하는 지 모릅니다. 그래서 돈 잘버는 유대인들도 한국사람이 오니까 이제 큰일났다 생각하고, 유대인 얼굴 빛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한국 사람이 또 장사 나왔다고 해요. 그랬던 유대인이 얼굴에 웃음을 말하기를 이제 저 사람들은 둘이 싸우다 망할테니까 이제 나는 걱정없다고 하더랍니다. 미국 사회에서 꼭 잘못했다고 찌르고 고자질하는거 한국사람이에요. 외국에서 동포끼리 장사 찔러 가지고 망하게 하고 넘어지게 하는거 외국 사람이 그런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같은 동포끼리 그런다는 거에요. 협동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혼자 하면 잘 하는데 둘이 하면 안된다는 부정적인 말이 있어요. 이번에 축구 보니까 확 달라졌습니다. 복을 받을 징조가 보여요. 응원하는 것부터 보니까 좋은 징조가 보입니다. 온 국민이 함께 협동해서 응원하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요. ‘할렐루야’ ‘아멘’ 외국 사람들 기죽이는 것은 다른 것으로 기 죽일거 없어요. 6만 관중이 운동장 안에서 태극기를 흔드니까 얼어서 경기를 잘 못하더라구요. 이번 축구경기를 통해서 협동하는 정신을 보여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하나님은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협동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바울, 모세 등 여러 가지 협동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보면서 그물질을 하는 마음 보니까 협력해서 하는 마음이 보였다. 둘째,인내심이라는 것입니다. 고기를 잡으려고 하면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베드로가 뭐라고 하냐면 날이 밝도록 그물질을 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습니다. 고기 잡으려고 몇번 그물을 던져보다가 안되겠다, 포기하자하고 들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계속 그물 던지고 또 잡아 보고, 그물 던지고 또 잡아 보고했는데 못 잡았다는 것입니다. 초창기 전도할 때에 교회 앞에 있는 신안 아파트 문 한 개당 50번 이상 두드렸을 것입니다. 최소한 한 아파트 당 30번을 두드려야 몇분 만나는데 만나야 복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전도 가면 어디 놀러 가고 없고, 잠가 놓고 없고, 그래서 우리가 한 두번 나가서 전도되는 것이 아니에요.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기잡는 제자들을 많이 부르신 이유는 고기 잡는데 인내심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쓸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성실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버림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불성실하면 버림받습니다. 신앙이 세월이 지나면서 변질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은 서론도 좋고, 본론도 좋고, 결론도 좋아야지 가다가 사람이 어느날 바뀌어 버리면 그 순간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사울이라는 이스라엘 왕은 이스라엘에서 추대해서 이스라엘 왕이 된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뽑아서 이스라엘왕으로 세워 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뽑은 사울도 중간에 변질되어 버리니까 하나님이 버리셨어. 사울이 잘못되면 하나님을 원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선택했으니까. 그러나 하나님도 사람이 가다가 변하면 쓸 수가 없다는 거에요. 변하지 않아야 쓸 수 있다는 거에요. 성실한 사람이어야 쓸 수 있는 겁니다. 어제 보아도, 오늘 보아도, 내일 보아도 똑같아야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처음에는 좋았는데 중간 중간 지나보니까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불성실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우리가 살면서 중요한 문제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밤새도록 나가서 고기를 못 잡았는데도, 실패하고 돌아왔는데도 우리 주님이 다시 나가서 그물 던지라고 하니까 또 나가서 그물을 던지는 그런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는거, 그것이 무엇이냐, 성실함입니다. 내가 회사에서도 나가서 그물 던지라고 하면 아무 관계없이 나가서 그물 던지는 그 마음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야, 나는 넘어지는 사람이야, 나는 안된 사람이야, 하고 낙심만 하고 있는 사람은 안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주님이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 그물던지는 것을 보고 부르셨다, 하는 거는 뭐냐면 그들의 능력을 본게 아니고 성실한 자세를 본 것입니다. 인내하는 마음, 거기에다 성실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훌륭한 일꾼이 되겠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자세가 바로되면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고 귀한 인물이 되실줄로 믿습니다. 2.준비성을 보시고 선택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부름받은 것은 “그물을 깁고 있다가” 부름 받았다고 했습니다. 어부들은 밖에 나가서 그물질 하고 돌아 왔으니까 얼마나 피곤해요. 그래도 그 밤에 그물을 전부다 그물을 깁습니다. 그냥은 못 잡니다. 온 식구들이 다 달라붙어서 합니다. 왜 그래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준비는 안 되어 있으면서 하나님께 써 달라고만 합니다. 준비는 안 되어 있으면서 축복 해 달라고 합니다. 준비는 안 되어 있으면서 은혜만 받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싶고, 은혜를 받고 싶고, 또는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으면, 하나님 앞에 귀한 인물로 사용되길 원하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를 잘 하자. 내일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내일이 없습니다. 대전에 가면 중문 교획 있습니다. 장경동 목사가 목회를 하는데 그분의 세미나를 듣는 가운데 얘기를 들었습니다. 신학교 졸업하던 시절에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집을 다 읽고 다 썸머리를 했답니다. 졸업하기 전에 준비를 마치고 나왔더니 나오자마자 하나님이 목회를 하도록 길을 열어주셨다고 합니다. 준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쓰신다는 것입니다. 신학교 졸업하고 나와서 그때부터 준비하면 4-5년 후에야 쓰임 받을 수 있지만 신학교 시절 잘 준비하면 나오자마자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내가 세미나 갔을 때 느닷없이 설교를 하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세미나가 끝나고 마지막 시간에 나보고 설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유 있게 나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할 준비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쓰실 줄로 믿습니다. 주안 장로 교회 나겸일 목사님은 성지순례 떠났는데 혹시 모르니까 설교 할 준비하고 갔답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교회에서 도착했을 때에 한국에서 목사님들이 오셨는데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를 해달라고 요청이 왔습니다. 목사님들이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자기한테 순서가 왔는데 겸손하게 설교 한번 해보겠다고 해서 설교를 했어요. 다음에 또 다른 장소에 갔는데 또 설교할 기회가 왔데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면서 깨달은 것은 자기가 설교 준비한 것 만큼 하나님이 쓰신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한 만큼 우리를 쓰신줄로 믿습니다. 준비해 놓고 기다려야 되요. 하나님은 모세를 40년 쓰시기 위해서 80년 준비시켰다는 것을 알아야 되요. 하나님은 어느날 갑자기 모세를 불러서 쓰신것이 아닙니다. 모세를 쓰시기 위해서 80년 준비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준비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이 쓰신다는 겁니다.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를 부르셨다, 내일은 준비하는 그것을 보고 우리 주님이 쓰셨다. 그물을 짓는 심정으로 내일을 준비하시는 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결단성을 보시고 선택하셨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이 4제자를 부르셨다. 그 내용은 20절과 22절 두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쫓습니다. 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결단성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까요. 부르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으려면 우유부단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는 결정을 내리고 끊어 버려야 할 때는 끊어 버려야 된다는 겁니다. 끊어 버리는데 미련 가지면 안되죠. 소돔과 고모라 멸망할 때 욥과 그 딸과 아내가 빠져 나오는데, 빠져 나오다가 모세 부인이 그만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뒤를 쳐다본 이 마음이 바로 결단성이 없는 것입니다. 떠나는 곳을 뒤돌아보면 안됩니다.. 미련 가지면 안 됩니다. 이미 내가 버린 것은 포기하고 이미 돌아선 것은 앞만 보고 나가야 큰 은혜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떠나는것 까지 다 했는데 100% 결단한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그냥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길을 가는데 결단을 못 내리니까 하나님께 머뭇머뭇 거리고 못 갔잖아요. 그 뿐만 아니라 또 아무것도 못 버리고 끌고 가니까 얼마나 어려운 일이 생기는지 몰라요. 복잡한 일이 자꾸 터져요. 그래서 끝내 언제 버렸느냐, 마지막으로 하나님 이제는 내가 끊고 이제는 버리겠나이다 했을 때, 롯과 완전히 결별한 이후에 하나님의 축복이 아브라함에게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축복과 은혜는 언제 오느냐, 우리가 완전히 결단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 것을 버려야 할 때는 버릴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 것이라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버려야 되고 포기해야 된다고 생각을 때는 포기하고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는 그들의 결단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지도자는 결단성이 있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