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은사를 활용하십시오! 벧전4:7-11 어느 마을에 지혜로운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노인을 찾아가서 조언을 듣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 마을에 두 사람이 동시에 이사를 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두 사람이 노인을 찾아왔습니다. 한 사람이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나직한 어조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전에 살았던 마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까?” “예, 참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친절하고 서로 돕고 살았습니다.” 노인은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마을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이 찾아와서 노인에게 똑 같이 물었습니다. 노인도 똑 같은 질문으로 물었습니다. 이 때 그 사람은 “예,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아주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서로 헐뜯으며 다투며 비난 하며 아주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마을에서도 똑 같은 나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꼭 같은 마을인데 한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했고 다른 사람에게는 나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그 마을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좋은 마을이 될 수도 있고 나쁜 마을도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잘 하면 마을 사람들도 잘 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쁘게 대하면 마을 사람들도 나쁘게 대합니다. 종종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똑 같은 주님의영광교회입니다. 그런데 어떤 자는 주님의영광교회가 참 좋은 교회라고 좋아하며 자랑합니다. 그러나 어떤 교인은 주님의영광교회는 나쁜 교회라고 욕하며 떠납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교인이 잘 하면 교회가 좋게 생각되고 그 교인이 잘못하면 교회는 나쁘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영광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나쁜 교회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성령 충만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왔습니다. 육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역사하시는 줄로 믿는다. 성령의 역사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성령 충만을 위해 계속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지금의 예화는 성령의 은사를 잘 활용하는 자와 잘못 활용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자는 그 사람의 장점만을 보고 칭찬하는데, 어떤 자는 그 많은 장점은 못 보고 단점만을 보고 욕하는 자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는 바로 은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다섯 달란트의 은사와 두 달란트의 은사와 한 달란트 은사를 받은 자들이 나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은사를 받은 자는 열심히 장사하여 많은 이익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은사를 잘 사용한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을 땅속에 묻어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은사를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버려두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 자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잘 활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무슨 은사를 받은 줄도 모르고 그대로 땅속에 묻어버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알면서도 이 핑계 저 이유 환경 탓으로만 돌리며 은사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골고루 주셨습니다. 한 사람에게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은 다 주셨습니다. 내가 받은 은사를 우리가 깨닫지 못한 것뿐이지 은사가 없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은사를 받았습니까? 오늘 예배를 통하여 내가 받은 은사를 발견하고 그 은사를 활용하여 크게 성장시키고 더 좋은 은사를 받아 그 은사를 잘 활용하므로 나 자신도 축복의 삶을 사는 것은 물론 가정과 교회와 인류가 여러분을 통해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사란 헬라어로 카리스마라고 합니다. 그 뜻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은혜의 선물이란 인간의 어떤 공로가 포함되지 아니한 순수한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권위가 있고 능력이 있는 자를 가리켜 카리스마가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 카리스마가 바로 은사입니다. 은혜와 은사가 어떻게 다른가? 은혜를 헬라어로 카리스라고 합니다. 은사는 카리스마,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은사가 은혜에서 파생되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구약에서는 사랑, 인자라는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함을 받게 된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은혜는 바로 구원함을 받은 이것입니다. 내가 구원함을 받은 것은 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자들에게 특별하게 주시는 선물을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가 없는 자에게는 성령의 은사를 주시지 않으십니다. 구원함을 받은 자에게만 성령의 은사를 주십니다. 이것을 가리켜 은혜 위에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은사를 활용해야 합니까? 1. 은사는 본인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나의 신앙에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가 누구에게 속하였는가를 확신하게 됩니다. 그것은 곧 내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생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의영광교회에 속한 주님의영광교인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늘 주님의영광교회를 생각하게 되고 주님의영광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주님의영광교회를 위해 기도하게 되고 주님의영광교회를 위해 봉사하게 되고 주님의영광교회를 위해 희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성령의 은사가 충만하게 되면 나의 심령이 늘 편안하게 되고, 감사로 넘치게 되며 내가 영적으로 얼마나 소중한 자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성령의 은사가 넘치면 사명을 깨닫게 되고 그 사명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다 헌신에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은사는 먼저 나에게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참으로 유익한 것입니다. 2. 성령의 은사를 활용하면 교회에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은사를 잘 활용하면 교회는 큰 힘을 소유하게 됩니다. 초대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으나 그러나 멸시를 받지 않는 것은 초대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넘쳤기 때문에 그들이 교회에 대해 두려움을 가졌던 것입니다. 교회의 힘은 교인 숫자나 헌금 액수나 교회의 사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권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교회가 다른 점입니다. 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를 충만히 받으면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영적인 권위가 있어서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날마다 성장하게 됩니다. 교회는 뜨거워집니다. 믿음이 뜨겁고 사랑이 뜨겁고 헌신이 뜨겁고 열심히 뜨겁고 기도가 뜨겁고 전도가 뜨겁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은사를 활용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우리의 모든 것과 교회의 모든 초점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개신교의 교리를 집약한 요리문답 제1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많이 받은 자일수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자신을 나타내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일을 많이 할수록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능력을 행할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나에게 돌리면 안 됩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 중간에 잘못되는 것은 이 은사를 통해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할 것인데 자기의 영광을 나타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타락한 천사처럼 그 영혼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온 맘과 뜻 다해 주 사모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구원함을 받은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사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1. 언어적인 은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먼저 입이 달라집니다. 예수를 부인하던 입으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린다. 찬송합니다. 기도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나의 입이 달라집니다. 이 입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인사들이 있습니다. ① 예언의 은사입니다 예언이란 미리 말하는 자, 연결하는 자란 뜻입니다. 예언자란 하나님께서 그의 입술에 주시는 말씀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람들에게 말하는 자를 말합니다. 우리는 예언이라고 하면 장래의 일에 대하여 미리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아서 그 말씀을 개인이나 교회에 전달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말씀보다 현재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은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예언기도를 받는다는 것은 마치 점을 치는 자 앞에 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언의 은사를 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② 방언의 은사입니다 오순절 때 제자들에게 임한 방언과 오늘의 방언은 다르다. 오순절의 방언은 글자 그대로 방언, 사투리 각 지방의 말을 뜻합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보다 각 나라에 흩어져 사는 자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가리켜 디아스포라라고 불렀습니다. 흩어진 자란 뜻입니다. 각 나라에 흩어져 살던 자들이 유월절이나 큰 절기 때에는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던 나라의 말로 이야기하므로 서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 방언의 은사를 받은 제자들이 그 나라의 언어로 말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나라의 말을 배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방언의 은사를 받은 제자들은 그 나라 말로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들이 복음을 알아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런 방언은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 나라의 말을 우리는 통역관을 통해 알아들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방언은 신령한 언어입니다. 영적인 언어입니다. 이 세상의 말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말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방언의 은사를 받아 기도하게 되면 기도를 많이 하게 됩니다. 기도를 간절하게 하게 됩니다. 기도를 오래 해도 방언으로 기도를 하면 오래 기도한 것 같지 않게 생각됩니다. 방언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됩니다. 방언기도하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방언 기도하는 자 몇 사람만 있으면 그 교회는 기도가 뜨거워집니다. 기도가 살아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 중에 가장 논쟁이 많은 은사가 방언의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4:19절에는 “깨닫는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하셨습니다. 일부 이단집단에서는 방언을 많이 강조합니다. 꼭 방언을 받아야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어떤 기도원에서 방언의 은사를 준다 해서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이제부터 사도신경을 아주 빠르게 계속해서 외우라고 했습니다. 아주 빠르게 계속해서 외우다보니 그만 말이 이상해졌습니다. 그럴 때 당신은 방언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방언이 아니다. 오히려 성령의 은사를 욕되게 하는 자들입니다. ③ 방언 통역의 은사입니다 대통령이나 국가를 대표해서 외국에 방문을 갈 때에는 훌륭한 통역관을 꼭 데리고 갑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의 말을 잘 하지 못하므로 서로의 의사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방언은 사투리가 아니라 영적인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말을 우리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통역이 필요합니다. 통역의 은사를 받게 영적인 방언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일상적인 말로 번역해서 알려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역의 은사는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준다. 바울은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꼭 통역의 은사를 받은 자가 있을 때 방언을 하라고 했습니다. ④ 가르치는 은사입니다 영적인 성장을 위해 사람들이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성경말씀과 성경의 지식을 잘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르치기를 잘 하는 은사를 받은 자는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잘 가르친다. 가르치기를 잘 하는 은사는 다만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닫는 자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도록 가르치는 은사입니다. 어떤 자는 잘 가르쳐서 듣는 자로 하여금 잘 깨닫고 은혜를 받도록 합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은사가 없는 자는 무엇을 가르치는지 말은 많이 하지만 듣는 자는 잘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없습니다. 특히 가르치는 은사는 목사나 교회학교 교사들이나 구역강사들에게 꼭 필요한 은사입니다. 2. 인격적인 은사가 있습니다 방언이나 예언이나 통역이나 가르치는 은사는 입으로 나타나는 은사입니다. 반대로 그 사람의 인격 안에 들어 있는 은사들이 있습니다. ① 지식의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은사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진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은사입니다. 신학자들이나 교육목회자들이나 집필가들이나 성경번역자들을 말합니다. ② 지혜의 은사입니다 초대교회의 일꾼을 선택할 때 지혜가 충만한 자를 선택했습니다. 10절에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감당치 못하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7장은 스데반의 유명한 설교의 장입니다. 여기에 보면 스데반은 지혜가 충만한 자였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지혜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것은 배워 많은 지식을 소유한 자에게도 지혜가 없는 자가 있습니다. 이런 자는 그 지식이 산 지식이 아니라 죽은 지식이 되어 버린다. 어떤 자는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해도 지혜가 있는 자가 있습니다. 성경말씀은 우리들에게 지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주는 말씀입니다. ③ 긍휼의 은사입니다 긍휼의 은사는 어렵거나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보면 다른 사람과 달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풍성한 자를 말합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악하여진다고 했습니다. 더욱 잔인하여집니다. 이것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어진다는 듯입니다. 이럴 때 긍휼의 은사를 받으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주실 때 “저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병자들을 병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말세에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은사 중의 하나가 바로 긍휼히 여기는 은사입니다. 옛날 중세시대에 성 프란시스가 긍휼히 여기는 은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바로 이런 은사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은 똑똑하고 철저하고 빈틈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어려움에 있는 자들에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않을 때 주님도 나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긍휼히 여기는 은사가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평화가 넘치게 됩니다. 은혜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④ 권면의 은사입니다 교인들을 성경말씀과 인생의 삶의 경험으로 잘 설득하는 힘을 말합니다. 권면의 은사를 받은 자는 자녀들의 문제도 잘 권면해서 좋은 방향을 일을 잘 처리합니다. 권면의 은사를 받은 자는 문제의 성도에게 가서 말씀으로 잘 권면하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권면의 은사가 없는 자가 심방을 갔다 오면 그 가정에 더 큰 시험에 들게 됩니다. 교회의 권사님과 교역자들이 권면의 은사를 많이 받아야 합니다. 3. 사역적인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들에게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① 복음 전도의 은사입니다 전도하는 것 가장 귀한 은사입니다. 전도의 은사를 받지 아니하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교역자가 되어도 전도의 은사를 받지 못하면 전도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전도의 은사를 많이 받은 자입니다. 베드로는 한번에 3천명씩 회개하는 전도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과천교회에 전도의 은사를 많이 받은 여전도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을 우리 교회에 청해서 간증을 들으려고 했지만 너무 무리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퇴원한지 얼마 안 됩니다. 지금 우리 주님의영광교회의 성도들은 전도의 은사를 많이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나의 가정을 구원하고, 춘천을 성시로 만들며, 이북과 땅 끝까지 복음 전파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모두 전도의 은사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은사는 이 전도에 그 목적을 두어야 은사가 잘못 사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에게 귀한 의사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환자들을 치료할 때마다 전도하면 그 의사는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고 그 은사를 점점 더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장기려 박사가 그런 분입니다. 그는 의사라는 은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자입니다. 가르치는 교수나 선생님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입니다. 이 은사를 전도에 잘 활용하면 많은 학생들에게 전도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그 은사는 축복의 은사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모두 전도에 총력을 기우일 때 엄청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② 구제의 은사입니다 어려운 자를 도와 주는 구제도 은사입니다. 이 구제의 은사를 받은 자는 자기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도와 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 주는 자입니다. 사도행전 9:36절 이하에 보면 욥바에 다비다라고 하는 여자가 있는데 그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구제의 은사를 받은 자입니다. 그녀는 많은 것으로 구제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가 죽었을 때 그 구제하는 일로 인해 그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내가 구제할 때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또한 구제하는 자의 자손은 남에게 구걸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자손에게 까지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구제할 때는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나의 가진 것을 흩어버리시면 나는 아무 것도 가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③ 섬김의 은사입니다 섬김의 은사도 귀중한 은사입니다. 섬김의 은사를 받은 자는 기쁜 마음으로 봉사합니다. 교회의 일을 하면서도 늘 찬송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좋아합니다. 억지로 봉사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섬김의 은사를 받으면 봉사하는 자도 은혜가 되고 교회도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한 마디로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내가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된 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만왕의 왕으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의영광교회의 직분자들은 모두 섬김의 은사를 받아서 교회와 세상을 잘 섬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표적의 은사입니다 ① 병 고치는 은사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질병을 고치는 은사입니다. 초대교회는 병 고치는 은사가 가장 많았습니다. 그러나 의학이 발달될수록 이런 은사를 점점 줄어들고 말씀의 은사가 점점 많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병 고치는 은사로 현대 의학이 고치지 못하는 병들을 고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② 능력 행함의 은사입니다 초자연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모세와 엘리사가 이런 능력 행함의 은사가 많았습니다. 바람을 잔잔케 합니다. 자연을 움직이게 합니다. 예수님도 이런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③ 영 분별의 은사입니다 특히 악한 영들을 구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았어도 성령을 받았습니다. 능력을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영 분별하는 은사를 받은 자들이 영을 분별합니다. ④ 축사의 은사입니다 축사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축사의 은사를 받은 자 앞에서는 귀신이 꼼짝하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귀신들린 자 앞에서 그 귀신에게 명하여 나오라 할 때 귀신이 나와 돼지에게 들어가므로 돼지가 바다에 빠져 몰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은사들이 있습니다. 사랑의 은사, 예술의 은사, 찬양의 은사, 운동을 잘 하는 것도 은사입니다. 그래서 운동을 통해 전도하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첫째로 내가 받은 은사를 내가 잘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그 은사를 올바르게 활용해야 합니다. 셋째는 다른 은사도 개발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은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은사를 잘 활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활용해야 합니까? 선한 청지기 같이 해야 합니다. 선한 청지기는 자기의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 주인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의 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선한 청지기와 악한 청지기의 차이는 소유권에 대한 개념 차이입니다. 악한 청지기는 자기의 것으로 착각합니다. 선한 청지기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선한 청지기는 주님의 뜻대로 사용합니다. 주인의 영광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나 악한 청지기는 다 자기의 뜻대로 사용합니다.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 사용합니다.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사용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자는 악한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활용하고 있으면 선한 청지기입니다. 선한 청지기는 다른 사람의 은사를 존중할 줄 하는 자입니다. 고린도교회에는 은사를 받은 자들이 많았습니다. 은사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 은사 문제로 인하여 문제도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받은 은사만 제일이고 다른 사람의 은사를 무시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고린도교회는 사분오열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 때 바울은 은사에 대한 교훈으로 몸의 유기체로 비유하면서 각 몸의 기관이 서로 연합하고 도움으로 잘 연결되는 것처럼 은사로 서로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은사를 선한 청지기 같이 잘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내가 주신 영적 선물인 은사를 잘 사용함으로 나 자신의 신앙에도 큰 유익을 주고 교회에도 큰 유익을 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은사를 총 동원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총력을 다 기울이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