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역사 하는 교회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
행2:37-38,44-47





오늘은 예수께서 부활하신지 50일이 되는 날, 즉 부활 후 7번째 되는 주일로 성령께서 직접 우리에게 오신 것을 기념하는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이날은 부활 후 50일째가 되기 때문에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합니다. 기독교가 세계를 향하여 선교를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때 부터입니다. 따라서 이날을 교회의 시작으로 보고 또한 선교의 시작으로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프로 운동선수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습니다.

야구에 박찬호, 축구에 박지성, 골프는 한국 여장부들이 해마다 기록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특히 운동선수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기록을 갱신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자신의 기록을 깨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자기 기록을 유지하게 위해서 편법을 쓰기도 합니다만, 그런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기록이 유지되었다가도 떨어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선수들에게 코치들이 공통적으로 조치하는 일이 있습니다. 자기가 관리하는 선수가 혹시 기본기를 무시하지 않았나. 운동하는데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룰을 무시하지 않았다 살피고, 기본기를 회복시켜준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신앙생활에 이상을 느낄 때나,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생각될 때, 우리가 제일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우리의 코치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인 숫자가 25%를 넘는다고 하니, 대충 쳐봐도 1000만명이 되고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있는 교회가 수 만개가 됩니다.

불교나, 이슬람 교도들이 잘못하면 그 사람들이 믿는 신을 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기독교인들이 잘못하면 예수 믿는 것들이 저러냐는 비아냥거림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심리가 크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 하나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변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러니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니 기독교는 예수 믿고 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그런 무책임한 종교가 아닙니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통계에 의하면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 그중에서도 특히 개신교들이 하는 일을 보고 실망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어떤 사람들은 불교로 개종하든지, 아니면 예수 믿는 일을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요즘엔 안티 기독교 사이트가 생겼는데, 그곳에 들어가 보면, 처음서부터 끝까지 기독교인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근래 새길교회 홈페이지에도 올라와 있는데 운하파는 문제 가지고 운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어떤 목사라는 분이 험한 인상을 쓰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매도하는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그 기사가 실린 어느 인터넷신문에 이에 대한 댓글이 올라와서 몇 개 읽어봤는데, 이 자리에서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쩌다가 기독교가 이 지경까지 왔나 참으로 참담한 심정입니다. 기독교인들을 개독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보통명사가 되어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얼마 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가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는 “예수가 없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 교회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거리로 나가서 전도해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역을 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오늘날 한국처럼 멋있고 웅장한 교회당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읽어 드린 본문 속에 우리가 늘 본 받아야 할 교회의 본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첫 교회의 모습은 특별한 상황 아래서 특별한 사람들이 한 일로 치부하고, 그 사이 긴 세월이 흐르고 변했는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공을 초월해서 오늘을 사는 나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대 교회의 성령 충만한 교인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초대 교회는 어떤 사람들이 시작했습니까?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교회 교인들처럼 당시의 초대교인들도 이기주의적인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고 난 후 변화되어 모인 사람들이 초대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감람산에 모였던 사람들 중 일부인 120여명이 예루살렘 시내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보내주신다고 약속한 보혜사 성령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회개하고 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오순절이 되는 날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주님이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받고 성령이 충만해졌습니다. 회개하고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예루살렘거리에 나가서 사람들 전도했고, 사도들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이 모여 최초의 교회인 초대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회개하고 성령 받았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을 읽어보면, 예루살렘 거리에서 베드로가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하고 나자, 그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묻습니다 .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30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70년대 말경 저는 100여명 정도의 작은 규모의 공장 겸 수출회사를 꾸려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설립 후 2-3년 정도는 그런대로 의욕에 차서 열심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 회사의 상태는 악화되고 더 이상 지탱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으나 그것은 헛된 수고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을 하다가 망하면 길가에 까지 나아 앉는 빈 털털이가 됩니다.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구나. 사업하다가 실패해서 죽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희 집안이 예수를 믿기 시작한 것이 금년으로 87년이 됩니다. 햇수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예수 믿기 시작할 때가 지금 생존해 계시는 막내 숙부님이 태어나신 해라고 합니다. 그분의 연세가 지금 87세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동으로 모태신앙출신이 되었습니다.

원래 모태신앙인들은 대부분 체험적인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이지도 않고 물에 물 탄 듯 하지만 교회 출석만은 잘 지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도 않했지요.

읍내에서 40여리 떨어진 당시엔 시골농촌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청이 있는 대처로 나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교회 출석은 거르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요즘말로 범생이었을까요? 그것은 한국전쟁 중에 앞서 말한 시골농촌에 살면서 교회를 세우고 예수를 믿는 것은 소위 미제국주의자라는 등식에 부친께서 공산주의자들한테 희생당한 후에 34살의 모친께서는 다섯 남매를 신앙의 힘만으로 키우실 때 교회출석을 제일로 강조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회사운영이 몹시도 어려워 참담한 심정으로 퇴근한 저녁, 당시에 출석하던 교회에서는 부흥사경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부흥회는 강사가 이상스러운 괴음을 내면서 헌금 많이 하면 복 많이 받는다고 하는 그런 유형의 집회를 전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관심도 없었는데 무슨 이유에서 인지 그날이 부흥회 마지막 셋째 날인데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나기에 아내에게 말하니 그러자고 해서 함께 참석했지요.

교회 안은 꽉 들어 찬 교인들의 찬송열기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날의 설교 주제는 구약 에스겔서 47장에 나오는 발목신앙, 무릎신앙 이었습니다. 교회의 뜰만을 밟는 발목 신앙 이야기가 설교자의 입에서 나올 때 이것이 바로 나를 지칭하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에 스치면서 나의 마음에 꽂히면서 저는 울음이 복받쳐 나오면서 그 감정을 억누르지 못 한 채 엉엉 소리 내어 울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참 모습이었구나. 이렇게 교회 마당만 밟고 다닌 사람이 모태신앙이니 몇 십 년을 예수를 믿었다는 등 하면서 혼자 잘났다고 교만한 마음만 가득해 가지고 살아온 지난 날 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사업이니 무어니 하면서 그저 바쁘게만 살아온 날들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함께 참석한 아내 역시 소리 내어 울고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같은 시간에 우리부부에게 찾아와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후 아내가 겪은 숱하고 긴 간증이야기는 기회가 닿는다면 본인의 입을 통하여 증거하는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곤고하고 마음을 송두리째 비우고 이것이 인생 막장이구나 하면서 두 손 높이 치켜들 때 2천 년 전 마가의 다락방에 나타나셨던 성령님이 우리 부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이제 성경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여명의 예수 따르미들의 그때 상황은 어떠했을까요.

사도들은 주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죽기까지 각오하겠다고 다짐했던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주님에게 시련이 닥치자 사도들은 한 사람 한 사람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 같은 사람은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저택에서 심문을 받을 때, 대제사장 집 하녀에게까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정하고, 더구나 저주까지 했습니다. 요한만 빼놓고 사도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다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때 거기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기도하는 중에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외치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 4:17).

자기들이 저지른 허물과 죄과를 기억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람들은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 로마 군인들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들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자기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고백했습니다.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이 이렇게 철저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고, 그분을 마음 중심에 모시겠다고 다짐할 때,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회개하고 마음을 비운 사람들의 심령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영인 보혜사 성령을 바람의 모습으로 불의 모습으로 약속하신대로 보내 주셨습니다.

다시 저 자신으로 돌아와 봅니다. 얼마동안을 눈물로 지난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다가 갈 때 제 마음은 불안에서 해방이 되고 평화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의 상황은 정말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마음은 어쩌면 그리도 기쁘고 평안 할까요. 그리고 예수 안에서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넘쳤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령 받은 사람들처럼 그런 느낌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받은 무리들도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때의 주위 상황을 상상해 봅니다. 로마정권의 식민지배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연상 할 수 있으며 예수를 십자가에 달라고 소리치는 기득권 세력들의 횡포는 얼마나 공포의 대상이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을 해치려는 사람들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어떤 환경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진리와 비 진리를 구별할 수 있는 권능, dunamis(power)를 받았으며,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처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용기를 얻고 목숨 걸고 예루살렘 거리로 뛰어나가 회개의 메시지를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사도들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초대교회를 세우고, 성령의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은 후의 저와 가족들의 생활은 바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지의 낡은 습관들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예수님의 삶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가정은 평화가 찾아오고 진행되는 일들은 기적만 같았습니다. 사랑과 화해의 왕이신 예수의 영인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모시고 살면,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그간 살아오면서 겪은 수 많은 기적 같은 일들을 증거 하는 데는 긴 시간이 요구됩니다.

성령 받고 말씀을 증거한 사도들과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 예수를 믿게 된 초대 교회 교인들이 갈라디아서 5장 22절 23절에 기록된 성령의 열매 즉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후 사도들은 먼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증오하던 관계가 먼저 회복되면서 사랑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한 예를 들자면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을 함께 따르면서도 서로 좋아하지 안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고 난 후에 이 두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입장에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부터 본격적인 전도가 시작되는데,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에게 예수의 이름을 전하고 그 사람을 고쳐주는 베드로와 요한, 서로 사랑하면서 감싸주고 협력하는 베드로와 요한, 신약의 사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서로를 견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베드로와 요한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제 동역자가 되어서 예루살렘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두 사람은 감옥에까지 같이 가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백성들이 교만하고 회개하지 않아서 갖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보내주신 구약의 선지자들이 줄기차게 외친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어려움을 당한 것이나, 가나안에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고도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은 이방나라인 바벨론에 잡혀 간 것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부터 아브라함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32장을 읽어 보면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하나님의 구속사의 근간을 세우게 해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많은 잘못을 하고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 베드로를 통해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의 부흥의 역사는 회개 운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 교회 역사에서 회개 운동이 없이 영적으로 부흥한 일이 없습니다.

18세기 초반에 미국 뉴저지에서 화란 개혁 교회 주도로 일어난 영적 부흥운동인 ‘대각성’ 운동은 회개 운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회개 운동은 50여 년간 계속되었는데, 미국에 이민자로 정착해서 신앙의 가치관이 흔들리던 유럽에서 온 사람들에게 신앙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2 0세기 초 한국 平壤 영적 각성 운동도 회개 운동의 결과물입니다. 이 후에 한국 기독교가 크게 번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한국 교회의 상황은 어떨까요.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예수와 그리스도가 서로 싸웁니다.

교파가 다르다고 서로 반목합니다. 뿌리가 같은 교단이라도 교리가 뭐가 다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서로 교류가 없고 강단에 세우지도 않습니다. 고소와 송사가 난무합니다.

해외 선교지에 나가서도 서로 반목하고 선교지 쟁탈전을 벌입니다. 교회가 갈라집니다.

교회에서 분쟁이 나면 좀처럼 화해가 되질 않습니다. 농담조로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교회의 분쟁은 예수님 오실 때 까지 해결되지 않는다고. 교회의 문제를 사회 법정에 끌고 가서 판단해 달라고 맡기기도 합니다. .

오늘날 어느 교회고 맘몬사상이 팽배해 있습니다. 도덕적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장로대통령을 합심해서 만들어내고 땅 투기를 위해 거짓을 서슴지 않은 정부 관료를 배출하는 한국교회는 강단에서부터 진정한 회개가 일어야 합니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 중에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 수석의 모습에서 어떤 사회의 비난에도 회개하지 않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자화상이 들어 있지는 않은지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대 교인들이 주안에서 하나 되려고 노력했던 일들을 서로 연결해 보면 물질적으로 신앙적으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빈부 차이를 떠나서 서로 마음이 하나 되려고 노력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교회는 이렇게 서로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도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 모습으로 되돌아가 하나님 앞에서 처절하게 가슴을 찢는 회개를 하고 성령 받아서 성령의 열매를 우리의 삶 자체에 적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야 할 것입니다.

나 자신이 먼저 회개하고 성령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내가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공동체가 변하고, 나아가서 대한민국이 변하고 세계가 변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화 하나들고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한 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아산의 한적한 농촌에 20여명 이 모이는 한 작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15여년 된 낡은 철재조립식 건물로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웁기 때문에 교회 건물을 다시 짓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 신실하신 한 여자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몸이 불편하여 직장을 그만두고 열심히 새벽기도회를 빠트리지 않고 나오다가 병이 악화되어 나오지 못하시게 되었을 때 그 교회 목사님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을 모신 성전이 저렇게 무너져 가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이 성전을 멋지게 다시 지은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가 초가삼간에서 예배를 드리고, 아니 천막을 짓고 허허벌판에서 예배를 드린다 해도,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아가는 성도 하나가 무너져 가고 있는데 그것은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면 교회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한 몸이요 한 식구인 이분의 성전을 다시 세우기 위해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교회라도 팔아서 이분을 치료해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삶이 아닐까요 라고 말합니다.(채희동목사,3년전 교통사고로 작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으로 보이는 교회 건물을 새로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전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자신, 그리고 옆에 계신 새길교회 성도 한 분 한 분이 하나님 앞에서 이 시간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성령으로 가득한 성전으로서 바르게 세워지도록 함께 기도하고 헌신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