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영

생명의 영/시104:27-33

생명의 영
시104:27-33





Ⅰ. 서론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두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은 삼위일체주일이기도 했는데

여러분 성령 하나님이라고 하면 무엇이 생각나세요. 예수님이라고 하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분. 구원자.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령님이라고 하면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입니까?




Ⅱ. 성령에 대한 전 이해

대체로 우리가 가진 생각을 제가 답해 보면

첫째 성령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게 하는 영입니다라고 말씀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고전12:3을 읽어볼까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이 우리가 잘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행2장의 제자들의 모습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승천하는 주님을 붙잡고 6절에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라고 여전히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을 열망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자/ 베드로가 담대히 일어나 설교를 하면서 36절에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명확히 선포합니다.

제자들만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므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변화가 생겨납니다.




둘째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십니다. 이도 맞는 말씀이죠.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보고 두려움 가운데 있었지만 성령이 임재하심으로 변화되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툼하고, 시기하던 그들이 오히려 섬기는 자리, 낮아지는 자리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또한 성경의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이방신을 섬기고 방탕하는 등의 그릇된 삶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닮아 한 알의 밀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성령이 임재하심으로 가능. 이처럼 사람을 변화시키고 예수님을 따라가도록 하는 것이 성령의 사역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교회가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며, 교회가 부흥됩니다. 어개인1907이라는 성령대부흥운동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잇습니다. 회개, 변화, 교회가 부흥은 철저히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비롯되어졌습니다.




셋째 우리가 주님의 길을 갈 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사를 주십니다.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시고,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이가 성령입니다. 고전12:4이하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게 하고, 믿는 자와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가도록 변화시키시며, 은사를 통하여 이루어 가시는 성령님 // 성령님을 믿는 자/인간과 교회의 영으로 이해합니다.




Ⅲ. 본문에 의한 새로운 이해

성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성령님은 신자와 교회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시라 더 크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와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찬양시입니다. 전체를 보면 1절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자신을 일깨우는 말씀이고, 2-4절은 하늘, 구름, 바람, 화염(번갯물)을 언급하여 하늘의 하나님 영광을 노래한다. 5-9절은 땅, 물, 산과 골짜기를 언급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한다. 10-18절은 들짐승, 새, 짐승, 풀, 나무 등 땅위의 생물들의 창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19-23절은 달과 해, 낮과 밤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합니다. 24-26절은 바다와 물고기의 창조를 통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찬양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에 성령님이 함께 하셨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이러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 생명 창조에 성령님이 함께 사역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과 관계되어 우리가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 더욱 놀라운 것을 깨닫게 됩니다.




28-29절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돌보신다. 자연/삼라만상을 창조하시고 구경하시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역에 성령이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29절에 호흡이라는 말씀은 루하흐입니다.숨, 바람이라도 이해됩니다. 성령이 자연에 대하여, 생명을 외면하시고 떠나시면 자연은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생명을 지키시면 자연은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자연/생명/만물이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시는 영입니다.




30절에는 창조하사-다시 창조하사 영어성경 , 한글번역성경에도 “다시 창조하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지면이 아니라 세상의 피조물로 이해됩니다. 피조물의 생명을 죽어가는 생명을 다시 창조하시고 새롭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롬8장에 인간의 타락과 함께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며 고통한다. 이런 피조물들을 새롭게 하시는 이가 곧 성령이라는 말씀입니다. 탄식하는 자연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새롭게 하시는 이가 성령이십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은 단지 사람의 삶만 이끌어가거나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만물/자연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이가 성령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생명의 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1절에는 이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하셨습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교회의 영으로, 신자의 영으로만 이해하던 성령님의 사역과 시편에서 우리에겍 일러주시는 성령님의 사역에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사역을 너무 우리 편의에 따라 제한하고 한계를 지우는 실수를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Ⅳ. 현실과 적용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인식을 보면 세상의 창조에 대하여도 거부합니다. 진화론, 우주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학설을 통하여, 학문의 이론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각도 그러합니다. 자연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인간이 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인간이 자연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인간이 자연의 생사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교만하게 자연을 다루어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가치 중심은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모습입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인간의 물질적 부를 위해, 인간의 문명을 누리기 위해서 자연을 파괴합니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의 생명을 죽이는 일을 다반사로 합니다. 그리고 문명은 계속 진보하리라 말합니다. 아닙니다. 성경에 인간의 문명은 들의 풀의 꽃과 같다 했습니다. 경험적으로도 자연의 생명을 죽이고 파괴하면 그 결과는 인간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엘리뇨. 황사).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자연의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이는 성령입니다. 성령님을 거스르고 자연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이라고 교만을 부립니다. 교만은 반드시 패망의 길을 가게 됩니다.




성경은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고 누려도 된다는 세상의 이런 인식과 삶의 양식을 거부합니다. 만물/자연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생명 살리는 일에 성령이 계심을 말씀합니다. 간혹 어떤 분은 말씀을 오해하여, 성경이 인간중심적이라고 말합니다. 아니요 하나님은 자연을 통하여 영광받으신다고 하셨고, 창1:28절의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것이니 너희가 잘 관리하고 보존하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단지 주인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이와 교회의 인식과 가치는 잘못된 세상의 인식과 가치와는 달라야 합니다. 인간의 편의와 부를 위해 피조물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사역에 참여하기 위해 인간의 불편과 넉넉지 못함을 인내하고 감내하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 질문해 봅니다. 성경에 보면 인간이 하고자 하는 일에 성령이 임재하시나요? 아니면 성령의 일에 인간이 참여하도록 하십니까? 인간이 하는 일에 성령이 도구가 되나요? 성령의 하시는 일에 인간이 도구가 되나요? 성경의 정신은 언제나 후자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성령이 하시는 생명을 유지하고 새롭게 하실 그 일에 믿는 자와 교회가 참여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소명입니다. 하다가 피곤하면 그만두고 지치면 포기해 버려야 할 일이 아니라 끝까지 감당해야 할 책임있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인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길에서 선택하기가 어렵다고 말하고, 언제나 인간의 편의와 부를 위해 개발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새만금도 역시 그런 유형입니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두 개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선구자 80인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실천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쉬운 길을 선택해 가고자 하고, 그 길이 언제나 바른 길이고, 그 길 밖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조그만 불편을 감수하고 노력하면 자연의 생명을 살리면서도 인간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교회와 믿는 자가 인식을 바꾸고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의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일에 참여할 때 세상의 정책도 변화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자연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우리가 생활 속에서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세제사용, 일회용,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불편하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소명임을 자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자연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우리가 생명 살리는 일에 동참할 때 그 곳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임재,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Ⅴ. 맺은 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령님은 단지 인간만을 위한 영도 교회만을 위한 영이 아닙니다. 모든 세상의 피조물, 생명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며 새롭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의 생명을 유지하며 새롭게 하시는 생명의 영, 성령의 사역에 불편하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작은 일에서부터 참여하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