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님과의 교제 훈련 요일1:1-4 1> 은혜중의 은혜 - 내주하시는 성령님 교회 안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예수, 십자가, 하나님, 그 중에 하나가 은혜라는 말입니다. 기도, 찬송, 설교할 때 은혜라는 말이 많이 사용됩니다. 성도들끼리 만나서 무슨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까? 은혜이어야 합니다. 은혜란 말을 많이 하면 은혜 있는 교회요, 은혜대신 재수가 좋았다, 다행이다, 당신은 참 대단하군요 하면 그 교회는 은혜 없는 교회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듯, 교회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아는 성도와 교회가 온전한 성도요, 온전한 교회입니다. 은혜라는 단어는 광범위하게 쓰입니다. 돈을 버는 것, 설교의 감동, 성공, 합격 모두가 은혜입니다. 은혜의 사전적 뜻은 ’사랑으로 받는 신세’ 입니다. 밥을 얻어먹고 돈을 받았다고 은혜라고 합니다. 성경적으로 은혜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 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고, 신령한 깨달음을 받고, 내 생애에 가장 중요한 구원을 받은 것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모든 것 위에 은혜요, 모든 것에 먼저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훌륭한 기관사, 배, 선장, 엔진.. 그보다 먼저 부력이 있어야 합니다. 첨단과학장비, 비행기 이전에 공기가 있어야 하듯이 모든 것에 먼저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농사를 짓는 데도 좋은 씨앗, 좋은 농기구, 좋은 지혜, 비료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비와 태양,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은 은혜를 아는 존재입니다. 기독교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신앙성장이 무엇입니까? 은혜를 더 많이 깨달아 가는 사람입니다. 또한 이 은혜중에 가장 중요한 은혜는 내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은혜는 성경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많은 선물이 은혜인 것입니다. 그 많은 선물중 가장 귀하고 소중하며 중요한 선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지 않으시길 위하여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 그것도 우리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시므로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복중의 복이 임마누엘의 복이듯,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가장 좋은 선물, 가장 귀한 은혜는 내안에 거하시는 성령님(내주하시는 성령님) 인 것입니다. 강도의 굴혈과도 같은 내 마음속을 당신의 거처로 삼으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표징인 성령님의 은혜를 늘 감사하시며,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기에 그리스도인은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늘 교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하는 이유 -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의 교제 말씀보는 이유 -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의 교제 오늘은 성령강림주일 후 첫째 주일로서 성령강림 절기입니다. 성령강림절기란 성령님과의 교제들 통하여 신앙을 생활화 하는 절기이며 기간이라는 뜻입니다. 예배시간에만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아니라, 일터에서 가정에서 길거리에서 성령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신앙을 생활화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성령의 바람, 성령의 불 세상에는 지금 세찬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유행의 바람, 죄악의 바람, 우상숭배의 바람 이 모두 공중 권세잡은 자의 권세 아래에서 일어나는 바람과 같습니다. 어찌나 그 바람이 센지, 우리 자녀들까지 삼키려합니다. 우리 가정을 집어 삼키려 합니다. 이 세상 바람을 잠재울 성령의 바람을 그리스도인들은 일으켜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강림이 급하고 강한 바람같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은 또한 불길에 휩싸여 있습니다. 세상에 불, 정욕의 불, 탐욕의불, 중독의 불로 가정이 사회가 망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붙으면 모든 것을 태우고 소진시키는 정욕의 불. 이 불이 하나님의 지으신 아름다운 세상을 다 태우기전에, 불이 붙어도 타지않고 도리어 생기와 힘을 주는 성령의 불을 지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강림이 불의 혀같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유행의 바람, 죄악의 바람을 성령님의 바람으로 이기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세상의 정욕과 탐욕의 불을 성령님의 불로 이기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3> 성령님과의 교제 훈련 그럼 어떻게 성령의 바람을 이 세상에 일으키고,, 성령의 불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지난 주일 말씀드렸던 성령님과의 교제 (1시간에 1번 씩)를 통해 우리의 심령에서부터 작은 바람, 작은 불길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내안에 계신 성령님과의 교제는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기독교 전통속에 있었던 귀한 영성훈련의 한 방법일 뿐입니다. 수련과 명상은 수도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삶속에서도 가능하며, 일상 삶속에서 명상과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3-1> 오감을 영적인 도구로 우리의 오감 (먹고,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만지고 - 눈 코 입 귀 손)을 세상적인 것, 육신적인 것에만 사용하지 말고, 영적인 오감을 발달시켜야 합니다. 성경에도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맛보아 알지어다” 하였습니다. 중세 영성신학자인 익나시오 로욜라는 오감을 통한 영적인 통찰의 중요성을 강조하엿습니다. 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우리의 오감을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일에만 치중하다 보니 우리는 육신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적인 사람은 먼저 육적인 오감의 활동을 자제, 절제하고 영적인 오감의 능력을 키워가야 합니다. 내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의 간증을 듣다보면 큰 은혜받는 순간은 대부분 은혜를 오감으로 감각하는 것 같이 체험하는 순간임을 알수 있습니다. 맛보고, 느끼고, 만져지고, 보고, 들을 때 - 큰 은혜의 순간 나 자신이 은혜를 체험할 때 찬송가사가 느껴지고 영의 눈으로 보여지는 감격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찬송 478장 주 날개 밑 내가 평안히 쉬네 밤깊고 비바람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키시리니 거기서 평안히 쉬리로다 2절 주 날개밑 나의 피난처되니 3절 주 날개밑 참된 기쁨이 있네 찬송 455장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2절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 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3-2 > 기억력과 상상력을 영적인 도구로 오감뿐 아니라 우리의 기억력, 상상력도 귀한 영성훈련의 도구입니다. 기억력과 상상력을 잘못 사용함으로 우리의 마음이 강도의 굴혈, 우리의 삶이 육적인 삶으로 망그러집니다. 기억력과 상상력을 잘 사용하면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도구로 쓰일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훈련되어져야 합니다. 육신의 삶을 유지하기 우해 밥먹고 숨쉬고 일하고 운동하듯, 영적인 삶을 유지하고 더욱 깊은 신앙으로 들어가기 위해 영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영성신학자 토마스 머튼은 그의 저서 <명상의 씨>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의 지정된 시간에만 하나님께 대하여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결코 영성생활에 깊이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실상 그들은 경건하게 ’마음의 기도’를 위하여 할당한 시간에도 하나님께 대하여 생각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 길거리에서 시골에서 기도하는 것을 배우십시오. 손에 책을 쥐고 있을때만이 아니라, 버스를 기다리거나 기차를 타고 있을 때에도 묵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예배속에 들어가서 예배의 순환을 그대의 삶으로 삼으십시오. 그 리듬이 그대로 그대의 몸과 마음에 물결치게 하십시오.” 3-3>고난은 가장 좋은 영적 도구. 성령님과의 교제에 가장 좋은 영적 도구가 있습니다. 바로 고난입니다. 카프만 부인에 「광야에 샘」이라고 하는 서적이 있는데 그 책에 나오는 얘깁니다. 어떤 날 그가 아주 주의깊에 누에고치에서 그 번데기가 변해서 나비가 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누에고치를 보면 거기서 바늘구멍만한게 뚤립니다. 보셨는지 모르지만 시골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데 바늘구멍만한 동그란 구멍이 뚤리고 거기에서 나비가 나옵니다. 번데기가 변해서 나비가 되어 나올때 좌우간 하루종일 걸립니다. 몇시간 걸려서 조금씩 조금씩 나오면서 고생을 합니다. 날개죽지 하나가 나오고 퍼둥거리다가 또 한쪽이 나오고 퍼둥거리다가 또 몸이 안나와가지고 퍼둥거리고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하루종일 그짓을 해가지고 겨우 나옵니다. 나와 가지고 몇 바퀴 돌다가 푸둥하고 날아 올라갑니다. 이걸 보았어요. 이걸 지켜보다가 아휴 그렇게 고생스럽게 나오는구나. 그래 가지고 그 구멍이 너무 적다고 생각을 해서 가위로다가 구멍을 크게 뚫어 줬어요. 뚫어 주니까 그 나비가 쑥 나오잖아요. 그 나오는걸 보면서 이 카프만 부인이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사랑이 더 많다. 내가 더 자비가 크다. 저 고생하지 않도록 내가 나오게 해 주었으니 내가 더 훌륭하다. 하고 혼자서 빙그레 웃었더랍니다. 그리고 지켜보았더니 그렇게 꺼내 놓은 나비는 날지를 못합니다. 빙빙빙빙 돌다가 그대로 죽어 버리더랍니다. 결국은 자기가 자비를 베풀어서 번데기가 나비로 변하는 시간에 그를 편하게 해준줄 알았더니 자기가 나비를 죽인것 밖에 안되더라는 거예요. 왜그럴까? 연구를 해 보니까 그 나비가 작은 구멍으로 나오면서 몸부림을 칠때 그 몸에 있던 번데기 몸에 있던 영양이 날개로 건너 갑니다. 영양가가 날개로 건너가면서 날개가 힘을 얻습니다. 그 좁은 공간으로 나오느라고 몸부림을 치는 가운데 온 몸이 운동을 해서 힘을 얻어 가지고 그렇게 나와야 그 다음에 날아 갈수가 있더라는 것이예요. 그래서 내가 어리석은 짓 감상적으로 해가지고 그저 나비만 몇마리 죽였구나 하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때로 우리에게는 가혹하리만큼 깜짝놀랄만큼 아이구 이제는 죽는다 할만큼 어려운 일들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의 일환입니다. 이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속에 하나님의 교과과정이 있습니다. God’s curriculum, God’s dispensation 하나님의 훈련과정에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가르칩니다. 이것을 통해 훈련합니다. 강인하게 합니다. 강하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