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구해야 하는가?

성령을 구해야 하는가?/눅11:9-13

성령을 구해야 하는가?
눅11:9-13





기도에서 중요한 것

한 가난한 석공이 길옆에서 화강암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는 돌에 일격을 가할 때마다 무릎을 꿇은 채로 그 일을 해야 했습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한 목사님이 그를 보며 말했습니다.

“오, 형제여! 당신은 매우 힘든 일을 하십니다. 저의 일처럼 말입니다. 당신은 돌을 깨야 하고 저는 마음을 깨야 합니다.”

그러자 그 가난한 석공이 대답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목사님께서도 이 화강암처럼 단단한 마음들을 깨뜨리시려면 저처럼 이렇게 무릎을 꿇어야 하실 테니까요.”

목사님의 일은 시작도 기도이고, 끝도 기도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 인간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목사님만 아닙니다. 모든 성도의 삶의 시작이 기도이고, 끝이 기도입니다. 눈뜨면 기도하고, 눈감고 잠자리에 들 때 기도합니다. 우리는 야곱의 자손입니다. 야곱은 얍복나루에서 환도뼈가 위골되도록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몸에 기도의 흔적을 가졌습니다. 이날 이후로 야곱은 평생을 절면서 생활했습니다. 한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기도를 잊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성도들의 삶에 호흡입니다. 양식이고 생수입니다. 기도 없이 못삽니다.

그렇다면 기도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환도뼈가 위골되도록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밤을 새워 잠을 자지 않고 기도하고, 때로는 40일간 금식하여 기도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구하고 찾고 두르려야 합니다. 기도를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머리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무릎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입을 열고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끼는 바를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 응답입니다. 기도하면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가 확실하게 응답된다면 기도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기도 응답이 있는가, 기도의 효력이 있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기도 하나 안 하나 같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하고 의심한다면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의 보따리를 가져왔다, 도로 가져간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목이 쉬도록, 밤을 새워, 먹을 것을 먹지 않고 금식하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기도 응답은 감격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로 응답받았습니다. 마른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습니다. 비 오기를 위해 기도할 때, 3년 6개월 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던 하늘에서 장마 비가 내렸습니다. 모세가 홍해 바다 앞에서 손을 들고 기도할 때 바다가 육지처럼 갈라졌습니다.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입니다. 기도 응답만 생각하면 당장에 기도하고 싶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 재미에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9-10절).”

그리고 기도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용입니다. 무엇을 구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기도합니다. 양식이 부족한 사람은 양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마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합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합니다. 일터와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아픈 사람은 병 고침을 위해 기도합니다.

의사가 수술을 하지만, 수술하기 전에 환자의 손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과학자가 연구실에서 연구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연구의 성공을 위해 기도한다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정치하는 사람이 큰 결정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기업을 하는 사람이 사업의 운영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기도한다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시합에 나가는 선수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가 하나님께 은총을 간구한다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기도는 한결같이 우리의 필요와 요구만 반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도록 기도할 것이고,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도록 기도할 것이고, 선교사님들이 일을 잘 하도록 기도할 것이고, 북한 땅에 교회가 회복하고 신앙의 자유를 회복하는 날이 속이 임하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온 열방에 복음이 전파되고, 평화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의 필요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를 간구합시다. 육신의 필요만 아니라, 영적인 필요를 간구합시다. 눈에 보이는 것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기도합시다. 세상적인 것만 아니라 천국을 바라보고 기도합시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아니라,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가 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고 싶어 하는 것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13절을 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이 성령입니다. 오늘 본문과 평행을 이루는 구절이 마7:7-11절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좋은 것”이라고 하고, 누가복음에서는 좋은 것을 구체적으로 “성령”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좋다고 하시는 것과 우리가 좋다고 하는 것의 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기도할 것 중에 기도할 것은 성령을 구하는 것이고, 응답 중에 응답은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에 문제가 무엇입니까?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기도합시다.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지 못합니까? 확신을 가집시다. 하나님이 구하라고 하시는 것을 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 성령을 구합시다.

성령을 구하라고 하면, 어렵게 생각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기도도 하지 못하는데 무슨 성령까지 구한단 말입니까? 나의 수준으로는 할 수는 기도라고 미리 판단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성령은 별나게 믿고 광적인 사람들이 받는 것이지, 나하고는 상관없다고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없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신앙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온전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기도 많이 하면 겨우 응답받고, 응답받는 사람 중에 일부가 성령을 받는다. 성령을 받는 사람은 우리하고 다른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하실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과 반대입니다. 성령을 구하면, 성령을 받을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기도를 많이 할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 기도하려고 하기 때문에 기도가 어려워집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에 응답의 확신을 가지지 못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가장 쉽고 확신에 찬 신앙생활의 비결입니다.





성령은 누구인가?



성령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단일신이 아니고, 다신이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로 계시면서 한분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각 고유한 위격을 가지십니다. 성부는 성부이고, 성자는 성자이고, 성령은 성령입니다.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고유한 위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부는 아버지이고, 성자는 아들이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는 영입니다. 성부는 창조와 구원의 계획을 하시고, 주권적으로 통치하십니다. 성자는 성부와 함께 창조하시고, 성부의 뜻을 따라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모든 지혜와 능력으로 일하시는 분입니다. 천지창조도 삼위 하나님의 역사이고, 십자가의 구속도 삼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부가 창조의 계획을 하시고, 성자는 지혜가 되시고, 성령은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성부는 십자가의 구속을 계획하시고, 성자는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성령을 믿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삼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한분입니다. 한분이라는 말은 몸이 하나라는 뜻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같다는 뜻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본질과 능력과 영원하심이 각각 같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본질이 같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능력과 영원하심이 같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형상이나 몸을 가진 분이 아닙니다. 하나라는 것은 하나님 되심이 같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도록 기도합시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와 성령으로 끊임없이 나오시는 영이십니다. 성령은 나오시기 때문에 간구하여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구체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입니다. 성부 하나님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영광의 보좌에 계십니다. 성자 하나님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자 하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가 고난 받고 죽으신지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에게 영으로 오시는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여 구할 분은 성령 하나님입니다.

성령을 구한다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성령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삼위 하나님도 성령을 구하는 것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성령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간절히 소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보좌에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 하신 분만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로부터 끊임없이 나오셔서 우리의 영혼에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성령을 구하지 않는다면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좋은 것들은 성령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에게 임합니다. 만일 성령을 구하지 않는다면 기독교를 율법이나 전통에 의존하는 하나의 종교로 믿는 것입니다. 성령을 구하지 않는다면 우리 속에 이미 들어와 계신 성령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구하지 않는다면 어두운 망망대해를 혼자 노 저어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어둡고, 얼마나 외로운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십니까?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영혼의 복락



성령 하나님이 영혼의 복락을 좌우하십니다. 신령한 복은 성령으로 인해 임합니다. 성령의 다른 이름이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돕는 자란 뜻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6-27).” 성령은 십자가의 사건을 믿게 하고 깨닫게 합니다. 성경 말씀을 깨닫도록 조명합니다. 어두운 방에서는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을 수 없습니다. 빛이 있어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빛나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성령의 조명이 아니면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믿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건강치 못해도, 재물이 없어도, 핍박을 받아도, 실패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환경과 여건을 뛰어넘어서 평안을 주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서도 단잠을 자고 나왔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빌립보 감옥에 들어가서도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평안입니다. 세상에는 근심된 일이 많고 죽을 일이 쌓였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근심된 일을 만나도 근심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용기를 잃지 않습니다. 가장 혹독한 시련을 당해도 성령께서 우리를 돕기 때문에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다시 일어납니다. 성령은 우리를 결코 지치지 않게 하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이 됩니다.

성령은 육체의 소욕을 소멸시키고 대신 성령의 소욕을 나타내십니다. 육체의 소욕이 무엇입니까?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과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9-21).” 우리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육체의 소욕입니다. 사람의 속이 달라져야 겉으로 드러나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육체의 소욕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지옥 백성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미국 뉴올리언즈를 삼킨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수천 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흔히 자연 재해는 제3세계에서나 당하는 후진국 재앙으로 알았는데, 이번에 미국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아무리 과학적인 예방을 한다할지라도 인간의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총을 베푸셔야 합니다. 재난도 재난이지만, 뉴올리언즈에는 약탈과 강도와 총격으로 인해 지옥을 방불케 한답니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죄가 자행됨으로 무법천지로 변하고 있답니다. 오죽 했으면 정부에서는 치안을 바로 잡기 위해서 주 방위군에게 사살 명령까지 내렸다고 합니다. 인간은 추악한 면을 무엇으로 감출 수 있습니까? 무엇으로 표범의 반점을 없앨 수 있습니까? 검은 피부를 희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복락은 성령을 받아서 새 사람 되는데 달려 있습니다. “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 믿는 자는 그리스도로 인해 법정적인 의를 얻었으나, 실제 의로운 새 생활은 성령을 받음으로 누립니다. 성령이 주시는 지혜, 성령이 주시는 명철, 성령이 주시는 성결, 성령이 주시는 평안, 성령이 주시는 믿음, 성령이 주시는 사랑, 성령이 주시는 소망, 성령이 주시는 인생의 새로운 목표. 성령이 아니면 이런 영혼의 복락은 누릴 수 없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선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 “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2).”





사역의 열쇠



성령은 개인의 영혼의 복락을 좌우할 뿐 아니라,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거룩한 사역의 능력과 결과를 좌우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능력과 지혜로 일합니다. 사도들은 성령을 받아서 세계 선교를 감당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선교를 하려면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물질도 필요하고, 헌신된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을 받기 위해 전심으로 기도했고,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나가서 복음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이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삼천 명 오천 명으로 크게 부흥했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 사도들은 어떠했습니까?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함께 생활하고 눈으로 보고 직접 배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잡혀서 고난 받고 죽으실 때 사도들은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뜻도 몰랐습니다. 겉으로는 제자이고 사도였지만, 속으로는 교회를 세우고 세계선교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미약한 사도들을 변화시킨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은 일하게 하는 영이십니다. 성령은 천지를 창조하신 영이십니다. 천지 만물은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지어졌습니다. 성령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살린 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적은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에게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어떤 하나님의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전도와 선교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교회와 나라가 건설되는 곳에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를 선교의 목표로 삼았지만, 성령은 드로아에서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통해 바울을 유럽으로 불렀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은사는 재능이고 무기입니다. 재능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은사가 있어야 적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고에 온갖 무기가 있습니다. 성령을 받는 자에게 그 무기를 맡겨 주십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어떤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13:7-11).” 로마서에도 은사를 언급합니다.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르시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6-8).” 여기에 온갖 은사가 다 언급됩니다. 오직 성령을 받는 자에게 이런 은사가 임합니다.

삼손에게 성령의 은사가 임했을 때, 나귀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일천 명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나실인의 비밀을 토설하고 머리카락이 잘라졌을 때, 힘을 잃고 블레셋 사람에게 붙잡혀서 두 눈이 뽑히고 연자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석공이 “목사님이나 저나 무릎을 꿇고 일하는 것이 같습니다”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오랫동안 무릎을 꿇지 않고는 하나님의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감화시키려 합니까? 먼저 기도의 무릎으로 하나님을 감화시켜야 합니다. 훌륭한 교사가 되려 합니까? 기도의 무릎으로 가르치는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훌륭한 찬양대원이 되려합니까? 기도의 무릎으로 찬양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 보다 귀한 것을 누가 모릅니까? 전도를 하려 하십니까? 기도함으로 전도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솔로몬처럼 지혜롭기 원합니까? 기도함으로 지혜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금이나 은과 같은 귀한 그릇도 있고, 나무도 진흙으로 만든 천한 그릇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기도하고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금이나 은과 같은 존귀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사역의 확장과 결실은 성령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80년 8월 청계산에서 기도하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도 몰랐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재능도 가지지 않은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목사나 선교사만 아닙니다. 링컨 같은 대통령이나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 같은 기업인이나 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평신도로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공통점은 기도하면서 성령의 은혜를 받은 분들입니다. 부모에게서 타고 난 것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변할 수 있고, 없다가도 있게 하실 것이 있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은사입니다. 입을 넓게 열어서 성령을 받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