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1) 눅11:5-13
기도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고, 성령에 대한 책들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대한 설교를 듣기도 하고 책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그의 인격에 대하여 알게된 지식이 있습니다. 그래도 성령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습 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을 보면 성령에 대해서는 자기가 전문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마치 성령은 자기의 전유물인 것처럼 나대는 것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한 10년 정도 사귀었어도 그가 열어 보여준 정도만 알 수 있습니다. 그 친구가 고민하는 속사정을 다 알 수 없 습니다. 정말 친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실 지 모르지만, 한번 생각해보세요. 30년 간 살아오는 부부간에도 가끔은 아내의 의 중을 몰라서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고 헤맬 때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인격과 인격이 만날 때에는 이루 헤아리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종이와 펜을 주시면서 네게 기도하고 싶은 제목이 있으면 꼭 한가지만 써보라고 하시면 무엇이라고 쓰시겠습니까? 꼭 하나입니다. 무엇을 쓰시겠습니까? 사람마다 다른 제목이 기록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그 제목의 공통분모는 각자에게 가장 절실한 것, 시급한 것, 지금까지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치면서 기도하던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기드온 산당에 가서 그 단위에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즉시 말하였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 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 옵소서\\\"(왕상3:7-9)라고 하셨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구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습니다. 솔로몬이 자기를 위하여 수를 구하지 않고, 부도 구하지 아니하고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않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어서 솔로몬 같은 지혜로운 사람이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게 하셨습니다. 그 리고 하나님의 그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주어 솔로몬의 시대에 그런 왕이 없게 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구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생애에 있어 가장 절실하고, 다음으로 미룰 수 없고, 다른 비슷한 것으로 대체할 수 없 는 우선 순위로 말하면 1순위도 아닌 영순위를 적으셨을 것입니다. 심령의 펜으로 적고 따라오시는 것입니다. 설교는 듣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시면서 설교자와 함께 설교의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에수님이 여리고 성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많은 사람이 무리를 지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물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누가 지나가는 것입니까?\\\" 그 지나가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예수 님이 지나가신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이때부터 그 맹인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 기소서\\\" 이 말은 한 두 번 외치고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부르짖었습니다. 하 도 시끄럽게 소리쳐대니 주변의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고 망신을 주었습니다. 웬만하면 이쯤 물러서고, 잠잠할 것입니다. 사람이 체면이 있지, 주변의 많은 사람이 시끄럽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되겠습니까? 그 동안 구걸하고 사 는 것만도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 맹인은 더욱 소리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 서\\\"하였습니다. 그 얼마나 간절했으면 뒤로 물러나지 아니하고 우리 주님이 불쌍히 여기실 때까지 외친 것입니다. 그 간 절함이 주님의 마음에 도달하였고, 미치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던 길을 잠시 멈추고 머물러 서셨습니다. 예수님의 발길을 멈출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간절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외마디 절규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 소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명하여 그 맹인을 데려오게 하였습니다. 저가 가까이 왔을 때에 주님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은 간구하였습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 때 예수님 은 그의 간절함을 보시고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곧 보게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을 좇으니 백성들이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디메오의 아들, 바디메오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언제가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것이고, 이 여리고라는 성의 성에 들어오신다고 생각하고 길목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쉽게 주어지지 않을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단 한번의 기회를 잘 사용하여 남은 생애 밝은 눈으로 보면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잘 이용하였습니다.
우리는 단 한가지 절실한 기도의 제목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누구나 절실한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실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 시고 마음으로 쓰신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부끄러워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릅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기도하시려는 제 목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조금 미흡하다 하시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수정할 수 있는 감동을 주시고, 기도하기 위하여 엎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 더욱 풍성하고 좋은 것으로 이루어주십니다.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제목이 달 라지고, 기도하는 자세도 더욱 성숙하게 이끌어 가시고 친히 지도하십니다.
교회를 맡아서 목회하는 저에게 하나님이 한가지 기도제목을 써보라고 하시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하나님, 성 령을 주옵소서, 저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저를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는 지식으로 목회하였고, 경험을 의지하였고, 사람을 의지하였습니다. 목회의 주체가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었고, 인본주의였습니다. 목사의 나이 50대라면 목회자로서 황금기를 보내고 있는 것인데, 과연 나의 목회에 궤도를 수정 할 필요성은 없는지 한번 심각한 반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한 책을 읽으면서 어느 목사님의 간절한 자기 반성의 글을 보았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는 내 설교를 충실히 듣 고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교인들의 삶에 뚜렷한 변화가 없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영적으로 침체된 사람들은 거기서 헤어 나지 못하고 있었다. 집을 비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계속 재물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환자들은 약을 쓰지 않으면 낫지 않았 다. 전도하기는 너무 힘들었고,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장기 치료를 받는 것 외에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렇게 김빠지고 능력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우리가 이토 록 적은 능력만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글이었습니다. 이분은 미국의 유명한 신학교의 저명한 교수이시며, 목회자였 습니다. 그분의 고백은 곧 저의 고백과 같았습니다. 그분의 글은 저의 아픈 곳을 인정사정 보지 않고 파헤치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우리 교회의 영적인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지금 신앙의 정도가 어느 정도라고 말할 것입니까? 이러한 평가는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지만, 평균 잡 아 60점 정도로 낙제하느냐 아니면 다음 상급반으로 진급할 수 있느냐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어느 교회든 지 90점에서 99점에 이르는 우등생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아예 공부할 생각도 꺼내지 않는 공부하기를 포기하는 학생 들이 있어 전체 평균이 과락에 떨어질 정도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점수를 메기지 않고 신앙 생활하고, 석차를 메기지 않고 교회 다니고 있으니 이렇게 의젓하게 앉아있지, 석차를 메기고 점수를 공개하면 좌불안석의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시면서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 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11:16-19)고 하셨습니다.
장터에서 아이들이 앉아 혼인 놀이를 합니다. 피리를 불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혼인놀이는 무르익어 갔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애곡을 하였습니다. 장례식을 흉내내면서 놀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은 한편 의 아이들이 애곡하면 다른 한편의 아이들은 가슴을 쳤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이렇게 감동이 있었습니다. 아직 순수한 심령이 기에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되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피리를 불어 도 그들은 춤을 추기는커녕 일어서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길 잃은 양을 보시는 것처럼 민망히 여기시면서 애곡하시면 사람 들은 가슴을 치면서 따라올 줄 알았는데, 그것이 무슨 처량한 짓이냐고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이 땅에서 와서 그는 광야에 거하면서 낙타의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들꿀 석청을 먹으면서 살아가니,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니 당시 기성 세대의 유대인들은 세례요한은 귀신에 들린 사람이 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가난한고 병들고 소외당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실 때에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 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하고 하면서 비난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목회서신 중에 말세가 오면 고통 당하는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 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 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 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 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 네가 돌아서라\\\'고 하셨습니다. (딤후3:1-5)
롬3장에는 전 인류의 죄를 지적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 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 지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영적인 빈사상태를 잘 지적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 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4:3-4) 고 하셨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 사회를 향한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권위도 상실하였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그 동안 하도 실언을 많 이 하고 민폐를 끼쳤는데 이제 와서 무엇이라고 변명할 것입니까? 빛이 되라고 하셨는데 같은 어두움이 어디 가서 빛이 될 수 있습니까? 소금이 그 짠맛을 잃었는데 이제는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시간만 남았습니다. 1천만 성도의 수를 자랑하 면서 자만에 빠져있을 때 악한 사단은 엄청난 도전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일천만 성도들을 향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한 사 람 한 사람 각개전투 식으로 쓸어 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사실이지, 여러분 한이 넘어지고 침체한 상태에 빠지면 우리 한국교 회는 다 넘어지고 침체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이 한참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을 평하기를 싸우시는 그리스도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다른 교인을 염려하지 말고,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 세계 교회 거창하게 말하지 마시고, 여러분, 자신을 생각 해야 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는 고백은 사도 바울의 고백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고백으로 남아야 합니다.
\\\"이래서는 안된다. 하나님이여 저를 굽어 살펴보십시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는 주님의 약속 을 믿어야 합니다 목회하시는 목사님이나 성령 받아야 하고, 우리 평신도들은 세상일에 얽매여 살기 때문에 덜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하시는 여러분, 복음의 능력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만 요란하게 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았습니까? 우 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알고 짓는 죄가 많았습니까? 아니면 모르고 짓는 죄가 많았습니까? 다 알고 짓는 죄였 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죄와 짝하였습니까?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예배에 감격 이 없습니까? 찬양에 감격이 사라졌습니까? 기도는 또 어떻습니까?
옛날 목사님들 사이에서 제일 큰 욕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성령 받지 않고 목회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사랑하 시는 여러분, 열심히 봉사는 하는데 심령이 답답합니까? 아무리 열심히 성경을 공부해도 전혀 생활의 변화가 따르지 않습니까? 성령 받아야 합니다. 성령에 충만하여 찬송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 내 힘으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은 전혀 다른 효과가 있습 니다. 내 힘은 얼마가지 않습니다. 내 의지는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할 만큼 성실하지 못합니다.
구약에서 성령을 강조하신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스가랴입니다. 학개와 스가랴는 포로후 시대의 선지자로 성전 재건에 힘을 실어준 선지자였습니다. 처음 포로에서 돌아올 때는 우리는 예루살렘에 가서 먼저 성전을 짓고 그 후에 회당을 짓고 제일 나중에 우리 집을 짓자고 다짐하면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함께 성전을 짓자고 할 때에 \\\"우리 하나님 의 전을 건축하는데 당신들은 우리와 상관이 없노라\\\"고 거절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바사 나라의 관리들에게 뇌물 을 주고 성전 건축을 중지시켰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성전을 건축하고 성곽을 다시 수축하면 바사 나라에 세금도 바치지 아니 하고 반역할 것이라고 중상모략하였습니다. 이래서 성전건축이 15년이나 중단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있어나 외쳤습니다. 당시 최고 지도자요 성전 건축의 총 책임자였던 수룹바벨에게 외쳤습니다.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 \\\"(슥4:6)고 하셨습니다.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능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나의 신, 성령으로 가능합니다. 세상사는 재미에 젖어 성전을 외면하였 던 이들이 다시금 불같은 뜨거운 마음으로 성전에 올라가서 돌을 놓고 나무를 올려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힘으 로도 안되었습니다. 어떤 능력이 있다고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잘 아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령에 대하여, 이미 예수 믿는 자는 이미 성령을 받았는데 또 무슨 성 령을 달라고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 장로교회의 신학이 가지고 있는 맹점입니다. 오늘 본문을 해석하는 모든 성경 주석들도 거 의 다 \\\"강청한다\\\"는 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8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그 강청함을 인하여\\\", 그래서 열 심히 기도하라고만 설교하였습니다. 9절의 말씀 10절의 말씀 모두다 열심히 중단하지 말고 간절하게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눅11:9-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는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을 때에 성령을 함께 받았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임 하셨습니다. 그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나, 기도할 때에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신 말씀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성령에 대한 신학적인 정립을 못하고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은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순절에 오신 성령은 주님의 약속이었고, 하나님의 경륜이었습니다. 성령이 인격적으로 우리 안에 임하시는 역사는 이미 끝난 역사입니다. 오순절의 성령이 강림하신 역사는 이미 지나간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또 죽으시는 것이 아니라 단 한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시는 것을 반복하실 필요가 없이 단 한번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역시 성 령은 오순절에 이르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지금도 진리의 영으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시고, 교회 안에 계십니다 . 우리 안에 들어와 내주하시고 상주하시고 영주하시는 성령입니다.
그러면서도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고, 기도할 때에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13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 느냐 ?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마7: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성령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위에 부어주시고 또 부어주시는 은사가 있습니다. 받고 또 받고 충만하였고, 또 충만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성령의 세계는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지만, 육신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는 성령의 역 사가 침체될 때가 많습니다. 이미 성령의 사람이 되었지만,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고 , 기도할 때에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또 교인들이 모여서 기도하였습 니다.
(행4:29-31) \\\"주여 !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 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 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성령을 받았던 분 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육신을 가진 사람이기에 침체됩니다. 육신을 따라 살아갑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절할 때가 많습니다 . 빌기를 다하매 모든 곳이 진동하였습니다.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한번만 성령이 충만하여 외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또 여러 번 성령이 충만하여 외쳤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성령과 지혜가 충 만하였고 또 충만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순교할 때에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사마리아 교회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은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성령 받기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그들 위 에 성령의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안수기도하니 사마리아 교회 위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설교할 때 에 고넬료의 집에 모였던 모든 이방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사도바울도 한번 성령 받은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을 받고 또 받았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라고 하셨습니다. 살전1:5의 말씀에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은 강조하셨습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살전5:19)고 하셨습니다. 소멸치 말라는 말은 불을 꺼뜨리는 것을 말합 니다. 성령의 충만을 계속하는 비결은 기도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악한 부모님 같으신 분이 아닙니다. 문 두리는 친구에게 귀찮아서 떡을 건네주는 정도의 속 좁은 친구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악한 아비는 귀찮아서 자녀에게 마지못해 먹을 것을 주고 심지어 악한 사람은 떡을 달라고 하니 돌을 건 네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와서 부스러기라도 얻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찾 아가도 믿음이 크다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성령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부끄러운 기도가 아닙니다. 가장 시급하고 절실하 고 중요한 기도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기도는 세 가지의 다른 기도가 아닙니다. 강청하는 기도를 계속 반복 하라는 것입니다. 성령 받기 위한 기도에 이런 강청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하셔서 모두다 성령의 충만받아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처럼 홀리 클럽을 만들어서 금식하면서 성령 받기 위하여 힘썼더니,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고 외치면서 복음을 증거하는 능력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새로운 세기, 새로운 천년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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