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은 우리의 해방자 눅4:16-19
창세기 1장에 성령께서는 창조의 영으로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무시무시한 상황 위에 성령께서 운행하셔서 놀라운 질서와 아름다움과 풍요와 생명으로 넘치는 활기찬 세계를 지으셨습니다.
구약시대 출애굽 때에도 성령께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고 사사 시절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이방 나라와 민족의 종이 되었을 때도 사사라는 특정인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위대한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고향땅 나사렛에 오셔서 회당에서 복음선언을 하실 때도 성령께서 임하셨기 때문에 구원과 해방의 사역을 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오순절 이후 2천년 동안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하사 계속적으로 해방의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심
성령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오늘도 계속하십니다. 원래 인간은 가난하게 지음 받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고 에덴동산 낙원에서 살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가난은 아담이 타락한 결과입니다. 아담이 반역죄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저주가 왔고 그 결과로 오늘날 가난이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가난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불순종과 불신앙과 반역의 죄로 말미암은 저주 때문에 온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님께서는 대속의 은혜로 영육간에 축복을 가져오셨습니다. 첫째 아담이 타락함으로 가져온 저주와 가난을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저주와 가난을 대신 짊어지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가 가난함 속에 살고 있기를 원치 아니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또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가져온 저주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보혈을 흘리심으로 청산하셨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난한 자에게 꿈과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환경적으로 가난하고 가시와 엉겅퀴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운명이 달라진 것을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가난과 저주에서 옮기신 사실을 기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통해서 이 진리를 우리 마음속에 전달하여 우리의 영혼이 가난과 저주의 사슬에서 해방받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고 해방되면 그것이 우리의 현실 환경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셔야만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성령님이 안계시면 인간의 이성과 감각만으로는 이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 마음속에 깨닫게 해 주셔야 합니다. 성령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성령님이 오셔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셨다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깨닫고 믿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님이 오신 것은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우리는 구원 받고 성령 충만하여 복을 받습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의 복을 받고 우리 생활을 파고드는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을 얻게 됩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복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이루셨다는 사실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2.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심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인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친히 만드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 인간은 포로와 속박 속에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마귀와 귀신의 포로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타락한 이후로 마귀와 그 종자인 귀신들에게 사람들은 포로가 되어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잘 알다시피 더러운 귀신은 가는 곳마다 사람의 마음속에 더러운 생각, 더러운 말, 더러운 행위를 하게 합니다. 사회와 국가, 세계가 부패한 소용돌이 속에 떨어진 것은 더러운 귀신의 역사가 그 배후에 항상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무리 법을 조정하고 사회 개혁을 해도 순식간에 부패합니다. 왜냐하면 더러운 영이 있어서 항상 부패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 더러운 영을 쫓아 내기 전에는 우리의 환경 속에 부패를 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악한 영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서 마음 속에 고통을 가져옵니다. 악한 영은 개인에게 고통을 가져올 뿐 아니라 이웃에게 고통을 가져옵니다. 악한 남편은 부인과 자녀들에게 고통을 줍니다. 악한 부인은 남편과 자식들에게 고통을 줍니다. 악한 자녀들은 부모의 가슴 속에 상처 투성이를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악은 사회와 국가와 세계에 분열과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악한 영이 배후에 있기 때문에 오늘날 악을 아무리 제하려고 사람들이 애를 써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배후에 악한 영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세속의 귀신들이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하나님 곁을 멀리 떠나 살게 합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먼 나라로 간 세속적인 영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모르고 살게 하다가 영원히 멸망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온갖 탐욕을 세속적인 영이 가져옵니다. 그 탐욕으로 말미암아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달콤한 탐욕으로 유혹을 불어넣습니다. 그래서 눈을 어둡게 합니다. 결국에는 파멸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마귀는 귀신들을 통해서 무속 신앙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젊은 이들이나 정치인, 사업가들이 역술인들이 모여있는 곳을 많이 찾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인터넷 인구가 2천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운세 관련 서비스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최고 6배 이상 많이 이용한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과학과 정보 사회에도 미신은 성행합니다.
지난 해에는 운세 사이트 이용자수가 3만명, 금년에는 12만명으로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국민 52%가 점을 본 적이 있고 사주 풀이를 믿는 사람이 40%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마귀가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과 공포와 초조를 이용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미혹의 영으로 마음을 미혹케 하고 요행을 믿게 하고 사행심을 갖게 하고 열심히 충성스럽게 일할 필요가 없다고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회가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울수록 무속 신앙이 팽배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다 귀신에 이르는 것입니다.
한편 여러 가지 정신적인 장애를 귀신이 가져와서 사람들로 하여금 정상적인 삶을 못 살게 합니다. 술 취하게 만들고 도박에 빠지게 하고 방탕하게 하는 것이 귀신들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귀신들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은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될 때 미혹케 하는 귀신은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케 해서 복음이 전혀 깨달아지지 않고 들리지도 않고 복음을 어리석게 생각하도록 그렇게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국 멸망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오시면 이 모든 귀신의 역사를 내어쫓아 버리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귀신으로부터 해방받게 하고 의롭고 참되고 거룩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따라서 오늘날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귀신으로부터 해방을 얻고 자유롭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하였고 마가복음 16장 17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사람들은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마귀와 귀신들과 친숙하게 살았습니다. 마치 한 가족처럼 느끼고 귀신이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해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중생하고 나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십니다. 그래서 귀신을 내어 쫓아 자유와 해방을 얻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3.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심
인간은 영원히 육체를 입고 살기 때문에 영의 눈과 육의 눈이 동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은 영의 눈을 멀게 해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타락한 인간은 영적인 세계는 전혀 모릅니다.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칠흑같고 벽에 부딪히는 것 같습니다. 전혀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대인도 로마인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줄 몰랐습니다.
로마서 10장 16절에서 17절에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우리 마음속에 비춰주고 깨닫게 해주고 우리 영혼을 살려 주시면 비로소 살아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은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들을 어떻게 믿습니까?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죽은 영혼이 살아나야 아들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만이 우리 눈을 떠서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고 믿을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새롭게 만들어주고 영안을 열어 주십니다.
에베소서 1장 17절에서 1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 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며 간구하면 성령께서 우리 눈에 비늘을 제하시고 우리에게 밝히 볼 수 있는 영 안을 열어 주십니다. 영안이 열려야 진리의 말씀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4.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심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압제 당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영혼도 자유롭고 마음도 자유롭고 육체의 생활도 자유로웠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 마귀의 압제에 들어가고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마귀가 인간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습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묶어 놓고 종으로 삼고 불행과 고통을 당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적 제도의 압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볼 때 공산주의도 있고 독재주의도 있고 전제주의도 있고 자본 주의도 있지만 어느 사회나 압제가 있고 고통이 있고 괴로움이 존재합니다. 이런 것은 전부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 다가온 것입니다.
육체적인 압제에 의해서 가지가지 질병이 생깁니다. 마귀에게 눌려서 사람들이 병이 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치료는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폐를 누르면 폐병도 되고 폐암도 되고 마귀가 관절을 노리면 관절염이 됩니다. 물론 사람들이 마귀에게 기회를 주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과거에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마귀가 폐암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귀가 틈타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이러한 사회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보혈의 능력으로 개혁과 해방을 가져오십니다. 성령님은 독재주의, 공산주의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기뻐하고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인간답게 인권을 사용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독재주의로 고통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마귀의 역사입니다.
또 공산주의로 인해 인권을 잃어버리고 노예 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마귀의 궤계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 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온 사회와 국가는 여러 가지 제도에서 억압적 요소를 제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일들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과 자유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육신의 질병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질병은 스트레스로 인해 많이 생깁니다. 성령님은 이 스트레스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고 치료해 주십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돌에 눌린 풀은 노랗게 되어서 잘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나 돌을 옮겨 놓으면 노란 풀이 순식간에 태양 빛을 받고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질병의 60%에서 90%는 마음, 즉 스트레스로부터 온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심장 수술 받은 사람 가운에 살아 남은 환자를 조사해 보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보다 3배나 많고 건강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경쟁사회가 불러온 과도한 스트레스가 몸 속에 쌓이면 혈압이 오르고 면역 기능이 약화되고 약한 감기도 완치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러므로 우리 마음 속에 스트레스라는 것은 우리 몸에 병을 유도하는 활짝 열린 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까? 스트레스가 온다고 항상 여행이나 다니고 한가하게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스트레스에서 풀려날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님이 오셔서 그 은혜로 말미암아 마음에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채워주십니다.
5. 궁극적인 희망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기름 부음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은혜의 해를 전파하러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해’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희년을 말하는 것입니다. 7년 안식년이 일곱번 계속되어 49년이 되면 대속죄일을 지내고 난 다음 50년만에 희년의 나팔을 붑니다. 희년에는 잃어버린 고향과 전토로 모두다 복귀하여 귀가하는 때입니다. 따라서 희년은 모든 사람에게 거대한 희망의 해가 되는 것입니다.
레위기 25장 10절에서 11절에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0년이 되면 50년 전 팔았던 집과 땅을 원주인에게로 돌려주고 종으로 팔렸으면 50년이 된 희년에 다 해방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희년은 자유와 해방을 얻는 위대한 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희년은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으로 돌아가는 날인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위에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고통이 끝나고 주님께서 강림하시는 그날에 ‘잘 있거라 세상아! 나는 가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모든 고통을 벗어 버리고 해방과 자유를 누리고 영원한 천국으로 간다’는 그날이 바로 희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희년의 소식을 증거하러 오셨는데 이 사실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희년을 통해서 영원한 천국으로 데려 가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고통에서 허덕이던 삶이 종결 짓고 우리가 다시 옛 에덴동산과 같은 영원한 천국의 영광으로 복귀하는 희년의 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희년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강림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날엔 우린 모든 속박에서 해방이 되고 종살이에서 풀려나고 영원한 자유와 기쁨 속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은 바로 이러한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힘입어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순절날 성령을 받고 동일한 복음 사역을 하셨습니다.
오늘날 지상에 있는 예수님의 몸은 교회요, 교회는 성령님의 도구가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해방과 치료를 주는 복음 사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교사역은 바로 성령님의 사역을 온 천하에 전하고 천국 복음을 확장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천년 전 오순절 다락방에서 1백20명의 제자에게 성령이 임하신 결과 그들은 온 천하에 다니며 그리스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나라에까지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오늘 성령님은 이 자리에 와 계시고 교회에 충만하시며 교회를 옷 입고 여러분을 옷 입고 오늘도 계속해서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가난한 자에게 복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는 다시 보게됨을 눌린 자가 자유케 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여러분에게 나타내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 기도 -
거룩하고 영광스러우신 아버지 하나님.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 죽은 영혼 을 살려 주시고 마음에 깨달음을 주셔서 우리 영혼 속에 변화가 다가오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 성령으 로 말미암아 진리를 듣고 우리 마음이 먼저 자유를 얻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축복의 샘물이 넘쳐 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유와 해방을 얻고 자유를 선포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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