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권능

성령의 권능/눅4:14-30

성령의 권능
눅4:14-30





우물 안에서 평생을 살아온 개구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개구리는 그 우물 안에 다른 개구리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 어디서 왔니?\\\'
\\\'이 우물 바깥으로 나가면 큰 연못이 있는데 나는 그 연못에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단다.\\\'
\\\'그 연못이라는 게 얼마나 크니? 그게 이 우물만큼 크니?\\\'
연못에서 온 개구리는 그의 말에 웃었습니다.
\\\'이 우물은 연못에 비교도 안돼\\\'
연못에서 온 개구리는 우물안 개구리에게 연못의 크기와 연못에 있는 다양한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우물 안개구리는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 평생 알게 된 거짓말 장이 중에 이 친구가 가장 큰 거짓말 장이 일거야,
그리고 가장 뻔뻔스럽고.\\\'
우물 안 개구리에게 연못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 당시에 이루어진 일들을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가 성경을 통해 읽다가 보면, 주님께서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 천국에 대해 설명하는데 꼭 생각하는 틀이 우물 안에 있어서 예수님을 거짓말쟁이 취급하고 미친 사람 취급을 하고 마침내 죽이고자 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천국 백성의 모습,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시지만 우리는 우물 안에 갇혀서 그 주님의 말씀을 담지를 못합니다.
특별히 주님께서 고향 갈릴리로 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나사렛에서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22절 하반부에서 보는 것처럼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하는 태도를 취했고, 결국에는 29절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처럼 \\\'산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밀쳐 내치고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틀로 바뀌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틀에다가 말씀도 집어 넣으려다가 안 들어가니까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말씀의 틀로 나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고향을 찾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갈릴리에 가십니다.
그 갈릴리에서 이루어진 일들을 살피며 오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들어 가셨습니다.

여기 14-15절은 예수님의 갈릴리 전도의 서언이고 요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역은 성령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사역이라는 것을 누가는 요약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특징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기독교를 외적으로 보면, 말에 의해서 전도되고 말로 신앙을 고백하여 표현함으로 말로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기독교를 유지하는 힘은 진리의 능력이요 성령의 능력입니다. 기독교는 말 잘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 맥을 이어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은 그 말씀과 함께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고전4:20에서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나가는 말은 그렇게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하는 복음에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 주님의 사역이 그렇습니다. 단순한 언어에 의존한 사역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하시는 일들을 통해서 성령의 열매를 볼수 있는 성령의 권능에 의한 사역이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이 맡겨주신 사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말솜씨를 가지고 뭇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보면 참 미련한 방법으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나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성령의 능력이 있습니다.
지나간 주간에 영아 유치부와 유초등부 성경학교를 했습니다. 유창한 말솜씨를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아주 관심을 끄는 것은 성령의 권능으로 말씀을 가르치시지만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아주 기이하게 여기면서 \\\'이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는 반응을 나타내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볼 때에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들이 방언을 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큰일을 말합니다.
그렇게 성령의 권능으로 이들이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지만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제자들을 가리켜서 \\\'새 술에 취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차피 타락한 인간들에게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이 나타나는 법이니까 말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령의 사람들이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공부를 하는데 한 교수님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예수님에게 미치자\\\'는 말이었습니다.
점점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들이 줄어 들어가고 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자꾸 다른 것들에게 미쳐간다는 것입니다.
온통 돈에 미친 사람들, 권력 잡기에 미친 사람들, 스포츠에 미친 사람들, 술과 마약에 미친 사람들이 이 땅에 늘어가고 있다고, 어차피 이 땅에서는 뭔가에 미쳐서 사는데 예수에 미치고 복음에 미치는 것이 제정신으로 사는 길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좀더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성령에 의해 지배를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술에 지배를 받고 돈에 지배를 받고 마약이나 권력에 지배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지배를 받는 성도들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자기 욕심을 따라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준행하는 사역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도 역시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행1:4을 찾아서 읽어 주십시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여기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바로 성령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바로 나가서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사역의 현장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사역에 테크닉만을 너무 훈련하면 안됩니다. 물론 우리는 좀더 좋은 방법을 계속 계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테크닉으로 끝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말씀 사역, 봉사 사역, 주님 나라를 위한 사역에는 성령의 권능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사역에 현장에 성령의 능력을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이 선포되고 봉사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2.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예언의 성취입니다.

사9:1-2을 같이 찾아서 읽어 봅시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하셨더니 후에는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제 누가 마4:12-16을 찾아서 읽어 주십시오.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이 갈릴리 지경으로 주님이 가신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 된 것이라고 마태는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그곳에서 그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하면서 진술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흑암에 앉은 백성들에게 큰 빛이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은 세상의 빛이셨습니다. 그들에게 회당이 있었습니다. 제사의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깊은 흑암 속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책을 읽다가 예수님께서도 성공을 하고 나서 제일 먼저 자기의 고향 갈릴리를 찾아가서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서 갈릴리 지경으로 가셨다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우리 보통 사람들도 고향은 일생을 따라 다니는 사랑의 샘과 같은 곳이라는 것입니다. 슬플 때에도 고향이 그리워지고 기쁜 일이 있어도 고향이 그리워지는 법인데 예수님도 그래서 고향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사역을 보면 우리 주님은 흑암을 찾아다니며 그곳을 밝게 하시는 빛이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제자들은 그야 말로 흑암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빛이신 주님이 찾아오셨을 때 거기 광명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삭개오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아서 마음에 괴로움을 느끼고 살아가는 깊은 흑암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런 삭개오의 집에 주님이 임하셨을 때 그 가정에 큰 광명이 찾아 온 것입니다. 병이 들어 이제 더 이상 고칠 소망이 없던 자들에게 주님이 임하시자 광명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주님의 그 생명의 복음이 가는 곳곳마다 광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두운 사회가 변하고 어두운 가정이 변하고 어두운 역사가 변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역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빛된 우리들이 가는 곳곳마다 어둠에 사로잡힌 영혼들, 흑암에 사로잡힌 자들을 해방시키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갈릴리로 가신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단순히 고향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흑암에 앉은 자들, 사망에 거하는 자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취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그 빛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가만히 주저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말 아래 두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어두운 로마까지도 복음의 빛으로 비추도록 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는 빛입니다. 오늘도 흑암에 사로잡힌 자들이 우리 빛을 기다립니다. 사망에 거하는 자들이 우리 생명의 빛을 기다립니다. 나는 어떻게 어디서 빛을 비추어야 하는지 찾아서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네가 더 밝니 내가 더 밝니\\\'하고 싸울 시간이 없습니다. 서로 밝기 재면서 싸우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이 복음의 빛을 우리 주위에 밝게 비추는 성도로서의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의 말씀만이 살리는 길입니다.

우리 주님은 배고픈 자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빵을 나누어 주심으로 배부르게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병들어 고통하는 자들을 고쳐 주시기도 했습니다.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살리는 길은 말씀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15절에서도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다\\\'고 하십니다. 빵을 먹고 한 번 배불렀다고 다시 빵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육신적으로 병이 들었다가 고침을 받아도 다시 죽을 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리이까?\\\'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먼저 영적 거식증에 걸리지 말아야 합니다.
카렌 카펜더는 거식증으로 죽었습니다. 거식증이라는 것은 음식과 식사에 대해 정서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혐오스러워 함으로 극도로 쇠약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받는 것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늘 말씀에 대한 갈급함과 사모함을 가지고 말씀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흑암에 앉은 자들을 살리는 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 들어가셔도 역시 말씀을 펴서 읽으시고 가르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가는 곳곳마다 이루어진 일도 역시 말씀 선포였습니다.

누가는 15절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을 가르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에도 선교사들이 먼저 들어오기 전에 성경이 먼저 들어왔다는 것을 교회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역사를 행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무장하도록 이번 여름을 보내시고, 그 무장된 말씀으로 어두움을 물리치고 새 역사를 이루어내는 복음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 론

다같이 기도
예수님의 사역은 성령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특징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기독교를 외적으로 보면, 말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사역에 현장에 성령의 능력을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이 선포되고 봉사하는 은혜가 있도록 기도
\\\'네가 더 밝니 내가 더 밝니\\\'하고 싸우는 것 아니라,
이 복음의 빛을 우리 주위에 밝게 비추는 성도로서의 삶이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말씀으로 나가는 성도들이 되도록 다같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