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가정 막6:30-44 성령강림주일
오늘 본문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입니다. 이 기적이 일어난 장소는 빈들이었습니다(35절). 31절, 32절에는 그곳을 ‘한적한 곳’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서는 그곳이 벳새다였다고 말합니다. 그 당시 벳새다라는 지명이 갈릴리 호수 주변에 두 곳이 있었습니다. 한 곳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벌어진 곳으로서 갈릴리 호수의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 사람이 살지 않는 들판이었습니다. 다른 한 곳은 가버나움 남쪽에 있는 어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 들녘으로 가신 것은 제자들과 함께 잠시 휴식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31절을 보세요.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모여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식사하실 겨를도 없이 바쁘게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수종 들었던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사도들은 조금 전에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왔기 때문에 쉬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사도들은 사람들을 피하여 배를 타고 조용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33절을 보면 그때 사람들이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를 말씀합니다. 모든 고을에서 예수님을 보고자 달려 나왔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든 것은 예수님의 관한 소문과 사도들의 전도사역 때문이었습니다. 이날 아침에 예수님은 사도들을 갈릴리 주변의 마을로 파송하셨습니다. 사도들은 둘씩 짝을 지어 여러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치며 귀신들을 쫓아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꼭 같이 했습니다. 놀라운 일들을 목격한 사람들은 마을마다 몰려나와 사도들의 뒤를 따랐습니다. 사도들의 선생이신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쉬게 하려고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가로질러 건너편 벳새다로 갔습니다. 어느 성경학자는 그 뱃길이 약 6킬로미터는 되었을 거라고 합니다. 뒤따르던 사람들은 호수 주위를 돌아 벳새다까지 도보로 좇아왔습니다. 그 거리가 약 16킬로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빨리 걸어도 세 시간은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의 수가 남자 장정만 헤아려도 5천명은 되었습니다.
몰려오는 무리들을 보고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휴식을 보류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여러 가지 말씀으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병자들도 고치셨을 것입니다. 그리하셨던 이유는 모여든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본문은 밝히고 있습니다. 34절입니다.
이제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녁식사 때가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은 모여든 군중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남은 시간을 휴식하고 싶으셨습니다. 무리들로 하여금 푸른 잔디에 질서 정연하게 앉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작은 도시락을 받아 들고서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떡과 생선을 나누어주기 시작했습니다. 나누어줘도 나누어줘도 떡과 생선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빈들에 풍요로운 식탁이 여기저기에 배설된 것입니다. 물론 산해진미는 아니었습니다. 모여든 무리들이 어제도 먹었던 보리떡과 생선이었습니다. 별난 음식은 아니었지만 모두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일생에 가장 추억으로 남을 식사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기사가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로 하여금 두고두고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식사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그 때가 유월절이 가까운 때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계절은 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기후가 좋은 때였습니다. 아직 해가 남아 저녁식사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저녁식사를 배설하셨습니다. 평화로운 들녘에서 기대하지도 않은 잔치가 벌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푸른 잔디 위에 50명씩 100명씩 모여 즐겁게 식사하는 광경을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그 광경이 바로 하나님이 불러 모으신 새로운 가족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1.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는 어떻게 형성 됩니까?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는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자들로 형성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은 자기를 찾아온 큰 무리들을 영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 같이 불쌍한 자들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는 뜻입니다. 그 가운데는 병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숫자에도 끼지 못하는 어린아이들과 여자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 모두를 예수님은 영접하셨고 먹이셨습니다. 그들의 영혼과 육신을 치료하시고 그들을 만족케 하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하늘의 축복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아주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조건은 단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로 나아오는 자들을 누구든지 기쁘게 영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33절에서는 무리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달려왔다고 합니다. 먼 거리를 잰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그것 한 가지가 그들의 목표였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는 데에 돈이 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식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만나는 데 무슨 자격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예수님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 하나면 되었습니다.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가 계신 곳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그들은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를 찾는 자들을 만나주십니다. 이러한 마음 상태를 요한 사도는 ‘영접한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예수 그리스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한다는 것은 기쁨으로 환영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무력자임을 고백하는 것과 동시에 철저히 주님을 의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만을 의뢰하는 자를 하나님은 자기 자녀로 삼으시고 하늘의 모든 은혜로 채우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강림절을 맞아 성찬식을 거행할 것입니다. 누가 이 성찬을 받아 먹을 수 있습니까? 주의 자녀들입니다. 성찬자리는 주께서 자기의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은총의 식탁입니다. 누가 하나님 가정의 식구들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입니다. 오늘도 겸손히 주 앞에 나와서 은혜를 간구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이 거룩한 식탁에 앉게 하시고 만족한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주께서 베푸신 이 성찬에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참여하십시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에 속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은 어떻게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가 견고하게 세워지는지를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돋보이는 것은 예수님께 드려진 작은 희생과 헌신을 예수님께서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귀하게 보셨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이것은 한 어린아이의 도시락이었습니다. 자기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린 이 아이의 작은 희생과 헌신이 모든 사람들을 배부르게 했습니다. 한 아이의 작은 희생과 헌신이 모여든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이로써 그 빈들에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전에 한 번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바로 내 어머니요 내 형제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새 가정의 일원이 된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거창한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의 눈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작은 헌신이며 숨은 희생이며 조그마한 사랑의 실천일 때가 많음을 오늘 본문은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에는 어린아이조차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사기를 북돋아줍니다. 우리 각자가 이 어린아이처럼 이웃들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조그만 것을 나눌 때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는 견실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성찬자리에 함께 앉은 하나님의 한 식구들에게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나누겠다고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작은 희생과 사랑이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를 견실하게 세우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작은 섬김을 주께서 귀히 보시고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3. 오늘 본문은 새 가족 공동체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줍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가 누리는 축복을 선한 목자가 거느리는 양 떼의 행복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양의 행복은 전적으로 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양에게 목자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삯군 목자이면 그 양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리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선한 목자를 둔 양은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한 목자가 양의 모든 생활을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시편 23편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신 자의 행복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양들에게 베푸시는 행복은 모든 인생이 바라는 총체적인 축복입니다. l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는(충족한) 축복 l (2절)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만족과 안식의 축복 l (3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새롭게 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함을 받는 축복 l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임마누엘이신 주님의 동행과 보호의 축복 l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역전과 결실의 축복 l (6절)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견인의 은혜와 최종 승리의 축복 여러분은 주님을 목자로 모셨습니까? 그러면 안심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생활을 주께서 책임지십니다. 마침내 여러분은 소망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마가복음 본문은 개인의 행복보다는 공동체의 행복을 더 강조합니다. 전에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 제 갈 길로 가던 양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 선한 목자에게로 모여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오십씩 백씩 떼를 지어 주께서 주신 식사를 즐겼습니다. 물론 그 한 끼의 저녁식사로 그들의 생활 형편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때 그들 마음에는 하늘의 평화가 가득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유와 질서가 있었습니다. 사랑과 풍성한 나눔과 소박한 만족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차별도 없었습니다. 시기나 비방이나 분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거기에 예수님이 계셨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모두 한 마음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가족 공동체가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은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강력한 상징입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새 가족 공동체 안에는 자유와 사랑과 평화와 만족이 있습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됩니다. 인종이나 국적이나 혈통을 넘어서 하나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서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교회요 하나님 나라의 실체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한 자리에 앉아서 예배 드리고 또 이어서 성찬을 나누면서 다시 확인해야 할 사실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는 천국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완성될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를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곳이 교회이며 성찬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주시는 성찬은 축복입니다.
성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자기를 믿는 자들과 교회 공동체 안에 자신의 생명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드러내시고 싶으셨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그 기적의 참된 의미를 밝히셨는데 그것이 바로 ‘생명의 떡’ 설교입니다. ‘생명의 떡’ 설교는 우리가 곧 거행할 성찬예식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요 6:53-58을 찾아보십시다! 주께서 말씀하신 ‘생명의 떡’ 설교의 결론 부분입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와 연결하면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의 생존과 성장은 예수님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생명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는 생존하고 성장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생명은 두 가지 사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1) 유월절에 있었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자리에 대신 죽으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우리 위해 내어놓으신 사건입니다. 2)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의 강림입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에게 성령을 부으신 사건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신 영입니다. 바로 그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인 교회 안에 거하십니다. 거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생동하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우리를 살게 하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교회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생동하게 하는 자신의 생명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생명의 성령은 결국 온 세상을 회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성찬을 통해 확인해야 할 사실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오늘도 공급하셔서 우리로 생동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생명은 다름 아닌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각 개인 뿐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인 교회 안에 거하셔서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아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은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을 강같이 흐르게 하시는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자기를 찾는 자들의 심령 안에, 그리고 믿음으로 성찬을 받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 안에 자신의 생명으로 배부르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부활의 영이신 성령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분명합니다. 신실하신 주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된 소망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새롭게 회복된 모든 만물이 주를 찬송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배설하신 식탁에 앉게 될 것입니다. 그 식탁에서 우리는 온전한 가족 공동체의 친교를 즐길 것입니다. 그 식탁의 교제는 우리의 상상과 기대를 훨씬 초월할 것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우셔서 우리들에게 그때의 영광스러운 하늘 식탁의 교제를 지금 여기서 미리 맛보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교제이며 지금 거행하고자 하는 성찬입니다.
이 성찬은 주께서 벳새다 들녘에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설하신 풍성한 식탁의 재현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그날에 베푸실 온전한 하늘 식탁을 미리 맛보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이 식탁을 베풀어주신 주님께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성찬을 통해 주께서 약속하신 하늘의 식탁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의 온전한 친교를 즐길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서울중앙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의 교제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의 교제를 즐기는 자는 반드시 그날에 더 온전한 하늘 식탁에 앉게 될 것입니다. 주의 성찬을 받는 하나님의 새 가족 공동체인 서울중앙교회 모든 식구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끝) 찬송 284장, 44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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