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악령 성령강림주일 막5:1-15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이 세상은 때때로 우리 인간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집안에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계속해서 그런 일이 연이어 일어납니다. 그러한 때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집터가 나빠서 그렇다.” 혹은 “묘지를 잘 못써서 그렇다.”고 합니다. 사실, 사람이 자살하여 죽은 집은 계속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느 분은 뜻밖에 횡사한 사람의 장례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중에 직사를 했는데 나중에 보니 가슴이 퍼렇게 멍들어 살을 맞았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있음으로 우리는 불안하기 짝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 세상에는 마귀란 악한 영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마귀를 공중 권세 잡은 왕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엡2:1-2 “그 때에 너희기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했습니다. 여기 ‘공중’이라고 번역된 말은 본래 문자 상으로 우리가 숨 쉬는 공기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더 깊이 연구해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조직의 사상 형태나 세상의 환경을 의미합니다.
즉, 공중의 권세자라는 말은 세상 조직의 생각을 지배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사상과 문화, 풍속과 향락 등 모든 것을, 사실상 마귀와 그 졸개 귀신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악한 영들이 끝없이 인간들을 위협하고 고통 가운데 몰아넣어서 자기를 섬기게 하고 죄를 짓게 만들고 그 죄의 사슬로 결국 자기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동시에 성경은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을 믿고 의지할 때에 악한 영을 이길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악한 영인 마귀는 무엇이고 성령님을 어떠한 분이십니까? 1. 먼저 마귀의 본체는 무엇이고 무슨 악한 일을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배우고자 합니다. 본문은 귀신들린 사람과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가를 극적으로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귀신 들렸던 사람이 주께로 돌아와 주님을 따르게 되었을 때, 그의 사람됨이 어떻게 변하였는가를 본문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귀신들린 사람의 모습을 통해 악령의 특성을 네 가지로 살펴봅시다.
(1)악령은 인간들로 하여금 더러운 삶을 살게 만듭니다. 2절과 8절에 ‘더러운 귀신’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 ‘더럽다’는 단어는 단순히 위생이나 청결상태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에서는 ‘수치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이란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고 수치스럽게 하는 귀신’이라는 의미입니다. 동일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누가복음 기사는, 이 사람이 귀신에 사로잡혔을 때 ‘옷을 벗고 다녔다’고 언급합니다.
악령은 인간이 가장 부끄러운 모습까지 노출하면서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귀신 들린 사람들을 보십시오. 너무나 더럽습니다. 어느 때는 벌거벗고 다니면서 온갖 추한 모습을 보입니다. 동시에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 중에 겉으로 멀쩡해 보이지만, 그들의 삶은 온갖 더러운 일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거짓말과 사기, 음란과 살인을 저지릅니다.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이 그런 일을 저지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2)악령은 사람을 끊임없이 방황하게 합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집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는 일정한 주거지가 없었습니다. 그는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삶의 자리가 없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악령의 사역을 연구해 보면, 악령은 언제나 자리를 이탈하게 하는 영(靈)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본래 천사장이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거절하고 사4:14에 보면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고 했을 때 마귀로 변했습니다.
마귀와 함께 타락한 천사들이 귀신들입니다. 마귀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언제나 단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귀신들, 악령들은 언제나 복수로 표현됩니다. 한국의 어떤 목사님은 믿지 않는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한국의 기복 사상이나 샤머니즘에 영향을 받은 귀 신론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주장입니다. 성경에서는 불신자와 귀신의 정체를 일치시킨 사례가 한 번도 없습니다.
성경은 천사들과 귀신들의 존재를 함께 언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삶의 자리를 이탈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악령의 중요한 역사입니다. 악령의 포로가 된 거라사인은 그가 있어야 할 삶의 자리를 이탈했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의 책임의 자리를 버리고 정처 없이 방황했습니다. 인간들은 때로 삶의 목표를 상실하고 정처 없이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분은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여행을 떠납니다. 가출도 하고 노숙자도 됩니다. 어느 때는 어느 교회 소속 되지 않은 채 신앙생활을 하고 싶고, 더 나가서는 하나님을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여, 그러한 마음을 주는 것은, 그 배후에는 언제나 악령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심각할 정도로 악령에게 사로잡힌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신자들도 악령의 공격 대상이 됨으로 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고 상당한 괴롭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언제나 깨어서 근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악령은 사람을 파괴합니다. 본문 5절은 보십시오.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고 했습니다. 악령이 인간을 파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악령은 자신의 포로가 된 사람들을 파괴합니다. 악령은 처음부터 누군가를 파괴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처럼 악령은 뛰어난 거짓말쟁임을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악령은 깡패와 같습니다. 자기를 섬기기만 하면 특별히 보호해주겠다고 거짓말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바치면 당분간은 보호하는 척 합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다가 말을 안 들으면 말할 수 없이 괴롭힙니다. 마침내 모든 것을 뺏어갈 때까지 그런 파괴적인 일을 계속합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마침내 망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악령은 거짓말의 아버지입니다. 우리에게 거짓말하게 하고 실수를 저지르게 하고 부정직하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배후에는 악령의 역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악령은 거짓말이라는 무기를 들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 못지않은 큰 영광을 약속합니다. 심지어는 금식하고 계셨던 예수님에게도 와서 “나에게 절하면 천하만국의 모든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고 장담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하와에게 와서 “만약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고 할 때 하와는 그 거짓말에 속아서 그 말에 순종함으로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악령의 포로가 되면 악령이 우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악령의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삼상16:14에 보면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을 번뇌케 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사울 왕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위 다윗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고, 다윗을 잡으려고 전국 각지로 혈안이 되어 찾았습니다. 결국 자기를 파괴하고 학대하다가 파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배후에도 악령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4)악령은 깃들 곳을 찾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시자 군대 귀은 벌벌 떨면서 “우리를 돼지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허락하시자, 귀신들은 주변에 있던 돼지 이 천 마리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이는 귀신들도 깃들 곳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항상 정신을 차리어야 합니다. 공연히 한참 무당이 굿을 하는 곳에 멍하니 넋을 잃고 보다가 잘못하면 무당에게 쫓긴 귀신들이 여러분 심령 속에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또한 재미삼아 점집에 가서 사주나 관상을 보지 마십시오. 귀신들이 그런 틈을 이용해서 여러분 속에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정초 때 시골집에 다니러 갔다가 유명한 점쟁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가서 장난삼아 점을 처 보았는데 “당신은 50세부터 길이 열린다.”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이상하게 기도도 안 되고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안 되고 자꾸 불안하고 초조해지기만 하더랍니다.
악령은 더러운 영입니다. 인간을 부끄럽게 하는 영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방황하게 하는 영이고 인간을 파괴하는 영입니다. 예수께서 악령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을 때 악령은 “군대”라고 했습니다. 원문에서는 ‘레기온’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본래 삼천 명, 내지 육천 명으로 편성되어 있는 군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처럼 악령은 숫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별별 귀신이 다 있습니다.
육천 명 쯤 되는 악령이 한 사람 속으로 들어가 역사했으니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극단적인 상태가 되어 돌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며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에게 귀신의 수가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가에 따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지금도 마귀는 공중 권세를 잡고 수많은 귀신들을 사람들에게 보내어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줄 아시고 깨어 기도하고 근신하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그러면 성령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귀신들려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앞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서 거라사인이 변화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과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의 차이가 얼마나 큰 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거라사인에게서 악령이 나가고 성령이 거하게 되었을 때에 어떠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변화된 이 사람의 모습에서 성령의 특성 네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1)성령은 사람을 깨끗케 하고 거룩하게 합니다. 15절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혼미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고 했습니다. 귀신들이 떠나자마자 이 사람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졌습니다. 악령이 이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고 더럽혔으나 주께서 역사하시어 거룩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2)성령은 사람을 안정시킵니다. 성령은 방황을 중단시키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하십니다. 귀신 들렸던 자가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모습을 보십시오. 전에는 무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던 그였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그를 변화시켜 비로소 자기의 삶의 자리를 찾게 했습니다. 은혜를 바로 받은 사람은 자기 책임을 다하려고 힘씁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여기저기 떠다니는 사람은 온전한 크리스챤이 못됩니다. 이단들을 보십시오. 가정도, 직장도 다 무시하고 있습니다.
(3)성령은 사람을 세워 갑니다. 자기를 파괴하던 사람이 이제 자기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주님을 만났을 때 진정한 의미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온전한 인격 회복은 주님을 만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4)성령은 사람을 참된 삶을 살게 합니다. 18절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온전하게 된 이 사람은 주님과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주님을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그는 단순히 어떤 종교 지식을 갖추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삶, 주님을 따르는 삶을 열망합니다.
성령은 거룩하게 하는 영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방황하는 발걸음을 중단시키고 있어야 할 삶의 자리에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성실히 살도록 힘을 공급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인격을 회복시키고 진정한 삶을 건설하게 합니다. 거라사인은 주님과 함께 있는 삶을 열망합니다. 악령에 사로잡혔을 때와 정반대의 삶을 삽니다. 더 이상 악령이 그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3.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령 충만 받습니까? 오순절날 제자들이 성령 충만 받은 모습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1)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행1:4-5에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과 120문도는 그 약속을 붙잡고 성령 충만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 기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전혀 기도에 힘쓸 때에 오순절날 성령 충만을 받았던 것입니다.
(2)철저한 회개를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자 예수님과 함께 했던 3년의 날들을 돌아보면서 저들은 말할 수 없는 후회와 부끄러움이 그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기 시작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온갖 귀한 말씀을 들었고 가지가지 기적을 체험하면서 은혜를 받았으면서 예수님이 같이 기도하자, 같이 고난에 동참하자고 하실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다 의심자요, 비겁자요,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가슴을 치면서 너나없이 회개할 때에 성령 충만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강하게 회개한 사람이 베드로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베드로는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음에도 결국 조그마한 계집종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너무나 부끄러워 가슴을 치면서 회개할 때에 가장 큰 은혜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행2:38에서 설교하면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여, 성령 충만 받기를 원하십니까?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3)다른 보혜사를 마음의 주인으로 모실 때 성령 충만 받습니다. 제자들은 3년 동안 눈에 보이는 예수님만 의지했습니다. 즉 겉으로만 예수님을 모시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시자, 저들은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보혜사로 보내시는 성령을 갈급하게 사모하면서 그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기로 결단했습니다. 그 때에 성령이 그들 마음에 충만히 임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내 속에 충만히 거하도록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어느 순간 우리 속에 충만히 거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 서적을 저술한 홀 린드세이는 수년 동안 열심히 믿고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했으나 아무 뜨거움이 없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너무나 안타까워서 기도하는 중에 그의 마음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너는 내게 모두를 맡기겠느냐? 너의 생명도, 너의 계획도 다 맡기겠느냐?” 그 순간 “오, 주여, 이 몸을 주의 것으로 쓰소서. 이 생명도 바치겠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보십시오. 그 때에 얼마나 뜨거워지는지요. 그는 그때부터 완전히 변화를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여, 이 마지막 때에 마귀와 악한 귀신들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갖은 술책을 다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 받지 않고는 이 악령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 받으면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마귀와 그 졸개 귀신들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성령 충만 받기 전에는 제자들은 어떠한 귀신들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충만 받은 후에는 가는 곳마다 악령들이 도망쳤습니다.
행19:11-12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이 성령 충만하면 놀라운 능력을 나타낼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눅10:19-20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밝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여, 이 놀라운 무기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가 악령들에게 눌려 지낸다면 얼마나 한심한 그리스도인들이겠습니까? 여러분들이여, 성령 충만 받으십시오. 그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령들을 향해 강하게 떠날 것을 명하십시오. 그러면 혼비백산 도망칩니다. 더 나가서는 성령 충만 받을 때에 성령께서 우리의 삶도 온전해 질 뿐 아니라 승리와 성공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유명한 능력의 종인 해긴스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가 잘 아는 사업가에 대한 간증이었습니다. 그 사업가는 텍사스주 달라스시에서 자랐는데 그의 어린 시절에 집안이 얼마나 가난했던지, 14세가 될 때까지 신발을 신어보지 못했고 학교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중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에는 부자였습니다. 그는 학교 공부는 많이 못했어도 하나님 말씀은 열심히 공부했고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그 후 그는 성령의 인도로 사업이 잘 되어서 1930년에는 백만장자가 되고 1940년에 이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백만장자라면 큰 부자였습니다. 그는 새로운 사업에 투자해서 한번도 손해 본 적이 없었고 새로 계획한 일이 실패로 돌아간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에게 찾아와 “어떻게 하여 사업이 날로 번창하게 되었습니까?”고 그 방법을 묻자 그는 이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 방 옆에 기도실을 따로 만들어 놓고 중대한 투자를 할 때마다 그 기도실에 들어가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내적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 속에 예감이나 직감이나 확신이나 평안과 소원을 통해 말씀해 주시면 나는 그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내게 새로운 투자를 시도하라고 건의하면 나는 그 안건을 가지고 기도실로 들어갑니다. 인간의 이성적인 것, 인간의 경험을 젖혀 놓고 ‘하나님이여 인도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여 직감이나 예감이 좋지 않거나 마음이 평안하지 않고 확신이 없으면 인간적인 생각으로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투자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반면, 인간의 생각이나 경험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는 일이지만 기도실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한 결과 잘 될 것 같은 예감이나 직감이 오고 마음에 확신이 오며 평안하고 소원이 뜨겁게 일어나면 주위의 사람이 극구반대해도 투자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기도하며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에 내가 손대는 일마다 성공하고 실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가 영육 간에 승리적인 삶을 사는 방법은 성령 충만 받는 것이니, 믿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마한 약속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되 철저한 회개와 불타는 갈망으로 기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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