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힘입어

성령을 힘입어 /막3:20-30

성령을 힘입어
막3:20-30





성령은 신앙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령으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게로 오지 아니할 것이다(요한복음 16:7).\\\"

주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성령을 내려주셨습니다. \\\"마태복음 3:16절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성령으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 충만을 받으라(에베소서 5:18)\\\"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먼저 성령으로 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일을 하기 전에, 봉사를 하기 전에, 사역을 하기 전에 먼저 성령으로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신앙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신앙의 인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성령의 인도를 받은 자와 받지 않은 자가 나타나있습니다. 이 둘은 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과 받지 않은 것은 엄청난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바리새인들 - 성령의 인도가 없는 자들

먼저 바리새인들을 봅시다. 그들은 진정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였지만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미친자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을 귀신과 같은 편으로 만들었습니다. 22절 말씀 봅시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하였습니다.

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이렇게 보았을까요? 도대체 예수님의 무슨 사건을 보았길레 예수님을 미친 사람 취급합니까? 이 사건을 알기 위해서는 마태복음으로 돌아가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오늘 본문과 동일한 내용과 그 내용을 말하는 사건이 마태복음 12장 22절 이하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거기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를 치유해주셨습니다. 이 자는 귀신들려 벙어리 되고 눈 먼자였습니다. 얼마나 불쌍한 자입니까? 이 사람은 이중고 삼중고로 시달리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불쌍히 여겨 치료해주셨습니다. 이 사람이 눈을 뜨게 되고 입을 열어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감탄해서 말했습니다.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여기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다윗의 자손은 구약 예언자들의 말대로 모든 질곡과 병과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참된 메시아였습니다. 장님이 눈을 뜨며,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저는 자가 걸으며 황무지가 변하여 장미꽃을 피는 낙원으로 만드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그런 모습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눈먼자가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귀신이 나가서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고 \\\"이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외친 것입니다. 메시아다, 하나님이시다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대로 보지를 않았습니다. 이 기적을 인정하고 싶지를 않았습니다.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억지가 오늘 본문 22절 말씀입니다. \\\"예수가 바알세불이 들렸다고 하며 또 그가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지만 예수님을 귀신의 친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억지를 부린 것입니다.

억지 부림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세상의 일로 바꾸는 것은 성령의 인도가 아닙니다. 때로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도 보면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이야기만 하면 화를 냅니다. 막 교회를 비난합니다. 교회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주장을 가지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자존심 때문에, 자기의 편견 때문에 억지를 부립니다.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속으로는 받아들이지만 겉으로 거부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기적을 베푼 것이 하나님의 능력인줄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억지를 부리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습니다. 성령이 인도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억지를 부리지 말아라. 어찌 사탄이 사탄을 쫓아 낼 수 있느냐!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 진다.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마다 서지 못한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함은 황폐한 것입니다. 이들은 돌짝 밭과 같고 광야의 가시덤불과 같습니다. 거친 인생이요, 억지 인생이요, 따뜻함, 순종함 이해함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능력도 없습니다. 환상도 없고 비전도 없습니다. 그냥 뱀의 눈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남을 괴롭힐까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분명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자들과 다릅니다. 모습이 다르고 내용이 다르고 형태가 다르고 마음이 다릅니다. 다 다릅니다. 하늘과 땅이 차이나는 만큼 다릅니다. 어떻게 가른가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1.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은 귀신을 좇아 내는 능력을 갖습니다.

오늘 29절에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성령을 훼방하지 말아라 하였습니다. 왜 성령이 하시는 일을 훼방하느냐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귀신을 쫓아냈는데 왜 귀신이 쫓아낸다고 하느냐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은 분명 귀신을 쫓아낼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성령이 귀신을 쫓아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은 악령을 이길 수 있습니다. 더러운 생각, 잔인한 생각, 부정적인 생각, 사탄이 일으키는 모든 일들과 생각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에 나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때에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배가 고픈 예수님께 돌이 떡이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면 다치지 않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자기에게 절하면 세상 영화를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마귀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성경에 보면 창세기 때부터 사탄이 나타나서 계시록까지 사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마귀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넘어트리고 유혹을 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별의 별 방법을 다 사용합니다. 악령들은 우리에게 질병을 줍니다. 우리를 절망과 실패의 구렁텅이에 빠트립니다. 우리에게 더러운 것을 줍니다. 괴상한 환상과 아주 질퍽한 것들을 줍니다. 우리를 현란하게 만들고, 어지럽게 만듭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힘을 주어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인간의 본능이다고 합니다. 어떤 자들은 심리학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자들은 초능력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악령의 장난입니다.

도대체 이 악령을 어떻게 좇아낼 수 있습니까? 싸우고 싶지 않은데 자꾸 악한 마음이 생깁니다. 화를 내고 싶지 않은데 자꾸 분노가 생깁니다. 술 먹고 싶지 않은데 자꾸 술을 먹게 됩니다. 담배를 끊어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끊을 수가 없습니다. 안 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더러운 생각이 끈적거리며 따라붙습니다.

어떻게 이 악령들을 쫓아냅니까? 단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셔야 합니다. 성령이 들어와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마치 빛이 임하면 어두움이 물러가듯이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면 모든 악한 영들은 넘어집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귀신들이 벌벌 떨면서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는데 귀신들이 스스로 놀라며 떠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가시는 곳은 창녀가 성녀로, 병든자가 건강한 자로, 더러운 죄인이 새 사람으로 변하였습니다. 귀신들이 가지고 왔던 모든 질병, 불안, 불쾌감, 거짓말, 분노, 미움, 실패, 열등감, 이런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내 안에 뗄 수 없는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왜 밤마다 무섭고 두렵습니까? 왜 우리 마음속에 음란한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것입니까? 왜 더러운 탐욕이, 무서운 시기심이, 분노가, 질투가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까? 예수를 좀더 잘 믿고 싶은데 그것이 잘 안됩니다.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할 능력이 안됩니다. 전도하고 싶은데 힘이 없습니다.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더러운 악령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비판하고 끊임없이 열등감에 빠집니다. 자기를 미워합니다. 인간관계를 미워합니다. 자기의 상황과 존재를 거부합니다. 이것은 악한 영이 우리를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있습니다. 성령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있다 할지라도 그 성령님이 우리들 안에서 지배하고 움직이고 나를 통제하고 충만하게 역사하지 않는다면 나는 마귀에게 순간순간 당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져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성령충만할까요? 성령을 의지하십시오. 말씀과 기도를 사모하십시오. 말씀과 기도의 훈련을 받으십시오. 성령충만을 구하십시오. 그럴 때 성령으로 충만하며 모든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2.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안과 밖이 같습니다.

성령으로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안과 밖이 같습니다. 생각과 행동이 같습니다. 말과 행동이 같고 마음과 생각이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이중성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중성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이중성을 성경은 외식이라고 표현합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생각과 행동이 다르고 마음과 표현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였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도다\\\"(마23:25). 오늘 29절 말씀에도 \\\"무릇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하셨습니다. 이중성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를 계속 거절하는 자들은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하는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하나님을 거룩히 섬기는 척하였지만 정작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거절하였습니다. 겉으로는 훌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안은 다 썩었습니다. 안과 밖이 다른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받는 충격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쓰신 인물들의 대부분은 안과 밖이 같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준수한 소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었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밖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다윗을 시기하고 교만하여 사무엘을 버리고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사울의 생애는 패망으로 달린 생애였습니다.

다윗의 아들 가운데 압살롬도 그렇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흠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삼하14:25)고 압살롬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는 자기 누이를 범한 암논에 대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그는 외모에는 흠이 없었지만 내면 세계는 흠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압살롬은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비해 내면은 무덤과 같았습니다. 안과 밖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외모가 대단한 분은 아니셨습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에 대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체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3:2)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내면은 아름다웠습니다. 예수님 안에 평강, 기쁨, 온유, 긍휼, 사랑이 가득하셨습니다. 입을 열면 은혜로운 말씀이 넘쳤습니다. 예수님은 사생활과 공생활이 일치 하셨습니다. 비록 외모는 화려하지 않으셨지만 내면은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셨습니다. 내면과 외면의 삶에 조화가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선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든지 예수님에게는 항상 선한 것만 나왔습니다. 안과 밖이 같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이 모습으로 사셨습니까? 예수님은 늘 성령의 인도를 사모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분이 바로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안과 밖이 같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안과 밖이 같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예수님에게 깊이 뿌리를 내리십시오. 그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샘물을 마십시오. 성령을 따라가십시오. 인생의 뿌리는 항상 예수님에게 닿게 하십시오. 아무리 가물어도 나무의 뿌리가 물줄기에 닿아있으면 그 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가와도 나무의 뿌리가 물줄기에 닿지 못한 바위 위에 있으면 그 나무는 죽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자꾸 인생의 뿌리를 깊이 내릴 때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를 통하여 안과 밖이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3.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은 열매를 맺습니다.

본문과 동일한 말씀인 마태복음 12:33절에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하였습니다.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었다 좋은 나무에서 나쁜 열매를 맺었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그 나무의 모습대로 열매를 맺는데 선한 곳은 선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무슨 열매를 맺습니까? 성령은 열매를 맺습니다.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진실한 열매를 맺습니다. 복음의 열매를 맺습니다. 구원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절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3절에도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온유과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으니라\\\" 하였습니다. 성령은 생명의 열매, 구원의 열매, 예수님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왕이 봄에 온 국민에게 꽃씨를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꽃씨를 싹을 내어 잘 길러서 가을에 임금님의 행차가 있을 때에 도로 가에 자기가 기른 꽃을 다 갖고 나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집집마다 얼마나 꽃을 아름답게 길렀는지 백일홍도, 채송화도 기르고 장미꽃도 기르고 여러 가지 좋은 꽃을 다 길러 꼴들의 모양이 아름답게 해서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집이 있었습니다. 두 모녀가 살았는데 어머니는 편찮으시고 어린 딸이 일을 해서 어머니 간호를 해드리며 이 꽃씨를 기르는데 모든 정성을 다해서 물을 주고 돌보는데도 싹이 나오지 않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달, 석달이 지나도 싹이 트이지 않아서 이 소녀는 그 화분 그대로 길가에 갖고 나왔습니다. 다른 화분들을 보니까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자기 혼자만이 빈 화분을 갖고 서 있었습니다.

드디어 임금님의 행차가 시작되었습니다. 임금님이 앞으로 지날 갈 때 많은 사람이 자기의 꽃을 보였습니다. 이 꽃을 보십시오. 그러나 임금님의 마음은 보면 볼수록 더 근심과 염려와 괴로움밖에 없습니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소녀의 앞에 와서는 깜짝 놀라더니 그 얼굴이 금방 천사와 같은 얼굴로 변하면서 그 소녀를 들어다가 임금이 타는 마차에 올려 태우고 가는 것입니다. 왕궁에 가서 이 소녀를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소녀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다 몰랐습니다. 임금님이 나누어 준 그 씨는 꽃씨가 아니고 쇠로 된 씨앗이었던 것입니다. 쇳가루를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요령과 기술이 발달했던지 전부 제각기 이 집에서는 어떻게 하나 저 집에서는 어떻게 하나 하면서 그런 꽃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여러분 왕이 찾으시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꽃이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의 물결도 아무 것도 없는 이 소녀의 빈 화분을 당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우리 심령을 더러운 귀신으로 더럽히지 맙시다. 오히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안과 밖이 같은 삶을 사시고, 성령의 열매, 복음의 열매, 전도의 열매, 예수님의 열매를 맺읍시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 받은 사람들은 다 빈 화분들, 즉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자랑할 것도 없고 내 놓을 것도 없지만 성령님을 의지하시고 성령님을 마음속에 담고 성령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따라 살아갈 때 능력있는 삶, 안과 밖이 같은 아름다운 삶, 그리고 언제나 향기롭고 맛있는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