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같은 성령 성령강림절 막1:9-11
비둘기 같은 성령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2년 5월 19일 오늘은 성령 강림주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성령강림이란 부활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을 오순절이라고 하며, 이 날을 세계교회가 성령감림 주일로 지키고 있다. 오순절 절기는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에 하나이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열흘 만에 마가의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이 임했다. 성령임하시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입에서 방언이 터지고 뜨거운 불의 역사가 일어났다. 이날 성령의 강림으로 신약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며, 또한 성령의 역사로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성령을 비둘기처럼 임하셨다고 했다. 성령을 비둘기처럼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경은 비둘기라는 상징을 통해 성령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는 많은 상징들이 있다. 왜 하나님은 진리를 말씀하실 때 상징으로 기록해 놓았을까? 그것은 바로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고,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해도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 진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 곧 모든 사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비유적으로 진리를 설명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도를 더욱 정확하게 분명하게 깨닫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성령은 원형이요, 비둘기는 모형이다.“비둘기 같은 성령”을 통해서 비둘기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비둘기처럼 상징된 성령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겠습니다.
비둘기는 첫째 순결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비둘기는 모형이요, 원형은 성령이다. 비둘기의 특성이 바로 성령의 특성이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면 우리가 비둘기처럼 성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10:16에서 주님이“비둘기처럼 순수하라”고 말씀하셨다. 비둘기를 순결의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다. 동불 중에서 가장 순수한 동물이 비둘기라고 한다. 또한 사람들이 비둘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순수하기 때문이다. 비둘기는 동물 중에서 욕심이 없는 순수한 동물이다. 비둘기는 서로 싸우는 법이 없다. 개나 닭은 먹이를 먹을 때는 부모도 공격을 합니다. 서로가 먹기 위해서 싸웁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그러지 않습니다. 욕심이 없다. 순수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비둘기처럼 순수한 성품으로 변화가 됩니다. 예수님께로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비둘기의 특징 그대로 평화와 순결의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이 양과 비둘기이다.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순결한 동물을 꼽는다면 날아다니는 짐승 중에서는 비둘기이며, 걷는 짐승 중에서는 양이라고 봅니다. 비둘기나 양은 아주 순결합니다.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시면 우리도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순결해야 합니다. 누구나 우리는 과거에 세상의 많은 것들을 사랑했습니다. 세상 것들로 인하여 더럽혀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부터는 우리의 순결을 드릴 수 있는 순결한 신앙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비둘기처럼, 주님처럼, 순결한 삶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결이란 말은 헬=아켈라이오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혼합되지 않은’,‘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또는‘흠잡을 데가 없는’,‘순수하다’는 뜻이다. 성경에는 순결이란 말을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말할 때 사용되고 있다. 구약에서는 이성과의 육체관계가 전혀 없는 순수한 처녀와 부부관계에 대해 순결이란 단어를 씁니다. 다시 말하면 순결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사랑하고 그 분만 생각하고 그 분을 위해서 신앙의 절개, 정절을 지키는 철저한 신앙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이 시대를 보면 교회가 순결성을 상실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들 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그 시대의 교회와 목회자들이 타락하면 사회가 타락하고 망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타락했다면 성도들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시대는 비둘기처럼 순결해야할 순결성이 없어졌다. 타락한 교인들이 너무도 많다. 악해진 교인들이 너무도 많다. 미국에서는 이미 동성연애자들의 군 입대가 합법화 된지가 벌써 오래된 이야기이다. 또한 교회 안에서도 노회, 총회를 통해 동성연애자들에게도 목사 안수를 주자는 의견들이 이미 공공연히 나온지가 오래전 이야기이다. 이는 미국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이는 타락의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육적으로도 순결을 상실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 국가가 육적으로 더럽혀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 지식, 쾌락, 같은 것으로 더럽혀지지 아니한, 깨끗하고, 순수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전.현직 대통령 아들들이 물욕의 눈이 어두워져서 검찰에 불려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도 타락해져 가는 모습들이 처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깨끗한 교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비둘기는 철저한 일부일처제라고 한다. 비둘기는 절대 이혼이란 없다. 마찬가지로 절대 재혼도 없다. 한번 짝을 맺었던 그 짝을 잃어버리면 그 짝을 생각하면서 혼자 산다는 것입니다. 다른 짝을 찾아서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짝이 죽으면 그 시신 옆에서 한동안 떠나지 않고‘구구구구....’하면 계속 운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둘기의 특성과 관련된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아 6:9을 보면“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그리스도와 성도, 또한 부부의 사랑을 이야기 하면서 비둘기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비둘기는 짝이 하나뿐입니다. 철저한 일부일처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예수 그리스도와 약혼한 상태로서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사랑해야지 그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시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 사라지고 있다.
사 38:14에서“나는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라고 했다. 이 미물인 비둘기를 통해서 성도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며 대망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교우 여러분! 우리 한국교회를 비롯해서 전 세계 교회가 순수한 비둘기의 순결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성령을 받았다면 비둘기처럼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철저히 주님의 몸된 교회만을 사랑했습니다. 비둘기처럼 순수한 성령을 받아서 오직 주님만을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 비둘기가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부모에 대한 예의입니다. 조류 연구가들에 의하면 새끼 비둘기를 어미 비둘기와 같이 기를 때 새끼 비둘기는 어미 비둘기가 앉았던 자리에는 앉지 않는다고 한다. 아주 신기한 동물이다. 어미 비둘기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으면 새끼 비둘기는 그 가지 밑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어미 비둘기 위에는 절대 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비둘기의 부모자식간의 관계이지만 영적으로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복음적으로 성도의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비둘기가 순결을 지켰다는 것은 성자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입니다. 신랑 예수와의 관계입니다. 영적으로 비둘기 같은 성령을 받으면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철저히 정립이 된다는 것입니다. 십계명 중 제 3계명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너는 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지 말라. 주는 그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자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아니하리라.”(출20:7)고 했습니다. 언젠가 저가 말씀드렸듯이 십계명 중에서 제 4계명까지는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아버지와의 관계입니다. 너희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하라는 것이다.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부관계가 잘 잘 정립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물론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우리는 유대인들보다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러한가? 그들은 성부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만큼은 그들은 변함이 없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철저히 섬겼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치 말라는 계명을 철저히 지킵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기록하다가‘여호와’란 단어가 나오면 계속 기록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호와란 단어가 나타나면 붓을 놓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여호와란 단어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는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치 말라는 계명이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아무데서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함부로 여호와여! 그럽니다. 가정에서도 자녀들이 아버지를 함부로 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만일 나에게 무슨 죄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죄인이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면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되기 때문에 감히 부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함부로 부르면 하나님께 심판받는 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도나이 하는 단어가 나온 것입니다. 여호와란 말을 쓰지도 못하고 부르지도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부르기는 불러야 되겠는데, 죄인이 함부로 부르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아도나이라는 말, 즉‘주님’이라는 말로 대신하여 부른 것입니다. 이 단어의 모음을 붙이면 여호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그리지 못하게 했다. 하나님을 잘못 그려서 하나님을 헛되이 만들지 않을까 하여 그리지도 못하게 합니다. 또한 그들은 책을 깔고 않는 법이 없다. 만일 책 속에 여호와란 단어가 있어서 그 글씨를 깔고 있으면 큰일 날 것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성자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순결의 문제를 놓고, 회개해야 되며,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경외 성을 놓고 철저히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악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예수를 죽였던 그들이 예수님이 받은 이 비둘기 같은 성령을 마가의 다락방에서 받고는 철저히 회개하였던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비둘기처럼 보혜사 성령을 받은 그들은‘어찌 할꼬’하며 통회자복하며 회개하였던 것입니다. 비둘기는 멀리 보내도 반드시 돌아옵니다. 사60:8을 보면? ‘구름처럼, 비둘기들이 그들의 집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날아오는 이들은 누구인가?’라고 했다. 비둘기는 다시 보금자리로 날아옵니다. 어떤 행사를 함에 있어서도 비둘기를 날려 보내고 합니다만, 그 비둘기들은 하나같이 자기 집으로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비둘기는 회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죄를 지었다할지라도 성령을 받으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돌이킨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연약하기 때문에 세상에 나가면 다시 죄를 짓게 되는 별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비둘기처럼 다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비둘기처럼 성령은 번제물을 상징합니다. 비둘기가 순결성을 상징하는 것은 성자와의 관계요, 비둘기가 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회개를 상징하는 것으로 성부와의 관계입니다. 나아가 비둘기가 번제물이 된다는 것은 성령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비둘기가 구약제사의 제물에 있어서 가장 귀한 번제물이었습니다. 희생의 제물입니다. 비둘기는 다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받으면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비둘기처럼 번제물이 되어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번제물은 불로 태워져야 합니다. 번제물을 태우는 불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성령의 불로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와 육을 태워버리는 것을 말씀합니다. 구약에서는 흠이 있거나 상한 것은 번제물로 드릴수가 없다. 만일 그러한 것을 번제물로 드리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것이나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돼지나 호랑이, 사자 같은 것을 번제물로 드렸다는 말이 없다. 뱀 같은 흉칙한 것을 번제물로 드렸다는 말이 없다. 비둘기처럼 순수한 성령을 받으면 내 육이 다 죽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죽는 것입니다. 내 혈기가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비둘기를 번제물로 드릴 때는 머리를 끊고 목을 끊고 불로 사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육적인 것을 끊고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범죄 한 그대로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받지 않습니다. 죄가 있으면 번제물이 되지 못한다. 비둘기처럼 순수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십니다.
행7:42=“오 너희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짐승을 잡아서 내게 희생 제물로 바친 일이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나에게 제사를 드린 일이 있었느냐? 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이 시대에 가장 신앙적 타락이 있다면 그것은 신약교회가 다시 율법시대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시대를 구분해 보면 구약의 율법시대가 있고, 신약의 복음시대가 있으며, 종말의 환난의 시대가 있다. 삼시대가 있다. 율법시대가 지나고, 그리고 복음시대가 왔으며, 이제 마지막 환난시대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 삼 시대를 삼위의 사역을 중심으로 구분해 보면 구약은 성부께서 주로 사역하는 시대요, 신약은 성자를 통해서 일하시고 마지막 재림 때는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완전히 성화되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마지막 환난시대, 성령이 사역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은 철저히 나 자신이 부서지고, 내가 보이지 않고, 머리가 비틀어지며, 목을 끊는 비둘기와 같이 번제물의 삶을 살지 아니하면 안된다. 건물이 중심이 되고, 제도가 중심이 되어버리면 안됩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 버리면 안 됩니다. 그것은 다시 구약 율법시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일곱 영의 역사가 있습니다. 일곱 영의 역사란 강한 성령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역사가 임하면 남아 있던 우리의 교만을 완전히 제거시켜 줄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다시 구약 교회로 돌아 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약 교회가 성령 받아서 출발했듯이 마지막 때에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일곱 영의 역사입니다. 그 일곱 영의 역사는 우리가 순결을 지키는 것을 가능케 할 것이며, 우리가 번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할렐루야! 신약성경 가운데 위대한 인물들이 나온다.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입니다. 화려한 사람도 아닙니다.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 뵈뵈와 아덴의 디오누시오는 순교의 제물로 조용히 사라진 사람들입니다. 이름도 외우기가 쉽지 않은 이름입니다. 그들은 비둘기처럼 성품이 순수한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순교의 제물로 드려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둘기는 쓸개가 없다고 한다.
흔히 하는 이야기 중에 쓸개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만, 누가 무어라고 해도 화를 내지 아니합니다. 목을 비틀어도, 다리를 부러뜨려서 번제물로 드려도 말없이 죽어가는 비둘기처럼 그러한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쓸개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 있고 괴로운 일이 있을지라도 오직 예수만 생각하며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바로번제물로 드려진 비둘기처럼, 그러한 사람이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 53:7에 /그가 억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여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니, 그가 어린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며, 또 털 깎는 자들 앞의 양이 말없듯이 그가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충만 받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행 2장에서 베드로가 설교를 할 때 저들이‘어찌할꼬’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때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셨으며, 그들이 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어찌할꼬 할 때, 성령을 선물로 주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교회에 나오는 정도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아 성부와의 관계, 성자와의 관계, 성령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비둘기 속에 숨겨진 성령은 우리의 이 모든 것을 회복시켜줍니다. 내 자신이 번제물로 드려질 때, 우리의 심령 속에 비로소 행복이 오는 것이며, 기쁨과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에게 영원한 나라가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한 성령충만을 받아서 이제 곧 다시 오실 주님만을 사모하며, 말씀을 받을 때,‘어찌할꼬’회개하며, 자기 자신을 번제물로 드려지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라나타 오직 예수·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