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사람 (4) 착하게 사는 사람 마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짠맛을 내겠느냐? 그러면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리니,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 15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16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착한 사람이 매력적인가?
착하다는 칭찬을 많이 듣던 때가 우리 모두에게 있었습니다. 어릴 적 추억입니다. 어릴 때 어른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는 착한 아이입니다. 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던 덕담이 있다면 그것은 \'착하게 살아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이런 칭찬은 어색하게 되고 맙니다. 착한 덕목은 어릴적 덕목쯤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유는 어릴적 통용되었던 착함에 대한 원칙이 어른의 삶에서는 전혀 유익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착한데....\' 혹은 \'저렇게 착해 빠져 가지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많을 것입니다. 여기서 착하다는 말은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어른에게 착하다는 칭찬은 왠지 매력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왜 그런가요? 세상이 많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착하기보다는 능력이 우선되고, 과정 보다는 결과가 우선시 되는 가치관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편법과 불법으로라도 큰 결과를 만들면 옳은 것이 되고 많은 무질서한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착하다라는 삶의 특성은 아무 관심을 끌 수가 없습니다.
착하다는 말의 뜻을 알고 있는가?
그런데 우리는 착하다는 것이 무엇인 지 제대로 알기는 하고 있을까요? 착하다는 말과 선하다는 말은 동일한 뜻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로서 착하고 선하다는 말은 도덕적 의미입니다. - 선(善):Goodness/ 아름답고 호감이 가고 선량하다, 덕이 있다. 우수하다 친절하다는 정도의 뜻입니다. 이 조건으로 보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정의는 착함에 대한 소극적인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고 가변적이며 상황에 따라 양면성을 가진 사람에게 적용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한 사람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선하고 착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뿐만아니라 착하다는 말에 대한 오해도 있습니다. 어린아이에 해당하는 말, 또는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얌전히 있는 사람, 남이 가는 데로 말없이 따라가는 사람, 이래도 저래도 저항 없이 순응하는 사람 등으로 이해하여 착한 사람은 힘도 능력도 없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같이 보여지기도 합니다. 간 쓸개 다 빼어주고 사는 사람쯤으로 생각합니다. 때문에 이러한 착함은 매력 없는 품성쯤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착하다는 말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용하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성경적 원칙① - 착한 사람은 없다
착한 사람이 되려면 역설적이게도 착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부터 믿어야 합니다. 아무리 착하다 하여도 같이 살아보면 다릅니다. 남의 집 아내와 남편은 다 착해 보입니다. 그러나 같이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남들은 다 착하다는데 같이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다 착해 보이지만 아이 키워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본디 선한존재가 아니라 죄성을 가진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롬3:10-19 구약성경(시편과 이사야)을 인용하여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혀는 사람을 속인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 찼다.\" \"발은 피를 흘리는 일에 빠르며, 그들의 가는 길에는 파멸과 비참이 있다. 그들은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우리는 율법에 있는 모든 말씀이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말한 것임을 압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착한 사람이 못됩니다. 우리가 흔히 착하다고 하는 말은 상대적인 말입니다. 비교급으로 하는 말입니다. 즉, 더 악한 사람에 비하여 착한 편이라는 말입니다. 덜 악하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죄인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첫 번째 원리는 착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믿음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보면 세상 사람은 몇 사람만 빼고는(?) 다 착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적 진리는 세상에 착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 죄인으로서 비뚤어져 있고, 부서져 있어서 온전하고 반듯한 선행이 나오지 않습니다. 참으로 착한 사람은 \"사람은 착하지 않다\"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성경적 원칙② - 착한 사람은 있다
사람이 착하지 않다 하여 \"막가파\"로 살아야 합니까? 세상이 온통 비뚤어져 있다하여 되는대로 막 살아갑니까? 그건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양심상 그러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아서 그렇지 더 선하고 착해져야 한다는 것 쯤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동의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안 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교육을 많이 받고 책도 잃고 TV도 보고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있으면서 점점 더 악해져갈까요? 그것은 원리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빛을 이웃과 세상에 비추라\" 하는 주님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을 \"착한 행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 착한 행실\"을 보이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착한 행실, 빛과 소금이 있다는 말입니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하는 말씀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을 말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에게는 세상을 비출 빛과 소금이 있습니다. 이 빛과 소금을 사용하면 그것이 착한 행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있는 빛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우리 안에 들어온 생명의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세상의 생명을 공급하는 빛으로 증언하였습니다. 누구나 그 빛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얻는다고 증언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굳게 믿습니다. 나는 착한 존재가 아니지만 유일하게 선하신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면 이제부터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시는 것이므로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빛을 세상에 비출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확신을 가집니다. 나는 착한 구석이 없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의 거룩한 성령으로 인도를 받고 순종할 때 착한 행실이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원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빛이 없지만 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비추십시오. 그리하면 착하고 선한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성경적 원칙③ - 용기를 가져라
착한 사람이 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착한 사람은 힘도 없고 용기도 없으며 우유부단한 사람과 같은 상상입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착한 사람은 아닙니다. 착한 사람은 자신 안에 있는 빛을 세상에 높이 들어 올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등불을 켜서 말 아래나 침상 아래 두는 사람 보았느냐 하십니다. 누구나 등불을 켜면 가장 높은 곳에 두어 온 방을 밝히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리에 등불을 두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착한 행실\'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생명의 빛을 세상에 높이 드는 사람입니다.
생각은 착한 데 용기가 없어 드러내지 못한다면 결과는 착하지 않은 사람이 됩니다. 주님은 \'착한 행실\'을 요구하십니다. 착한 행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라 하십니다. 어둠의 세력 앞에 등불을 높이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한 가운데서도 믿음의 불을 높이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빛은 감추어두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빛은 가만히 있어도 드러납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십시오. 그런데 그 드러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위하여 드러내되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정신을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 사랑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복음의 핵심으로 가르치셨습니다(마22:37-39). 이 둘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가장 큰 이웃사랑은 여러분 안에 보내주신 그리스도의 빛을 이웃들에게 비추는 것입니다. 진리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소금처럼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며 사십시오. 안 믿는 사람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십시오. 영혼을 사랑하고 영혼을 돌보는 데 용기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회피하지 마시고 용기 있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시작하십시오. 그리하면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착한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하여 한 사람도 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자녁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이 특권을 누리고 살 수 있습니다. 비록 여전히 착하지 않은 문제 투성이지만 자신을 십자가에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살 수 있는 길이 여러분에게 열려 있음을 믿으십시오. 이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웃들을 위해 쓰십시오. 여러분이 받은 진리의 빛을 이웃들을 위하여 비추십시오. 진리 안에 담대하여 빛을 나타내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착함은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 하나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이 착한 행실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고, 그로 인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착하게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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