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를 훈련하시는 성령 마4:1-11
마태복음 3장 11~17절은 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사건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1) 하늘 문이 열리고 2)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위에 임했으며 3)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鏶?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후에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이요 하나님의 기뻐하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고 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으로 하여금 시험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훈련조교는 마귀요 훈련교관은 성령이요 훈련장소는 광야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 훈련받는 교과서는 금식과 주림이었습니다.
1) 예수님을 금식시켰습니다.
금식(禁食)이란 말 중에서 금(禁)자는 수풀 림(林)자 밑에 시(示)자를 붙인 것입니다. 이처럼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는 사방이 보이지 않고 오직 볼 수 있는 곳은 하늘뿐입니다.
그리고 식(食)자는 사람 인(人)변에 양순할 양(良)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금식을 통해서 사람이 양순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금식을 한 후 혈기를 부리면 그 사람은 금식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금식은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올바로 이루게 하고 수평적으로는 인간을 양순하게 하고 선량하게 하는 훈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와서 세례를 받은 후, 사람을 만나게 하거나 존경의 박수를 받게 하지 않고, 제일 먼저 금식을 시켰습니다.
2) 예수님을 주리게 하였습니다.
성경은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6절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아모스 선지자가 선포한 것처럼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암 5:24)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죄가 그와 같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6장 1절은 인간의 죄악이 하늘에까지 미쳤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비유하였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목마른 사슴은 사막에서 물 냄새를 맡으면 30리까지 물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사막을 지나가는 사람은 낙타와 함께 사슴을 데리고 갔습니다. 왜냐하면 물이 필요할 때 사슴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영적으로 너무 배가 부른 상태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리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의 조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단히 그리워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경회 장소까지 먹을 것을 머리에 이고 삼십리 길을 걸어갔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좋아서 목사의 설교라면 사족을 못 쓸 때에는 여러분의 일 중에서 되지 않은 일이 어디 있었습니까? 기도하면 전부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때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때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리고 목마른 자,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워하는 자 다시 말해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없을 때에는 무릎이 닳도록, 허리가 부러지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배에 기름이 끼고 목덜미에 살이 오르자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여러분의 상식으로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믿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난밤에 잠을 잘 잔 것을 가리켜서 잠을 달게 잤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심령이 기쁘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고 표현합니다.
또한 마치 그믐밤처럼 우리의 앞길을 지척도 구별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 길의 빛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서 빛이라고 표현합니다.
김일성은 40년 간 남조선은 온통 굶주리고 있다고 악선전을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잘 살게 되었지만 이북은 아주 못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남이 못살기를 원하면 자기가 못살게 되고 남을 미워하면 자기가 미움을 받고 남을 욕하면 자기가 욕을 먹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44절에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으며 마태복음 10장 11~13절에서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분이 나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장 목사님께서 지난주에 설교하시면서 지금 누구든지 얽힌 사람이 있으면 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듣고 난 후 기도가 안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풀기 힘든 문제가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상대편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무조건 용서하고 푸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28절은 가난하고 무식하고 못난 사람이 큰소리칠 때가 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뒤에 처져서 쩔쩔매면서 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보시고, “뒤로 돌아가”하고 말씀하실 때 꼴찌로 가던 사람이 일등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고린도전서 1장 27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린도전서 1장 30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이와 같이 되기 위해서 예수님은 훈련을 받은 후 마지막 테스트를 받으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3~11절은 그 마지막 세 가지 시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째, 첫 번째 시험문제는 돌이 떡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면서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하는 방정식은 무엇입니까? 단양의 시멘트광산에 가서 돌을 캔 후 가루로 만들면 시멘트가 됩니다. 그 시멘트를 팔면 돈이 생깁니다. 그 돈으로 외국에서 쌀을 수입해서 떡을 만들면 돌이 떡이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해야할 일입니까? 만약 이렇게 하면 불합격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떡을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육신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적인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살아야 합니다.
지난번에 어느 지방의 장로님들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그 중에서 교수인 어느 장로님이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장 목사님은 금호제일교회에서 몇 년 동안 목회하고 계십니까?”, “금년까지 35년째 있습니다.”
그러자 “예? 설교 밑천이 안 떨어졌습니까?” 하고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전에는 한 번 사용한 교안(敎案)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작년에 사용한 교안을 금년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전에 이성봉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내 설교를 기록하지도 기억하지도 마세요. 왜냐하면 콩나물에 물을 주면 물이 전부 빠지더라도 콩나물이 자라는 것처럼 여러분이 한 번 들은 말씀은 비록 기억이 안 나더라도 여러분을 영적으로 성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양식이 되고 힘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둘째, 두 번째 시험문제는 거룩한 성에 대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처해야 할 자세에 관한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마 4:5~7)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와 같이 답안을 쓰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마 4:7)
셋째, 세 번째 시험문제는 천하만국의 영광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차지하는 사람이 이단입니다. 예수님이 앉으셔야 할 자리에 앉는 사람이 이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국만국의 영광을 주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마 4:10)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가까이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영향을 받습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선하더라도 술먹는 사람과 일년만 가까이 있으면 술한잔이라도 먹게 됩니다. 여러분이 깡패와 함께 있으면 깡패의 누명을 벗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정직하더라도 도둑과 함께 있으면 도둑의 누명을 벗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1편 1절은 악인의 꾀를 좇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말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일에 여러분은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성도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골프나 낚시나 오락과 함께 있는 사람은 성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욕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20년 전에 텍사스의 달라스에 있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그 교회의 목사는 장로들과 함께 골프를 치고 샤워를 한 다음 맥주집에가서 맥주를 마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타락을 해도 목사만은 타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인이 전부 이혼을 해도 목사만은 이혼을 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연애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하는데 미국 교단에서는 동성연애자에게도 목사안수를 주어야 한다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직만은 그러한 사람에게 주면 안됩니다. 만약 교회에서 거기까지 용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혹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앉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섬김의 대상이요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탄이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나에게 절을 하면 전부 주겠다고 했을 때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섬기는 자 대속자가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하고 마태복음 4장 11절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여러분을 시험할 때마다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선포함으로써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수종드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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