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이끌린 성도의 삶

성령에 이끌린 성도의 삶/마1:11

성령에 이끌린 성도의 삶
마1:11





성경에는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많은 시험과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었기에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하여 고난을 극복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귀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사용하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셨고 그들은 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순간순간 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 유혹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편에 서지 못하도록 하는 유혹들이며 우리들을 멸망시키기 위한 유혹들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그 유혹이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믿음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따르도록 충동하는 것도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창39:7절 이하에 나오는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유혹을 하였지만 그는 그 유혹을 이겼습니다. 즉 보디발 아내의 이성적인 유혹을 그는 이겼던 것입니다. 물론 그 유혹을 이긴 대가가 감옥에 갇히는 아픔이었지만 말입니다. 요셉은 그는 억울하였지만 그 고통을 다 참고 참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셔서 그가 총리대신의 자리에 이르게 되지 않습니까?

삼하19:31절 이하에 보시면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을 갈 때 길르앗 사람 바실래를 비롯한 몇 사람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위하여 많은 음식을 준비해서 다윗에게 나아옵니다.

후일에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이 바실래에게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자고 하였습니다. \\\"네가 나를 공궤하였으니 이제는 내가 너를 공궤할 것이라\\\"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바실래의 대답이 \\\"내 나이 팔십이라 어떻게 음식이 좋고, 나쁨을 분별할 수가 있으며, 어떻게 남자나 여자의 노래 소리를 분별 할 수가 있습니까? 내가 왕에게 신세를 질 수가 없습니다\\\"라고 그가 대답을 합니다.

즉 이 말은 \\\"이제 내가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예루살렘에 다윗과 함께 가면 그에게 주어질 물질과 명예와 권세의 유혹을 그가 물리쳤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렵고도 힘든 결단을 한 바실래를 위하여 다윗은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기를 \\\"저를 대접하여 네 상에서 먹는 자가 되게 하라\\\" 고 하였던 것을 봅니다. 이렇게 유혹을 받았지만 그것을 이겨 승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유혹을 받았지만 멸망을 당한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창3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멸망입니다. 그들은 유혹하는 사탄의 속삭임에 그만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남자인 아담에게는 일하는 고통을, 여자인 하와에게는 해산의 수고를, 땅에는 가시와 풀이 나게 됨으로 인간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수7장에 나오는 물질에 대한 아간의 범죄는 자신뿐만 아니라 온 민족이 고통을 당했고 그를 비롯하여 그의 모든 가족들이 함께 죽임을 당하는 아픔을 겪게 된 것을 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모든 유혹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 유혹들은 우리들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어 보이는 유혹들입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유혹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심으로서 우리에게 승리의 소망과 감격을 주신 귀한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문 1절에 보시면 세례를 받으신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주의해서 보면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가셨다는 것으로 이해 할 수가 있습니다. 또 막1:12절에서는 \\\"성령께서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몰아내셨다\\\"는 말의 뜻은 헬라말로 \\\"에크발레이\\\"라는 말인데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아주 강한 의미로서 \\\"내 쫓다\\\"라는 말입니다.

이 역시 성령께서 강권적인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를 광야로 이끌어 가셨다는 것입니다. 눅4:1절에서는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똑 같은 상황인데 왜! 마가는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 내셨다\\\"라고 기록하고 마태와 누가는 \\\"성령에게 이끌리셨다\\\" 고 기록을 하고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의 강권적인 이끄심에 따른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동시에 마귀의 시험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면 그 일을 감당하기도 전에 먼저 포기부터 합니다. 또 절망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시험에 대하여서도 적극적인 자세로 그것을 이겨내셨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지 않습니까?

또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 시험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있었고 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펼쳐 가시기 위해서 강권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끔씩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훈련시킬 때가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잘 분별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장소가 광야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광야는 사람이 쉽게 살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광야는 아무나 함부로 쉽게 가서 지낼 만한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광야는 낮 기온과 밤 기온에 차이가 너무나도 커서 사람이 쉽게 텐트를 치고 잠을 잘만한 그런 곳도 아니라고 합니다. 전갈을 비롯한 무서운 벌레들과 들짐승들이 살아가는 정말 위험한 곳이 광야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람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그런 버려진 땅이 광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광야에서 성령에 이끌려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는데 그것도 40일을 금식하신 뒤에 말입니다.

정말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용기를 가지십시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십시다. 또 담대함을 가지십시다.

비록 우리들이 살아가는 곳이 이런 엄청난 광야와 같은 땅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은 시121:6절에서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에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비록 우리가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어떤 형편에 있을지라도 승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환경이 좋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환경이 좋다고 다 만족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 중에 에덴 동산만큼 좋은 환경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장 완벽한 환경 가운데 한 곳이 에덴동산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던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유혹을 받고 그만 범죄의 자리에 이르렀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환경이 좋다고 다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소원하는 성공이라는 것도 내가 가진 환경이 좋기 때문에 나는 꼭 성공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믿음 안에서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받으시는 시험은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너무나도 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오늘 나의 삶이 고단하고 힘이 든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포기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을 지내시면서 금식을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0일 동안 금식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로 이렇게 금식할 수가 없습니다. 금식은 나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금식을 하도록 이끄실 때 금식을 하면서 기도를 해야 그것이 올바른 믿음의 자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는 예수님에게 환경도 좋지 않은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면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가지길 원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출34:28절에 보시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 동안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비록 모세의 육신에는 배고픔의 고통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의 영혼은 맑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깨끗하고 거룩한 상태였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10계명이 적힌 두 돌 판을 다시 받게 됩니다.

여러분! 금식은 때때로 우리 영혼에 큰 은혜를 주며 감격을 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40일을 금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말이 40일이지 40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렇기에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내가 살아가는 삶의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찬송가 495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라는 찬송에서는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라고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지금 내가 있는 삶의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만 확신이 있으면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어떤 삶의 형편에 있든지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위대한 사역 뒤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나의 고통과 아픔이 있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고통과 외로움 뒤에 하나님은 그를 아주 귀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세 가지 시험을 받으시는데 첫 번째 시험은 배가 고픈 주님에게 \\\"돌로 떡을 만들어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단 조건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그렇게 하라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것은 너무나도 쉬운 시험이었습니다. 천지와 만물을 만드신 그분께서 어찌 돌맹이를 가지고 떡을 만들 수가 없겠습니까? 이것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혹은 정말 위험한 유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방법으로 그것을 사용하도록 충동하는 무서운 유혹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목회자들에게 이런 유혹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너는 설교도 잘하고 가르치기도 잘 하지 않느냐? 심지어 너는 병 고치는 은사도 있지 않느냐? 또 사람들을 설득하는데도 너는 천부적인 소질이 있지 않느냐? 그러니 기도할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 기도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잘 할 수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기도하느냐?\\\"라는 유혹입니다.

또 자신의 일에 대하여 전문가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유혹도 합니다. \\\"너는 너의 일에 대하여는 전문가이지 않느냐?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따라 올 수 없는 전문가이지 않느냐? 그러니 기도할 필요가 무엇이 있어 기도하지 않고도 너는 얼마든지 잘 할 수가 있어\\\"라는 유혹입니다.

지금 마귀의 유혹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그러니 지금 너의 능력을 보여 보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너무나도 뜻밖에 대답이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정말 사람이 이렇게 살 것이라 믿습니까? 정말 사람이 사는 것은 먹는 것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은 먹는 것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고백하는 사람은 믿음 안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두 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마귀는 예수님에게 말씀으로 시험하고 있습니다. 시91:11-12절에서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한 이 말씀을 인용하여 너 뛰어내려 봐! 왜 그렇게 믿음이 없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구나 의지한다면 뛰어 내려봐!

마귀는 지금 이렇게 핀잔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마귀가 요구하는 것은 \\\"네가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너를 대단한 사람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따를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귀의 요구에 대하여 예수님의 대답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만족 때문에, 내가 얻을 인기를 위하여 함부로 시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스타가 되기를 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광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 번째 시험은 높은 산에 데리고 올라가서 천하만국의 모든 영광을 보여 주면서 한번만 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자신을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하만국의 모든 영광이라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시켜왔던 모든 문화, 그리고 인류가 가진 영광을 다 보여 주며 너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영광이라는 것은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출세 자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유혹입니까? 얼마나 군침 도는 유혹입니까? 눈 한번만 감고, 딱 한번만 경배하면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는데 무엇이 그렇게 어렵겠습니까?

사람들은 이런 유혹에 너무나도 쉽게 넘어집니다. 남자든 여자든 제일 약한 칭찬은 \\\"참 멋있게 생겼구나, 또는 얼굴이 참 잘생겼구나\\\"하는 것입니다. 이 마귀의 유혹에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마귀가 아무리 우리를 칭찬한다고 할지라도 이런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가져야 할 교훈은 이것입니다.

마귀도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다가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일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또 한가지 교훈은 \\\"우리는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우리는 마귀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예배드리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찬송해야 할 때, 성경을 공부해야 할 때에 찬송하지 않고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는 분명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믿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생각을 모아야 합니다. 그분만을 바라보고 그분만을 위하여 살아가기 위해서 늘 말씀 앞에서 깨어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때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할 것이며 우리 가정들이 건강할 것이며 우리가 섬기는 우리의 교회가 건강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심에 민감해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훈련시켜 가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늘 깨어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의 삶 속에 늘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