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5:15-18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15절에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지혜 있는 자가 될 것을 말씀하 고 있습니다. 당연한 말씀이겠지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인 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첫째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아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지혜로운 상인은 어떤 상인입니까? 물건을 사들일 때와 물건을 내어다 팔 때를 잘 아 는 상인이 지혜로운 상인일 것입니다. 지혜로운 상인은 제 값 받고 팔아야 할 때와 싸게 팔 아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잘 분별하여 압니다. 요즘 천안에 이마트가 오픈 되어 많은 사람 들이 찾는다고 합니다. 한번은 저녁 늦게 찾았더니 물건을 훨씬 싸게 파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일까지 두어 상품의 가치가 손상될 것이라면 헐값에라도 빨리 처분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 사일 것입니다. 이마트 뿐이겠습니까? 지혜로운 상인들은 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정말 지혜로운 농부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압니다. 그래서 밭을 갈아야 할 때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할 때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거두어야 할 때를 알아 잘 거두어 들입니다. 정말 지혜로운 학생은 자기가 지금 어떻게 공부해야 할 때인지를 잘 압니다. 열심히 해야 할 때와 조금 쉬어도 될 때를 잘 알아 지혜롭게 공부를 잘 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지금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잘 깨 달아 압니다.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고, 성경을 배워야 할 때 성경을 배우고, 전도해야 할 때 전도합니다. 그리고 봉사해야 할 때를 알아 자기의 달란트를 따라 충성하며 봉사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 모든 성도가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면서 중요한 사실 을 언급합니다. 16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말세에 지혜로운 성도는 어떤 성도입니까? 세월을 아끼는 성도입니다. 세월을 아 끼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말씀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지난주일 저녁에 TV에서 잠깐 보니까 함석헌 선 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 중, 선생은 일생은 날로 계산하지 않고 시간으로 계산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하루를 살았다 하지 않고 24시간을 살았다 고 하고, 1년을 살았다고 하지 않고 8,760시간을 살았다고 계산하는 식으로 살았다고 합니 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우리의 일생이 얼마 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0년이면 한 8만 8천시간, 100년이라야 88만 시간 정도 사는 것입니다. 한 80세를 산다고 하면, 70만 시 간 정도 사는 것입니다. 그 중에 잠자는 시간을 빼면 우리가 산다고 하는 시간은 더 짧아집 니다. 쇠털같이 많은 날들이라고 생각해서 어영부영 하다가는 아무 것도 해놓은 일이 없이 우리 일생이 다 날라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금년도 벌써 5월이 다 지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정 말 빠른 세월의 흐름 속에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찾아 진정으로 시간을 잘 관리하 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는가 하면, 17절에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월을 아끼되 어떤 쪽으로 아껴 써야 지 혜로운 자가 되는가 하면 주의 뜻을 이해하고 그 쪽으로 세월을 아끼는 자가 지혜로운 자가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잠 많이 안자고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아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것 이상 으로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주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맞춰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참으 로 지혜로운 성도들이 할 일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어떻게 사는 것이 주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까? 이어 지는 18절 말씀에 그 답이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은 술 취하지 말 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에베소>는 번화한 도시로 방탕의 중 심지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술취함이 그 사회의 자랑이었다고 합니다. 오늘의 <에베소>가 우리 나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동네마다 골목골목마다 술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TV 드라마는 술 취하는 것을 미화하고 툭하면 술 취한 장면을 방영합니다. 대학생들의 신입생 환영회는 술에 취하는 파티가 된지 오래고, 술을 권하고 술에 취하는 것이 일상인 사회가 오늘 우리가 속하여 있는 사회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고 했지 마시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몇 잔씩 마시는 것은 아무 렇지도 않은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술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술은 취하라고 마시는 것이 아니냐면서 결국 취하는 단계로 나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술 취하는 것이 왜 나쁩니까? 방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술은 우리의 이성을 혼돈시킵니다. 그래서 술에서 깬 사람은 자기가 술 취해서 한 실수 때문에 크게 낭패를 보 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술에 취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을 술 취했기 때문 에 하게 되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술집이 기생집과 연관되어 있습니까? 그만 큼 술과 성적 타락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술 취하는 것이 왜 나쁩니까? 술에 취해서는 절대로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 다. 술에 취하는 순간 우리는 성령의 지배를 상실하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과 술에 취하는 것은 전혀 상반된 일이기에 같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술에 취할 수 없고, 술에 취하면 성령으로 충만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은혜 많이 받고 성령 충만해졌는데, 어디 기분 좋게 한잔하고 멋지게 놀아보자는 생 각이 듭니까? 은혜 받고도 그런 생각이 드셨던 분이 계시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 구해 보게요. 반대로 술에 취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드디어 성령 충만 받은 사람이 있습니 까? 성령은 알콜의 영이 아닙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입니다. 성령과 알콜은 같이 하지 않습 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기를 원한다면 알콜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 있는 성도들에게 우리 주님이 주문하시는 내용입니다. <오직>이라는 것은 다른 것의 여지를 두지 않은 것입 니다. 우리가 충만해져야 하는 내용은 <오직> 성령 밖에 없다는 강한 표현인 것입니다. 우 리는 오직 성령으로만 충만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성령 충만>이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성령 충만이 무엇이기에 모든 교회마다 성령 충만, 성령 충만, 성령 충만을 부르짖고 있습니까? 쉽게 말씀드리면 성령 충만은 예수 충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내 심령이 충만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입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우 리가 충만해지면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차게 되고, 내 속에 가득찬 예수 그 리스도를 통해, 그의 인격이 나타나게 되어 변화된 삶을 살게 되고, 내 속에 가득찬 예수 그 리스도를 통해, 그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여러 가지 이적과 기적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 다. 저는 갈라디아서 2:20의 고백과 로마서 14:8의 고백이야말로 성령 충만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 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항상 이 고백을 가슴에 간직하고 살게 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삶을 살게 되고, 성령의 아홉 가지 열 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 리스도를 닮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은 같은 성령의 열매로 같이 가야 하는 것 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그 교회 성도 가운데 한 사람은 1년 365일 매일 열심히 전 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런 열매가 없다고 합니다. 그 생활을 들여야 보니까 영 덕이 안 되는 삶을 살고 있었더랍니다. 예수님 닮은 성령의 열매가 전혀 없이 증거의 열매만 맺 으려고 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이 두 열매는 같은 성령의 열매이기에 같이 나타나야 정상입 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에도 나왔듯이 성령의 충만은 <받는 것>입니다. 능동태가 아니고 수동태입니다. 내가 만들어 낼 수 없고 내가 쟁 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수동태인데 명령형입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 이 아니지만 받기를 강력히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에 이르는 길은 사모하 고 기도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고넬료의 집에 모인 성도들 에베소교회 성도들 성령의 충만을 왜 사모해야 합니까? 성령의 충만이 왜 필요합니까? 성령의 충만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성령의 충만이 없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