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은사


성령의 은사
고전12:4-11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원래 흙덩어리인데 하나님의 생기가 흙덩이 속에 들어가니 생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령」이 바로 성령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진리가 발견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이는 죽음 즉 무생물이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됩니다. 교회 안에 성령이 존재하지 않으면 죽은 교회요, 예배 안에 성령이 임재하지 않는다면 죽은 예배요, 내 심령 안에 성령이 내주하지 않는다면 죽음 심령이 됩니다.

예배 속에 성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중요하고 그의 은사가 말할 수 없이 중요하지만 성령을 오해하고 곡해하면 심각한 문제가 일어납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 문제로 심각한 내분을 겪고있는 교회였습니다. 「방언」을 가장 큰 은사로 생각하여 마치 방언을 못하면 성령을 받지 못한 것으로 인식될 정도였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며 방언 또한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인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은사를 받지 못한 자들을 무시하고 멸시하여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들간의 파벌이 생겨 교회가 분열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 속에서 바울은 성령과 은사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I. 성령을 주신 목적

성령과 성령의 은사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은사의 수여자이십니다. 「은사」는 카리스마라고 하는 데 이는 「값없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의미는 「힘, 능력, 지도력」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저 사람 카리스마가 있어」 한다면 뭔지 모를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끄는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확실히 사람을 끄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이든 눈빛이든 행동이든 뭔지 모를 힘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고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이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은사를 자랑하라고 주신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착각입니다. 오해입니다. 경찰에게 범죄자를 잡으라고 준 총으로 강도 짓을 하면 용납이 되겠습니까?.

오늘날 교인들 가운데서도 은사를 자신의 유익과 자랑의 도구로 사용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회개해야할 문제입니다. 선물은 준 사람과 받은 사람만 알아야합니다. 은사는 보화이기 때문에 잘 간수해야 합니다.

히스기야왕이 죽을병이 들었다가 기도하여 고침을 받은 후에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자신의 보물창고를 공개해 버렸습니다. 그 보물을 보고간 사신들이 바벨론 왕에게 보고를 했고 후에 바벨론에게 멸망당하는 비운을 겪게 됩니다. 보화를 도적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사탄에게 은사를 자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은사를 자랑하다가 망한 사람이 한 두 사람입니까? 박태선, 나운몽, 김기동 등 무수한 이단들이 주신 보화(은사)를 자랑하다가 망한 사람들입니다.

II. 은사가 다양합니다.

사람의 모습이 다양하듯이 취향도 다양하고 버릇도 다양합니다. 잠자는 모습도 다양하고 잠버릇도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잘 때 눈을 뜨고 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를 가는 사람도 있고, 탱크를 몰며(코골이) 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잘생긴 사람도, 못생긴 사람도, 심지가 깊은 사람도, 변덕이 죽끓듯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똑 같이 만들지 않으시고 검둥이, 흰둥이, 노랑둥이, 붉은 둥이 등 색깔별로 만드시고, 성격도 천차만별로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만드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복제인간을 만든다고 하나 이는 명백히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편일률적으로 복제를 하려고 하니 말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다양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맞게 은사를 나누어주십니다. 남이 가진 은사를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이 가진 은사를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욕심을 부려서 얻은 은사는 자신도 남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III. 삼위일체의 신비

4절에서 7절까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은사를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고, 직임을 맡기시는 분은 성자이시며, 역사를 일으키시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창조, 구원, 은사 등 모든 사역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은사가 다양하고, 수여자도 다양한 듯 하나 결국은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에게서 다양한 은사가 나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다양성 가운데 통일성(Unity in diversity)」이라는 교회의 본질과도 일치합니다. 즉, 교회는 다양한 은사와 다양한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다양한 지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IV. 은사의 종류

본문에는 아홉 가지의 영적 은사가 나오는데 갈라디아서 5장 22절-23절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의 열매와 종류가 같다는 것은 매우 신비로운 일입니다. 이것을 세 묶음으로 묶으면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지적(知的)은사인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중복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굳이 설명해 본다면 지혜의 말씀은 직관을 통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고, 지식의 말씀은 이성을 통한 깨달음 정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초월적(超越的)은사로서 믿음, 신유, 능력 행함, 예언, 영분별의 은사 등입니다. 초월적이라는 말은 추상적이라는 말과도 비슷합니다. 눈이나 귀로나 코로 볼 수도 들을 수도 맡을 수도 없습니다. 믿음의 정의가 가장 잘된 곳이 히브리서 11장1절 아닙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지 않습니까? 영적 신비적인 은사들입니다.

셋째-언어적 은사인 방언과 통역이 있습니다. 원래 방언이란 표준말을 제외한 사투리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또 외래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분명히 오순절날 임했던 방언은 외국인들이 동시에 알아들었던 방언이었습니다.

통역은 원문이 헤르메네이아(?ρμηνε?α)인데 이것이 명사화되면서 「헤르마스」라는 단어가 생겼습니다. 헤르마스는 헬라신화에 나오는 신과 사람 사이를 오가면서 심부름하는 신을 말합니다. 우리 나라의 「저승사자」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신의 말을 인간에게 전달하고 인간의 말을 신에게 전달하는 메신저를 말합니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주신 목적이 개인에게는 확신과 힘을 공급하고 공동체에게는 통일과 유익을 주기 위해서 은사를 허락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게 나타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양하다는 것과 무질서하다는 것은 다릅니다. 성령의 은사는 다양할지라도 출처는 한 성령이시기 때문에 통일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다양한 은사로 풍요를 누리되 통일성 가운데 하나됨을 지향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