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은사들


성령의 은사들
고전12:1-11



오늘은 세계 모든 교회들이 다 함께 지키는 성령강림절입니다. 이 성령강림절은 성령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교회 가운데 거하신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날을 오순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오십일 째 되는 날에 교회 가운데 임하신 성령님의 사역은 아주 다양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모든 구원사역을 우리에게 적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사역은 기독교의 신비이고 정말로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의 독특성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성령님의 사역과 연관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은 여러 다양한 영적인 능력과 은사를 주시기도 합니다. 말씀을 분별하고 믿어지게 하시기도 하고,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불치의 병이나 여러 질병들을 치유하시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경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여러 정황에 개입하셔서 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인 방법으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성령님은 우리가 믿는 신앙에 의미를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오심의 중요한 사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모든 구원의 사역을 실제적인 것으로 경험하게 하고 계속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여 구원을 체험하게 하는 일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죽으심과 부활, 승천으로 행하신 구속역사의 객관적인 사실을 신자 개개인에게 주관적으로 적용하기 위하여 성령님을 보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는 \\\"구원적용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날 우리가 성령강림절을 기념하여 지키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매년 성령강림절을 지키면서 성령과 관련된 거의 모든 본문을 다 다루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남아 있는 몇 가지 주제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성령께서 믿는 자들 가운데 주시는 은사문제입니다. 올해는 이 성령의 은사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경에 나타나는 은사들


우리 기독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은혜와 비슷한 개념이면서도 다르게 사용되는 용어인 \\\'은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도 비슷한데, 은혜를 \\\'카리스\\\'(charis)라고 하고, \\\'은사\\\'는 거기에서 파생된 \\\'카리스마\\\'(charisma)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느낌도 비슷합니다. 이 두 용어를 구분한다면 은혜가 은사보다 상위개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내적이면서도 외적으로 역사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성령의 사역을 말한다면, 은사는 주로 외적으로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볼 수 있고, 관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 고린도전서 12:7에도 은사를 가리켜 \\\'성령의 나타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은사가 성령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은사는 성령의 다양하고 풍성한 은혜가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볼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특정하게 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러면 성령에 은사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성령의 은사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읽은 말씀인 고린도전서 12:8-10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 보면 성령의 역사는 가르침의 은사, 다스림의 은사, 구제(재정)의 은사, 권면(상담)의 은사, 섬김(봉사)의 은사, 전도의 은사, 서로 돕는 협력의 은사, 찬양의 은사 등 아주 다양하게 많이 있습니다(엡4:11; 롬12:6-8; 벧전4:11 등).


성경에 나타나는 은사를 볼 때 아주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은사를 말할 때 주로 방언이나 치유의 은사만을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만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주시는 은사는 아주 다양합니다. 성경에 언급된 은사는 주로 성경이 기록될 당시인 초대교회에서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로 주어지는 은사는 교회의 형편과 문화적인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현대교회는 성경시대의 교회보다 더 발전되고 세분화되었습니다. 홈페이지 관리 및 인터넷 선교, 미혼모를 돌보는 일, 알콜 중독자를 돌보는 일, 외국인 근로자를 섬기는 일, 노인을 돌보는 일 등과 관련된 다양한 은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2. 성령의 은사의 특성


성령의 은혜가 외적으로 작용하여 볼 수 있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켜 은사라고 한다면 은사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1) 성령의 은사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다


일반적으로 은사를 성령의 사역이라고만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은사를 주시는 분은 성령만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으로부터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4-6에 보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은사\\\'나 \\\'직임\\\'이나 \\\'역사\\\'라는 말은 다 같은 의미인데, 은사의 여러 측면들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직임\\\'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봉사\\\'(service)라는 단어이고, \\\'역사\\\'라는 말은 \\\'일\\\'(working)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은사는 봉사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자세히 보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은사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주님이시고,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늘 우편에 앉아서 세상을 통치하시면서, 성령을 통하여 다양한 은사들을 주십니다. 성령의 은사의 특징을 말하면서 삼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은사를 단순히 성령의 선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은사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2)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하여 \\\'특별한 믿음\\\'을 준비해야 하고, 그 대가로 은사를 주신다고 믿거나, 다른 사람보다 더 윤리적으로 거룩한 생활을 해야 그 보상으로 성령의 은사를 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함으로 은사를 받기 위해 특별한 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2:11을 보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한 개인의 노력이나 행위가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뜻대로\\\'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성령의 주권적인 의지에 따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는 특별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보상으로 받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거룩한 생활을 했다고 해서 받는 것도 아니라 성령의 주권적인 뜻대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당시 고린도교회는 하나님이 주권적인 선물로 주시는 은사를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경험하는 것은 신자 각자가 얼마나 거룩한가, 또는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가 등 성화의 정도나 믿음의 깊이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바울은 당시 고린도교회가 성령이 주시는 다양한 은사를 받은 일에 대하여 감사하고는 있습니다(고전1:4-7). 하지만 바울은 그들을 가리켜 신령한 자들로 대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시기와 질투로 가득찼고, 성적으로도 크게 부패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성령의 은사는 개인의 자질이나 믿음의 정도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교만하거나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기도원이나 은사치유학교 등에서 배우고 연습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이러한 방식으로 은사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열심히 은사를 얻기 위하여 안수도 받고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은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입니다.


(3) 은사는 개인적으로 주시는 선물이다


우리 나라에서 오순절 교회인 순복음 교회 같은 데서는 다 방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은사는 일반적으로 모든 성도들에게 다 같이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을 자세히 보면 \\\'각 사람들에게\\\'(고전12:7, 11), 또는 \\\'어떤 이에게는, 다른 이에게는\\\'(고전12:8-10)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은 모두 다 예외없이 한 은사만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교회 안에 한 은사만 있다면 교회에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은사사용에 대하여 사람의 몸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말한 부분에 잘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모두 온 몸이 다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맡는 곳은 어디입니까(고전12:17)? 어떤 사람에게 특정한 은사를 받도록 기도하거나 사모하도록 권면할 수는 있으나(고전12:31; 14:1, 13, 39), 모두가 \\\'방언해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은 은사가 특성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께서 각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나누어주시는 선물이라는 점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성령의 은사는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신 선물이다


성령의 은사의 특성 가운데 또 하나는 교회에 덕을 세우고,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7에 보면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시는 것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헬라어 뜻은 우리 성경의 번역과 약간 다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서 은사의 종류를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의 은사, 병 고침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예언함의 은사,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 각종 방언을 말하는 은사, 다스림의 은사, 구제(재정)의 은사, 권면(상담)의 은사, 섬김의 은사, 전도의 은사, 서로 돕는 협력의 은사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은사는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 상담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때 낙심하거나 힘들어하는 형제, 자매들을 도와 격려해 주고 세우고, 문제를 치유해 주어서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치유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병 중에 있는 성도들을 치료해 주거나 기도해 줌으로 치유하여 역시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은사는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성령이 주신 은사입니다.


3. 성령의 은사를 구할 수 있는가?


그러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면, 은사를 구해서는 안될까요? 고린도전서 12:31에 보면 \\\"더욱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한편으로 은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라고 말하고, 또 한편으로는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은사의 이 양면성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그의 뜻에 따라 주권적으로 은사를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구하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 내가 주일학교 유초등부 교사나 중고등부 교사로 봉사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을 때 이미 성령께서 그 마음에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잘 가르치는 은사를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싶은데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하고 싶거나, 악기를 통하여 봉사하고 싶을 때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하여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기도하면 찬양의 은사를 더해 주십시다. 악기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이미 하나님께서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기도하면 성령께서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함으로 병든 자를 치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마음이 있으면 신유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저희 교단의 목회자를 양성하는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 교수로 계시는 박영돈 교수는 은사를 구하는 문제에 대하여 좀 더 실제적으로 그의 책에 이렇게 썼습니다. \\\"지능지수가 낮은 사람이라도 기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최대한으로 노력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다. 그리고 원래 인물이 없는 사람이 기도할 때 코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도하면서 은혜를 받으면 성령께서 얼굴을 더 우아하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교회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할 은사를 사모할 수 있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면 구할 수 있습니다.


4. 은사사용의 방법


그런데 은사가 교회에 큰 축복이 됨과 동시에 교회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서로 비교하여 남을 판단하거나, 이기적인 목적과 방법으로 사용하면 교회 안에 갈등과 분열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주신 은사를 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 주신 다양한 은사들을 말하고 난 뒤에 우리에게 \\\'사랑장\\\'으로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은사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2:31에 보면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은사도 중요하지만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12:31 후반부에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부터 문단 구분을 다시 해야 하는데, 여기에 \\\'좋은 길\\\'이란 은사를 추구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 \\\'좋은 길\\\'이란 사랑으로 은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의 중요성과 특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난 뒤에 고린도전서 14:1에서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사랑의 방법으로\\\' 은사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은사를 사랑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은사를 교만하거나 무례하게 사용해서도 안되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도 안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해서도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그의 나라를 위해 조심스럽게 \\\'사랑으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5. 성령의 은사와 천부적인 재능과의 관계


그러면 성령의 은사와 천부적인 재능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 문제를 논의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한 사람이 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도 탁월한 재능을 주셨다면 그것을 가리켜 성령의 은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들을 볼 때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천부적인 재능과 자질과 구별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앞서 언급한 여러 은사들 가운데 구제, 상담, 섬김, 다스림, 가르침, 인터넷, 미혼모를 돌보는 일과 같은 은사는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주어진 재능과 자질, 달란트도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그 은사를 주신 정당한 목적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자기의 유익이나 죄와 불의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되면 그에게 주신 재능을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와 인류와 사회를 위해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각자가 받은 재능도 성령의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차이점은 불신자는 그 은사를 이기적이고 자기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지만, 신자는 은사를 성령의 선물로 인식하고 교회와 인류와 사회를 위해 사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6. 은사의 유익


그러면 성도가 이 은사를 받으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우리가 앞서 언급한 말씀의 은사, 병 고침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예언함의 은사,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 각종 방언을 말하는 은사, 다스림의 은사, 구제(재정)의 은사, 권면(상담)의 은사, 섬김의 은사, 전도의 은사, 서로 돕는 협력의 은사 등을 받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구원의 실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은사를 받아서 사랑으로, 공동체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말씀하신 것을 경험하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성령이 교회에 주시는 은사는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많이 있습니다(고전12:8-10, 28; 롬12:6-8). 교회에 은사를 주신 목적은 성도로 하여금 구원의 실재를 경험하고, 또한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게 하며,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겸손하게 봉사하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이 은사는 교회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실 수도 있고, 기도를 통하여 주실 수도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날에도 주의 몸된 교회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은사들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회가 특별한 위기 가운데 빠져 있을 때에든지, 선교지에서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현장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에 따라 성령께서 여러 가지 은사들로 주심으로 교회를 지켜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은사들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교회의 유익과 인류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특히 그 은사를 사랑으로 사용하십시오. 그러면 성령께서 신비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전 세계 교회가 오순절에 교회 가운데 성령님이 임하신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성령강림절입니다. 이 성령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며 다양한 은사들을 주셔서 교회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게 하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성령님은 오늘날에도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은사를 사모할 때 은사를 주시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믿음의 가족들이 교회와 인류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다양한 은사를 사모하며 구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다양한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랑으로 사용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