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론/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


성령론 (4) -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
고전12:4-11


성령론

1.은사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성령께서 성도들을 강하게 하실 때에 특별한 일을 하도록 사람을 강하게 하시는데 이것을 은사라고 합니다. 은사란 은혜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특별한 일을 하게 하실 때에 특별한 힘을 허락하셔서 다른 사람보다도 그 방면에서 강하게 하십니다. 봉독한 말씀은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신다는 것을 설명한 대표적인 성경구절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은사를 주시는 것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서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은사부분에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큽니다.
은사가 은혜의 선물이므로 주신대로 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다른 선물이 좋게 보여도 내게 주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니 그저 감사할 뿐이지 왜 내게는 이러한 은사를 주셨습니까? 하고 불평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불평만 하면 주신 것도 가져 가버립니다. 그저 받을 만한 가치도 없는데 저에게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주십니까? 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주신대로 받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의 은사를 욕심낸다거나 흉내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은사와 똑같은 은사를 나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이는 은사를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성도에게 자기가 받은 은사를 받아야만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고 우기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기와 같은 은사를 받지 못하면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처럼 매도하는데 그러한 일은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은사는 성령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주시는 고로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은사를 주실 때에 필요한 상황에 따라서 주십니다. 그리고 은사를 주실 때에 그 받은 사람의 역량을 보고 주십니다. 소질을 보시고 그 소질에 맞춰서 주십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는 말씀입니다.

2. 은사는 여러 가지입니다.
아홉 가지 은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지혜의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들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입니다. 대적들이 복음을 가로막을 때에 저들을 대적하여 복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혜의 말씀이 필요헀습니다. 주님께서도 가끔 바리새인들이 괴퍅한 질문을 해 왔을 때에 참으로 지혜있는 대답들을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지혜의 말씀이란 은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知識의 말씀>이 있습니다. 지식의 말씀은 복음전파를 위해서 필요한 은사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오랜 기간이나 연구가 없어도 하나님의 신비를 알 수 있게 하신 은사입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게 \\\\\\\"네가 밭을 판 값이 전부 이것 뿐이냐\\\\\\\"고 물었을 때에 베드로 사도는 아나니아의 속임수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지식의 말씀이란 은사입니다. 그리고 구원받는 진리를 말하는 지식입니다.
어떤이에게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 믿음은 구원얻는 믿음이라기보다는 박해자들 앞에서 굴하지 않는 믿음을 말합니다. 끝까지 배교하지않고 나아가는 순교적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니 성도가 순교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어떤이에게는 <병고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이 은사는 의술이 발달되지 않은 고대에서는 참으로 필요했습니다.그러나 이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모든 병을 다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병고치는 은사는 그 고침을 받은 분에게 믿음을 불러 일으키고 결국에는 육신은 죽은 것이므로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이 고침을 받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가장 매력적인 은사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능력 행함의 은사>는 기독교가 우상의 도시들에게 전파될 때에 이러한 능력의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연약하여 스스로 할 수 없는 곳에서는 간혹 한두번 이렇나 역사를 나타내사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 들이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없었으므로 예언이 꼭 필요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와 영감을 받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 은사는 일반적으로 신약시대에 국한된 것입니다. 이제는 계시의 총체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서 우리의 경건 생활에 별다른 계시가 필요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계속 계시를 주장하면 이단으로 규정합니다. 왜냐하면 계속 계시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개 성경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에서는 예언의 은사가 꼭 필요하였습니다.
또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주셨습니다. 이는 설명이 필요한 은사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이므로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주도권이 성령께 있는지라 은사는 받지 못하였지만 마치 받은 것처럼 행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구약시대에는 예언의 은사가 가장 귀한 은사였습니다. 그래서 아합시대의 궁중에 어용 예언자들은 마치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말씀을 받은 것처럼 하였습니다. 아합왕에게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전쟁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고 철로 뿔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찌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언자 미가야는 그들 모두가 다 거짓 예언자라고 하였습니다. 미가야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에서도 그와 같은 위장 영감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벧후2:1에는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서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요일4:1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로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자들 때문에 성령께서는 영들 분별하는 은사를 특별한 사람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또 어떤이에게는 <방언 말함>을 주셨습니다. 여기 \\\\\\\"어떤이\\\\\\\"란 말씀을 유의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라 \\\\\\\"어떤이이게\\\\\\\"입니다. 그런데 오순절파나 신오순절파에서는 이 부분을 잘못 이해하고 무조건 방언이 성령 세례받은 최초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오순절 사도들에게 임한 방언과 같은 현상이 언제나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순절의 방언과는 오늘 저들이 말하는 방언이나 고린도교회에서 유행했던 방언과는 다른 방언입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의 방언은 외국어였습니다. 알아 듣지도 못하는 중얼거림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각 지방에서 모인 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성령께서 저들의 혀를 주장하셨던 것입니다. 오직 그때 상황에 필요했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사도들이 그 후에 그와 같은 방언을 다시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령받은 첫째의 증거로 방언을 해야 한다고 하니 그것은 성경의 흐름을 잘 모르는 잘못된 주장입니다. 방언은 우리가 하나님과 좀더 친밀하게 기도의 깊은 단계로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보조의 역할을 감당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말을 그대로 두고 방언만을 하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전한 말로 하는 기도도 즐겨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방언 통역하는 은사>는 거짓 방언자들을 가려내는 은사입니다.

3.이 외에도 은사의 종류가 많다고 밝힙니다.
이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일을 할 때에 그 일하는 부분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단조롭지 아니하고 아릅답게 하여 주셨습니다. 만물이 색깔을 다양하게 하셔서 아름답게 하신 것과 같습니다. 은사를 주신 목적은 에베소서4:12에 보면 크게 세 가지입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함입니다. 봉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교회가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성도에게 은사를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