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전 고전6:12-20 어떤 물건이나 사람의 가치는 그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CD 한 장의 원가는 300원 정도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적게는 수 백원에서 많게는 3억 원까지 정보를 담은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통 CD라 하더라도 어떤 국가의 기밀이라든지 비밀의 정도의 중요성에 따라서는 부르는게 값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게 차려 입고 머리에는 무스를 바르고 온갖 멋있게 꾸몄어도 그 속에 든 것이 없으면 사람의 가치는 초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그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서 물건과 사람의 가치가 달라질 뿐 만 아니라 그 속에 담고 있는 것이 외형적인 것까지 결정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귀한 것에는 귀한 것이 담겨있어야 하고 거룩한 것에는 거룩한 것이 담겨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의 몸을 성령의 전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대단한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우리들의 몸이 성령이 거하는 전이라고 한다면 우리들의 가치는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는 세계적인 항구 도시로서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였으며 아울러 향락적인 문화 풍조가 만연했습니다. 이런 도시들은 대체적으로 성생활이 문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인해서 고린도 교회 내에도 성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한다는 인간의 식욕본능을 성적 욕구에도 적용하여 성적 욕구를 채우는 것을 육체적 본능이라고 주장하며 성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음행을 해도 좋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음행을 자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헬라의 철학은 육신은 악하고 더러운 것이기에 어떻게 사용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도 이런 철학 영향을 받아 자신의 몸을 음란한데 버려 두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를 보면서 바울은 너희의 몸은 그렇게 음란으로 더럽혀도 무방한 그런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영이 거하는 성령의 전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들의 몸은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음행을 피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유지해야할 이유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전으로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몸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겠습니까? 1. 성령의 전은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고전3:16-17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우리 몸을 성령의 전으로써 더럽히지 말고 거룩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거룩한 영이 거할 처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 부흥강사목사님을 교회 사택에서 모셨습니다. 지금은 호텔에 모셔서 편안하게 쉬시게 하지만 그 당시는 산골 촌에다가 호텔을 생각할 수 조차도 없을 때였습니다. 그러니 부흥회를 하게되면 집은 온통 대청소가 시작됩니다. 부흥강사목사님을 모실 안방은 우리들은 얼씬도 하지 못합니다. 깨끗하게 청소하고 뿐만 아니라 이부자리도 깨끗하게 빨아 풀을 빳빳하게 먹여 어릴 때 느낌으로도 \\\"야 저런 이부자리에서 한번 자 봤으면 좋겠다\\\"마음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귀한 손님이시기에 그렇게 정성으로 준비하고 모셨습니다. 우리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몸을 성령이 거하시기에 합당한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온갖 더러움과 추악함과 악함으로 똘똘 뭉쳐진 상태에서는 거룩한 영인 성령은 거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 몸이 귀신의 소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은 먼저 성령의 전으로서의 합당한 몸이 되어 지기 위해서는 첫째, 생각이 거룩해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말과 행동을 결정합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는 생각의 결정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항상 악을 생각하고 악한 일을 꿈꾸면 악의 열매를 맺고, 선한 일을 생각하고 선한 일을 꿈꾸면 선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속에서 더러운 것이 나오는데 그것을 막7:21절에서 말하기를\\\"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히게 하느니라.\\\" 악한 생각이 결국 사람을 더럽히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우리들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는 한 우리의 몸은 결코 성령의 전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몸이 성령의 전이되어 지기 위해서 우리는 거룩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고 그 은혜를 나누며 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며,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며 살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수 있을까? 등등의 생각을 해야합니다. 생각이 거룩해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행위가 거룩해야 합니다. 18절 말씀을 보면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사람이 범하는 죄들은 대게 자신의 몸에 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어떤 경제적인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음행은 자기 몸에 죄를 짓고 더 나아가 가정을 파괴하고 온 식구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합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음행을 저지름으로 성전인 몸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이런 몸에는 성령이 거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스스로 성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거룩한 영이 거하는 사람이다. 거룩한 영의 집이다. 라는 의식 말입니다. 이 의식이 없으면 죄를 지어도 무감각하고 죄의 무서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성전의식을 반드시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이 의식이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거룩하게 만들고 행동을 거룩하게 만들어 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전인 몸을 술로 담배로 마약으로 더럽히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술과 담배를 해서는 안됩니까? 성경에 어디 담배를 하지 말라. 마약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까?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담배를 하라는 말씀은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도 생각해 봅시다. 담배로 몸을 병들게 만드는게 성령이 거하기에 합당한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까 아니면 깨끗하게 몸을 유지하는게 성령이 거하기에 합당한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까? 제가 어릴 때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 강사목사님을 목사님 사택에서 모셨습니다. 그래서 부흥회를 앞두고는 집안 청소와 이부자리를 깨끗하게 빱니다. 강사 목사님을 모시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합니다. 이렇게 강사 목사님을 한 분 모심에도 집안을 깨끗하게 하고 청결케하는데 거룩한 영이 거하는 우리들의 몸을 정결하고 깨끗한 생각으로 단장해야하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전인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본문의 20절 말씀을 보면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 인간의 최대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고전 10장 31절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 말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합니다.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의미가 어떤 것일까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전인 우리들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몸으로 드려야 합니다. 몸으로 드린다는 것은 마음만을 정신만을, 영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인격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합당하게 살고자 하는 것 모두가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몸으로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산 제물로 우리를 드릴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성령의 전인 우리의 몸으로 형제 자매끼리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용납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들의 몸으로 싸우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음행과 더러움과 거짓말과 술 취함과 방탕함의 삶을 살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예수님은 마5:16절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는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면 주저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찬을 욕하는 것은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제 우리 교회 김윤홍 권사님께서 직장에서 일하다가 떨어져서 응급실에 실려갔습니다. 저는 권사님께서 다친 것도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무엇보다도 누워있는 침대 밑에 있는 작업복을 보는 순간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기름때와 땀과 먼지가 뒤엉켜있는 작업복을 입고 일하면서 벌은 것의 십의 일을 드리고 감사헌금을 드리는데 그 헌금이 바로 권사님의 생명이요 피요 땀이 녹아있는 것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앉아 계신 모든 성도들이 그렇게 벌은 것으로 헌금을 하는 줄 압니다. 너무나 귀한 헌금입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현대 중공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생명과 바꾸어 번 헌금은 그 자체가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들이 됩시다. 그것을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기뻐하십니다. 3.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갈 5:16절 \\\"너희는 성령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갈5:25-26절에서는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하시기에 합당한 거룩한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를 성령의 주장에 따르도록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로써 거룩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뜻대로 됩니까? 우리들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령을 따라 살아야만 합니다. 성령의 전은 성령께서 다스리는 집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한다면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집에 가면 문패가 붙어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문패가 붙어있는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문패가 있는 집을 보면 은근히 부러웠습니다. 대문에 이름을 써 붙여 둔 것은 이 집의 주인이 바로 나요 라고 하는 선포가 아닙니까? 문패에 제 이름을 써 놓으면 제가 이 집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이 집에서 제가 주인행세를 합니다. 가구도 놓고 싶은 곳에 놓고 방을 마음대로 꾸밉니다. 그런데 길 가던 사람이 무단히 들어와서 가구를 마음대로 옮겨놓고 액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버리고 왜 이렇게 사느냐고 나무랄 수 는 없습니다.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면 주택 무단 칩입죄가 성립됩니다. 우리들의 몸이 성령의 집이라고 한다면 이 집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성령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는 대로 살아야하며, 성령께서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면 오늘부터 여러분들의 몸의 주인은 내 자신이 아니라 성령이심을 고백해야합니다. 그리고 성령께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성령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갈6: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와 온유와 절제\\\"라 씁니다. 왜 우리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보혜사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주인이 되시사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도우시는 은혜로 성령의 전으로써 합당한 성도들의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