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성령의 법 롬8:1-11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왜 이 시대가 고통 하는 때가 될 수밖에 없습니까? 사람들이 점점 더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청소년가운데3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83%가 꿈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54%가 하루 3시간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뭘 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게임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영국에 평생 구걸만 하던 할아버지가 어느 집주인을 찾아 햄버거 사먹을 돈을 얻은 뒤 감사 표시로 자신의 먼지 묻은 바이올린을 줬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주인은 바이올린의 먼지를 닦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1704년에 제작된 수 십억 원을 호가하는 바이올린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노인이 바이올린의 가치를 알았다면 굶주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뭘 지니고 있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평생구걸인생을 산것입니다. 지난주 수험생의 자살은 생명은 존엄성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생명이 있습니다. 성령의 생명의 법이 있습니다. 백스터 여사는 오랜 병상생활에서도 기쁨과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나에게는 특별한 무기가 있다. 바로 예수의 이름이다. 마귀가 나를 낙심하게 할 때마다 예수의 이름을 크게 외치면 마귀는 달아나고 만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병상에서 지은 찬송이 91장입니다. 다같이 찬송가91장 부릅시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이름만이 참된 소망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는 법이 있습니다. 자연에도 법칙이 있고, 인간의 생존 세계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학교에는 교칙이 있고, 국가에는 헌법이 있고, 또 회사에는 사규가 있듯이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는 이 세계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 죄 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1.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켰습니다(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기에 두 가지 원리가 나옵니다. 하나는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죄와 사망의 법입니다. 바울은 똑같은 내용을 6:14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은혜와 법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넘어가서 7:6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영의 새로운 것과 의문의 묵은 것으로 대조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을 때는 법 아래 살았습니다. 우리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섬겼습니다. 벌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면서 마지못한 마음으로 섬겼습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정 죄 함에 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율법의 모든 조항을 100% 완전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법 아래 살지 않습니다. 은혜 안에 살아갑니다.
우리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깁니다. 기쁨이 충만해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주를 위해서 봉사하며 섬깁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에 따라서 살아갑니다. 심판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과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습니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최전선으로 내보내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간음죄 위에 살인죄까지 더 얹었으니까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면서 두손들고 처절하게 회개했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깨끗하게 용서해 주셨습니다. 두 번 다시 기억조차도 아니하셨습니다. 다윗은 엄청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복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게 하셨습니다. 위대한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서 누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까?
솔로몬입니다. 여러분, 솔로몬이 누구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입니까? 다윗과 밧세바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 죄 함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우리는 더 이상 법 아래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 현재 짓는 죄, 미래에 짓는 죄까지라도 이미 다 용서하시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간교해서 우리를 자꾸 정 죄 감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합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죄 때문에 움츠러들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마귀의 궤계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담대하게 시험을 이겨야 할 것입니다. 인생이 무엇이냐? 이와 같은 생각을 인간학(Anthropology)이라고 합니다. 인간학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을 완전히 육으로만 보는 견해입니다. 육체가 살아있는 동안 육체에 매여있는 것으로 봅니다. 모든 것을 육체 중심의 세계관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잘못된 인간론입니다.
둘째로 이원론적인 인간관입니다. 헬라사상이 그러하고 불교도 비슷합니다. 육체와 정신, 몸과 영혼을 분리해서 따로 따로 생각합니다. 육체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가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육체적인 것은 속되고 더럽고 추하다 생각하고 정신적이며 영적인 것을 고상하게 생각하여 육체를 저주하며 육을 죽이기 위해서 입산수도하고 식욕이나 성욕도 아주 더러운 것으로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 역시 잘못된 인간관입니다.
셋째로 기독교의 인간학을 신학적 인간(Theological Anthropology)이라고 합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받은 존재로 보며 인간을 물질이다 정신이다 이렇게 나누어서 보지 않고 종합적으로 봅니다. 다시 말하면 육체나 영혼을 나누어서 보지 않고 합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인간이 영에 속한 부분과 육에 속한 부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이 육신과 영혼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니고 단지 사람들 중에는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소속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각자의 소속에 따라서 생각을 달리하게 되고 소속에 따라서 지배를 받게 됩니다. 육신을 좇고 육신을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거부하고, 이생에서건 내생에서건 하나님과의 교제를 영원토록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2)고 했습니다.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2. 생명의 성령의 법은 우리에게 결코 정 죄 함이 없습니다(1).
인도나라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담입니다. 어떤 마술사가 쥐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쥐를 가만히 관찰해 보니까 쥐가 계속해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술사는 쥐에게 물었습니다. \\\"얘, 쥐야. 너 뭐가 그리 무서워서 벌벌 떠느냐?\\\" 쥐가 대답했습니다. \\\"예. 고양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언제 고양이가 나타나서 나를 물어 죽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술사는 그 쥐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마술을 부려 그 쥐를 고양이로 바꾸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고양이가 계속해서 떨고 있습니다. 마술사가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또 무엇 때문에 떠느냐?\\\" \\\"예. 개 때문에 무서워서 떱니다. 언제 개가 나타나서 내 목덜미를 물어 나를 죽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술사는 고양이를 개로 바꾸어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개가 계속해서 떨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또 무엇 때문에 떠는거야?\\\" 그랬더니 개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호랑이 때문입니다. 눈을 감으나 뜨나 계속해서 호랑이가 어른거려 무서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술사가 이번에는 개를 호랑이로 바꾸어주었습니다. 이제 그만하면 되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호랑이가 되어서도 벌벌 떨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떨었겠습니까? 포수 때문입니다. 포수가 나타나서 총으로 쏘아 죽일까봐 그것 때문에 떤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그래서 마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어쩔 수 없이 구제불능이구나! 다시금 쥐가 되어야 되겠다.\\\"
그렇게 해서 호랑이는 다시금 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 죄 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으면 \\\"아멘!\\\"하면서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다. 더 이상 정 죄 감에 빠지지 마십시다. 과거의 죄에 얽매이지 마십시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쁘고 즐겁고 복된 삶을 누리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한 번 하나님이 선언하시면 취소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두 번 다시 우리에게는 정 죄 함이 없습니다. 결코 정 죄 함이 없습니다. 왜 우리에게는 결코 정 죄 함이 없습니까? 우리가 착하게 살아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정 죄 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옥에 던지 움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애굽 땅을 지나갔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는 죽음이 있었습니다. 큰 울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집에는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피해 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집에는 어린양의 피가 칠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결코 정 죄 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그 사람은 정 죄 함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멸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리고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기생 라합의 집에 있는 사람들은 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집에 붉은 줄이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라합의 집에 드리워진 붉은 줄을 보고서 그 집은 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외 여리고 성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 죄 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심판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입니다. 지금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고 하나님 앞에 선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 죄 함이 없기 때문에 주 안에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죄를 자꾸 생각하면서 죄책감에 몸부림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간교합니다. 그래서 자꾸 우리를 정 죄 감속으로 몰아넣으려고 합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시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 말씀이 좌우에 날선 한 검이 되어서 악한 마귀의 궤계를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여러 가지 죄 때문에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이 말씀을 외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 그리할 때 악한 마귀는 썩 물러가고 말 것입니다.
내 인생의 안전지대는 어디에 있습니까?
미국과 영국 대 이라크 전쟁 중 사담 후세인은 5-6m 두께의 특수콘크리트 벙커(bunker)에 들어가 은신하고 있습니다. 그가 숨어있는 벙커는 웬만한 집중적인 포탄공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담 후세인은 이 벙커가 자신의 삶의 안전지대라고 나름대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몸만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과 불안의 심리적인 공황상태에 있으면 그 사람은 육신은 살았다 할지라도 정신까지 살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디가 안전한 곳인가?\\\"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찾아다니고 연구하고 수소문합니다.
학교폭력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안전지대를 불루존(blue-zone)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의 삶의 블루존은 어디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여러분 자신의 안전지대로 삼기를 원합니까? 먼저 인생의 안전지대가 될 수 없는 것 4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재물(소유)은 인생의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소유가 많으면 안전해 진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었던 어리석은 부자에게 하나님은 \\\"오늘밤에 너의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너의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눅12:20). 요즘말로 하면, \\\"너의 은행에 있는 예금 잔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증권, 부동산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돈, 재물, 경제력은 우리의 안전지대가 결코 되지 못합니다. 돈은 중립적입니다. 성도여러분! 경제활동을 열심히 하되 돈을 의지하거나 사랑하지는 맙시다. 돈은 우리의 편리를 위하여, 하나님을 마음껏 섬길 수 있는 도구로 주신 것이지 결코 우리의 사랑과 믿음의 대상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인생의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유력한 사람을 만나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호흡이 떨어지면 그 생명은 끝나는 것입니다.)\\\"(사2:22)라고 말씀합니다. 무릇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의지의 대상이 아닙니다.
인간의 사상체계와 철학은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남이 가지지 못하는 지식, 특별한 사상체계를 가지면 뭔가 안전이 보장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설득력 있고 영향력 있는 사상체계인 공산주의를 소련은 70년 동안 실험하였으나 결국 무너졌고, 북한은 김일성 주체사상 때문에 지금도 북한전역이 피폐하고 전 인민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인간들이 창안한 체계와 과학적인 지식은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기쁨과 만족만을 줍니다. 과학적인 발견과 학문의 성취가 대단하더라도 그 자체가 인간의 영원한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학문이나 과거의 경험을 절대화하지 맙시다. 주님은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고전1:21).
우상이나 고등종교도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나무를 깎아 그 밑에 가서 절을 하며, 낮에는 태양을 향해, 밤에는 달을 향해 복 주기를 빕니다. 자연을 숭배함은 초기의 우상숭배형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윤리적인 탁월성을 추구하여 고등종교로 나아갑니다. 교양 있게 자기를 수양하면 안전지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고전8:4)\\\"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인생의 안전지대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의 안전지대는 어디에 있습니까? 인생의 안전지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 죄 함이 없나니\\\"(1절) \\\"예수 님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 있다, 성령님 안에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육체를 신뢰할 만\\\"하였던 바울은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긴다\\\"고 했습니다(빌립보서3:4-7). 바울은 종교적인 의식도, 세상 적인 출세도, 학문도 자신의 삶의 안전지대가 되지 못함을 깨닫고 주님 앞으로 겸손하고 신속하게 돌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님만이 영원한 인생의 안전지대가 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보배로운 피로 죽었던 우리영혼을 만지실 때 우리의 죽은 영혼도 살아나게 됩니다. 예수 님의 보혈의 은총을 사모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으라는 말입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안전지대가 되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이 죄인들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시편18:1-2). 다윗은 반복적으로 \\\"주님만이 나의 삶의 안전지대입니다\\\"라는 말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사건에서의 구원의 방주는 예수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창세기7-8장).
부지중에 사람들을 다치게 한 자가 죽음을 피하기 위해 도망갔던 도피성도 신약시대의 예수 님을 가리킵니다(신명기19장). 예수그리스도 안으로 피하는 자들, 주님 앞으로 달려가는 자들은 주님이 책임지십니다. 주께 피하는 영혼을 주님의 능력으로 구원해주신다고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내 인생의 영원하고도 유일한 안전지대 되신 예수 님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을 확신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큰 은혜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3. 생명의 성령의 법안에 거하려면 생각을 바꾸어야합니다(5-11)
회개하며 삽시다. 회개는 생각을 바꾸어 넣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대조해 놓았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새 생명과 평안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회개한다\\\'는 헬라어 \\\'메타노이아\\\'라는 말은 \\\'생각을 바꾸어 갈아넣는다\\\'는 뜻입니다. 생각을 바꾸어 넣는 것이 회개입니다. 우리가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것은 생각이 바뀌어야 가능합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고는, 불의한 길에서 돌아설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 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생각은 선과 악을 결정합니다(5-6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성령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성령의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은 이럴 때 무슨 생각을 하실까?\\\"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5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무엇을 품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중심, 자기 교만, 자기 욕심, 이런 것들은 모두 육신의 생각인데 이런 것으로는 하늘나라의 유업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귀는 사람의 생각을 나쁘게 만듭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 님을 팔 때, 그 마음속에 예수를 팔 생각을 마귀가 넣어주었습니다. 마귀는 약한 것인데, 우리의 생각을 악하게 만드는 것이 마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선하게 만드십니다. 영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을 선하게 만들어주십니다. 영의 생각은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을 바르게 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은 불의한 생각을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말은 생각이 바꾸어졌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자기 생각을 스스로 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조절하기 위해서 성령께 내 마음의 생각을 다스리도록 그 분께 완전히 맡겨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나쁜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나쁜 생각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나쁜 생각을 오래 품으면 그것이 내 속에서 싹이 나기 시작합니다. 인간은 그때부터 악해지기 시작합니다. 새가 내 머리 위에 앉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새가 내 머리에서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내게 책임이 있습니다. 잠언서 4:23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키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까? 이것은 마치 봄에 곡식을 심는 사람이, 밭을 잘 가꾼다고 좋은 알곡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밭에 좋은 곡식, 밭이 좋은 알곡으로 채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즉 영의 생각을 심으면,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으로 채워집니다.
둘째, 생각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7-9).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행복한 사람은 항상 행복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해지고, 불행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행복과 불행은 환경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 자기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불평하고, 불만하고, 탄식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쓴잔을 스스로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감사할 것을 생각하고, 좋은 것을 생각하면서 그 마음을 항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채울 때, 그 사람은 행복해집니다. 천국을 생각하고,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속에 생각하면서,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약속을 확신하며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늘 감사할 것을 찾고, 마음에 항상 은혜로운 것을 생각할 때, 행복하게 됩니다.
섭섭한 생각, 미운 생각, 원통한 생각, 분한 생각을 품고 있으면, 불행해집니다. 이런 생각이 날 때,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주님의 겸손하신 모습을 생각하면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가난할 때, 가난을 원망하지 말고,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신 주님을 생각하고, 고난이나 환난이 닥칠 때, 주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고, 내가 배신을 당해서 억울할 때 제자들로부터 배신당하신 주님의 고통을 생각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빌라도의 법정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서도 \\\"아버지여, 저들은 알지 못하여 그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시던 주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기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오늘날까지 살아오는 동안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와 축복을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한 마음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혜라.\\\" 이 찬양이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잠 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모아놓은 이 잠언서는, 현재 우리의 삶을 위한 중요한 교훈입니다. 마음의 근심은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영의 생각은 평안이요, 육신의 생각은 근심입니다. 영적인 생각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생각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셋째, 생각은 성공과 실패를 결정합니다(10-11).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살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우리의 모든 것이 다 살아납니다. 죽을 몸을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체를 살려놓으신다는 것입니다. 성공은 살려내는 것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는데, 가난에서부터 살려놓고, 비록 초라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인격을 살려놓습니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환경이나 교육이나 부모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 달려있습니다. 영적인 생각은 창조적인 인생을 살게 해줍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간 사람들은 모두 생각을 살게 해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안될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될 것을 생각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서 산 사람들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면, 죽을 몸이 살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모든 불행한 환경을 살려서 성공적이며, 행복하며, 위대한 인격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성령은 살리는 영입니다. 예수 님께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살려 놓으셨습니다. 병든 자를 살려놓으셨습니다. 죄인들을 의롭게 살려 놓으셨습니다. 쓸모 없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쓸모 있고, 위대한 인간으로 살려놓으셨습니다. 우리의 인격도 살아나고, 육신도 살아나고, 생활도 사업도 살아날 수 있기 위해서는 생각이 살아나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생각입니다.
청주에서 살고있는 김경섭이라는 한 신체 장애자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서 유아시절 때 아주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아버지가 늘 술만 마시고, 도박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논 팔고, 밭 팔아서 집 팔고 모두 도박으로 날려버리고, 어머니가 삯바느질해서 근근히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도박해서 돈을 모두 잃어버리고, 눈이 벌개져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아내에게 \\\"돈 내놔\\\"하고 졸라댔습니다. \\\"여보, 논 팔고, 밭 팔고, 집 팔아 전세 집에 들어와서 삯바느질로 사는데 무슨 돈이 있소?\\\" \\\"삯바느질해서 번 돈 있잖아. 내놔.\\\" \\\"없어요. 이 아이들 먹여 살려야 하잖아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화가 불같이 치밀어 올라서, 옆에서 잠을 자고 있던 아들을 들어서 마당에 던졌습니다. 그 일로 인해 이 아들은 척추가 어긋나고, 다리가 부러져서 장애자가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자라나면서, 아버지를 몹시 미워하고, 큰 원한을 품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칼로 찔러 죽이고 싶은 충동도 생겼습니다. 동네에서는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 신세가 너무나 비참해서 울기도 한없이 울었습니다. 심지어 자살하고 싶은 생각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이러는 동안 그는 목사님의 심방도 받고 교회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성경을 보고, 기도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는 중에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 영감을 준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이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리라.\\\" 그에게 두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첫째, 자기도 무엇인가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둘째, 아버지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 아버지를 사랑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골방에 들어가서 공부만 했습니다. 그래서 수재가 되고, 사법시험에 합격을 하여 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영이 그의 속에 들어오니까, 아버지에 대한 원한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극진한 효심으로 섬겼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은 그가 판사가 된 것보다도, 효성을 지극히 하는 그의 아들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자기를 장애로 만들었는데도, 그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이런 아버지를 만나게 하였고, 내가 장애자가 되었으나, 내가 장애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생각하나 바꿈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아버지를 원망하고, 자기 신세 타령이나 하다가 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 님의 영감을 받은 후부터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생각이 그를 살려 놓았습니다.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시간, 우리 속의 생각을 하나님 편으로 살려 놓읍시다. 육신의 생각은 땅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땅으로 생각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 편으로 생각을 높이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을 계속 높일 때, 우리의 인격이 달라지고, 운명이 바뀌어지고, 불행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으로, 실패한 사람은 성공하는 놀라운 변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적으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13) 영이 육을 통제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육신대로 살면 죽습니다. 영이 육을 죽여야 비로소 성도의 순결한 힘이 생깁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십시오. 육신의 정욕과 욕망의 인도를 받지 말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십시오! 성령의 감화 감동, 이끄심에 순종하여 육의 생각과 욕망을 죽이며 사십시오.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 속에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여러분의 영도 더욱 강건하여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로 이 한 세상을 이기며 사시기를 예수 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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