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롬8:26-27



인간은 연약합니다. 인간이 강한 것 같지만 참 연약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26절)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말씀은 그 만큼 우리 인간 연약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성경은 우리 인간을 떨어지면 바싹 깨어지는 질그릇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공감하는 진리는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강한 것 같지만 약하다는 것입니다.

어제 신문에 글리벡이라는 새로운 약품이 개발되어 암정복의 새 지평이 열리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은 연약합니다. 병원엘 가보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지 모릅니다. 대형병원은 한번 입원할려면 병실이 없어서 몇 달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우리 인간은 약합니다. 질병에도 약합니다. 유혹에도 약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유혹 앞에 넘어졌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도 유혹 앞에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의지도 약합니다. 그래서 찬송가의 가사에도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 화를 내지 말아야지, 술을 먹지 말아야지, 담배를 끊어야지, 2차는 가지 말아야지, 올해는 성경 1독은 해야지, 매일 1시간은 기도해야지, 6시 이후에는 음식을 먹지 말아야지, 마음먹은대로 잘 안됩니다.

완전한 인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완전을 요구하지 마세요. 목사인 저에게도 완전을 요구하지 마세요.
우리는 다 부족한 인간입니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인간으로서의 연약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한 우리 인간은 연약이라는 십자가를 벗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할지라도 인간의 이 연약성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무리하면 몸살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성령이 충만하다고 해도 잠을 자지 않고 살수는 없습니다. 믿음좋고 성령충만한 사람도 잠을 자야합니다. 먹어야합니다. 운동을 해야 합니다.

왜 우리 인간이 이렇게 연약해졌습니까?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이 이렇게 연약해졌습니다. 죄가 우리 인간세계에 들어옴으로 우리 인간이 이렇게 연약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타락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연약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범죄하기 전 아담과 하와는 연약하지 않았습니다. 타잔처럼 정글을 누비며 살았습니다. 짐승들과 어울려 뒹굴어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생머리가 아파서 타이레놀을 먹는다거나 감기 몸살에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인간의 연약함은 바로 죄로 말미암는 타락의 결과입니다.
□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도울려면 먼저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합니다. 알지 못하고 어떻게 도와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유혹에 얼마나 약하고, 질병에 얼마나 약하고,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쓰러지고 넘어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의 약함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그 사람은 교인은 될련지 몰라도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반드시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 성령님이 내주해 계십니다. 그런데 그 성령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보혜사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니리\\\"(요14:16) 그러면 보혜사란 무슨 의미입니까? 조력자, 돕는 자, 위로자, 격려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우리 안에 찾아오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어떻게 우리를 도우십니까?
우리를 슈펴맨이나 천사와 같은 존재로 만들어서 우리의 연약함을 이길 수 있게 하실까요? 물론 터미네이터, 베트멘, 맥가이버, 로보캅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서 인간의 연약함을 극복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네피림을 저주하셨습니다.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 없이 강한자들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없이 강한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한 자를 찾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강한 자로 만들어서 연약함을 이기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을 그대로 놓아 둔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여기서 돕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함께 담당한다\\\" \\\"함께 맞잡아 준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이 베다니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을 방문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열심히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일을 하는데 마리아는 손에 물 하나 묻히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기만 합니다. 그러니까 마르다가 열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저를 명하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라고 말합니다. 바로 거기에 나온 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그렇게 도우시되 \\\"너는 저기 가서 가만히 앉아 있어 내가 다 해 줄게\\\" 이런 식으로 도우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제를 함께 담당해 주심으로 함께 맞잡아 줌으로 , 다시 말하면 감당할 수 있게 해 줌으로 연약함을 이기게 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그대로 두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도움을 따르려고 할 때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우리 안에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와 동행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하지 않다면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연약함을 탄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우리를 실패케하는 조건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애물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만드는 비결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가 짊어지고 있는 약함을 불평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성령님을 내 안에 머물게 하는 조건이 되기에 도리어 바울처럼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노라\\\"(고후12:9)
이것은 아무나 고백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의 연약을 영의 눈으로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 성령님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십니까?
1.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26절)
성령님은 가장 먼저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가 약해지면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없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우리 안에 내주해 계시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에만 도우힙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기 위한 생명줄과도 같습니다. 기도 하지 않고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의 시간이 짧아지면 우리의 영혼은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심으로 도우십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이란?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탄식을 말합니다. 사람은 말로서 표현할 수 없을 때 신음을 합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은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할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안에서 탄식하며 기도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친히 기도하십니다. 방언의 은사가 임할 때 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내용들이 많은 경우 영의 탄식입니다. 기도의 깊은 단계에 들어가면 성령님의 탄식을 경험하게 됩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면 탄식하면서까지 기도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 로마서 8장에는 탄식이라는 말이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26절에 \\\"이와 같이\\\" 그 말은 바로 탄식을 말합니다.
① 피조물의 탄식
피조물도 탄식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 탄식한다는 것입니다. 왜 저 하늘의 별들과 하늘을 나는 새들과 많은 짐승과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이 왜 탄식할까요?
21절을 보면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
무슨 말입니까?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도 구원을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다리느냐? 하면 탄식하며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왜 탄식하며 기다립니까? 그들에게 임한 저주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피조물들도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타락하자 인간에게만 저주가 임한 것이 아니라 자연 환경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 땅은 가시덤불과 엉컹퀴를 내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지금 인간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피조물은 자신들의 구원을 갈망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② 성령받은 하나님의 사람의 탄식
성령받은 하나님의 사람도 탄식합니다. 23절을 볼까요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피조물만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받은 우리 피조물들도 함께 탄식합니다.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며 탄식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인구원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혼만 구원받고 육체는 구원받지 못한다거나 육체만 구원받고 영혼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영과 혼과 육까지도 구원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우리의 영혼은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육체는 부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죄성이 있고 우리의 육체는 죽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받은 하나님의 사람도 그 몸의 구속을 기다리며 탄식합니다. 우리 주님이 속히 재림하시기를 기대하면서 탄식합니다.
③ 불신자 영혼의 탄식
불신자의 영혼이 탄식합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도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없는 몸은 없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자들의 영혼은 지금 죄의 법 아래 놓여 있습니다. 죄에 묶여 있습니다. 죽음의 법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불타는 지옥의 불못에 떨어질 것을 그들의 영혼은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탄식합니다. 나의 영혼을 이 죄에서 구원해 주세요. 나는 저 영원한 지옥의 불못에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세요. 믿는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교회 앞을 지나갈 떄마다 믿는 사람을 만날 떄마다 그렇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그 믿지 않는 자들의 영혼의 탄식 소리를 들었습니까? 왜 그들의 신음 소리를 외면하십니까? 각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영혼을 살리시려고 우리를 부르시고 직분도 주시고 은사도 주시고 기업도 주시고 가정도 주시고 직장도 주셨는데 당신은 지금까지 몇 사람의 영혼을 생명의 주님에게로 인도하셨습니까? 당신은 지금 누구의 이름을 불러 가며 그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까? 회개하셔야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해야하는 이유는 저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죽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일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합니다.
④ 성령님의 탄식
그러니까 피조물도 탄식하고 성령받은 하나님의 사람도 탄식하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도 탄식합니다. 그것이 바로 26절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가 빌바를 알지 못할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기도를 도우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2.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심으로 도우십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27절)
신앙생활의 제일 어려운 부분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우왕 좌왕 하면서 기도할 떄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성령님은 직접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시기도 하시지만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여 주심으로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기도할 떄 성령님이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그 하나님의 뜻을 기도하게 하소서....
우리는 약합니다,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부모입니까? 남편입니까? 친구입니까? 직자의 상사입니까? 물질입니까? 그것은 어느 정도의 도움은 될 수 있지만 진정한 도움은 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도울 힘이 없는 연약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저와 여러분을 도와 주시려고 우리 안에 찾아오셨습니다. 이 험한 세상 나그네길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살기를 원한다면 기도의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분은 기도하는 자를 도우십니다.
여러분이 약하기 때문에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십니다. 당신의 약함 앞에서 좌절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약함을 정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의 약함을 발견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약함을 도리어 자랑하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약함을 인하여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겸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약함이 무엇입니까? 이제 그것을 끌어안고 탄식하지 말고 그것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성령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면 기도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땀방울을 흘리십시오. 그분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