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 행전은 성령 행전 행28:23-31 오늘로서 저희가 사도행전을 살펴 온지 114번째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약 3년 동안 사도행전을 공부한 것입니다. 첫 번째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저가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도행전 속에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매우 힘있게 나타나고 일어난다고 해서 사도행전을 성령 행전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이 성령 행전 사도행전을 잃고, 깨닫고, 체험하기까지 하여 시간시간 성령의 인도 충만하심의 역사가 우리 가슴에 일어나고, 교회에 더욱 일어나고, 가정 가정에 나타나는 시간들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라고 했는데 성령의 나타남과 역사가 여러분들의 개인에게, 가정에, 우리 교회에 있었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옆에 분들에게 물어 봅시다. “성령의 나타남이 있었습니까?” 사도행전을 요약하면, 교회의 확장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곳에는 부흥이 일어났고, 그 부흥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확산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과 교회들은 계속해서 부흥했고, 복음을 전달하지 않은 교회들은 소멸해 갔습니다. 성령은 불과 같고, 물과 같습니다. 성령은 살아 있습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움직입니다. 가두어 둘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내 안에 가두어 놓으려고 할 때,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물이 흘러 내려가지 않고 고여있으면 섞는 원리와 같습니다. 중세기 1000년 동안 유럽에 암흑시대가 찾아 왔습니다. 끝없는 전쟁이 일어나서 온 유럽을 참혹한 전쟁터로 물들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신앙적으로 해석해 볼 때,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유럽사람들이 엄청나게 웅장한 성당을 만들고, 금실로 만든 황금 도포를 입고, 금지팡이를 들고 교황이 왕보다 더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를 교회의 제도나 건물 안에 가두어 두려고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분명히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교회 건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회건물에 필요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여, 교회건물이 웅장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강하게 역사 하시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교회 건물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양육 받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사람들의 허세나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서 건축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령을 내 것으로 붙잡아 둘려고 할 때, 욕심이 생기고 순결한 신앙이 사라집니다. 부흥이 강하게 일어나면,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자기 교회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은 성경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을 자기 안에 가두어 두려는 욕심에 불과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내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우리 교회에서 지역과 다른 민족에게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가 흘러나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그렇게 고대하던 로마에 도착해서 보냈던 2년여 시간들을 함께 나누게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이기도 하지만 사도행전이 지향하고 있는 결론이기도합니다. 사도행전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절)는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말하고 싶어합니다.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으로는 로마가 땅 끝이었습니다. 복음이 사마리아와 안디옥 그리고 소아시아지역과 유럽을 거쳐서 이제는 로마에까지 즉 땅 끝까지 이르게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그랬습니다. 마지막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아직도 복음은 증거 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행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의 행전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뒤를 잇는 많은 그리스도인들, 성도들의 행전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행전은 미완성의 책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은 미완성의 장입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사도행전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통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날 비로소 사도행전의 역사는 완성될 것입니다. 중국에 복음을 가지고 들어간 허드슨 테일러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나라에 복음을 가지고 들어왔던 알렌, 아펜젤러, 언더우드와 같은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계속되는 성도들의 행전이 기록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누가는 \\\\\\\"복음을 전하되 금하는 사람이 없더라\\\\\\\"는 말로 끝을 맺은 것입니다. 아직도 복음은 계속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23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도착해서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바로 17절에 보면 유대인들 가운데 유력한 자들을 불렀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소망했던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몸이 아니라 죄수의 몸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자기 연민이나 회의에 빠져 있을 시간이 바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모든 관심은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죄수의 몸으로 있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만 골몰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의 유력한 자들은 바울과 상견례를 한 후에 다시 날짜를 정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정한 날자가 되자 본문 23절에 “많은 사람들이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한 내용을 누가는 딱 두 마디로 요약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전파했던 말씀이 무엇입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 번째 하신 말씀도 무엇이었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그 후로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계속해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사람은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공생애 내내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민의 사고방식, 천국 민의 생활양식, 천국의 다양한 모습, 천국이 이 땅에 만연한 왜곡을 치유하는 것임을 말씀하시고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나타나셨을 때에도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셨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곧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요? 나라라는 것은 통치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참된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시키고 타락과 왜곡가운데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천국 시민권을 발부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것은 오고 오는 세대의 영원한 주제입니다. 어디를 가나 우리의 복음 전도 현장에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바울이 누구입니까? 복음 전도에 있어서는 백전노장입니다.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다양한 지역을 다녔습니다.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강퍅한 사람, 순전한 사람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울이 가는 곳마다 승리했으며 전하는 사람마다 다 믿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는 곳마다 핍박이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선교를 이런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실패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항상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참으로 자신을 위해서나 공동체를 위해서 불행한 일입니다. 어쨌든 로마에서의 복음 전도 역시 다 좋아하고 다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서로 맞지 않아서 흩어졌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설교할 때나 전도할 때 상대방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만큼 설교자를 좌절시키는 것이 없고 전도자를 좌절시키는 것이 없습니다. 설교자는 힘을 주며 목소리를 높이어 외치고 있는데 팔짱을 끼고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있거나 딴청을 부리든지 옆 사람과 잡담을 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슬퍼집니다. 성경은 때가 되면 사람들이 귀가 가려워서 여러 선생을 두고 배우려고 하지만 진리에 대해서는 귀가 가리워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갖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든 사람을 복음화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약 복음이 전해지는 대로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회심했다면 이 세상은 벌써 전부 복음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마음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교만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자신들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썩어질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으로 바꾸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얼마나 전도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전도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끊임없이 어떻게 이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에 착념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복음을 증거 하십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25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분쟁하며 떠나는 사람들을 보고 사도 바울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책망합니다. 본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실 때 그가 어떠한 말을 하여도 백성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완악하여 이사야의 말을 청종치 아니함으로써 마침내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것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 말씀을 이사야 시대 백성의 후손들에게 적응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의 완악함으로 인해서 이제 이 구원의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지요. 귀로는 둔하게 듣고 눈은 감겨진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시각에 취해서 예수를 외면했습니다. 자신들이 가공해낸 메시아, 자신들이 재해석해서 만들어 놓은 율법에 만족해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오셔서 당신이 메시아이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율법이 참된 율법이 아님을 지적하셨을 때 그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까지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은 바울의 복음 전도에 있어서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우리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닙니까? 우리가 가진 어떤 생각의 벽에 갇혀서, 우리가 처한 어떤 상황의 벽에 갇혀서, 우리가 가진 잘못된 습관의 벽에 갇혀서 복음을 들어도 감동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된 것은 아닙니까? 왜 사람들은 설교를 매주 듣지만 깨닫지 못하고 변화 받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귀로는 듣고 다 비판할 수 있지만 그러나 마음에 들려오지 않기 때문에 평생 설교를 들어도 지옥에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했고, 유대인들이 그러했습니다.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의 내용이 옳고 그른 것과 관계없이 “나는 네가 싫다! 안 듣겠다”하고 마음을 닫아 버린 것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는 말은 무능하다는 뜻이 아니라 안하겠다고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생각을 하면 아무리 하나님의 목소리가 커도 안 들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강퍅한 마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도 마음이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귀에 들려오지만 아무 도움도 안 될 수가 있습니다. 비극 중에 비극입니다. 복음은 지식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복음은 단순한 지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복음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수술하는 수술용 메스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음 청종하는 사람들, 복음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는 자들에게 능력입니다. 다른 무엇에 마음을 빼앗겨서 복음을 들을 수 없다면 그는 유대인들과 똑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바울의 전도에 있어서 항상 유대인들 먼저 그리고 그들이 거부할 때 이방인들에게로 나갔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전도에 있어서도 제자들의 전도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 원리였습니다. 물론 이방인이라는 점에서 바울과 다르기는 합니다만 복음을 듣지 않는 자들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주님이 사도를 이방인을 위한 당신의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 역할을 다하게 하신 것입니다. 30-31절입니다........................................................... 이런 바울의 복음 전도는 그 후로도 2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에 대한 재판이 2년 동안이나 연기되었거나 판결이 유보된 상태로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바울을 고소했던 유대인들은 재판의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재판 과정에서 구체적인 증거 없이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고소로 여겨질 때는 그에 대한 응징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법정 고소 만료일인 18개월이 지나도록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석(缺席) 재판으로 진행되었고 바울이 무죄 판결을 받아 석방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셋집에서 2년을 보내면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 때 우리가 다음 주부터 살펴보려고 하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후원을 해 주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빌4:1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그랬습니다. 아마도 빌립보 교회는 계속 바울과 연락이 있었으며 로마에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바울을 후원하는 아름다운 교회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바울은 다른 것에 마음을 쓰지 않고 비록 감옥 아닌 감옥에 있을 망정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행1:3절에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던 것을 기어하시지요. 그리고 사도행전의 마지막 구절 역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천국,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우리가 바르게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도래시키고 확장하셨습니다. 이 땅에 임한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천국의 시민권자가 되는 것은 바로 그 천국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분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그분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속해있던 사탄의 통치, 사탄의 나라로부터 그 시민권을 하나님의 나라로 옮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탄의 나라 국적을 포기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천국의 백성들이 된 사람들은 이제 그 천국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하는 사람이 천국이 좋아야 합니다. 정말 좋아서 그 천국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는 그 천국이 좋아서, 너무나 좋아서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도 행전의 후속 편에는 성도들의 행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는 그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석방되었다가 곧 다시 체포되어 순교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2년 후에 네로 황제의 핍박 때에 순교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사도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다가 후회 없는 인생! 아름다운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 주면서 영원한 천국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바통은 지금 저와 여러분들에게 쥐어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행전에는 어떤 것들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 바통을 쥐고 이리 저리 방황하느라 여기까지 와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사도 바울과 같이 최선을 다해서 그 바통을 가지고 행전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또한 과거에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기록될 우리들, 성도들의 행전에는 어떤 것들이 기록되기를 원하십니까?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이 땅에 참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일에 귀하게 사용되시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나타남과 능력의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