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한 스데반


성령 충만한 스데반
행7:51-60





행 7:51-60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들어가는 말
6월 달은 성령 충만의 달로 정하였습니다. 성령 충만함이란 한 마디로 말하기란 그리 수월한 문제는 아닙니다. 성령은 제 3위신임을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충만 이란 가득 넘치는 것을 말겠습니다.
하나님이 신이 흘러넘치는 상태를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성령충만한 사실을 설명할 수 있어도 실제적으로 성령 충만함이 어떤 상태냐 하는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생각되어지는 것은 성령 충만한 사도들의 모습에서 이런 것이 진정으로 성령의 충만한 것이다. 라고 말할 수는 있다.
봉독한 말씀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인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스데반 집사는 성령이 충만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선택의 기준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신앙을 소유한 스데반 집사님은 성령의 충만한 성도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스데반집사님의 성령 충만한 삶은 어떠한가를 생각하면서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Ⅰ. 자신을 극복한 사람이다.

이 말은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이야기나 다를 바가 없다. 이기주의를 극복한 사람이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세인들은 말하기를 3살 난 아이도 자기 살줄 안다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스데반 집사는 자기 살줄 모른 사람이다.
자신을 부인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될만한 충분한 사람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따르려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기를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스데반 집사님이 바로 이 같은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자신을 극복하는 일은 인간의 노력에 의한 산물이 아닙니다. 다만 성령 충만한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분문에서 보면 행 7:51-53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감히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이 같은 말을 하는 일은 자신을 의식한다면 감히 할 수 없는 말들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기득권자요 세상의 권력과 능력을 소유한자들입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자신에 신분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장래를 보장받지 못합니다. 이단으로 정죄되어 출교를 당하거나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몰수당하거나 파탄당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이 같은 여건 속에서 당돌하고 대담하게 예수를 죽였다고 저들의 전곡을 찌르는 말을 한 것은 자연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성령 충만은 겁쟁이를 담대하게 합니다. 소극적인 사람이 적극적이 됩니다. 우울한 성격이 명랑한 성격으로 바뀝니다. 스데반은 인간적인 생래의 용기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용기를 가지고 대담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어떤 상황과 압력에도 굽히지 않는 신앙의 정절을 보여줍니다. 죽음 앞에서도 할말을 하는 사람이며 자신의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같이 메마르고 급변하는 세상에서 신앙인에게 기대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신선한 용기와 담력입니다. 샘솟듯 하는 용기의 사람입니다.

❐ J. F. Kennedy의 미망인 Jackline여사의 말
그 남편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역사 가운데 이따금씩 용기 있는 사람을 보낸다. 그래서 그 시대의 영웅으로 인하여 비겁한 사람을 격려하고 잠들었던 인간성의 잠재력을 일깨워낸다. 그리고 대중은 그 용기의 태양이 졌을 때 비로소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그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라는 말을 하였다.

스데반 집사는 그 시대의 용기의 태양이었습니다. 교회 안으로 밖으로 그에게 적대하는 많은 세력이 있었지만 그는 그 사람들의 오해와 고집을 초월하며 그의 신앙을 증거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과 그것에 근거한 용기였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성령님의 격려에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당시 교만했던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 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하지 아니하였느냐\\\"(행 7:51-52). 할례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을 자극하고 분노를 사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증언 때문에 돌에 맞았고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의 태양이 지고 났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참된 용기였으며 하나님께서 그 교회와 그 시대에 주신 위대한 선물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것이 성령의 충만한 역사입니다.

성령 충만은 사람과 환경을 초월한 진정한 용기를 줍니다. 마치 천사처럼 회중 가운데 용맹스럽게 설 수 있게 해줍니다.

❐ 천사의 인식
천사는 곱고 희고 부드러운 존재로 인식합니다. 그렇지만 않습니다. 이같은 사상은 우리들이 가진 여성 취향의 편견에서 온 것입니다. 동화책이나 꿈결 같은 문학의 이야기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성경의 천사는 재빠르고 힘차고 용기 있는 존재입니다. 끝까지 일을 성취하고야 마는 독수리 같고 웅크린 사자 같고 변함없이 일하는 소와 같은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은 여러분과 저로 하여금 인간보다 용기 있고 힘찬 천사 같은 얼굴의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 독수리 같은 신앙의 기상을 사자 같은 신앙의 위엄을 소 같은 신앙의 덕성을 나타내시는 분은 성령 충만한 성도들입니다.
이시대의 위대한 담력을 가진 성도들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임을 알아 항상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Ⅱ. 말씀을 논리적으로 전하는 사람이다.

스데반 집사님은 7장 1절에서부터 변론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말씀전하는 모습은 논리적이요 합리적으로 역사성을 가지고 당시 집권자들에게 공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그들에게 예수를 죽인 것은 당신들이라고 하는 것을 가차 없이 공격함으로 듣다 못한 바리새인들은 돌을 들어 스데반 집사를 쳐 죽여 순교하게 한 것입니다.
이 지식과 지혜를 소유하게 됨도 스데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한데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님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입니다. 다만 그에게 성경은 말하기를 성령 충만함이 지혜의 사람으로 만들어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얼마나 배운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신령한 지혜가 넘쳤기 때문에 그의 변론을 사람이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지식과 경험을 누르고 말씀의 권위가 그들을 압도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행 6:10에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것을 저희가 능히 감당치 못하였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께 구하여 성령의 지혜로 말한다면 여러분의 은혜롭고 권능 있는 말씀에 대항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말씀에 은혜를 받든지 아니면 여러분을 공격하든지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지혜로 행동해 보세요. 사람들은 여러분에게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든지 아니면 여러분을 잡아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 눅 6:26 말씀에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 사도 바울은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의의 병기로 행하는 동안 언제나 영광과 욕됨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 속에 부대끼며 살았습니다(고후 6:7-8).
고후 6:7-8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8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 요셉과 다니엘을 보십시오.
그들도 성령으로 행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위했는가 하면 이유 없이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자신들의 악으로 그들을 모해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할 때는 사람들이 더 선해지든지 아니면 더 악해진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 Shakespere가 \\\"살모사는 태양이 비치는 맑은 날에는 살살 기어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선한 사람은 그 가운데서 더 선해집니다. 악한 사람은 더 악해집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로 하여금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하도록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파문을 일으키며 주의 일을 일으키고 성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인과 악인으로 보게끔 만들어 줍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로 하여금 이 불신의 세속세계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과 복음의 영향력을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성령께서 지혜로 역사하는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증거의 삶을 살도록 하실 것입니다. 필요하면 축복과 형통과 성공의 삶도 주실 것입니다. 성령은 오늘도 기적을 행하십니다. 안 되는 곳에서 되게 하면 기적이 아닙니까? 가난한 자리에서 축복해 주심으로 부요하게 되었다면 그보다 더 확실한 기적이 어디 있습니까? 싸움하던 가정에 화평이 일어나도 기적입니다. 40-50세가 되도록 사고가 없으면 기적입니다.

Ⅲ.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사람이다.

행 7:59-60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저희가 돌로 치는 가운데 스데반집사님이 기도한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는 말을 하고 잤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죽음 앞에서 이 같은 기도를 할 수 있느냐 입니다. 범인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심판을 부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살아 계시다면 저들을 심판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먼저 마음으로부터 정죄하고 자신의 의를 손상하게 한 사람들에게 저주하며 불평 불만하는 것이 세상의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죽은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용서를 부탁하는 스데반 집사님의 정신적인 사고는 인간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성령 충만의 역사입니다.
예수님도 마지막 죽음 앞에서 가상 칠언 중에 저들이 알지 못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며 운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답게 마지막 죽음 앞에서 이웃 사랑의 새로운 계명을 성실하게 지키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웃 사랑은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새로운 계명으로 주었습니다. 이 것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상급을 받겠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백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이웃 사랑에 대한 선행에 상급을 받도록 하십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 까지 줄 것이며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야할 것이며 오른 뺨을 때리면 왼뺨을 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웃 사랑은 타락한 인간은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인들은 이웃 사랑을 하여야 하는데 이 것은 인간이 마음먹어서 되는 노릇이 아닙니다. 노력해서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성령 충만의 산물입니다. 그럼으로 마지막 죽음 앞에서 이웃 사랑을 소홀함이 없이 스데반 집사님은 성령이 충만함으로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웃 사랑은 다른 사람이 한다고 하여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흉내 내는 일은 표리가 부동함으로 외식이 됨으로 외시기의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령 충만한 자만이 진정으로 이웃 사랑을 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을 할 수 없다고 하여 다른 사람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정죄해서도 안 됩니다. 자신이 성령 충만하지 못해서 하지 못함을 한하여 성령 충만을 받는 성도 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맺는 말

성령 충만을 받음으로서만
1) 자신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2) 논리정연하게 말씀을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3)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은 스데반으로 하여금 역사에 바울이란 위대한 열매를 맺게 하였습니다. 행 7-8장을 보세요. 스데반의 죽음은 바울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기독교로 전환하는 해였습니다. 그때 생긴 내적 갈등이 다메섹 도상에서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역사 가운데 반드시 위대한 영적 영향을 끼칩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성령의 충만한 죽음은 한알의 밀알이 되어 죽은 것입니다. 그럼으로 1000년의 하나 나올까 말까한 위대한 바울을 탄생시킨 성령의 충만한 죽음으로서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들의 삶과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굵은 회기을 긋는 역사가 있게 합니다. 우리들의 죽음을 통하여 성령 충만은 강한 영향력을 미치게 합니다. 성령충만의 역사에 순종하여 사십시오. 잠시 지나가는 인생 여러분의 삶의 자취가 찬란한 발자국으로 점철되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