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성령으로 기도할 때 행4:23-31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들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알리니 그들이 듣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 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이시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 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4:23-31)
교회 - 사랑과 위로의 공동체
사람들마다 외롭고 힘들 때 찾아가는 곳이 다릅니다. 친구에게 가는 사람도 있고, 술집이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서 함께 어울리면서 힘들고 외로운 것을 잊으려고 합니다. 성도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힘든 일들을 만나면 누구에게 찾아가십니까?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게서 더 이상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도 말고 그의 이름을 전파하지도 말라는 위협을 받고 풀려난 베드로와 요한의 심정은 얼마든지 의기소침해 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계속해서 예수의 이름을 전하다가는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십자가형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위협을 느낀 나머지 몰래 도망을 가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풀려나자마자 곧 바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On their release, Peter and John went back to their own people.) 그들을 만나자마자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들었던 위협적인 말들을 모두 전합니다. 그들에게도 두려움과 떨림이 있었지만 자신들이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어 새로운 힘을 가질 수 있는 곳은 오직 믿음의 동료들뿐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이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나눌 믿음의 동료들을 찾아갔고 그들 동료들은 이 두 사람을 위하여 합심으로 기도를 드렸다는 것에서 귀중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교회야말로 성도들의 어려움과 고통의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믿음의 공동체라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베드로와 요한이 풀려난 후에 함께 위로하며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믿음의 동료들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들은 자신들만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함께 고통도 나누고 힘든 일도 같이 나눌 수 있는 믿음의 동료들이 있다는 것 때문에 그들은 절대로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들은 모든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사람을 위로하며 함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사도행전 12장에도 이런 비슷한 기사가 나옵니다. 초대교회가 헤롯의 핍박을 받게 되면서 교회의 지도자 가운데 야고보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다시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때 교회는 베드로의 석방과 무사 귀환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헤롯이 베드로를 죽이려고 계획했던 전 날 밤, 주의 천사가 베드로의 감옥으로 찾아와 모든 간수들의 눈을 멀게 한 후 베드로를 구해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이 모든 일이 주의천사가 하신 일 인줄 깨닫고 나오자마자 즉시 동료들이 모여있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행12:1-12)
우리 모두는 외롭고 힘들 때 찾아갈 수 있는 이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이웃에게서 위로와 격려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교회가 바로 이런 곳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프로그램이 아니고 믿는 성도들 자체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이루고 있는 한 지체의 아픔은 곧 다른 지체의 아픔입니다. 교회는 하나의 몸이지만 많은 지체들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지체들의 연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이 서로 같이 걱정하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같이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고후12:25-26)
만약 성도가 한 지역교회에 등록하지 않고 여기 저기 옮겨다닌다면 그는 한 몸인 교회의 지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지체의 아픔을 경험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아픔도 다른 지체들이 아파하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 기도하는 공동체
두 번째로 베드로와 요한이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와서 함께 한 것은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로 혼자 이른 아침 시간이나 조용한 시간에 따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전혀 다른 기도의 형태를 봅니다. 그것은 베드로를 위시한 여러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소리를 내서 통성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시작은 합심기도로부터 이루어 졌습니다. 120명의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을 때도 그들은 일심으로 합심기도를 했습니다. 합심기도의 위력은 성령의 임재와 기적을 가져옵니다. 방언이 터지기도 합니다. 또 합심기도 후에 드리는 뜨거운 찬양은 영혼속에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합심기도의 위력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한 기도 제목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베드로와 요한이 돌아오자 모인 모든 성도들이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했습니다.(They raised their voices together in prayer to God.)
합심기도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합심기도 속에는 공동체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질병이 깨끗해지는 육신의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한 그들은 소리를 내어 기도했습니다. 합심으로 기도를 하다보면 소리를 내어 통성으로 기도를 하게 됩니다. 기도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가슴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영혼의 소리입니다. 따라서 아무나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슴이 답답할 때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합니다. 슬픔이 극에 달해도 가슴을 치며 소리를 지릅니다. 너무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도 소리를 지르며 환호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가장 극단적인 감정의 상태에 있을 때에 소리를 지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성도들의 상황도 이후로는 예수에 관하여 말하지도 말고 전하지도 말라는 위협을 받은 상태에서 드려지는 절규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어찌 조용하게 묵상으로 기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이렇게 절규하지 않고서는 이 위험을 벗어날 수 없었기에 울부짖어 기도합니다.
성도들 가운데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됩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가 바로 이처럼 울부짖어 기도하는 간절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자 자신의 마음의 상태가 절박한 심정이 아닌데, 그가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삶이 끝이라는 이런 절박한 위기의식이 없는데, 왜 하나님께서 급히 나서서 빨리 그 성도의 기도를 응답하셔야만 합니까?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위대한 역사는 바로 이처럼 벼랑 끝에 선 위기의식을 갖고 합심으로 소리높여 통성으로 열심을 다해 기도했던 성도들의 뜨거운 기도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힘은 초대교회를 핍박과 환란으로부터 보호했던 유일한 힘이었습니다.
교회가 기도 없이도 얼마든지 많은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능력이 빠진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아무런 영적인 사건이나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교육을 의존하게되면, 교육이 할 수 있는 결과들을 얻게됩니다. 우리가 조직이나 기구를 의존하게 되면, 그 조직이나 기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얻게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에 의존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결과들을 얻게 됩니다.
저는 우리 능곡교회가 이런 기도의 힘으로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하는 능력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믿음의 성도들에게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마름과 뜻을 합하여 일심으로 통성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이 능곡 지역의 변화를 위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기도 내용
그들이 일심으로 소리 높여 기도를 했을 때 그 기도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기도 내용은 무엇입니까?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 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24절)
첫째,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즉 그들은 \\\"대 주재시여 통치하시는 주님, 지배하시는 주님,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 우주의 주권자이신 주님이시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그들을 핍박하던 무리가 다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통치하시고 지배하시고 섭리하시는 그분, 우주의 주인이신 그분이 느껴지고 실감이 난 것입니다.
둘째, 성령으로 기도할 때 그들은 역사를 통치하시고, 우주를 통치하시고,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만 느낀 것이 아니라,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를 느낀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생을 만드신 분이라면, 그 분에게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라면, 그분에게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내 인생을 만드셨는데, 그분이 못하실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최대의 통찰력은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높은 하나님은 없습니다. 창조의 문제는 본질과 기원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과 인간을 지으셨다는 뜻은 천지 만물과 인간의 본질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하나님을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셋째, 그들이 인식했던 하나님은 성령으로 미리 말씀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우리 하나님은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미리 말씀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대 주재이실 뿐 아니라, 천지와 바다와 만유를 지으신 이일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셔서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을 통해 미리 말씀하신 분입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 (시2:1-2)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핍박받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누가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핍박합니까? 모든 열방이 날뛰며 분노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헛된 일을 계획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의 임금들이 모두 들고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이 함께 모여서 주님과 메시아를 대적할 것이라고 이미 오래 전에 다윗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건이 지금 여기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를 대적했던 일들이 지금 여기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27절)
헤롯과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여 죽였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예수를 적대하던 세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관원들과 통치자들과 임금들과 모든 백성들과 모든 열방들이, 모든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을 거부하고 대적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적했던 사탄의 모든 세력들이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과 빌라도에게 집중됩니다.
예수를 죽이기 위하여 헤롯과 빌라도가 만납니다. 헤롯과 빌라도는 만날 사이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하여 만난 것입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만날 수 있는 집단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 적대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만난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과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방인과 합작하여 예수를 거부하고 결국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처형한 예수는 누구십니까? 오늘 성경에 보면 그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인간이지만 인간만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거룩한 종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종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한 분입니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29절)
그들의 기도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위협과 고난 속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 하는 자는 누구든지 이런 위협과 고난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 당시나 사도행전 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하면 핍박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적대하고 거부하고 반대했던 그 영이 헤롯과 빌라도에게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과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만 아니라, 지금 베드로와 요한을 핍박하기 위해 모인 장로들과 제사장들에게만 있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능력을 주옵소서.
이런 고난과 위협 속에서 그들은 두 가지 기도를 합니다. 하나는 복음 전하는 능력을 위한 기도입니다.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29절)
그들은 고난이나 위협을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위협이 있지만 그 속에서 그들이 포기하지 아니하고, 변명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는 담력과 능력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을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6:19)
제가 여러 성도님 들에게 기도를 부탁드린다면 \\\"설교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지 않고 성경대로 전하게 해주시옵소서\\\"라는 부탁뿐일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온 세계에 전하게 해주시옵소서.\\\"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기도할 것은 바로 \\\"복음의 사도로 순교하게 하옵소서\\\" 이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 나갈 때 무엇이든 자기 능력과 지식으로 됩니까? 안됩니다. 이 사탄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영적 능력, 하늘의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초라한 존재입니까? 자기 자신조차 추스르지 못하는 것이 인간 아닙니까? 자기 성품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 지식이, 그 경험이 무엇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을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은 우리가 배운 지식이 아닙니다. 세상적 위치, 세상에 부여해 준 권력이나 권위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하늘로부터 와야 합니다. 영적인 힘이 있어야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 사도행전에서는 그 능력이 병 고치는 것, 기사와 표적 등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10:1)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돈으로 전도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 지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 지식이 없어서, 신학 지식이 없어서 전도를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식이 많으면 지식에 덮여 아무것도 못합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행동력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을 주심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6:17-18을 보십시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여러분에게 이 능력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능력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 기도가 아니라 하늘의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휴머니즘이나, 동정심, 사랑은 한계가 있습니다. 오직 하늘이 주시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능력밖에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살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용하실 때는 여러분의 지식과 경험과 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훌륭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능력을 주어서 그 일을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세상 지식으로, 세상 방법으로 영혼이 구원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손을 내미는 것은 믿음의 표시이며 안수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표적과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합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는 여기서 고난과 핍박을 이기는 두 가지 비결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말씀에 대한 담대성이요, 둘째 영적인 능력입니다. 그들이 합심하여 소리 높여 이렇게 기도를 마쳤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31절을 보십시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를 마치니 모인 곳이 진동했습니다.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실제로 진동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집이 흔들렸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 집이 흔들리기를 바랍니다. 지진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마음이 흔들리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합심하는 기도요, 주님께 하는 기도입니다. 그 후에 모두 성령이 충만했고, 그 다음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이것은 오순절의 성령 사건과 똑같습니다. 오순절날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리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이것도 진동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담대히 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합심해서 통성으로 기도를 하면, 방언의 기도와 찬양의 기도와 중보의 기도와 영적 전쟁의 기도와 치유의 기도와 선교의 기도를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릴 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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