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받고 비젼을 품으라


성령 받고 비전을 품으라
행1:6-11





금년 6월 8일은 ‘성령 강림절’입니다. 이 날은 또한 우리 교회가 탄생된 기념 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령 강림절에 탄생했습니다. 성령을 받고 변화된 모습으로 전도에 힘쓰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명령을 실천하기 위하여 탄생한 교회입니다. 모두가 한 영혼 한 영혼을 애타게 위하는 마음을 품고 총력 전도 주일에 힘을 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믿음 생활에 활력을 얻고,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가려면, 성령을 체험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으로 뜨거운 마음이 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담대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성령의 도우심이요,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요 14장 15절 이하를 강해하면서, ‘성령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거니와 그의 계명을 지킬 수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즉 이성으로 사는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고 맙니다. 나아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소망을 삼은 사람도 보이는 물질로 말미암아 그대로 나자빠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40일간을 제자들과 함께 거하시고 나서 분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장 4절)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공포의 중심지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한 도시요, 다른 제자들도 몸을 피하여 숨은 곳이었습니다. 이곳을 떠나지 말라 하셨고,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곳에 모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늘의 은사를 기다리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1. 첫째로, 성령을 받는 일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사는 로마의 치리에서 나라를 회복하는 일에 있었습니다. “언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시렵니까. 지금입니까.”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영적인데 있었습니다. “내 증인이 되라.” 주님의 답변에는 눈에 보이는 일은 아버지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이니,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장 33절)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눈에 보는 일에 익숙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눈에 보이는 기적에만 더욱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때문에 나라가 해방되는 것도 사람의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들의 사고방식은 오실 메 시야에 대한 생각에서도 잘 드러났는데, 그들은 메시아를 로마의 속박에서 풀어 줄 사람으로 잘못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물질적인 믿음을 가진 그들이 식민지하에서 물질을 우선하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다 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응답은 영적이었습니다. 먼저 성령을 받고 권능을 입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재산을 많이 모아서 독립군을 먹이라는 것도 아니요, 사람을 많이 모아서 폭동을 일으켜 나라를 찾으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사람의 질문과 하나님의 응답은 전적으로 다릅니다. 사람은 물질적으로 묻지만, 하나님은 영적으로 답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새 힘이 솟구쳐 오름을 체험하게 됩니다. 여러 모습으로 방황하였지만, 성령을 체험하고 나서는 이 방황이 끝을 맺게 됩니다. 성 어거스틴은 지식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가한 사람이었으나, 이 지식으로는 번민과 고민만 더 심하여져서 길가에서 동냥하던 거지 신세가 더 행복하다는 생각까지 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던 어거스틴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성령을 체험하게 되었을 때에는, 모든 죄를 회개하게 되었으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롬 5장 5절의 말씀을 읊조리고 다녔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으니.”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셔서 일어나는 영적인 역사입니다. 이 역사가 일어나게 될 때에, 내가 죽게 되고, 기다리는 인내가 생기게 되고, 성령의 더 큰 역사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2. 둘째로, 성령을 받아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몇 해 전에 터키에 위치한 소아시아 에베소에서 원형 극장을 둘러보다가, 함께 크게 찬송을 하는 중에 너무도 큰 은혜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바울과 같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내 마음에 큰 빛과도 같이 임한 것을 체험했습니다. 내 마음이 이상하게도 뜨거워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자,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들이 말씀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여기서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요구한 것은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사는 날까지, 열심으로 주님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늘만 바라보지 말고, 이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주의 일을 더 열심으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천사들이 가르쳐 준 것이 우리 예수님께서 반드시 재림하신 다는 말씀인데, 반드시 재림하실 예수님을 소망가운데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잘 감당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어려울 때도 있고, 낙망할 때도 있고, 지쳐 쓰러질 때도 있으나, 영원히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문을 꽁꽁 잠그고 숨어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명령으로 기다리던 가운데,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행한 것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하늘의 도우심을 입고 각 나라의 방언으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 2장 21절)고 예수님의 이름을 담대하게 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겁이 없어집니다. 악령을 받은 사람도 겁은 없어지기는 마찬가지나, 미쳐 날뛰는 것이기에, 곧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나, 성령을 받은 사람은 모든 두려움이 없어져서 이 담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 성령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것이요, 우리의 모든 인생이 궁극적인 목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거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이 예수님만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옥스포드 대학을 나온 타고난 학자였습니다. 그는 이 대학에서 희랍어와 철학과 논리학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신앙적인 열정은 너무도 뜨거웠습니다. 웨슬리는 옥스포드 대학 시절부터 기도회에 남달리 앞장을 섰고, 동생 찰스가 조직한 신성 구락부(Holy Club)라고 하는 모임을 주도하였습니다. 주일 밤마다 모이던 모임이 매일 밤, 규칙적으로 모이면서 그들은 ‘엄격한 규칙 주의자들’(Methodists)라는 비아냥거리는 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요한 웨슬리는 1735년 원대한 꿈을 안고서 미국 식민지를 향하여 몸을 던졌습니다. 여기서도 그의 믿음은 새벽 4시에 일어나 모든 시간을 성경 연구와 학문 탐구, 상담과 설교, 기도와 자기 성찰에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실패의 잔을 마시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1738년 씁쓸한 귀향 길에 올라 영국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나는 아메리카에 인디언들을 회개 시키러 갔었는데, 그런데 오호라, 누가 나를 회개 시킬 것인가’ 너무도 뜨거운 마음을 가졌던 웨슬리, 모든 지식을 소유하였던 웨슬리, 자신의 지위에 맞게 정확하게 행동했던 웨슬리, 그런데 그의 마음은 씁쓸했으며, 한없이 고독했습니다. 왜 그러했습니까? 아직 웨슬리는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던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귀국 후에, 어느 날 지친 몸과 영혼을 이끌고 1738년 5월 24일 8시 45분에, 올더스게잇 거리의 한 집회에서 그 마음에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야 비로소 죄 사함의 역사를 강하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에 그는 쓸데없는 갈등과 고민이 다 사라짐을 느꼈으며,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죄에서 깨끗이 씻김을 받았다고 하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3. 셋째로, 성령에 따른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체적인 삶이 변화되어야 성령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증표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증표는 첫째, 회개의 마음입니다. 둘째, 내 마음에 기쁨이 있느냐, 셋째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느냐, 넷째,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살고 있느냐, 다섯째,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스스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은사입니다. 그러기에 자랑할 일이 없습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장 7절) 자랑하는 사람들은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알게 하지 않으신다면, 성령을 받은 것 조차도 깨닫지를 못하는 그러한 가련한 인생일지 모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지만,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에,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의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내 이성이 죽습니다. 물질에 맞추며 살던 내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어 다시 살게 됩니다. 이성을 따라 살다 보면 영혼이 피곤해 집니다. 성도는 신령한 것을 사모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고전 14장 12절)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장 15절) 성령을 받아야 우리의 영혼이 살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장 9절 이하)

사랑하는 여러분, 믿을 때에 이러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제자들을 만났을 때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장 1절 이하)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이 있는 지도 몰랐습니다. 또한 세례를 받기는 받았어도, “회개의 세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안수하였을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습니다. 1738년 5월 24일에 성령을 체험한 웨슬리 목사님은 1739년 1월 1일 새벽에 재차 성령의 역사를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그때 모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역사하심을 체험하였고, 기쁨이 넘쳤으며 울음을 터뜨리고 땅에 엎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체험을 하고 나서 그들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나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주님이 되심을 아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주님을 증거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