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문제 수8:1-29
성경을 보면 성경에서 흐르는 큰 물줄기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물줄기가 무엇이냐 하면 죄 문제입니다. 아담과 화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도 죄 때문입니다. 아담과 화와가 저주를 받은 것도 죄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 큰 아들인 가인이 작은 아들 아벨을 죽인 것도 죄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죄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멸망과 심판은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 때문이 아닙니까? 성경의 이야기는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 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능력이 없고 말씀에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주님의 평안이 없는 이유가 바로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진실로 깨닫고 돌아가야 할 사실은 죄 문제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냐하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우리가 습관적으로 그리고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죄가 심각한 수위에 있고 이 죄 때문에 결국 삶의 문제가 이렇게 어렵고 힘든 것이였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은 구약의 사건들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가 다시 한번 헤아려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고 하나님이 얼마나 죄를 미워하시며 저주하시는가 하는 것에 대한 심각함을 새롭게 가지는 좋은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여호수아 8장 1-29까지를 보면 한 성의 사람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아이까지 다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 이렇게 해야만 할까요? 어찌 보면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으로 이해 될 수 있을 만큼 죄가 없어 보이는 아이까지 다 죽이라 했습니다. 여호수아 7장을 보면 아간이 범죄를 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이스라엘백성들 3000명이 아이성을 침공하려 올라갔다가 뼈저린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그 원인이 아간의 범죄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여호수아가 알아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아간을 찾아내어서 죄를 멸하여 버리고 난 다음에야 이스라엘이 거룩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다시 싸울 때, 이 때부터는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이끄시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부분의 싸움보다도 다시 이 아이성을 점령하는 싸움에서는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전략가로 역사하시고 지휘관으로 역사하시고 구체적인 모든 상황까지 다 이야기하십니다. 이 작전에서 적을 완벽하게 다 죽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이야기한다면 죄는 다 진멸해야합니다. 죄의 잔해를 남겨 놓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요쯤 죄 문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며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저가 성경공부 할 때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만은 사람들이 착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지옥 가는 것입니다. 보세요.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율법을 잘 지켰습니까? 이들이 지키는 종교행위는 과히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런 사람을 주님께서 칭찬하셨습니까? 칭찬하신 적이 없습니다. 왜 입니까? 그들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율법을 지킨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천국 간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착하고 정직하다고 해도 그들은 죄인입니다. 심리적인 현상을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어느 정도 아시리라 여깁니다만은 그 착함은 껍데기입니다. 속은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겉으로만 착할 뿐이지, 자기에게 유익이 되거나 심리적인 안정을 찾기 위해서나 스스로 위로를 받기위해서지 속은 다 더럽고 추악하단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구나 미움의 죄와 음란의 죄는 넘어갈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절대로 죄의 잔해를 남겨 놓지 마세요. 나중에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은 우리가 회개한다고 하는 것은 그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99% 회개는 없습니다. 회개는 100%가 되어야 그것이 참다운 회개입니다. 결국 우리의 죄 된 잔해가 남아있다는 것은 완전히 회개의 삶이 아니리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 잔해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큰 방해거리가 되고 있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에 얼마나 큰 수령이 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사울왕 때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전부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이 진멸하지 않고 그 아말렉 왕인 아각을 살려두죠? 그 모든 재물들도 그냥 취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신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 징계하시고 결국 그 일로 인해 사울을 왕권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진멸하라고 하십니다.
여호수아 때도 보시면 여호수아가 땅을 정복할 때 몇 몇 도시는 진멸합니다. 여리고 성이 그랬고 아이성이 그랬습니다. 북쪽의 하솔성도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어떤 현상이 나타나느냐하면 이스라엘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우상숭배의 영향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고통과 수모와 종살이를 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역사에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것이지요. 그것이 가나안종교입니다. 예루살렘 힌놈 골짜기에서는 어린아이를 재물로 바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나안의 종교의 영향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저들을 남김없이 다 진멸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가나안종교를 하나님께서 왜 진멸하라고 하시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 당시 고고학자들의 발견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특히 이 가나안 백성들은 그 주변의 다른 모든 열방들과 이방인들보다 휠 씬 더 타락했습니다. 크게 생각을 한다면 가나안인들이 섬기는 바알신은 비신이고 아세라신은 땅을 풍요롭게 하는 신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만 비로소 땅이 소산을 내지 않습니까? 이것을 성적으로 비유를 하는 것입니다. 바알신을 남성 아세라신을 여성으로 비유해서 남성이 비를 즉 씨를 주면 여성이 그 씨를 받아서 소산을 낸다는 것이지요. 이런 이론이 어떻게 행해지느냐 하면 신전에 제사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과 그 신전에 있는 여사제와 성관계를 갖는 것으로 그들은 종교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어린아이를 바치는 행위입니다. 자기의 자식을 제물로 바쳐서 축복을 구합니다. 첫아들을 집을 지을 때도 죽이고 전쟁에 나갈 때나 큰 제사를 드릴 때 죽이는 것입니다. 그 영향으로 힌놈골짜기에서 어린아이를 죽여 제사를 드리는 사건이 나타난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런 우상숭배는 우리 인간의 죄성의 대표입니다. 가장 민감하게 빠져들 위험이 있는 잔인한 종교인지라 하나님이 완전히 진멸하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죄악 또한 그런 차원에서 완전히 진멸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잔해를 남겨놓으면 그것으로 신앙생활에 그리고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눈에 조금한 종기가 나거나 편도가 붓거나 고름이 생기거나 하면 항생제를 씁니다. 항생제 쓰는 법을 의사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항생제를 쓰게 되면 반드시 7일을 먹어야 된답니다. 원래는 3일정도만 먹어도 상처가 낫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나았지만 속으로는 남아있을지 모르니까 완벽하게 100% 죽이기 위해서 7일간을 먹으라고 합니다. 마치 항생제를 먹는 것도 완벽하게 없애야 우리가 건강을 되찾듯 죄악의 덩어리를 완벽하게 없애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건강하지도 않고 이방족속의 죄악 그러니까 바이러스가 펴지면 펴질수록 건강은 악화되듯이 죄악이 펴지면 영적으로 병들고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잔인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악으로 잔인한 사람이지요. 우리가 잘못한 것을 하나님 앞에 원망하는 것은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나안 족속들을 멸절하는데도 시간을 두고 오래 참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창세기 15장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때 ‘네 후손이 애굽에 가서 400년 동안 살다가 다시 이 땅에 오리라’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아직 이 땅 가나안의 거민들의 죄가 넘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가나안땅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일방적으로 주기위해 가나안백성들을 멸절시키라는 것이 아니라 400년 동안 인내하며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안 믿는 백성들을 인내하며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희교회가 1인1명전도 대회를 개체합니다. 이 행사가 해마다 시행되고 있고 또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알리는 것입니다. 당신은 죄악 속에서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 의미입니다. 주님의 재림 전 까지 아니면 그들이 죽기 전까지 지금이 하나님이 참으시고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시간이 많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400년씩이나 기다렸던 가나안도 멸망 받았습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 오실지 모르는 것이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급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죄악 속에서 나오는 길만이 살길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복된 심령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죄악의 세상 속에서 계속해서 찾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의인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를 구원할 의인을 그래서 찾으시는 것이지요. 의인을 통해 죄악 된 세상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 아닙니까? 우리를 통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의인을 찾으셨습니다. 렘5:1 ‘예루살렘 전체를 다녀보라 거기서 네가 만약 의인의 한 명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이 성이 멸망치 않으리라’ 그 만큼 하나님은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성이나 여리고나 하솔이나 이 모든 곳이 결국 소수의 의인이 한명도 없어서 망한 것입니다.
이제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이 의인 한명을 보내셨는데 그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루살렘에 의인한명만 찾으면 멸망치 않겠다던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신약에 와서는 바로 그 의인이 예수그리스도로 나타났습니다. 그 예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는 모든 백성들이 죽지 않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의인 한 명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어차피 죄인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를 구원하기위해 이 세상의 죄악을 멸하기 위해서 아이성 전체를 멸하셨고 여리고성 전체를 멸하셨습니다. 죄악을 없이 하려고 도성전체에 만연되어 있는 죄를 씻어내시는 모습이 진멸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이 세상의 다른 어떤 멸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멸망시킴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죄악을 완전히 씻어내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와 사랑이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전부 들어있습니다.
죄를 완전히 진멸하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고 의인 한 사람 때문에 예수살렘을 멸망치 않겠다는 그 하나님의 사랑과 참으심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의인 한 사람을 십자가에 매단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아시지요. 이를 믿는 사람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약속의 성취 때문입니다.
구약의 여러 가지 사건 특히 이런 아이성에서 모든 사람을 진멸하는 이 사건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악은 완전히 없어져야합니다. 완전히 없어져야만 비로소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엄청난 은혜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우리의 죄는 완전히 씻음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단 한번의 죽음으로 우리는 그 무거운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의 일부분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예수님이 대신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하면 우리의 모든 죄가 씻음을 받습니다.
문제는 완전히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우리가 죄에서 돌이키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죄에서 돌이키지 못하는 이유가 어려가지 있겠습니다만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며 증오하시는지에 대해 우리는 성경을 통해 제대로 깨달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중에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까지 이 죄 문제 때문에 심판을 하실 만큼, 그리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기까지 하나님은 철저히 죄를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구약의 백성들이 죽음을 당한 이유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한 이유가 죄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은 죄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죄 문제로 끝난다고 할 정도로 죄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일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전하는 이 말씀의 중요한 포인트는 우리가 죄를 무감각하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주의 백성들이 지켜야할 의무이며 사명 아니겠습니까? 성경에 제사장의 예를 하나들고 마치겠습니다. 에스겔시대에 두 종류의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레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에 레위 사람도 그릇 행하여 그 우상을 따라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의 죄악을 담당하리라’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이들 레위사람들에게 깜짝 놀랄 선언을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내 성소에서 수종 들어 성전 문을 맡을 것이며 성전에서 수종 들어 백성의 번제의 희생물을 잡아 백성 앞에 서서 수종 들게 되리라’ 모든 것이 제대로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역할을 가만히 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들의 의무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왜 이들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느냐 이 말입니다. 결론은 죄악 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며 또 내 성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들이 자기의 수치와 그 행한 바 가증한 일을 담당하리라’ 레위인들이 제사장이 지성물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는 것은 수치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집에 살지만 아버지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학교는 다니지만 졸업장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왜 입니까?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예배는 드릴 수 있습니다. 말씀도 들을 수 있습니다. 봉사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은혜가 없고 감격이 없고 평안이 없단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죄로 말미암은 징계입니다. 그런데도 두려움이 없고 죄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단 말입니다. 원인이 죄로 인한 것인데도 그렇습니다. 성경에 치유의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반복해서 나오는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문제는 죄사함을 받아야 육신도 온전케 된다는 사실이지요. 죄로 인해 고통과 육체의 질병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부류의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에스겔 44:15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 행하여 나를 떠날 때 내 성소의 직분을 지킨’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도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도 내 상이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들어 내가 맡긴 직분을 지키되’
이들은 하나님 앞에 서서그분의 뜻을 행하고 백성의 요구를 따르지 않은 제사장입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떠날 때도 이들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길 때도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도 기름과 피를 드리는 귀한 직분을 행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 하면서 주님을 만나고 그 분의 뜻을 깨닫고 감격하며 그 분이 주신 양식을 통해 영광을 돌리는 복된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죄는 우리를 파괴합니다.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까지 파괴하며 우리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만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려움이 있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의 평안을 소유하지 못하고 은혜가 사라졌다면 아직까지 잔재되어 있는 우리의 죄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음성이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이며 복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역사를 통해 새로운 성령의 역사를 이루어나가는 복된 교회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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