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죄악을 철저히 회개 하십시요

숨은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십시오/수7:1-8:2/2002-09-23

숨은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십시오
수7:1-8:2





오늘은 회개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최근에 한국 교회에서는 교회갱신에 대한 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김 동호 목사님의 \"생사를 건 교회개혁\" 이나 오 덕호 교수님의 \"교회 주인은 사람이 아니다\" 라는 책이 대표적인 책들입니다. 그런 책들은 대부분이 아주 정확하게 한국교회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저도 아주 흥미있게 읽었고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교회갱신 서적과는 전혀 다른 책이 교회갱신이라는 미명아래 출판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 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 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한국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고 갱신을 요청한다는 의도로 시작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독교의 기본교리까지도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기적을 순수하게 믿는 복음주의권 전체를 근본주의로 매도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마저 부정하는 저자의 다원주의적 주장에는 결코 공감할 수 없지만 한국교회의 윤리적 문제점을 지적한 것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한국 교회가 물질주의의 우상에 빠져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므로 이미 자세히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는 것이든,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든 그런 것을 다 떠나서 저는 그런 책이 나오게 된 경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혼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잘못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거론할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 앞에 빛과 소금이 되지 못했고 세상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여러 가지 부정직한 모습이나 왜곡하는 모습 등을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나 특별히 목회자들이 계속해서 반복하고 때로는 한 술 더 떠서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런 비판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읽고 한편 화가 나기도 하면서 한편 저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한국 교회에서 교회 갱신의 목소리는 높지만 회개의 목소리는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갱신되어야 한다는 말은 많이 하는데 누구 하나 분명하게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은 자서전이 아니라 참회록을 쓴다.\" 그래서 저는 이제 한국 교회에서 교회갱신에 대한 책보다는 참회록을 쓰는 사람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서 혹은 한국 교회라는 막연한 대상을 향해 갱신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놓고 회개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거창한 구호로서의 갱신운동보다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나기를 더 원하는 것입니다. 작년에 지구촌교회의 이 동원 목사님께서 \"회개행전\"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 책이 출판되기 한참 전에, 저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매주 그 설교를 아주 은혜롭게 들었습니다. 죄를 지적하는 설교를 듣기 힘든 시대에 아주 적절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책의 서문에서 이 동원 목사님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서문의 대부분을 있는 그대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새 천년, 새 희망의 태양 앞에서


오늘 우리는 죄에 관한 한 무신경의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마치 물 속에서 물을 못 느끼는 익숙한 어류처럼,


그러나 물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물고기가


물 속을 헤쳐나갈 수 없는 것처럼


죄를 알지 못하는 인생은 죄를 극복할 수 없다.


새 천년이 밝아온 새 아침의 언덕에서


새 시대 새 인생을 열망하는 사람마다


먼저 죄에서 돌이켜야만 한다.


그리고 죄를 이기는 거룩의 삶을 익혀야 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초대교부들이나 중세기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일곱 가지 큰 죄는 중요한 설교의 주제요


날마다의 삶에서 싸워 이겨야 할 생생한 일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우리는 죄를 잊어버리고


죄 속에 물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새 천년의 새 희망의 태양 앞에서 옷을 벗는 자들,


어두움의 옷을 벗어버린 새 피조물들을 위하여


새 시대는 새 노래를 불러줄 것이라고 믿는다.


C. S. Lewis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가리켜 \"구도정신을 상실한 시대\"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현대인들에게 더 이상 죄를 향한 진지한 접근이 없다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고민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죄악이라는 단어 자체가 실종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리학자들은 죄라는 말 대신에 여러 가지 용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환경 부적응\" \"정서장애\" \"습관적인 집착증\" 등이 그런 예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너의 잘못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상처 때문에 그런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고 진단을 내립니다. 저는 그런 접근이 일리가 있고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죄는 분명히 죄라고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죄로부터 도피한다고 해서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지었는데 죄가 아니라고 한다든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면죄부를 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죄에 대해 깊이 자각하고 고민해야 참된 회개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동원, 회개행전)


오늘 본문은 여리고성을 정복한 직후에 아이성이라는 작은 성에서 실패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아이성 사건은 여리고성에서 승리한 직후에 찾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에서 손 한번 쓰지 않고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기적적인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직후에 아이성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이성이라는 작은 성에서 아주 처절하게 실패합니다.


종종 범죄는 승리 직후에 찾아옵니다. 위대한 승리와 참혹한 패배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위대한 영적 승리의 정상에 설 수도 있고 동시에 무서운 영적 실패의 참담한 골짜기에 처박힐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갈멜산에서 850명의 이교도 선지자들과 대적하는 당당한 모습의 엘리야가 될 수도 있고,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는 아주 비참한 모습의 엘리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영적인 순례길에서 종종 실패를 경험할 수 있는데, 많은 경우 그 실패는 위대한 승리의 직후에 찾아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승리했을 때 사탄의 유혹이 찾아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역시 아이성에서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구체적으로 아이성에서 패배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석가들은 몇 가지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그들의 교만 때문이라는 해석입니다. 이것은 본문 3절에 근거한 것입니다.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3]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성을 점령한 이후에 과도한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승리를 확신하는 것에서 한 술 더 떠서 아주 교만한 태도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본문을 보면 이것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여호수아가 기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석가들은 그 증거로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와는 달리 여호수아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 것을 지적합니다. 본문을 보면 이것도 역시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차지하기 위한 과정에서 기도했던 것처럼 아이성을 차지하기 위한 과정에서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 해석이 모두 일리가 있고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이것들은 아이성에서 패배한 직접적인 이유가 아닙니다.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은 아이성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이 죄 때문이라고 지적하십니다.


본문 6-9절에 보면 전쟁에서 패배한 후에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탄식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6-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6]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8]주여 이스라엘이 그 대적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9]가나안 사람과 이 땅 모든 거민이 이를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그런데 이렇게 탄식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아이성 패배의 이유가 무엇인가를 직접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10-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0]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11]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12]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아이성에서 패배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이 범죄해서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전혀 고민할 일도 아니고 모호해서 혼동할 일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에서 패배한 것은 바로 정확히 그들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실패할 때마다 그 모든 일이 범죄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본문에 있는 이 사건에서는 그들이 실패한 원인이 범죄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와 같이 종종 우리의 범죄 때문에 실패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해 정직하게 직면해야 합니다. 이런 저런 말로 에둘러서 말하고 변명하거나 회피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죄의 문제에 대해서는 타협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그 사람에게서 회복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범죄와 회개의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범죄는 어떻게 찾아오는가?


- 범죄의 결과는 무엇인가?


-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


- 회개의 결과는 무엇인가?


1) 범죄는 어떻게 찾아오는가?


먼저 \"범죄는 어떻게 찾아오는가?\" 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본문 16절부터 보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가 범죄자를 색출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지파별로, 족속별로, 가족별로 나아오게 해서 결국은 아간이 뽑혔습니다. 20-21절에 보면 아간의 고백이 나옵니다. 아간의 고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있습니다.


20-2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20]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여차히 행하였나이다 [21]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21절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아간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보고 탐내어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아간이 그 물건들을 보았을 때 탐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여러분! 눈으로 보는 것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눈으로 아름다운 것만 보고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우리는 너무도 자주 우리의 눈으로 보고 탐심을 가져서 결국은 죄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탐심을 주의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의 노래가운데 그런 것이 있습니다. \"네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 눈으로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간이 범죄한 내용이 과연 무엇입니까? 아간은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까? 이것은 아간이 훔친 물건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간이 훔친 물건은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금과 은입니다. 금과 은은 물질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금과 은을 훔친 것은 물질주의의 죄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입니다. 여기서 시날은 바벨론 지역에 있는 도시를 가리킵니다. 시날의 물품들은 아주 뛰어났으며 유행 그 자체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외형적 성공과 유행을 추구하는 세속주의의 범죄에 빠진 것을 가리킵니다. 아간이 아름다운 바벨론 외투를 보았을 때, 그는 외형적인 성공과 유행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그 의복을 취한 것입니다. 물질주의와 세속주의는 오늘 우리에게도 큰 유혹이 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탐욕에 빠져 죄를 지은 뒤 우리 인간들은 늘 그와 같은 탐욕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부분에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탐스러운 것을 본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간만 그것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 중에 유독 아간 만이 그런 범죄에 빠졌습니다. 그러므로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잘못을 환경 탓으로 돌립니다. 나를 유혹하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죄를 지었노라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심리학자들 가운데서 간혹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알콜중독자 부모에게서 알콜중독자 자녀가 나온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말을 볼 때마다 화가 나는 사람입니다. 저의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저의 아버님은 알콜 중독이셨습니다. 술을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어렸을 때 기억이라곤 아버지가 술 드시던 것밖에는 없습니다. 항상 술을 받아다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한량이셨기에, 노래하는 것 좋아하시고, 술을 좋아하셨습니다. 과도하게 술에 빠져서 결국은 술 때문에 병을 얻어서 자신의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저는 사 형제 중 하나인데, 우리 사 형제가 예수님을 믿기 전부터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에서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아주 화가 납니다. 왜 그런 것으로 변명해야 합니까?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전혀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환경의 영향 때문에 더 다짐하고 새롭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왜 환경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변명해야 합니까? 아름다운 외투가 보였기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변명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을 탓하지 마십시오. 환경 때문에 변명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우리는 세상의 많은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그런 범죄와 악을 전혀 보지 않고 살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단지 탐심을 가질 수 있는 물건을 보았다는 것이 변명이 될 수 없다면 과연 아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입니까?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물건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간이 그 명령을 몰래 어겼습니다. 그런데, 아간이 그 명령을 어긴 행동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로 아간은 전쟁의 승리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승리자들이 노획물을 갖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은 승리한 군대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아간이 그런 생각에서 그 노획물을 취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아간이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이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가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그가 망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승리자이신 하나님께 모든 노획물을 바쳐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전쟁에서 얻은 노획물을 바치라고 한 것은 그 노획물을 이스라엘에게 주는 것이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 진입하는 관문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을 얻었음을 그 백성들에게 확인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을 얻고 하나님께 그 모든 노획물을 바침으로써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가나안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고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신정국가를 세우겠다는 그들의 삶의 결단이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고백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은 모든 노획물을 바치도록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간이 그것을 어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알면서도 고의로 거역하거나 탐심에 사로잡혀 거역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간이 그것을 훔친 것은 단순히 물건을 훔친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부정한 아주 큰 죄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아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몰래 노획물을 훔친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입니다. 아간은 몰래 숨겼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몰래 숨긴다고 해서 모르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했다고 해서 죄가 덮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분이 지켜보신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산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주 큰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가 나를 늘 지켜보신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사십시오. 하나님은 죽은 우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그분의 그 불꽃같은 눈동자와 사랑스러운 눈동자로 우리를 살피시고 지키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동시에 내 모든 삶을 감찰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무시하고 범죄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2) 범죄의 결과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아간이 범죄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직접적으로 보면 아간의 범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성에서 패배했습니다. 5절에 보면 36명쯤이 죽었습니다. 그 정도의 인원이 죽임을 당한 것도 작은 일은 아니지만 더 큰 일은 백성들의 사기가 물처럼 녹아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문을 듣고 가나안 땅에 사는 족속들의 마음이 물처럼 녹았지만 이제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가 물처럼 녹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닙니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2]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번역이 좀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표준 새번역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원수를 대적할 수 없었고, 원수 앞에서 패하여 물러섰다. 그들이 자청하여 저주를 불러들여서 그들 스스로가 진멸시켜야 할 물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들 가운데서 전멸시켜 주께 바쳐야 할 물건을 없애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않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노획물을 저주받은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불태웠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물건을 자기들 가운데 갖고 있었습니다. 저주받은 물건을 갖고 있으므로 자신들 스스로 전멸시켜야 할 물건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물건을 없애지 않으면 하나님이 더 이상 함께 하지 않겠다는 충격적인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인지 모릅니다. 여호수아서에서 가장 중요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1장에서부터 계속 강조되었던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차지할 때, 그 땅 거민들이 비록 강하지만,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겠다는 약속보다 더 큰 약속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 언약이 지금 깨어지는 순간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졌던 것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만약 하나님께 바쳐진 그 물건을 제하지 않으면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바쳐진 물건을 헤렘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헤렘을 갖고 있는 한 그들은 하나님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들은 헤렘을 갖고 있는 것과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선택해야만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여호수아의 존재이유입니다. 그 약속이 깨어지면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 설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존재 근거이고 삶의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우리 삶의 이유가 아닙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내가 살아나갈 근거이고, 내가 살아갈 명분이 아닙니까? 그것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 불확실한 세상을 믿음으로 담대히 살 수 있습니까? 이것보다 더 큰 손실이 있습니까? 여러분 왜 우리가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까? 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습니까? 우리의 범죄 때문입니다. 죄를 가지고 있는 채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를 눈같이 희게 하시려고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죄와 동행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죄 가운데 거하시겠습니까?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십니까?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십자가의 은혜를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 삶의 이유이시고 존재목적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아직도 죄에서 돌이켜 우리 구주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분이 있다면 이 시간에 주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삶을 돌이키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신 분들도 숨겨놓은 죄가 있으면 주님 앞에 자백하고 용서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


이제 세 번째로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 16-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6]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17]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18]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19]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이 말씀에 보면 그들 가운데 있는 죄를 대충 넘기지 않습니다. 철저히 색출합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자백을 요구합니다. 회개는 철저히 해야 합니다. 두루뭉실하게 넘기면 안됩니다. 주님 앞에 자신을 드러내 놓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철저하게 회개할 때만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그 사람에게서 일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언약이 회복됩니다.


주님 앞에 지은 죄가 있습니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서 숨겨 놓은 것이 있습니까? 주님 앞에 나아가서 용서를 구하십시오. 주님은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분입니다. 그 분이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인지 그 분은 마지막 죽는 순간에도 십자가상의 강도를 용서하시고 낙원으로 인도하신 분입니다. 그 주님 앞에 나아가서 자신의 허물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를 자백하면 그 분은 신실하고 의로운 분이시므로 여러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여러분을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용서의 약속입니다. 사죄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서 자신의 모든 허물을, 숨은 죄들을 털어놓고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에 참된 회개의 기쁨, 참된 사죄의 은총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회개의 결과는 무엇인가?


이제 마지막으로 회개의 결과를 보겠습니다. 본문 8:1-2을 같이 읽겠습니다.


[1]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2]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 너는 성 뒤에 복병할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의 결과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다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여리고성을 그들에게 줄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성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전쟁의 승리는 결과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한 가지 특별한 말씀이 있습니다. 아이성에서 탈취한 물건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취하도록 이번에는 허용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인지 모릅니다. 사실 아무 것도 주지 않으셔도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다시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범죄한 아간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두려워서라도 어느 누구도 그 물건을 아무도 취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번에는 그 물건을 스스로 취하도록 허용하십니다.


여리고 성에서 모든 물건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재물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철저히 순종하며 사는 삶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이성 전투에서는 노략한 물건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내 모든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탐욕으로 인하여 범죄했던 것을 주님 앞에 고백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놀랍고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필요까지도 다 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인정하지 않고 탐욕에 빠져서 범죄했던 것을 자백하십시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눈에서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죄의 자리에 있었던 어리석은 죄를 자백하십시오. 그 길만이 언약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숨은 죄를 제거하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숨은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제 살을 도려내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암덩어리를 제거해야 그 사람이 사는 것입니다. 그것도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갖고 있으면 결국 그 사람이 죽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밖에 없습니다. 이런 숨은 죄를 제거하지 않으면 언약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살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간의 범죄를 철저히 제거하도록 요구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철저하게 제거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죄를 제거해야 살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실패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그것만이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 길만이 언약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내 삶의 모든 축복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하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은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원합니다.\" 하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언약을 회복하십시오. 그 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종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우리가 그의 종임을 삶의 모든 순간에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지은 죄가 있다면 숨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행동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동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바라보시고, 아시는 분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교리적으로, 지식으로, 혹은 입으로만 고백하지 마십시오. 살아 계시고 나와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회복의 은총을 경험하시는 새누리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