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하던 성읍의 죄 수1:21-31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 분은 신실하다\"는 말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신뢰하거나 극찬할 때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여기 21절에 나오는 \"faithful city\"란 \"신실한 성읍\"이란 말인데, 유대 나라의 예루살렘을 가리켜서 이렇게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도 \"예루살렘\" 하면 어떤 것이 연상됩니까? \"성시(聖市)\" 즉 \"거룩한 도시\"란 것이 연상됩니다. 세계의 순례자들이 언제나 가보고 싶은 도시라는 것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그 신실하던 성읍, 거룩한 성읍,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던 예루살렘이 이사야 선지 당시에 죄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언제나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인류를 창조할 당시에는 \"죄\"라는게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을 지으시고, 그가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시고, 그를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들어 주셨을 때는 \"죄\" 라는게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善)\"만 있었지 \"악(惡)\"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2장에 나타나지 않던 죄가 창세기 3장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을 \"인류의 타락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타락한 천사들의 우두머리인 사단이 가장 간교한 동물인 뱀을 통해서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사단의 말을 듣고서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바라보니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하와는 사단의 유혹에 이끌려서 그것을 똑 따 먹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또 아담에게 갖다가 주니까, 그의 남편 아담도 그것을 거절 못하고 먹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류의 죄는 하나님의 명령, 즉 \"네가 선악과를 따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에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이 죄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까지 전가되어져서 우리도 역시 이 \"불순종의 죄\"를 범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살고 있던 기원전 739년경에 남쪽 유대 나라의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상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죄는 오늘의 현대인들도, 심지어는 크리스챤들까지도 범하고 있다고 하어스틴 충현 장로 교회 주일 낮 설교/이인승목사 1999년 11월 7일 No.2 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 설교를 들어야 할 줄 압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신실하던 성읍의 죄\"라고 정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본문에서도 이스라엘의 죄악상들을 21절-23절에서 지적하고 나서, 24절-27절에서는 그 죄에 대한 치유책을 제시해 주시므로 이스라엘에게 한 가닥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책망만 잔뜩 하시고, 다른 치료책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의의 하나님은 될지언정 사랑의 하나님은 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부패했다고 그 타락한 죄의 모습들을 책망하고, 질책하고, 비판만 해버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죄에 대한 치유책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의 특징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66장 전체의 주제가 바로 \"책망과 회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인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챤의 삶 속에도 반드시 이 두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할 줄 압니다. 상대방의 비리나 모순이나 불법에 대해 책망이나 비판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일 아침에 인터넷을 보다가 영국 BBC 방송에서 한국에 대해 비판한 글을 보고 매우 기분이 유쾌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인천에서는 그 수 많은 학생들이 불에 타 죽어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는데, 영국 BBC에서 뭐라고 혹평한지 아십니까? \"한국은 안전 사고 최악의 나라\"라고 혹평한 것을 보면서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우리 한국이 사고가 많은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비행기 사고, 백화점이 무너지는 사고,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 배가 침몰하는 사고, 유치원생들이 여름 수련회를 갔다가 수련원이 불이나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죽는 사고 등 각종 사고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비판만 해놓고, 어떤 제안이나, 위로가 없다면 그 비판은 오히려 우리에게 낙심이나 실망은 줄지언정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책망이후에는 반드시 치유가 있어야 합니다. 비판이 있은 이후에는 반드시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죄를 지적한 이후에 반드시 회복의 길을 제시해줘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하는 일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먼저 이스라엘의 죄악상과 부패상에 대해서 무려 일곱가지를 이사야 선지가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네 가지로 그 치유책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죄악상들을 생각해 보십시다. 1) 이스라엘이 창기가 되었다고 책망하고 계십니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이 말이 원문에는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가? 신실하던 성읍이\"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창기\"(harlot)이란 말, 혹은 \"창녀\"라는 말을 쓸 때에는 물론 육신적으로 음란한 여자를 가리킬 때도 있지마는, 이스라엘의 영적 간음을 지적할 때 주로 쓴 용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어떤 때는 아버지와 자식으로도 비유하시고, 어떤 때는 부부로도 비유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남편이라고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남편과 아내사이에는 \"신실함\"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부부사이에 \"신실함\"이 없다면 그 부부관계가 정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부가 \"서로 신뢰하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받쳐주고, 서로 사랑해야\" 그 부부관계가 정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아내가 자기 남편을 두고서 다른 남자들 품에 안겨서 정을 주고, 사랑을 한다면 우리는 그를 \"창기\"라고, \"매춘부\"라고, 또는 \"창녀\"라고 부릅니다. 여자에게 있어서 \"창녀\"란 말은 그 분에게 가장 치명적인 욕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창기라고 책망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만 섬기던 신실하던 때도 있었지마는 이제는 바알의 우상을 섬기고, 아세라 목상을 섬기고, 몰록 신을 섬기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알 신이 어떤 신입니까? 다곤이란 신이 아스다롯과 아세라를 배우자로 삼아서 낳은 아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만 섬겨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엉뚱한 이방의 음란한 신들을 섬기고 있으니 하나님이 보실 때에 기가 막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을 던져 버리고, 다른 이방 남자들에게 가서 놀아 나는데,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신약에 와서 우상은 무엇입니까? 꼭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는 것 말고도 성적인 범죄를 우상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갈5:19,20). 남의 것에 대해 탐욕을 부리는 것도 우상이라고 지적하십니다(엡5:5). 사도 요한은 아예 복음의 진리에서 떠난 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 자체를 우상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요일5:18이하).
2) 이스라엘이 살인자들이 되었다고 책망하십니다.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입니까? 공평이 충만하던 도시가, 의가 충만하게 넘치던 도시가 이제는 살인자들 밖에 없다는 것은 정말 통탄할 일이 아닙니까? 여기 \"살인자들\"이란 강도나 살인자를 말 한다기 보다는, 공의를 가장해서 부정직한 방법으로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들의 소유를 착취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렘2:34, 요일3:15). 가난한 자들의 소유를 착취하는 것이 살인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평이 강 건너가 버리고, 불의와 착취와 거짓이 난무하는 도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살인을 \"마음으로 남을 미워하는 것조차도\"살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마5:22, 요일3:15). 과거에 아무리 신앙 생활을 잘했더라도, 지금 여러분이 마음으로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살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런 죄악에 대해서 신랄하게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패역하여 도적과 한패가 되었다고 지적하십니다.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이 말은 \"네 방백들이야 말로 패역한 사람들이다, 도적과 짝하며,\"란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반역한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반항한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였으니 거기에 따르는 죄악들을 도적과 짝한 것부터 나열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가 바로 될려면, 먼저 지도자들부터 바로 되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조국의 상황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밑에 하부 구조에서 패역이 시작되는게 아니라, 위에 지도자들부터 패역이, 반역이, 부패가 시작되어졌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즈음 한참 떠들고 있는 옷 로비사건도 그렇고, 이번 인천의 화제 사건도 불난 호프집에서 뇌물을 받아 먹고 산 경찰들이 24명이나 되고, 시청과 구청 직원들이 20명, 소방서 직원들이 4명이나 된다고 하니 이것이 우리 나라의 치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정치인들은 당리 당략에 눈이 어두워서 날마다 싸웁니다. 경제인들도 어떻게 하면 국민을 속이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여기에만 관심이 가 있습니다. 종교인들도 보면 지도자들이 부패해 있습니다. 그래서 손봉호 교수님같은 분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책을 쓰지 않았어스틴 충현 장로 교회 주일 낮 설교/이인승목사 1999년 11월 7일 No.5 습니까?
이 모든 것들을 통틀어서 하나님은 \"패역한 자들이다\", \"반역한 자들이다\"라고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나라의 이런 상황을 바로 인식하고 우리 조국을 위해 심각하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까 경찰관들 얘기를 했는데, 경찰이 도적을 잘 잡아야 유능한 경찰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경찰들이 도적하고 오히려 친구가 되어 버렸으니 그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스라엘이 그랬고, 우리 나라가 그렇게 하고 있고, 이 미국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총체적인 부패\"라고 말을 합니다. 세계 어디를 보아도 도적들이 난무합니다. 경찰과 짜고 하는 일들이 많다고 합니다.
4) 이스라엘의 방백들이 다 뇌물을 사랑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everyone\"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부패\"라는 말입니다. \"다 뇌물을 사랑한다\"고 그랬습니다. 뇌물(bribe)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한다고 하니 그 사회가 얼마나 썩었는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5)사례물들을 구한다고 그랬습니다. 아까 \"사랑한다\"는 말도, 여기 \"구한다\"는 말도 모두 분사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행위가 일회성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이런 악행을 자행한다는 말입니다. \"사례물을 구하며\" 이 말을 영어 성경에서는 \"chases after rewards\"로 되어 있습니다. 사례물들만 쫒아 다닌다는 말입니다. 받을 것들만 열심히 추구한다는 말입니다. 표준 새 번역에서는 이 말을 \"보수나 계산하면서 쫓아 다니고\"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죄악이었습니다.
6)이들이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않는 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하십니다. 여기 \"고아를 신원치 아니한다\"는 말은 \"고아들을 방어해 주지 못했다\" 는 말입니다. \"고아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아 뇌물을 사랑하고, 사례물들을 추구하는 판에 어떻게 가난하고, 헐벗은 고아들에게 관심이 있겠습니까?
7)과부들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법관들도 뇌물이나, 사례물들에 눈이 충혈되어 있는데, 과부들의 송사쯤에 관심이 어스틴 충현 장로 교회 주일 낮 설교/이인승목사 1999년 11월 7일 No.6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이렇게 이스라엘의 죄악상들을 책망하시고 나서 이스라엘에게 이것을 치유할 치유책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에 한가닥 소망을 제안해 주고 계십니다.
1) 하나님은 장차 자기 대적에게 보응하겠다고 하시고, 자기 원수에게 보수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여기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란 호칭과 \"만군의 여호와\"란 호칭이 함께 쓰이면, 그것은 하나님이 대적을 향해 위협을 가하고, 징벌을 가하는 경우에 쓰이는 용어 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전능자\"란 하나님의 권위있는 통치를 강조하는 용어인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란 세 가지 용어를 사용하므로 이사야는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전능하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뒤에 나오는 모든 말들이 하나도 틀림이 없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이스라엘을 대적으로, 원수로 보시고 \"보응하겠다\", \"보수하겠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서 이방나라인 아람을, 에돔을, 불레셋을, 앗수르를, 바벨론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벧전 2:20절에 보면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앞에 아름다우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의 계획을 들으면서 꼭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있고, 매를 맞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아무 칭찬 받을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주의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고, 욕을 얻어 먹고, 멸시를 당하고, 또 그것을 참는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칭찬받을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상받을 일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자신의 손을 이스라엘에 돌려 이스라엘의 찌기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이스라엘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그랬습니다. 이 말씀을 표준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내가 너를 때려서라도 젯물로 찌꺼기를 깨끗이 씻어 내듯 너를 씻고, 너에게서 모든 불순물을 없애겠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 \"하나님이 손을 네게 돌린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히 개입하고, 간섭하실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직접 간섭하셔서 이스라엘을 정화시키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마치 젯물을 가지고 은에서 납성분을 녹이듯이, 예루살렘의 경건치 못한 자들을 쓸어 버리시겠다는 말입니다. 22절에 가보면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란 말씀이 있습니다. 22절 말씀을 바로 25절 말씀과 연관해서 보면 이해가 훨씬 쉬울 것입니다. 불순물들, 혼합물들, 잡스럽게 섞인 것들을 깨끗이 정화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혼합된 자, 불순 분자, 죄와 야합된 자들을 쓰시지 않으시고, 깨끗하게 정화된 자들만을 들어서 쓰시는 줄로 믿습니다. 딤후2:21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케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우리는 죄악에 야합하거나 혼합되거나 섞인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 정화된 자들이 되어서, 자기를 깨끗하게 가꾸는 일에 힘쓸 때에, 하나님에 의해 쓰임 받기에 합당한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그 생각이나 그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죄와 혼합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결단코 쓰지 않으실 것입니다.
3)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여기 사사들과 모사들은 권력을 쥐고 있는 관원들과 방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화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불순물들이 제거된 뒤에, 예루살렘이 원래의 모습대로, 신실한 성읍으로 되돌아 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들이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될 때에는, 그 나라에 소망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통령이하 모든 국무위원들과 국회 위원들과 그 외에 모든 공무원들과 공직자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본래의 모습대로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미국의 지도자들도 원래의 모습대로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이 모두가 청교도 신앙으로 다시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할 줄 압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만 회복되면 다른 서민들도 회복되는 것은 시간문제니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회복한다\"는 말은 참으로 매우 소망적인 말입니다. 영어로는 \"restore\"란 말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아쉬바하\"란 말입니다. 이 말은 \"슈브\"(shoob)란 동사에서 온 말인데 본래의 뜻이 \"to turn back\"이란 뜻입니다. 원래의 모습대로 되돌려 주신다는 말입니다. 본래대로 소생시키신다는 말입니다. 원래의 모습 그대로 교체시켜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 속에는 \"회개한다(repent)\"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 덕을 톡톡히 본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제 양쪽 고관절과 왼쪽 무릎이 심한 관절염으로 인해서 다 망가져 있었는데 여기서 하나님이 의사들을 통해서 다시 \"restore\"시켜 주셨습니다. 세 번에 걸친 대 수술들이 다 성공적으로 끝나게 되어서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저는 \"기적\"이라고 간증을 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여기에 보내 주신 것은 저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세밀한 섭리이셨습니다. 영적으로도 회복시켜 주시고, 육적으로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이 미국에 와서도 만일 의사를 잘못 만났다면 저는 영원히 장애자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에게 유능한 의사들, 성실한 의사들 3사람을 붙여 주셨습니다. 담당 의사를 잘 만났어도, 만일 마취과 의사들을 잘 못 만났다면 저는 영원히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취과 의사들 3 사람도 잘 만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몸이 회복된 것을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제 망가진 육신 뿐만 아니라, 제 지쳐 있던 영혼도 수술을 3번 하는 사이에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앞에 이렇게 서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회복이란 것은 좋은 것입니다. \"회복\"이란 것은 좋은 것 정도가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말입니다. 사람이 회복시켜 줘도 좋은데, 하나님이 이 회복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회복의 축복을 회개와 더불어 주시겠다고 하는 굳은 약속인 것입니다. 이런 회복의 축복이 우리 개인에게, 우리 가정에게, 우리 교회에게, 우리 사회에게, 우리 민족에게, 이 나라에 넘치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어스틴 충현 장로 교회 주일 낮 설교/이인승목사 1999년 11월 7일 No.9
4) 시온이 공평으로 구속되고,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온이, 즉 예루살렘이 공평으로 구속(redeem)이 된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비로소 신실한 성읍이라고 칭함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다시 공평이, 의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귀정한 자가 의로 구속이 된다. 여기 귀정한 자란 \"죄로부터 돌아선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한 자들\"이 의로 구속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이것이 바로 복음(Good News)인 것입니다. 죄로 관영해 있던 도시, 죄 때문에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던 도시, 총체적으로 부패해서 도무지 소망이 없던 도시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므로 다시 의로 구속이 되어져서, 신실한 성읍으로 칭함을 받게 될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런 이스라엘의 회복의 역사가 언제 이루어 졌습니까?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 필레스틴에 귀환할 때에 이들을 지도한 스룹바벨이나 에스라나 느혜미야와 같은 지도자들을 통해서 이루어 졌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예루살렘, 즉 \"신실한 성읍\"이란 바로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진실한 크리스챤들을 말하는 것인데, 이들을 엄위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미래에 가서, 천국에 가서 완전히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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