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12) 사죄의 은총

사도신경(12)/사죄의 은총/요일1:8-2:2

사도신경 (12) : 사죄의 은총/요일1:8-2:2



오늘은 사도신경 강해 12번째 순서로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 이 대목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이 부분은 \'죄사함의 은총\'에 관한 신앙 고백입니다. 아주 짧막한 부분이지만 그 안에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몇 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릴 때에 피차에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모든 인간은 죄인 - 나 역시 하나님 앞에 죄인

성경은 곳곳에서 모든 인간이 죄인됨을 증거합니다. 이것은 성경에거 증거하는 어느 진리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성을 인정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는 한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인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히 뚜렷하게 도덕적인 흠이 없는 분들일수록 어렵습니다. 전도할 때도 이런 점 때문에 애로를 많이 느끼게 되죠. 점잖은 분에게 죄가 어떻고 하는 말을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거부감부터 생기기 쉽습니다. \"아니, 내가 왜 죄인이야? 살인을 했어? 도적질을 했어? 나만큼만 살라고 해 ... \" 이렇게 대꾸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고 말씀합니다. 롬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오늘 읽은 성경 본문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합니다. 8절 -> 우리가 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 기만\' 행위라는 것입니다. 10절 -> 더 나아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전락시키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구체적으로 어째서 모든 인간이 죄인입니까? 사람들은 흔히 사회법을 기준으로 혹은 외면적인 도덕적 행위를 기준으로 죄를 언급합니다. 물론 그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진리이죠. 성경은 보다 근본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 즉 인간 차원이 아닌 하나님 차원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닮은 고상하고 존귀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대로 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기준입니다. 그 기준에 미달되면 모두 죄인입니다.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더니 ...\" 그랬습니다. 죄를 헬라어로 \'하말티아\'라고 하는데, 본래 그 말은 과녁(=기준)에서 빗나간다는 뜻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맨 먼저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과녁에서 벗어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총괄하는 선악과 계명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원죄입니다. 그 죄가 모든 인간에게 대대로 내려온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죄성을 품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싫든 좋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개체이면서 동시에 혈연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시51:5에서 그런 사실을 고백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혹 어떤 분은 원죄에 대해 순순히 동의하지 못하는데, 아주 간단한 관찰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들을 관찰해 보면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죄의 씨앗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 흔히 아이들이 동생 볼 때 부모의 사랑이 동생에게 옮겨가면 이상한 반응을 보입니다. 심한 경우... 동생을 때리고 눈을 찌르기도 합니다. 어디서 배웠겠습니까? 내재하는 죄성의 발로입니다.

이러한 원죄를 갖고 출생한 인간은 모든 면에서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하는 것 등 ... 물론 그렇다고 인간에게 선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인간의 양심이 완전히 바미된 것은 아니지만 죄로 온통 오염되어 있다는 것입니다.(렘17:9)
예> 물이 든 글래스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 전체가 흐려집니다.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과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나는 괜챦다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부패한 인간끼리 \'도토리 키재기\'하는 격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겉에 보이는 언행뿐 아니라 마음의 생각부터 완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 속으로 음욕을 품는 것부터 간음이고, 마음 속으로 미워하는 것부터 살인이라고 말씀합니다.(마5:21-22,27-28) 행위 면에서는 그저 나쁜 짓을 하지 하는 소극적인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는 것도 죄라고 말씀합니다.(약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예> 비디오 카메라로 찍어서(겉 모습뿐 아니라 마음 속 생각까지 ... 영화 보면 마음 속 생각을 실제 모습처럼 찍어서 보여 주는 경우 있죠?) 그것을 하나님 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크린에 비춘다고 할 때 당당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늘 죄인임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신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 죄의 비참한 결과 - 죄사함의 은총이 절실한 이유

그러면 죄의 결과가 무엇일까요? 롬6:23에 의하면,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여기서 사망은 영적 사망입니다. 즉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입니다.(사59:2) 거기서 불안과 두려움, 불만족이 생깁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으로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므로 세상의 그 어떤 것을 다 들이대도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입니다. 말하자면 영적 고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라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결코 행복하지 못합니다.(내면의 고통 - 시32:3-4)
예> 탈옥수 신창원의 고백 - 전국을 누비며 도피 행각하며 탈취한 돈을 펑펑 쓰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항상 불안하고 ... 왜? 죄 때문에. 그러다가 검거되었죠. 그때 그의 고백이 \"이제는 그냥 편해요\"였습니다. 차리리 잡히고 나니까, 죄값을 하게 되니까 편하다는 것입니다.

죄는 이처럼 인간의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을 주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질병과 죽음까지 초래합니다. 그러나 가장 비참한 것은 영원한
형벌입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이 죄값에 대해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고 완전하신 분이므로 결코 그분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회법으로는 완전 범죄가 있을 수도 있고, 공소 시효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죄값을 다 받거나 아니면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결코 어물쩍 지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값을 받는 것은 너무 비참합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고, 종내는 영원한 사망을 당합니다. 우리는 결단코 이 비극을 피해야 됩니다. 죄사함이 꼭 필요한 것이죠.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요 행복해지는 길인 줄로 믿습니다.

[3] 죄사함을 받는 길 - 그리스도의 십자가

어떤 사람들은 죄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인간적인 방법을 시도합니다. 혹자는 적선을 합니다. 그러면 죄를 상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혹자는 죄는 심리적인 것으로 격하시키고 그냥 무시하고 잊어버립니다.(스피노자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 허위 의식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신분석학자 중에는 일종의 노이로제니까 무시해 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혹자는 자학하다가 목숨을 끊어버림으로써 속죄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고 이 외에도 사람의 어떤 방법도 전혀 가당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이 제시한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예수님을 \'화목 제물\'이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간의 죄값을 대신 치루는 대속의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지라 인간이 죄로 인해 불행해지거나 멸망 당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죄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사 인간을 대신하여 죄값을 치루게 하셨습니다.(요1:29) 그게 십자가 대속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는 자에게 죄를 사하시고 영생을 얻어 이 세상에서 복된 삶을 살고 장차는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요3:16)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만이 죄를 사할 수 있습니다. (엡1:7) 그런데 이때 우리에게 두 가지의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2천년전에 있던 것인데 오늘의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한가? 하는 의문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도 나의 삶을 보면 아직도 실수하고 죄를 짓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런 것은 어떻게 하나? 하는 의문입니다. 이 두 가지 의문을 동시에 해결해 주는 구절이 2:1절입니다. 의로우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우리를 위한 대언자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대언자는 변호자, 옹호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2천년전에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지만 지금 하나님 앞에서 그 결과를 갖고 믿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랑을 위해 대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믿으면 죄사함을 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일단은 모든 죄(과거, 현재, 미래)를 사한다는 선언을 하십니다. (칭의) 그런데 이것은 법적이고 신분적인 것입니다. 실제적으로는 아직도 남
은 죄성을 갖고 있습니다.(餘罪, 罪의 慣性) 그래서 죄의 유혹을 받고 다시 범죄하기도 합니다. 예수 믿기 전 옛 사람의 죄악된 습관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때도 역시 예수님이 대언해 주십니다. 열 번이고 백번이고 그렇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때 주의할 것은 우리 자신이 자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죄를 철저히 인정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그럴 때에 죄를 사해 주십니다. 이 약속은 확실합니다. 9절 -> 하나님이 미쁘시다는 말이 곧 신실하신, 그래서 약속을 꼭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죄를 사해 주시고 깨끗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 조금씩 죄의 모습을 벗어나게 됩니다.(성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처음 믿고 영접할 때도 회개해야 되지만. 그후에도 천국 갈 때까지 계속 자신을 살피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됩니다.
예> 예수님의 비유 말씀 - 목욕과 발씻음(요13:10)

[4] 사죄의 은총을 받은 성도의 삶

이제 사죄의 은총을 받는 성도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마3:8) 이런 삶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모습들입니다.

1) 거룩한 삶 : 우리가 사함 받은 것은 결코 값싼 게 아닙니다. 십자가 복음은 싸구려가 아닙니다. 흠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를 흘린 결과입니다. 우리가 흔히 회개하면 용서받는다고 말하다 보면 회개나 죄사함을 너무 쉽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되죠. 죄를 지을 때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처럼 심각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보배 피로 구원받은 거룩한 백성이 되었기에, 죄사함 받은 은혜가 있기에 죄를 단호하게 벗어 버리고 거룩한 삶을 실천하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가 연약하기에 반복해서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여야지 예수 믿고 수 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라면 곤란합니다. 주님은 죄를 사해 주실 때는 아무리 큰 죄라도 무조건 용서하셨지만, 그후에는 죄를 짓지 말라고 꼭 당부하셨습니다.(요8:11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용서하시면서) 또 성경은 회개하고서 또 다시 범죄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지 뭐라고 비유합니까?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잠26:11, 벧후2:22) 그러므로 십자가 바라보면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용서하는 삶 : 죄사함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관용의 인격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잘 알기에 남에게도 관용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죄사함의 은총을 받은 증거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용서하는 삶을 실천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주의 기도 가운데 ... 마6:12, 14-15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용서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엡4:32)

3) 헌신하는 삶 : 눅19: 보면 삭개오의 회심 사건이 나옵니다. 그는 여리고 세무서장이었는데, 로마 정부의 하수인으로 동족을 부당하게 괴롭히며 착복했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을 만나 죄사함과 구원을 체험한 후 그는 토색한 것 4배 갚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죄사함의 은혜를 체험하면 감사해서 아까운 게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 드리고 바치고 헌신합니다. 사죄의 은총을 받은 자는 모두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믿노라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십자가 은혜를 바라보면서 어떤 죄라고 회개하고 죄사함 받아 평강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