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죄를 사하소서

우리의 죄를 사하소서/요일1:9-

우리의 죄를 사하소서/요일1:9-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고, 천국의 시민으로서 하늘을 소망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지만 세상에 살 동안 세상의 것을 먹으며 삽니다.
새들이 푸른 창공을 날아다니지만 땅에 내려와 먹을 것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하여 진군할 때에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 육신을 위한 양식, 건강, 강건한 삶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우리의 육체를 위하여 기도한 뒤에 아주 중요한 기도를 하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육과 혼을 가지고 있는 짐승은 배부르면 그만이겠지만 그리고 우리 인간은 육과 혼 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존재인 우리 인간은 배부르고 등짝이 따스하다고 만족스럽고 행복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 인간은?
육이 잘 되어야 하지만 영이 잘 되어야 합니다.
육이 복을 받아야 하지만 영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육을 위하여 육의 양식을 먹어야 하듯이 영을 위하여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중세 유럽에 페스트란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나라에서 나라로 페스트가 전염되면서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는 1.2차 세계 대전 때에 죽은 것보다 더 높은 수치입니다.
전염병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고칠 수 없는 무서운 병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에이즈는 계속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치명적인 병들은 병균에 의하여 전파됩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것이, 보통 우리들이 무시하고 지내는 하찮은 것이 우리 몸 안에서 들어가서는 천하보다도 귀한 우리의 생명을 앗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요사이 광우병 때문에 온 세계가 시끄럽습니다.
광우병은 소나 사슴이나 인간에게 프레온이라는 단백질이 뇌를 스폰지 모양으로 구멍을 내면서 갑자기 죽게 만드는 병입니다.
프레온이란 단백질은 모든 동물의 신체 조직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곧 분해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이 프레온이 변종 되면서 독성을 갖게 되었고, 뇌에 쌓여 신경 세포를 파괴하면서 치명상을 입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프레온이 100도 이상 가열하여도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병리학자들은 천형으로 알려진 에이즈보다도 프레온이 일으키는 광우병을 더 무서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에이즈는 곧 백신이 개발되어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보지만, 광우병은 현재로서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던 프레온이 왜 갑자기 독성을 띤 변종으로 바뀌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소는 풀을 먹고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소에게 양의 뼈와 근육을 갈아 만든 동물성 사료를 먹였습니다.
휘발유로 가는 자동차에 디젤을 집어넣은 것과 같습니다.
광우병은 인재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거역할 때에 얼마나 엄청난 재앙을 가져오게 되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페스트, 콜레라, 에이즈, 광우병을 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것이, 하찮게 보이는 보잘 것 없는 미물이 고귀한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고, 살면서 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들의 죄가 우리의 영혼을 파멸시키고, 영원한 저주와 형벌의 장소로 우리를 끌고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병균은 인생 70이요, 강건한 80이라는 세상의 삶을 마치게 하는 무서운 것이지만, 죄는 영원히 파멸에 이르게 하는 더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육체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혼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세상의 삶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영혼이 구원받는 일입니다. 영혼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입니다.

배에 물이 차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무엇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먹던 것을 계속 먹어야 합니까? 자던 잠을 계속 자야 합니까? 잡던 고기를 계속 잡아야 합니까?
먼저 물이 어디에서 차 올라오는 가를 봐야 합니다. 배에 새는 곳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새는 곳을 발견하였다면 빨리 가서 구멍을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돈 버는 일도 중요하고, 출세하는 일이 중요하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도 중요하고, 먹고 자고 노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영원한 파멸로 이끌며, 우리 인생을 영원한 저주와 형벌로 끌고가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일단 육체를 위하여 오늘에 필요한 오늘의 양식이 있다면 평생 먹을 양식을 버는 일보다, 출세하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 너희의 영혼을 파멸에 이끌며, 영원한 저주와 형벌로 이끄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하나님이시여,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아도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바로에게 갔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처음 무엇이라고 말하였는지 아십니까?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광야로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절기를 지킨다는 말은 제사 드리는 절기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리러 가는 것입니다.
왜 제사를 지냅니까? 제사를 통하여 죄를 씻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들어섰습니다.
광야에 들어서자 마자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 가운데 하나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신 일입니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그 뒤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의 설계도를 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식양대로 성막을 지었습니다.

성막을 왜 지은 것입니까?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사 지내기 위하여 아론을 제사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야 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창세기 다음에 출애급기, 출애급기 다음에 레위기입니다.
이 순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는 이 세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았으며 그러나 인간의 죄로 선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세상에 죽음과 질병과 전쟁 등과 같은 악한 것들이 들어왔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출애급기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급기 다음에 기록되어 있는 레위기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제일 먼저 하여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레위기에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자세한 내용과 방법이 기록되어 있음. 그것은 바로 제사드리는 일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풀을 먹어야 하는 소가 풀을 먹지 않고 짐승의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어서 광우병에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 죄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으니 얼마나 선하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처음 땅인 에덴 동산은 낙원이었습니다. 기쁨과 감사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는 죽음과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질병과 아픔과 이별과 탄식이 가득합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이 어찌 이렇게 절망의 땅이 되어 버렸단 말입니까?
영생하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왜 생노병사의 아픔 가운데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 없이 살기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결단코 자유함이 없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참다운 만족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고행을 통하여, 선하게 살아서 덕을 쌓는 것을 통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유교에서는 효와 인을 통하여, 흰두교에서는 고행을 통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성철이라는 중은 고행에 대하여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등을 땅에 대지 않고 사는 장좌불와라는 고행을 10년 간 하였습니다.
철조망을 쳐 넣고 그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으로 사람을 들여놓지도 않는 동구불출이라는 고행을 15년 동안이나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죄는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롬 3:20) \"인간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고행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덕으로 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큰 바위를 던지면 첨벙 소리를 내며 물에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아주 자그마한 모래를 집어 넣어도 물에 가라앉습니다.
우리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는 아주 자그마한 죄라고 하여도 우리를 영원한 저주와 심판의 자리, 멸망의 자리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시편 107:10-11을 보면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여 죄를 지었고, 죄값을 받고 있는 것인데 - 쇠사슬에 매였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죄란 쇠사슬과 같은 것입니다. 너무도 강하게 우리를 묶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약한 힘으로는 결단코 풀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급에서 힘들고 피곤한 노예 생활을 400년 동안 하였습니다. 힘든 노예 생활에서 자유를 향한 몸부림을 쳐보지만 노예의 사슬은 더욱 강하게 조여 올뿐이었습니다. 풀어 버리고 싶은 종의 사슬을 풀지 못하고 400년 동안이나 묶여 있었습니다.

알렉스 헤일리가 지은 뿌리라는 책을 보면 킨타 쿤테라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잡혀온 흑인이 노예로서 아무런 소망 없이 죽도록 일만 하며 살았습니다. 두고 온 정든 고향을 그리워하며 탈출을 합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붙잡혀 끌려왔습니다. 킨타 쿤테를 붙잡아 온 백인들은 탈출한 죄로 거세를 당할 것인가? 다리를 짜를 것인가? 선택하게 합니다.
그는 다리가 잘릴 것을 선택함으로 후손을 보고되고, 알렉스 헤일리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죄의 사슬도 이와 같아서 우리 힘으로, 우리의 노력으로 결코 풀 수 없는 것입니다. 선행으로도 안되고, 고행으로도 안되고, 진실함으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좋은 주인은 자기가 데리고 있는 종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주인이 자유인이라고 선언할 때에, 종의 문서를 태우고, 자유인의 증명서를 줄 때에만 자유인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 사람들 밑에서 노예 생활로 신음을 하지만 400년 동안이나 풀려 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셔서 단번에 풀어 주셨습니다. 단번에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단번에 애급을 떠나 새로운 자유의 땅, 풍요의 땅으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죄의 사슬도 오직 하나님만이 풀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저주와 형벌의 장소로 끌고가는 더럽고 무서운 죄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자유케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나님,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죄의 사슬을 끌러 주옵소서, 우리에게 죄로 인한 저주와 멸망에서 자유케 하시사 영원한 생명을 주옵소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영광 자리에서 존귀와 찬송을 받고 계신 성자 예수님을 부르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으로 내려가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들이 힘들어할까 군대도 안 보내려고 합니다. 2년 반만 고생하면 되는 것인데, 국민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인데, 그것도 안 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들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세상에 내려가면 아름다움과 풍요함 대신에 가난과 궁핍함 가운데 사셔야 합니다.
세상에 내려가면 찬송과 영광 대신에 모함과 시기를 받아야 합니다.
세상에 내려가면 처절한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외아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기꺼이 이 고난의 땅, 죽음의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 자리를 내어버리시고 인간의 땅으로 오셨습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죄의 사슬에 묶여서, 죄 가운데 살다고, 죄가 끄는 대로 영원한 저주와 형벌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을 보시면서
인간의 죄의 사슬을 끌어 줄 수 있는 방법은?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성자 예수님께서 인간을 대신하여 죄값을 치르고, 인간을 대신하여 저주를 받고, 인간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고, 인간을 위한 대속의 제물이 되는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 가셨고, 기꺼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로 드리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영생의 길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것입니다.

어디에서 영생의 길을 찾겠습니까?
영생을 위하여 힌두교인들처럼 고행을 하겠습니까?
영생을 위하여 불교인들처럼 수양을 하겠습니까?
영생을 위하여 유교신자처럼 \"사는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죽는 것을 알겠느냐?\"라고 말한 공자의 효와 인만을 붙잡고 살겠습니까?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 믿으세요! 교회에 나오시지요? 하고 말하면 어떤 이는 \"나는 교회 다니는 것에 취미 없어요.\" 하고 말합니다.
교회는 취미로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심심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과목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하여, 영생을 위하여 꼭 해야 하는 필수과목입니다.

어떤 분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데 인간을 위한 지옥을 만드셨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몰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아주 자그마한 죄와 허물이라도 결코 넘어갈 수 없습니다. 어떠한 죄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반드시 죄값을 치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아뢰면 다 용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 1:18)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아무리 크고 더럽고 추하고 무거운 죄라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사랑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은 다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죄인만 있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통하여 용서받은 죄인들만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거기에 포함될 줄로 믿습니다.
지옥에 가도 죄인만 있답니다.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씻음 받지 못한 죄인, 용서받지 못한 죄인,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받지 못한 죄인들만이 있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 -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어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것이고,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지 않으면 우리의 죄도 사함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영원한 저주와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용서하여 주셔서 자유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되었는데 이것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자그마한 허물과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의 크기를 모르는 사람이고,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용서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1조원이나 되는 많은 빚을 임금에 진 신하가 있습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금액입니다. 그런데 좋은 임금은 아예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갚아야 되는 1조원 때문에 앉으나 서나 빚을 생각하며 빚에 눌려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갚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기쁜지?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 신하에게 100만원을 빚지고 갚지 않는 종이 있습니다. 이 신하는 그에게 빚을 갚지 않는다고 때리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임금은 크게 노하시며 신하를 잡아오게 하여 \"큰 것을 용서받았는데 작은 것을 용서하지 못한단 말이냐?\" 말씀하시며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크고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시며 우리 이웃의 자그마한 실수, 허물을 용서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크신 사죄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코리덴붐이라는 여자 분은 진실한 신앙인이신데 2차 대전 때에 신앙 때문에 독일 나치 감옥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코리덴붐 여사는 주님의 말씀대로 독일인을 향한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녀는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였고, 그녀의 용서와 사랑의 멧세지는 독일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녀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역사에 대하여 하나님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집회를 마치고 참석한 사람들과 인사를 하기 위하여 자기에게 오는 한 남자를 보는 순간 몸이 얼어 붙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수용소에서 자신의 언니를 죽게 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옷을 벗기고 채찍으로 때리며 침을 뱃던 그 남자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사랑하여도 저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해 주옵소서.\"
기도를 마친 후에 그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의 영혼 속으로 파고 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날 그녀는 하나님의 사랑의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으며, 미움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깨닫게 되었으며, 엄청난 환희의 순간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하며 용서하지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고, 주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하며 사랑하지 못할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죄의 문제가 하나님께 해결 받았음을 믿으시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용서를 가슴에 담고, 사랑하며 섬기며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