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멀리 하려면?

죄를 멀리 하려면/요일2:1-6

죄를 멀리 하려면
요일2:1-6



본문 요한 서신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 목적에 대하여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사귐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 사귐을 통하여 기쁨을 충만케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알고 신앙 생활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또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입니다.

(요일 1:3,4)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한편 그리스도인이 죄를 떠나야 함은 복음에 나타나는 전체적인 사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라도 죄를 범할 수밖에 없고 죄의 단절을 선언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죄 용서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도 세상에 살 때에는 항상 죄의 미혹과 유혹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는 신앙생활을 망치게 하고, 삶을 파괴시키고, 고통과 좌절을 안겨 줍니다. 더 나아가 가정과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어지럽혀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는 이 죄에서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종교의 궁극적 관심인 것입니다. 본문은 성도들로 하여금 죄를 범치 않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1. 죄의 유혹아래 있는 성도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를 갖고 믿음 생활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데 가장 큰 방해자는 바로 죄입니다. 이것은 또 우리 성도가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본문에서 성도들이 이 말씀을 읽고 방탕과 죄에 물들지 않도록 하여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갖도록 합니다.

(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당시 교회 안에는 영혼은 구원받았으니, 육체는 어떤 생활을 하여도 관계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은혜 아래 있다고 죄를 범하는 생활을 하는 것은 성도로서의 그 본질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롬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피로 죄 씻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죄의 어두움 속에 살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죄를 짓습니다. 심지어 믿음 강하다고 하는 자들까지도 수시로 죄를 범합니다. 성도는 인간의 약점과 한계점으로 인하여 불가항력적으로 시험과 함정에 빠져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죄가 꿈틀거리는 것입니다. 또한 죄가 가정까지도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죄가 모두 구원과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맙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뜻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성도는 가장 불행한 고통을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여기에 아담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단절됩니다. 이후 아담과 하와는 인간이 겪는 고통의 대표인 노동과 해산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

사람이 죄를 짓지 않으면 되겠지만 사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죄를 피할 방법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아주 불가능하도록 사람은 죄에 오염이 되었고, 완전하게 타락된 것입니다. 그리고 죄는 모든 불행의 근원이며, 공허, 분노, 허무, 두려움, 낙망, 좌절 등을 가져다 줍니다.

(롬 3:10-12)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인간에게 소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그 해결책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죄를 범하는 일에 대하여 무방비 상태로 지켜만 보시고 그냥 내버려두시거나 징벌만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만일 범죄하면’이라고 한 것을 보면 성도들이 죄를 범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성도들이 죄를 범치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면서도 죄에서 완전무결하게 떠나지 못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의 관심은 성도들의 죄를 지적하기보다는 죄의 근본을 해결하는 그 방법에 대하여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죄를 근본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은 ‘대언자’를 통하여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언자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요, 그는 우리에게 큰 은혜요, 축복이십니다.

(요일 2:1,2)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대언자’는 희랍어로 ‘파라클레토스’란 말로 ‘보혜사’란 뜻으로 그 의미는 ‘돕는 자’입니다. 성령은 성도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고 성도의 죄에 대한 중보 역할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한 성도는 실망이나 절망할 필요가 없고, 또 죄를 합리화하려 해서도 안됩니다. 죄를 스스로 이기려고 해도 악은 악을 유발할 뿐입니다. 죄를 범한 성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는 우리를 도우시는 자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3. 죄를 멀리하는 삶

첫째, 자신의 무능과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그는 우리와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우리의 죄에 대하여 화목제물이 되시므로 그 해결책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한편 우리 인간 편에서는 그를 의지하고 믿고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에서 ‘자백’은 구체적으로 죄를 깊이 생각하고 뉘우치며 진실하게 고백함으로 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회개하기를 자신의 침상을 적실 정도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였습니다. 또 눈물이 그 앞을 늘 기리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한편 사람이 죄를 지을 경우 그 상대자만의 관계는 아닙니다. 사람이 불화하고 서로 간에 화해를 했을 경우라도 죄의 형벌과 상처는 그냥 남아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간의 화해를 해도 하나님께 나아와야 하는 것은 죄의 형벌과 상처는 사람이 해결할 수 없고, 하나님만 그것을 치유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우리는 불행의 씨앗인 죄를 씻고 치유를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그의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 주실 것입니다. 죄를 멀리하려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없이는 안됩니다. 그에게 은혜와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둘째, 성령 안에서 살아 갈 때 죄에서 떠나게 됩니다. 이것은 더 이상 육신의 소욕을 중심하여 살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삶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방식을 물어보고 그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죄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고(롬5:5-9), 그의 생명으로 인하여 죄의 세력으로부터 매일 구원받게 됩니다(롬5:10). 이것은 크신 사랑이요, 축복입니다.

군인에게는 절대 복종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상부의 작전 계획과 판단이 부하의 생각보다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회사에도 결제의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는 것은 완전한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성령께 물어보고, 결제를 받아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자들은 영적인 판단을 위해서 목회자에게 상담을 해 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최선의 방법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께 물어보고 그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살아야 하고, 좌절과 실패, 낙망과 불안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하고, 축복 받고,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죄는 우리에게서 좋은 모든 것은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결 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의 축복이 없이는 죄에서 떠날 수 없고 더 나아가 어떠한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죄를 떠난 삶을 통하여 성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다음과 같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여기에 ‘사귐’(κοινωνία, 공동소유, 협동)은 본문의 배경으로 볼 때 ‘서로의 나눔’, ‘성령의 교제’를 뜻하는 것으로 복음의 축복과 은혜의 말씀 안에서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통이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원하는 최상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기쁨이 충만함입니다. 좋은 사람과 잘 사귀면 두 배, 세 배의 기쁨을 얻습니다. 그러나 불화는 끝없는 불평과 불행을 가져 다 줍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평가 기준은 신앙에서 오는 영적인 기쁨으로 가름할 수 있습니다(롬 5:11).

셋째로 그의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떠나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비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요일 2:5).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 얻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우리는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를 멀리하므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과 계속적인 교제의 삶을 지속시키고, 그 안에서 행하는 성도의 거룩한 삶으로 그 열매를 나타내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