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책감을 극복 하자

죄책감을 극복하자/요일1:9

죄책감을 극복하자/요일1:9


<本文>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1:9)

<序言>
어떤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는 엄마와 남동생을 심하게 미워했습니다. 두 사람이 너무 친했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엄마는 남동생에게만 애정을 쏟았습니다. 그 자매는 어느 날 어머니와 남동생을 향해 저주했습니다. \"어디 한 번 두고 보자구요 계속 그렇게 좋은지...\" 그 직후 남동생은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습니다. 남동생의 죽음 이후 어머니는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자매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미칠 듯이 화가 났습니다. 밤이면 계속 악몽을 꾸고 어느 날부터 귀에서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네 차례야 네 차례\" 그리고 상여의 방울소리.. 때론 하얀 상여가 보이고 동생도 보였습니다. 그는 동생에게 아무리 미안하다고 해도 동생은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이 자매는 몸이 급속히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매는 동생 귀신이 자기에게 들어와 떠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엄마와 동생을 저주했기 때문에 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깊은 죄책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죄책감은 자기를 괴롭히는 존재를 동생이라고 믿게 만들었고 그 존재를 떨쳐 버리는 것은 더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제 갈 곳으로 가고 귀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귀신은 원래 천사로 창조되었다가 타락한 영적 존재들입니다. 그 귀신이 동생에 대한 깊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이 자매에게 그 죄책감을 매개체로 역사한 것입니다. 그가 그 죄책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그 삶은 황폐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죄책감은 무력감, 자멸감을 가져오며 악령에게 이용당하는 매체가 되기도 합니다.

<本論>
1. 죄책감의 의미

죄책감(罪責感)은 사전적으로 보면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는 마음을 말합니다. 심리적으로 본다면 잘못을 했을 때 느끼는 상한 감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죄책감은 자책감과 같지만 굳이 말하면 차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죄책감과 자책감은 모두 \'a guilty conscience\' (죄를 느끼는 양심, 자각) 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죄책(罪責)은 \'the liability for a crime\' (범죄에 대한 책임)의 의미가 강조되고, 자책(自責)은 \'self-accusation\' (자기 비난, 고발)라는 의미가 강조된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죄책감을 느끼는 기준

죄책감은 \'a guilty conscience\' (죄를 느끼는 양심, 자각)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죄책감은 마음과 행동에 대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 주체는 양심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양심이 죄책을 느끼는 기준은 기질, 성품, 환경, 문화, 교육 등 다양한 요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죄책을 인식하는 양심의 기준은 도덕적 기준을 가질 수도 있고 신앙적인 기준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또 신앙적인 기준이라 할지라도 인식 차이에 따라 기준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양심이 느끼는 죄책의 기준은 죄의 반복에 의해 둔화될 수 있습니다. 미국 인디언들의 옛 이야기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네모진 쇳조각이 있으며,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할 때 마다 그 쇳조각이 돌아가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이때 느끼는 아픔이 죄책감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맨 처음 나쁜 일을 할 때에는 그 죄책감이 상당히 크나, 가면 갈수록 그 쇳조각의 날이 무뎌져서 사람이 죄책감을 덜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이는 살인을 계속 저질러 온 범죄자가 다음에도 범죄를 가볍게 저지를 수 있는 것에서 그 중심 내용은 사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양심이 화인 맞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딤전4:2). 성경은 오히려 이 양심이 깨끗하기를 원하고 죄에 대해 예민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주어진 것은 죄를 죄로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롬5:13). 하나님께 죄가 되는 것을 죄로 인식하고 책임감을 느끼기를 원하십니다. 곧 죄책감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그 죄책감은 죄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하고 죄를 회개하게 하고 죄에서 떠나게 하는 좋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절하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신앙적일 뿐 아니라 삶을 더욱 건전하게 하고 생산적이게 합니다. 삶에서 선택의 기준과 방향을 결정지어 주므로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적절한 죄책감은 삶에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죄책감을 잘 활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닭이 울 때마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회의 눈물을 흘리고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습니다 (마26:69-75 막14:72, 눅22:61-62). 그런 자신을 찾아와 불러 치유해 주신 주님께 생명을 바쳐 충성했습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한 죄 때문에 평생에 그 죄를 기억하여 전도여행과 심문자리에서 간증했고 늘 겸손해졌고 주님께 생명 바쳐 충성을 다했습니다 (행7:57-58, 8:1-3).

문제는 부정적인 죄책감입니다. 죄책감은 잘못을 했을 때 느끼는 상한 감정인데, 그 때 상심하고 분노한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고 그 감정이 내면 세계에 남아 있어서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어린 시절 혹은 오래 전에 에 느낀 죄책감을 아직도 지고 삽니다. 작은 일이 일어나도 결과적으로 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일에 에너지를 쏟지 못하게 되고 무력한 생애를 살아가게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아주 포기하기도 합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판 다음 예수님이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마27:3~5). 그러므로 내면에 남아 인생을 무기력하게 하는 죄책감을 정리해야 합니다.

3. 죄책감의 영향력

①무기력하게 만듭니다.

40세가 다 되어가는 일본인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고 평신도 리더도 했습니다. 그는 집안에서 가장 먼저 믿는 사람이었고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밤 중에 거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아버지가 거실 탁자 곁에서 꼬꾸라진 채 숨져 있었습니다. 심방 발작이었습니다. 집안에는 아버지와 자신 뿐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죽음과 함께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신앙의 지도자로서 완벽주의를 추구하고 있던 그는 평소 항상 자신을 부족하다고 정죄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완전히 좌절했습니다. 자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지옥에 갔다는 죄책감이 자기를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죽고 난 다음에 의지할 곳이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을 불렀지만 너무 외롭고 무서웠습니다. 아버지를 잃고 외로운 마음의 고통이 밀려 들 때마다 죄악된 방법으로 그 고통을 이겨 나가려 했습니다. 그는 완전히 타락하는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중 삼중으로 죄책감이 증폭되었고 결국 그 죄책감을 견딜 수 없어 다른 대상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에게 아버지 귀신이 들어와서 자신이 타락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결국 정신병을 앓게 되었고 사회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정신과 장애 진단으로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②자기를 학대하게 합니다.

어느 교회 목회자의 사모님이 있었습니다. 기도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교회가 안되면 죄책감이 들고 다 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자기를 향해 화를 내고 계시는 하나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교회가 부흥이 안 되는 것이 다 자기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자기의 꿈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당신이 죽어서 하나님에게 살려 달라고 간절히 빌었는데 그 꿈이 너무도 생생해\" 얼마 후에 자족 안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시누이로부터 남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동생! 내가 꿈을 꾸었는데 올케가 동생에게 너무 부족해서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꿈을 꾸었어!\" 라고 했습니다. 시댁 식구들은 새로 개척한 교회가 안 되는 것이 사모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는 말까지 서슴치 않았습니다. 사모님은 사모로서는 부족한 자신이 단지 남편을 사랑한 것 때문에만 결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괴로워 했습니다.

남편과 시누이의 정죄하는 말을 듣고 감정이 상했지만 그들의 말을 부인할 힘이 없었습니다. 남편과 시누이의 꿈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위치를 발탁시키고 일찍 천국으로 데려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사모님 안에는 점차 젊은 나이에 죽은 영정 사진이 그려졌습니다. 죄책감이 자기 안에 있는 좋은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자기 안에 있는 달란트를 계발할 수 있는 힘을 빼앗아 갔습니다. 거짓된 죄책감이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게 하여 자존감을 상실케 하고 자괴감과 자멸감을 가지게 한 것입니다.

4.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방법

①칭의(稱義)의 은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안에서 법적으로 죄책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신 것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죄값을 치루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죄의 결과로 오는 죽음과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그 죄값으로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자기 죄를 짊어지고 그 죄값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죄가 없다고 인정합니다. 의인이라고 인정합니다. 죄가 완전히 없어진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죄 현재에 지은 죄 미래에 지을 죄까지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 것입니다 (시103:12). 주홍같이 붉은 죄를 눈같이 희게 한 것이고 진홍같이 붉은 죄를 양털같이 희게 한 것입니다 (사1:18).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롬8:1).

②지은 죄를 하나님께 자백해야 합니다.

법적으로 죄가 완전히 없어져 의인이 되었고 천국에 가지만, 현상적으로는 죄를 지으면 그에 따른 고통이 따릅니다. 심리적인 죄책과 그 고통도 따릅니다.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합리화 시킨다든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거나 자기 죄를 은폐시키려 하면 안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은 죄를 은폐하려 했습니다 (창3:8) 아담은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고 하와에게 전가했습니다. 하와는 뱀에게 전가했습니다 (창3:12-13). 죄와 그로 인한 고통의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처리는 죄에 대해 동의하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結言>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면 죄를 자백하십시오. 그리고 자백한 죄는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데려와서 모세의 율법에는 돌로 치라고 했는데 어떻게 할지 물었을 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자 하나 둘 다 떠났습니다. 주님이 간음한 여자에게 말하기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범죄치 말라\"고 했습니다 (요8:11). 오늘 본문 요한일서1:9에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요일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