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은 죄를 짖지 않는 다고요

기독교인은 죄(罪)를 짓지 않는다고요?/요일3:4-9

기독교인은 죄(罪)를 짓지 않는다고요?/요일3:4-9


지난 주간에는 저희 집사람이 많이 아팠습니다. 오늘도 아파서 예배를 정상적으로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아내 사랑하기를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아픈 아내에게 짜증만 많이 부렸습니다. 아픈 사람에게 친절하게 돕지는 못할망정 심술을 부리는 제 자신을 보면서 \'참 악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죄악됨을 괴로워하면서 성경을 보는데 요한일서 3장 9절의 말씀이 비수처럼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저는 이 말씀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이 세상에 기독교인 중에서 죄를 안짓고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말씀입니까? 목사도 죄짓고, 장로도 죄짓고, 집사도 죄짓고, 남녀노소 모두 죄짓는데 그럼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들이 아니란 말입니까?

요한일서 3장 9절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다면 이 세상에 모든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말씀이 다 있습니까?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니 그럼 우리들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죄짓는 목사, 장로, 집사, 신자들은 몽땅 다 마귀의 자식입니까? 아니 그건 그렇다고 치고서 로마서 3장 10절에서는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럼 로마서 말씀은 틀린 것입니까? 요한과 바울이 싸우면 하나님이 누구의 편을 들어줍니까? 아니 요한과 바울이 싸울 것도 없이 요한 스스로 요한일서 1장 10절에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사오정 씨리즈 입니까? 같은 요한일서에서 1장과 3장의 말씀이 서로 반대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요한 사도님!

이리저리 주석을 참고해 보았는데 주석으로서는 답답한 마음을 확 뚫어주는 해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죄(罪)를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부터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에서는 죄(罪)에 대해서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죄(罪)를 뜻하는 용어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입니다. 언어는 그 집단의 관심사를 대변해 주는 좋은 증거입니다.

언어철학자인 훔볼트(독일의 철학자:1767~1835)는 언어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즉 언어는 특정한 민족의 정신이 구체적으로 발현된 것으로서 세계관을 나타내는 내면형식의 외부적 표현이라고 보았습니다. 예를들어서 에스키모인들의 언어에는 \'눈\'(雪)이라는 언어가 발달되어 있는데 \'내리는 눈\', \'쌓이는 눈\' , \'집을 짓는데 사용하는 눈\'으로 구분하여 표현합니다.
우리나라는 혈연이 많이 발달된 민족입니다. 따라서 가족에 대한 명칭이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영어에서 \'사촌\'(cousin)이라는 의미가 우리나라에서는 친가 쪽 사촌, 외사촌, 이종사촌 등으로 세분됩니다. 그리고 삼촌도 친가 쪽 삼촌과 외삼촌으로 구분합니다. 또한 형제를 칭할 때 연하에 대해서는 동생이라고 부르지만 연상일 때는 형, 누나(남자기준), 오빠, 언니(여자기준)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영어에서는 남자는 형이든 돈생이든 brother, 여자는 sister 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성경에 나타난 죄(罪)라는 용어를 살펴보면 죄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줍니다. 그러므로 구약에 나타난 죄에 대한 용어와 신약에 나타난 죄의 용어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구약에서 죄(罪)라는 용어 중에서 많이 사용된 단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아바르-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행위
2)샤가-무지(無知)로 인한 과오
3)타아-방황하는 잘못
4)파사-의도적으로 반역하는 죄
5)하타-단순하게 실수한 죄
6)마라-반역의 죄
7)마안-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절하는 죄
8)하나프-거룩한 것에 대해서 불경스럽고, 모독하는 죄
9)마알-신성모독이나 하나님을 배신하는 죄
10)아아-의도적인 악함
11)라마-행악자, 악인
12)라샤아-의롭지 못한, 불의한 죄
13)하마스-나폭한 죄
14)아알-그릇된 일을 행하는 죄
15)아말-죄로 인해 발생하는 근심과 고통
16)라아-악(惡)
17)아온-악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슬픔

신약의 용어(구약의 용어를 신약의 용어로 번역한 것임으로 구약의 용어와는 뜻이 중복된다)
1)하마르티아-계명을 어긴 죄, 표적에서 빗나감
2)파랍토마-범죄, 개인적인 과오
3)파라핍테인-하나님으로부터 변절한 죄
4)파라바시스-위반의 죄
5)파라바이노-고의적인 죄
6)아그노이아-무지로 인한 죄
7)아노미아-의도적으로 반역하는 죄
8)파라코에-불복종
9)아세베이아-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 불경 죄
10)아세베스-불경스러운
11)아디키아-인간에 대한 그릇된 행위
12)카키아-영적으로 사악함
13)포네로스-도덕적인 죄
14)아디크스-인간에 대한 불의(不義)
15)오페이레마-하나님께 죄인이지고 있는 짐(빚)

이 외에도 죄에 대한 용어가 많으나 이 정도만 조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릴 것은 이 용어가 같고 있는 뜻이 항상 소개한 뜻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 죄에 대한 개념이 성경에서는 이처럼 세분화되어 있다는 것만 용어를 통해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흔히 죄(罪)라고 지적할 때 나쁜 것은 다 뭉뚱거려서 죄(罪)라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죄(罪)라고 할 때는 그 의미가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개념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이는 측면에서
1)겉으로 들어나는 외형적인 죄
2)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죄

*생활적인 측면에서
3)도덕적인 죄
4)사회, 문화적인 죄
5)계명을 범하는 죄

*의지(意志)적인 측면에서
6)의도적인 죄
7)충동적인 죄
8)습관적인 죄

*인격적인 측면에서
9)반역하는 죄
10)믿지 않는 죄

이와 같이 다양한 측면에서 죄(罪)를 이해할 때 로마서의 말씀이나 요한일서의 말씀이 서로 상반되거나 충돌하지 않고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요한서신의 \'죄\'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배경을 이해해야 하고, 죄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요한서신을 쓰게된 가장 큰 이유가 영지주의자들의 도전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조용히 교회에 침입해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성도들을 유혹해 갔습니다. 그들은 교묘하게 성도에게 거짓된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그 병폐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대체로 죄와 지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의 미혹에 대해서 요한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요일3:7)

본문은 수신자 내에 있던 영지주의를 전파하는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둔 진술입니다. 요한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스런 지식, 즉 영지(靈智)를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영지를 깨달은 자는 육신에서 자유로워져 도덕적인 방종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의 신학과 윤리의 가르침은 요한 당시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미혹시켰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사도들이 전하여 준 복음 이외의 것을 가지고 미혹하는 자들을 멀리하며, 거절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하여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들이 요일 1장 8-10절 말씀입니다.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이 자신들은 죄에 대해서 자유롭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관계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요일 3장 4-9절 말씀에서 강하게 비판한 것입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일 3:4-9)

요한 사도가 요한일서에 1장에서는 \"사람이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말하는 죄가 있다\"고 지적하고서 3장에서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할 수 없다\"는 상반된 주장을 하게되는 배경에는 영지주의자들의 교리를 반박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을 염두에 둘 때 이 말씀의 의미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 문제에는 의도적인 죄(*아노미안)와 전혀 계획적이지 않은 죄(*하마르티안)로 나눌 수 있음도 용어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도 요한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일 3:9)은 말씀은 성도가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성도가 짓는 죄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는 의도적인 죄는 지을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죄에는 분명한 목적(目的)이 있습니다. 마귀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가지고 들어올 때는 죄의 목적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고자 하는 사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즉 마귀가 죄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많은 사람들을 죄로 유혹하여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유도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것은 어떤 행위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죄를 통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곳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이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죄를 짓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런 죄는 마귀와 그를 추종하는 마귀의 자식들만이 짓는 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죄는 결코 짓지 않습니다. 만약 그가 그런 죄를 짓는다면 6절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일 3:6)
즉 하나님은 대적하고 반대하는 죄를 짓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지도 않는 것이며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 예를 들겠습니다.
성남에 있는 A라는 교회에 전도왕이었던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얼마나 전도를 잘하시고 신실한지 그 교회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집사님은 유방암에 걸리셨습니다. 그 집사님은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음에도 신앙생활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항암 주사로 말미암아 몸은 극도로 쇠약해지고 머리는 무섭게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구역예배와 교회 봉사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신실하신 집사님의 행동을 보고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집사님이 철야기도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에게 간증을 하려고 하니 시간을 좀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흔쾌히 시간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간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비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희생하고 봉사했는데 내 병을 고쳐주지 않는가?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가? 하나님은 없다!.....\" 그 집사님은 악을 쓰며 하나님을 비방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 집사님을 끌어 내렸습니다. 교회 철야시간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집사님은 교회를 그만두고 절에 들어가서 목탁을 두드리며 마지막 생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로 난 성도라면 결코 이런 죄는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여집사님이 처음에는 전도도 잘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다른 신자들의 모범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모두 인간의 종교적인 열심에서 행한 것 일뿐 하나님을 알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녀는 결코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는 죄는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에 대해서 요한은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이 아무리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열심을 내어도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서 어떤 엄마는 대충대충 지저분하게 삽니다. 그런 엄마는 더러운 아이에게 관대합니다. 그러나 어떤 엄마는 매우 청결하며 깨끗한 것을 좋아합니다. 집안에 머리카락 하나가 떨어져도 반드시 청소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자기의 자녀가 지저분한 것을 용납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얼만큼 용납할 수 없습니까? 십자가를 통해서 죽기까지 용납하지 못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이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자기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입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바로 그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들의 죄를 씻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덮어져야 합니다. 지성소에 속죄소는 법궤를 덮는 뚜껑입니다. 속죄소의 뜻 자체가 바로 \'덮는다\'는 뜻임을 우리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죄가 덮여지고 사함을 얻은 성도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보장된 구속의 은혜를 힘입어 스스로 죄에 대해서 이기며 승리하는 성화와 성숙의 자라감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자라가기를 원하십니다.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3-15)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이 죄에 대해서 어린아이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장성하여서 능히 죄를 절제하며, 죄를 피하며, 죄를 이기기 원하십니다. 그 죄는 일상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윤리적이며 계율적인 것들입니다. 미워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거짓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모든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삶 속에서 오직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쫓아 하지 않는 모든 것이 하나님 보기에는 죄이기 때문입니다.(롬 14:23).

이제 분문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죄의 두 가지 측면을 설명하였습니다. 첫째는 1장에 기록된 죄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일상적이고 충동적인 죄를 짓습니다. 또한 아담 이후로 전가되는 원죄도 가지고 있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3장에 기록된 죄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자는 결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만약 죄를 짓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거짓된 신앙의 소유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 죄는 바로 일상적이고 충동적인 죄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는 죄입니다. 성도는 결코 이런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죄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하나님과 더 이상 교제하거나 인격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도록 만드는데 죄의 목적이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짓는 죄가 습관화되고, 습관화 된 죄가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것과 같은 발전이 일어납니다. 성도들은 이런 측면을 조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살아가면서 짓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죄를 지었어도 늘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는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실수를 했어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부담스러워 해서는 안됩니다. 죄가 많을수록, 실수가 많을수록 더욱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밀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를 속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롬 5:20)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사랑의 하나님은 성도가 죄 짓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같이 거룩해 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지은 성도가 절망한 나머지 하나님을 찾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더욱더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속죄의 은총을 입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죄를 멀리하십시오. 죄와 싸우십시오. 믿음의 선한 싸움에 열중하십시오.
그러나 죄를 지었습니까? 더욱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십시오. 아플수록 더욱 의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