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속죄일

대 속죄일
레16:1-10





성소와 지성소

해마다 7월 10일에 거행된 대 속죄일은 이스라엘 절기 중 가장 거룩한 날이다. 성막 안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데 지성소에는 1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만이 들어가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와 법도를 따라 자신을 위한 수송아지의 속죄제와 백성을 위한 염소의 속죄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구약시대에 지성소의 출입이 철저히 금지되었으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성전 안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마27:51) 이것은 주님 자신이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이 완전한 속죄제물이 되어(히9:28) 누구나 믿음으로 지성소에 담대히 들어가게 하셨다.

·속죄제의 두 염소

대 속죄일에는 두 마리의 염소를 취하여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하여,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의 염소로 드려졌다.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그 머리 위에 안수함으로 백성의 죄를 다 짊어지게 한 후 그 제물을 잡아드렸다. 제물이 제단에서 타는 동안 대제사장은 제단 밑에 무릎 꿇어 엎드려 회개하였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면서도 저들의 허물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아사셀의 염소는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쫓겨나는 것이다. 아사셀의 염소가 광야로 나가는 것은 백성의 죄가 점점 멀어지고 제거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성문 밖으로 쫓겨났으며 갈보리 언덕에 홀로 버려졌다.(마27:48)

레위기 16장은 레위기의 중심 부분같이 중요합니다. 해마다 7월 10일에 거행된 대 속죄일은 이스라엘 절기 중 가장 거룩한 날입니다. 대속죄일에 관련된 말씀을 생각하겠습니다. 첫째로 생각할 것은 성막 또는 성전 안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에는 사이를 가로막는 커다란 휘장이 쳐 있으며 지성소에는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으며, 다만 대제사장만 일년에 단한번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2절 말씀을 보면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입니다. 법궤 위 속죄소는 지성소를 의미하는데 아무때나 들어오지 말아서 죽음을 면하라고 한 것은 지성소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므로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가 만 백성의 죄를 속하는 속죄제사를 드렸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처럼 지성소의 출입이 철저히 금지된 것은 하나님과 범죄한 인간 사이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으며 죄로 인하여 쫓겨난 인간은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지성소 외에는 없었고 그나마 두렵고 떨릴만큼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성전 안에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았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는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누구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려고 성전에 자유롭게 나올 수 있고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껏 부르며 교제하게 된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성소와 지성소의 구별이 없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히 9:28에 보면 \"이와 같이 그리스도로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이 십자가 위에서 속죄제물이 되어 단 한번으로 영원하신 속죄를 드리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면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야훼 즉 여호와와 엘로힘 즉 하나님인데 이 두가지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라는 아도나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하루에도 수십번 부를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가 뵈올 수 있습니다. 이 은혜야말로 신약성도인 우리들은 엄청난 특권과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므로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만만 감사하며 주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대제사장인 아론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 어떻게 했나를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아론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롬 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할 특권을 가진 대제사장일지라도 그도 인간인지라 흠이 있고 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속하는 속죄제를 드려야 하고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하는 번제를 드렸습니다.


대제사장이 그러했거늘 우리 모든 인간은 말할 것이 없습니다. 이사야 1:16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살펴 허물의 씻음 받아야 합니다. 시편 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죄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모든 질병과 환난에서 건짐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고 하셨을 때 누웠던 침상을 들고 걸어 나갔습니다. 우리는 항상 죄를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사유의 은총과 기쁨과 소망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아론은 세마포 흰 옷을 입었습니다. 4절에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론이 평소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화려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흰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 앞에 나갈 때 흰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합니다.


흰 세마포 옷이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19:8에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도 \"여호와께 경배하러 여호와의 집문에 들어가는 자들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렘7:1) 아론이 흰 세마포 옷을 입지 않고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 세마포 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씻음받은 대속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는 새 사람을 입으라\"(엡4:23-24)고 하신 바울의 권면대로 흰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신령한 영적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론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혼자 들어 갔습니다. 성막 안에서는 제사장들이 함께 사역하지만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대제사장 혼자 들어갑니다. 옷자락에는 방울을 달아서 지성소 안에서 움직일 때마다 방울소리가 나게 했습니다. 방울소리가 나면 살아있고 방울소리가 나지 않으면 하나님이 데려가신 것입니다. 또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의 무릎에 밧줄을 묶고 들어갔습니다. 만약 지성소 안에서 죽임을 당할 경우 아무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으니 끌어내기 위함입니다. 혼자 들어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 주님도 골고다 언덕을 혼자 오르셨고 십자가도 혼자 지셨습니다. 주님 혼자서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심지어 우리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시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얼굴을 돌려버린 철저히 혼자서 당하신 죽음입니다. 혼자 지성소에 들어가신 주님은 우리에게도 혼자일 때 은혜를 주십니다. 철저하게 혼자 되었을 때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야곱이 얍복 강변에서 홀로 남아 기도했을 때 하나님과 대면하였고 새 사람 이스라엘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나만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구원은 1:1의 만남입니다. 아버지가 목사라고 내가 구원얻는 것 아닙니다. 나와 예수님과의 1:1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목사도, 부모도, 아내도, 남편도 날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단독적인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대속죄일에 드릴 두 염소에 대해서 생각하겠습니다.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두 마리의 흠없는 염소를 준비합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제비뽑아 여호와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잡아 드렸고 또 한 마리는 아사셀의 염소로 택하게 됩니다. 대제사장은 속죄제물로 제비뽑힌 염소의 머리에 백성의 허물과 죄를 낱낱이 덮어 씌우고 목이 부러져라 안수를 합니다. 그 염소는 백성들의 수백 수천가지의 죄를 덮어쓰고 죽임을 당하고 속죄제물로 드려집니다. 이 속죄제물은 우리 주님의 대속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베드로전서 2:24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 사랑, 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되었으며 풍성한 생명을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제물이 제단 위에 놓여지고 제물이 타는 동안 제사장은 제단 밑에서 꿇어 엎드려 회개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합니다. 히 7:25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심한 통곡과 눈물로 친히 간구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시며 온전한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속죄의 죽음을 항상 생각하며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토마스 아켐 피스는 \"네가 십자가 지고 가라. 그리하면 십자가가 너를 업고 천국에 가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한 마리 염소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입니다. 아사셀은 \'떠나보낸다\'는 뜻으로 16장에 세 번이나 나타납니다. 아사셀의 염소는 백성의 모든 죄를 덮어쓰고 광야로 쫓아 보냅니다. 그 염소의 뿔에 붉은 천을 맨 후에 광야로 몰아냅니다. 광야로 쫓겨간 염소가 점점 멀어지면 내 죄가 점점 멀리 사라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아사셀 염소는 인류의 죄악을 홀로 담당하고 성문 밖으로 끌려나가 골고다로 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광야에 버려진 염소처럼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으며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사야 53:3에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갈3: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는다면 나의 모든 근심과 걱정의 무거운 짐도 주님이 지고 가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시 123:12의 말씀처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악을 멀리 옮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난날 허물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한번 용서하신 죄는 기억도 아니하십니다. 저멀리 사라져버린 염소는 우리의 죄가 영원히 사라져 버렸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용서는 과거를 문제삼지 않습니다. 만약 용서하였다면 과거의 허물과 죄를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아사셀의 염소가 멀리 광야로 나갑니다. 제사장은 산에 올라가 멀리 떠나는 염소를 바라보면서 그 염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면 제사장은 손을 흔들어 염소가 사라졌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신호를 받은 제사장은 그다음 제사장에게 알리고 또 다음 제사장에게 알려서 지성소에 있는 대제사장에게까지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하면 대제사장은 \"너희의 죄가 사라졌도다\"라는 선언을 합니다. 백성들은 그때까지 죄인의 자세로 슬픔을 안고 있다가 그 선언을 듣고는 기뻐뛰며 우리의 죄가 사라졌도다 하며 축제가 시작됩니다. 시편 30:11에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도다\"라고 노래합니다. 초대교회 예배는 잔치요 찬미요 축제였습니다. 우리의 죄를 멀리 사라지게 하신 주님, 우리에게 슬픔 대신에 기쁨을 주시고 찬송의 옷을 입혀주신 주님을 높이며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구속받은 성도 여러분! 대속의 제물이 되신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가 충만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