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제물을 불태우는 까닭

속죄 제물을 불태운 까닭
레10:16-20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그가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가로되 이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뇨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그 피를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였으니 그 제육은 너희가 나의 명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할 것이니라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 제육을 먹었더면 여호와께서 어찌 선히 여기셨으리요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





지난 주일에는 거룩한 것과 거룩치 않는 것을 분별해야 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특별히 한국 교회에 들어와 있는 세속적인 정신중에 목사에 대한 인식 문제와 목사의 설교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는 성직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특별한 거룩을 덧입혀서 특별하게 거룩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직무(전공)가 다를 뿐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설교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설교란 기교나 방법이 아니라 성경 말씀의 정신, 사상을 바르게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방법이나 기교야 어떠하든지 성경 말씀의 정신과 사상을 바르게 드러내거든 그것에 굴복하고 아멘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도 같은 유의 문제점들을 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은 그 날에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아론이 백성의 죄를 위하여 드린 속죄제 염소를 먹지 않고 불살라 버린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모세가 노하였습니다. 천하 모든 사람들보다 온유했던 모세가 노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를 17절을 자세히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17절을 봅시다.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곳에서 제사장이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먹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단순히 음식으로 먹으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제사장이 먹어야 드리는 자의 죄를 담당하게 되고 또 죄를 속하게 됩니다. 제사장이 제육을 먹는 것은 죽은 짐승과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 그리하여 죄를 지고 죽은 짐승의 죄를 담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라고 했습니다. 회중의 죄를 진다는 말입니다. 짐승의 고기를 먹음으로 제사장은 짐승과 하나가 되어 짐승이 대신 진 그 죄를 자기도 지게 됩니다. (ࠄ࠙ࠀࠊࠛ࠙ग) 이것이 바로 담당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를 담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큰일이지만 죄 담당자로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니까요. 그러나 속하게 하는 일을 제사장은 합니다. 제사장은 속죄권이 있기 때문입니다.(레 4:20,26,35) 그러면 어떻게 해서 제사장이 속죄를 하게 됩니까? 출 28:36-38에 보면 제사장 이마에 새겨진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정금 패가 붙어 있어서 아론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성물의 죄건을 담당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즉 패 때문에 죄도 사죄가 되고 그래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입혀 주신 거룩으로 죄를 거룩한 것으로 만드는 위치에 있는 자가 대제사장 아론의 위치입니다. 이런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물론 제육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먹음으로써 죄를 담당하는 일과 거룩하게 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한 몸으로 죽음에 참여하여 죄를 담당하는 일과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는 두 가지 기능을 하는 셈입니다. 이런 일을 제육을 먹으므로 해야 하는데 먹지 않고 불살라 버렸으니 모세가 화를 낸 것입니다.



그런데 아론의 입장에서는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13절을 봅시다. \"오늘 그들(죽은 두 아들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속죄제와 번제를 드렸어도 하나님이 벌을 내리셨다는 말입니다. 즉 비록 직접 범죄하지는 않았지만도 아론을(제사장들을) 허물 있는 자로 취급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제육을 먹어서 백성을 위해 속죄하며 또 거룩하게 하는 일을 할 수가 있겠느냐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 오늘 내가 속죄 제육을 먹었다면 여호와께서 어찌 선히 여기셨으리요.\"라는 구절입니다. 허물 있는 자로 지적 받은 상태에서 중보자의 기능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번제처럼 온전히 불살라 하나님께 바쳤던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한 모세가 아론의 행위를 좋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속죄제는 무효가 되어 버렸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아론도 허물 있는 위치에서 스스로 근신하면서 물러간 이상 이제 허물은 대신 죽은 짐승(염소)이 다 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따져 보면 인간 제사장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출애굽 할 때 제사장 없이 어린양의 죽음만으로 출애굽 했습니다. 홍해를 가르고 만나를 내리고 물을 내시며 인도하신 것은 제사장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어린양의 피, 유월절의 피의 효력이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유월절의 피는 광야 40년 간 계속 효력을 발휘했음을 여호수아 5:10-12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을 왜 세웠습니까?

하나님이 애굽에서 장자를 죽일 때 사실은 이스라엘도 죽은 자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피 때문에 살아난, 어린양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자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린양의 소유물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어린양에게 바쳐진 온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 레위인이고, 레위인 중에서 또 바쳐진 사람이 제사장이라면, 제사장은 온 이스라엘의 제물입니다. 애굽과 함께 죽고 어린양의 생명 받아 살게 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여기서 제사장 세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을 세운 것은 감투나 특권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본래 애굽인과 같이 죄로 죽었던 사람이지만 어린양이 대신 죽음으로 다른 생명을 얻어 살게 된 민족임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제사를 드릴 때마다 이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짐승의 죽음에 동참시켰다가 또 짐승의 생명 곧 입혀 준 거룩 때문에 죄사함 받고 성결하게 된다는 것을 이스라엘이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사장의 성결과 영광이란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린양의 거룩을 가지고 입혀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론이 허물 된 위치를 깨닫고 물러가도 속죄 제사는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짐승의 죽음만으로도 충분히 효력이 있고 백성이 살수 있는 것입니다. 아론이 속죄제를 불사른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비록 아론이 이런 의미를 파악했는지 못했는지 잘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이 의미를 파악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애굽에서부터 어린양의 죽음으로 출발하여 지금까지 지나온 것을 친히 경험하여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어른이든 아이들이든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이 할 것이 무엇입니까? 대신 죽는 죽음만 알고, 그 때문에 살고 있다는 것만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 때문에 그들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은혜만 아는 것.- 이것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일입니다. 그들이 할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기에 오늘 한국 교회를 위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여, 너희가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느니라. 오로지 주님의 은혜만 알아라!\" 바로 이것입니다. 이럴 때 아론처럼 \"제사만으로 족합니다. 나는 죄스러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 한국 교회가 그러합니까? 죄스럽고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하는 대신 \"우리가 나서겠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겠습니다. 거룩하게 만들어 보겠습니다.\"고 하는 형편이 아닙니까? 지난주는 목사와 관계된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드러진 병폐중 하나가 목회자들이 \"꿩 잡는 것이 매\"라는 의식에 빠져 있습니다. 즉 \"교회 부흥시키면 목회 성공이다.\"는 공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신학 공부할 생각도 안합니다. 성경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할 일이 목회 성공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공하는 방법을 찾습니다.

-C.C.C, 네비교육, 각종 성경 공부와 소그룹 운동, Q.T 등등- 하지만 이런 것들로 사람이 바뀌지 않습니다. 은혜만 알고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 신사, 고등 예수쟁이, 허름하던 농사꾼 같은 사람들이 이제는 양복 입고 책 옆에 낀 점잖은 사람, 속에 든 것이 있어 행세할 줄 아는 그러면서도 빤질빤질하게 닳아빠진 장돌뱅이 기질을 가진 신사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합니다. 또 총동원 전도 주일 합니다. 세상 장사꾼의 유혹에 빠져 찾아온 사람들이 수천, 수만 와도 그들이 예수 믿습니까? 그런 것으로는 믿는 자 안됩니다. 그래도 당회장 목사는 이런 사람들 관리 잘 못한다고 부교역자들을 무더기로 해고시키고 있습니다. 거기에 장로들은 당연하게 동조합니다

. 똑같은 장사속을 가진 주주들이니까! 이게 어디 교회입니까? 세상에서도 안하는 일을 교회가 소위 \"주의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좀 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사실입니다. 목회 성공이란 교회 우상, 자기 우상을 내 걸어 놓고 십자가도 은혜도 없고 의와 인과 신을 버린 회사나 장터와 같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 아닙니까? 원인이 어디 있습니까? 졸업과 동시에 성경 공부에, 신학 공부에 손떼고 우상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에 쫓아다니다 보니 알맹이는 다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남았으니 거기에 세상 정신이 꽉 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꽉 들어 와 진을 쳤습니다. \"꿩 잡는 것이 매\" : 부흥만 시켜라 -무슨 정신입니까? 욕심을 이루는데 유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실용주의\" 철학의 사고 방식입니다. \"하면 된다. 부정적인 소리하지 마라.\" -세상의 측면이요 심리학입니다. 목사들이 \"진리대로 해 봐라. 교회 되는가?\"라고 비웃고 있습니다. 사단과 마귀들이 교회에 앉아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두세 사람이라도 은혜만으로 족함을 아는 곳이 교회입니다. 아무리 많이 모여도 은혜만으로 족한 줄 모르는 곳은 교회가 못됩니다. 세상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한국 교회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죽음의 모습, 새 생명의 모습, 은혜만을 보여주지 못하는 곳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형편은 세속화의 단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면서도 아론처럼 깨달아야 할 터인데 그럴 줄 모릅니다. 주님께 왕권을 드리고, 전부를 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거룩이요, 속된 것입니다. 레위기의 구원은 비거룩 즉 세속에서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자들이여 나와서 거룩한 자가 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아론이 제육 먹은 뜻을 아십니까? 은혜만으로 족합니까? \"주 예수님만으로 족합니다.\"를 고백하십니까? 한국 교회와 자신을 생각해 볼 때 아론처럼 깨달아야 할 점은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