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그리고 속죄

희생 그리고 속죄
레1:1-9





·레위기의 기록 목적

레위기는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경건한 방법과 하나님 섬기는 법을 제시하기 위하여 기록하였으며 레위기는 제사법을 통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방법과 성결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을 기록하였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과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게 사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제사는 제사장의 중재로 백성들이 짐승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원리인데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예표이다.


·레위기의 중심사상

레위기의 중심사상은 성결(holiness), 희생(sacrifice), 속죄(atonement)로 요약할 수 있다. 성결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완전한 순종을 원하고 계시므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가는 삶 전체를 말한다. 본래 성결이란 \'분리하다\'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카다쉬」에서 유래된 말이다. 카다쉬는 거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속된 것으로부터 분리된 삶, 성결과 거룩함으로 살아야 한다. 희생은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는 희생제물을 그 특징으로 한다. 본래 희생은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과 감사의 표시였다. 그러나 피를 흘리는 희생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으로 연결되는 구속의 완성을 뜻한다. 그러므로 레위기의 특징은 제물과 제사의 규례를 다루고 있으나 그것은 새 언약을 세우기 위해 단번에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제사가 예배의 원리로 바뀐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척 보고 싶었습니다. 멀리서 우리 교회를 보니 더 아름다워 보이고 성도 한분 한분의 얼굴이 뚜렷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저는 지난 한달간 미국에서 4개 교회 부흥회를 은혜 가운데 인도하고 돌아 왔습니다. 제가 출발한 그 시간부터 각 기관별로 시간시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 기도로 인하여 4개 교회 모두 큰 은혜의 역사가 일어났으며 말씀의 깨달음과 회개와 믿음의 새로운 결단이 속속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집회를 통하여 \'성도들의 기도의 힘이 이렇게 크구나\' 하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신 목사님들과 여러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4개 교회 모두 미국 한인교포 교회이지만 교회마다 특성이 다 달랐으며 믿음의 colar가 다 달랐지만, 한 하나님의 말씀과 한 성령의 역사는 모두 다 말씀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하였고 신앙의 대 각성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프린스톤 한인교회는 한국에 선교사를, 최초로 언더우드 목사님을 파송한 노회이고 초대 총회장이며 우리 교단 신학교 교장인 마렛 목사님을 파송한 노회에 속한 교회였습니다.

저는 한달간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레위기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고 레위기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믿음을 배우고 가르치고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언젠가 제 목회 중에 레위기를 온 성도들에게 한번 강해해야 되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행하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하여 시작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신학대학생이 여러 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봤는데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제일 안 읽는 성경이 레위기라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동일한 대답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학생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기독교인들이 제일 많이 읽는 성경은 창세기였고, 두번째는 출애굽기였다고 합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됩니까? 왜 창세기를 제일 많이 읽게 되었습니까?

연초에 결심하기를 금년에는 성경 한번 읽어야지 하고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읽어가는데, 재미도 있고 결심이 사그러지지도 않아서 부지런히 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출애굽기에 넘어가서 열심도 식고 결심도 약해져서 많이 읽지 못하다가 레위기에 넘어가보니, 듣도 보도 못한 내용들과 우리가 믿는 내용과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나오니 읽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레위기는 대부분 성도들이 읽거나 공부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현주소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창세기는 우주의 기원을 기록한 책이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의미는 죄의 기원을 기록한 책입니다. 죄가 인간에게 어떻게 들어왔으며 죄로 인한 인간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기록한 책이며 죄인을 불러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신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마지막 장인 50장 끝절인 26절에는 「요셉이 일백십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자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사망의 실체인 시체를 입관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인들이 창세기를 많이 읽기 때문에 죄에 대하여 민감합니다. 옛날 부흥회는 으례히 첫시간에는 부흥강사가 강단을 치면서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한국교회 부흥의 불길은 1901년 평양에서 시작된 회개운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집집마다 통애자복하는 울음소리가 마치 초상집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한국교회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애굽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가게 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보이신 것입니다. 오늘날 구속사 신학자들은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의 큰 뜻을 보여 주신다고 했습니다. 한국 기독교 신자들이 창세기 다음으로 출애굽기를 많이 읽어서인지 구원의 감격이 큽니다. 우리의 찬송가 대부분이 19세기경 미국의 복음성가 즉 구속의 은혜를 찬송하는 내용들입니다.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와 구원의 감격은 우리 신앙의 기본이며 건전한 신앙골격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레위기를 읽지 않아서 그런지 레위기적 신앙이 없습니다. 레위기의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치는 성경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레위기를 읽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니 하나님 섬기는 법을 모릅니다. 10년, 20년을 신앙생활 하고 교회의 중직을 맡고 있어도 하나님 섬기는 법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믿는 그 믿음의 자세가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잘 믿으려고 하지 말고 바로 믿으려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남보다 잘 믿으려는 교만 때문에 남을 업수히 여기는 영적교만이 생깁니다. 바로 믿으려는 신앙은 하나님 섬기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시작하는 레위기 강해를 통하여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바로 알고, 바로 믿는 신앙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레위기를 기록한 목적은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경건한 방법과 하나님 섬기는 법을 제시하기 위하여 기록하였습니다. 레위기는 제사법을 통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방법과 성결한 삶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을 기록하였습니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과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게 사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에는 5대 제사가 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이 제사는 제사장의 중재로 백성들이 짐승의 제물과 피를 통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원리인데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예표입니다.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씀이 130번 이상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장∼17장까지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거룩하여질 수 있는가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 18장∼27장까지는 거룩하여진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의 중심사상은 세가지인데 성결과 희생과 속죄입니다. 성결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완전한 순종을 원하고 계시므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 전체를 말합니다. 본래 성결이란 \'분리하다\'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카다쉬」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카다쉬는 거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속된 것으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아아 하며 성결과 거룩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5대 제사 가운데 첫번째 나오는 제사가 번제입니다. 번제는 \"올라간다, 높이다\"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는 위로 드려지는 제사를 뜻합니다. 번제는 아침 저녁으로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번제로 드려지는 제물은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 등인데 흠이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살찌고 큰 황소라도 흠이 있으면 안됩니다. 흠없는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흠있는 제물을 드릴 생각도 안했고 드린다 해도 하나님이 그 제사는 흠행하시지 않습니다. 흠없는 제물, 그것은 바로 성결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영광을 받으시기 원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신약에 와서 예배로 바뀌어집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제물을 갖고 나갔지만 예수님께서 단번에 속죄양이 되셔서 피흘려 주심으로 구약의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

히브리서 9:12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고 하셨고 14절에서는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완성하신 제사를 이제는 우리가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면 되는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예배에도, 우리의 인격에도, 우리의 삶에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시간 흠이 없이 드려야 합니다. 10시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주님께 에배를 드리겠다고 시간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 계약을 파기하거나 흠집을 내서 드리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을 온전히 구별하여 드려야 합니다. 10분쯤 구겨서, 흠집을 내서 드리면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성에 흠이 없어야 합니다. 서양 사람은 아무리 어려워도 옷두벌은 장만합니다. 한벌은 예배드릴 때, 교회나올 때 입는 옷입니다. 그리고 한벌은 장례식때 입는 옷입니다. 저는 부교역자님들이 부임해 오시면 장례식에 입을 검은 양복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만약 없다면 반드시 준비해 두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는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뜻없이 드리는 예배는 흠있는 예배입니다. 정성과 뜻을 바쳐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우리의 말에도, 우리의 자세에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몸과 생각과 행동에 흠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결입니다.

그리고 레위기에서 강조하는 것의 하나가 희생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는 희생제물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 본래 희생은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과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삶과 예배에는 희생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우리 주님의 희생을 생각하며 우리도 주님께 모든 것을 희생하는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댓가를 따지는 것은 희생의 삶이 아니며 사랑을 저울질하는 것은 희생으로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 기도, 헌금, 봉사 속에 희생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제가 이번 집회 인도 가운데 있었던 일입니다. 테네시주 네쉬빌 한인장로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는데 제가 설교 가운데 우리 교회가 하고 있는 목요선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어떤 여집사님이 목요선교회를 위해 전해 달라고 헌금봉투를 하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호스피스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호스피스병동 건립기금에 전해 달라고 헌금봉투를 또 주셨습니다.

이 집사님은 20여년전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에 가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 남편이 죽고 또 다른 미국 사람과 결혼하여 사는 집사님입니다. 그 최집사님이 하는 일이 택시운전사입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택시가 흔하지 않습니다. 공항이나 역에 주로 보입니다. 전화를 해서 택시를 부르면 호텔이나 가정에 가서 태워다 주는, 주로 콜택시입니다.

그 교회 목사님 말씀으로는 이 분이 여름에는 손님이 없을때 택시 안에서 기다리는데 택시 에어콘을 켜지 않고 땀을 흘리며, 성경을 보면서 앉아 있고, 겨울에는 담요를 무릎 위에 얹어 놓고 기다린답니다. 그렇게 해서 생활을 하는 집사님이신데, 그에게 아픈 마음이 크고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지만 주님께 헌신하는 모습은 너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나보다 비참한 사람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희생의 그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희생없이는 안됩니다. 주님을 만나는 경건한 믿음과 성결한 삶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주님의 속죄의 희생, 그 삶을 본받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