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표현인 징계/히12:1-13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경과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러한 고난과 역경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는 참 중요합니다. 우리가 다윗이 문제를 만날 때 갈등과 고민 속에서 자기 자신을 먼저 성찰해 보는 모습을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역경과 고통이 있을 때 대개의 경우는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불평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자는 모든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펴봅니다. 혹시 내가 하나님 앞에 지은 죄는 없는지를 살펴보고 회개하는 기회를 가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을 가지시고 이렇게 일하시는지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도하는 기회를 가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그것이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는 일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우연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직면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 가운데는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징계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주시는 것도 있습니다. 대개가 이러한 경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여러 차례 경고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하시는 과정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사에서도 그러하듯이 부모가 자녀에게 잘못된 언어 습관이나 행동을 고치도록 여러 차례 훈계하고 이야기합니다. 계속하여 듣지 않고 잘못된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매를 들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러 차례 말씀을 통하여 가르쳤거나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듣지 않을 때 사용하시는 방법이 징계입니다. 오늘은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하게 될 내용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 방법 가운데 한 가지인 징계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징계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를 인내하며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중심으로 첫 번째로는 믿음을 가진 자가 걸어가야 할 삶이 특성에 대하여,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징계에 대하여, 세 번째로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믿음을 가진 자가 걸어가야 할 삶의 특성
오늘 설교의 주제인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징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신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어떤 삶의 원리가 작용하는 사람들일까요?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세계관, 또는 철학에 지배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일까요? 여러분의 삶을 움직이고 지배하는 원리는 무엇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말과 행동,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모든 일을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 여전히 세상의 철학이나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는 것은 우리의 가진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히브리서 문맥에서 볼 때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하늘 보좌로 나갈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줄을 알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전체에서 우리 신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의 형제(히2:11)요,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히6:17)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문맥이 놓여있는 히브리서 10:39에서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는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멸망하는 자가 아니요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을 가진 자는 역시 거기에 합당한 삶의 특징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을 가진 자들은 이 세상에서 많은 환란과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생존권을 박탈당하기도 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며, 목숨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갈등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과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신다는 약속을 믿는 우리의 믿음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갭(gap)이 있음으로 갈등을 느끼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갈등은 오늘 우리에게도 있지만 히브리서를 기록할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믿음의 회의를 느껴 교회를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그 존재의 영광스러움을 이 책에서 많이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있지만 믿음으로 산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믿음장\"으로 알려진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조상들의 삶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조상들을 가리켜 우리가 오늘 본문으로 선택한 히브리서 12:1에서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여기서 마치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가지고 증인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증인들이 우리가 달려가야 할 믿음의 경주장인 스탠드를 가득 메우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응원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믿음의 경주장에서 잘 달려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특별히 이 믿음의 경기는 인내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12:1)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가 우리 믿음의 경주를 하는데 있어서 \"인내로써\"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추상적이나 신비스러운 명상이나 열광적인 감정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말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세상에 살면서 죄와 탐욕을 멀리하고 항상 거룩하게 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때로 세상에서 혈전을 치러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단거리 경주가 아니고 장거리 경주이기 때문에 지구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특성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믿음의 경주장에서 인내하면서 경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의 경주를 하는데 있어서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일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죄를 범하는 경우를 살펴보면 대개 직접 자기에게 유익하고 편리한 것을 찾을 때 범하게 됩니다. 우리가 인간이 처음으로 범죄하는 사건을 살펴볼 때 왜 죄를 범하는지 잘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그와 영원토록 교제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조건으로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6-17)고 하셨습니다. 이 언약의 말씀을 볼 때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더라면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사탄이 말하기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창3:4-5)고 하였습니다. 이 때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하는 말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창조시나 히브리서 저자가 이 편지를 쓸 당시나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범죄하는 것은 인간의 이익과 하나님의 말씀이 충돌하여 갈등을 빚을 때 멀리 보지 못하고 당장 자기에게 주는 이익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가 이 편지를 쓸 당시에 믿음의 경주를 달려갈 때 멀리보지 못하고 당장의 이익 때문에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세상이라는 믿음의 경주장에서 경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자의 신분의 독특성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신자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행동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까요?
2. 징계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믿음의 경주를 여전히 죄를 범할 때 하나님께서 잘 달려갈 수 있도록 말씀하시고, 또한 그 말씀을 하셔도 듣지 않을 때에는 징계하시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이 편지를 쓸 당시에 성도들 가운데 이 경주가 힘들어 포기하고 이탈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그냥 두시지 않고 여러 차례 권면하시기도 하고 징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사상을 잘 볼 수 있는 부분이 히브리서 12:4-5입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동사 두 개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권면하다\"(ՄՉՁՋՅՃՅՔՁՉ)라는 말과 \"잊었다\"(ՅՊՋՅՋՇՓՈՅ)라는 말입니다. 이 동사는 헬라어 성경에 반복을 나타내는 중간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의 경주를 하는 일에 있어서 힘이 들어 세상을 따를 때 하나님의 말씀과 징계로 계속하여 권면하셨으나 계속하여 잊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표현을 NIV, RSV 등 여러 영어번역은 현재완료형으로 번역하여 과거 어느 한 시점에서부터 지금까지 권했지만, 역시 계속하여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다는 개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계속하여 권면한 말씀은 잠언 3:11의 말씀인데, 이 말씀을 히브리서 12:5-6에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이 말씀을 볼 때 당시 성도들이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지 않고 죄 가운데 빠지지 하나님께서 징계하셨는데 이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거나 가볍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이 징계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자녀들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마다 징계하신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에 나타난 \"징계\"라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 파이데이아(ՐՁՉՄՅՉՁ)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교육이나 훈련이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볼 때 가르침이고 훈련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는 잘못을 깨닫고 회개케 하기 위한 사랑의 표현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징계의 수단으로 여러 가지 질병들이나 역경들,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운 문제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기원전 8세기경에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던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징계하시는 지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갑작스런 재앙으로 인하여 소득이 감소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당시의 농경사회에서 농작물에 병충해가 생긴다든지,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으면 큰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를 들면 지금 우리 나라에 홍성이나 경기도 지역에 구제역, 또는 의사구제역으로 자기 몸같이 아꼈던 소와 돼지를 죽이고 축사를 불태우는 일과 같은 일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질병으로 징계하시며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셨습니다(암4:6-11). 오늘날에도 질병이나 사업상의 문제나 인생의 문제에 있어서 특별한 어려움을 주어서 징계하여서 믿음의 경주장에 들어서도록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믿음의 경주장에서 신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는 거룩한 목적으로 상황을 변화시키거나 자연재해나 경제적인 문제, 육체의 질병 등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연약하여 실수할 때가 많고 죄를 범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계속 권면하시다가 듣지 아니하면 징계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2:7-8에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사생자입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우리 한국교회에 많이 알려진 마틴 로이드 존스(D. M. Lloyd- Jones) 목사님은 이러한 징계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하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세상의 부모를 예를 들어 히브리서 12:9에서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지 않겠느냐\"
3.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는 자의 태도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음의 경주장에서 인내하면서 달려가도록 하기 위하여 징계하실 때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주위 사람을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낙심하거나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역경과 어려움이 올 때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으로 생각하고 체념하며 살기도 합니다. 이 모두는 신자가 취해야 할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참된 신자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일은 무엇인지를 살펴서 회개하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때로는 그 모든 원인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진지하게 기도하며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기를 힘써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성도의 유익이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최종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 목적은 히브리서 12:10-11에 아주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누구나 징계를 받을 당시에는 고통스럽고 슬프지만 인내하며 징계를 받으며 연단하게 되면 의의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징계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고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사랑의 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징계를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볼 때 누구누구의 탓으로 돌리거나 불평하지 않고, 낙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의의 열매를 맺도록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받아들이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믿음의 경주를 인내하면서 달려가기 위하여 다시 몸을 만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히브리서 12:12-13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여기에 묘사된 피곤한 손, 연약한 무릎, 발, 다리라는 표현은 모두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장기 레이스인 마라톤을 하고 있다면 손과 무릎, 발, 다리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금 선이 피곤하고 무릎이 연약해 지고, 발이 아프고, 다리를 전다면 절지 않도록 치료하고 힘을 내어 달려야 합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앞서 히브리서 12:1-2에서 이야기한 믿음의 경주장에서 수많은 증인들이 응원하는 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 저는 다리를 일으켜 세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저자는 이 때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는 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치료약은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모든 부끄러움을 지시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은 지금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믿음의 경주가 자체가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이 주님을 바라볼 때 힘을 주시고 피곤한 손과 저는 다리와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성도의 삶에서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 때 그 증상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손이 피곤하고, 무릎이 아프고, 다리를 저는 현상은 무엇일까요? 요즘 우리는 모두 건강에 많이 신경을 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건강에 너무 신경을 쓰다가 아예 우상이 되는 사례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성인병인 당뇨가 있다면 그 증세는 무엇입니까? 입이 마르고 물을 많이 마신다든지, 전신이 노곤하고 쉽게 피로하며 일한 의욕이 없어지거나 손발이 저리고 피부가 가려운 증상이 나타난다고 의학서적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경주에 피곤함과 저는 증세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그 중에 가장 큰 증세는 예배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때는 주일이나 수요밤예배, 기도회가 그렇게 기다려졌는데, 이 시간이 기다려지지 않는다면 신앙생활에 이상이 있다는 증세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교사나 성가대원, 식사 등 여러 가지 봉사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알았는데 여기에 회의가 생기고 피곤감이 몰려드는 증세가 있다면 이 역시 믿음생활에 이상이 있다는 증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뒤에 거의 매일 읽었던 성경을 거의 읽지 않고 주일날 겨우 성경책을 무겁게 들고 다니는 경우라면 역시 믿음의 몸에 이상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매일 기도하는 아름다운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락에 심취해 있거나 늦잠 자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믿음생활에 이상이 있다는 증세입니다. 예배 시간에 앞에 앉지 않고 뒤에 앉아있기를 즐긴다면 역시 이상이 있다는 증세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진취적이던 사람이 부정적인 말을 하고 불평과 짜증이 늘어가고 있다면 역시 몸에 이상이 있다는 증세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믿음의 경주를 할 수 있는 몸을 만들기에 힘써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달리기에 합당한 몸을 만들지 않는다면 몸을 만들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징계하셔서 하드 트레이닝도 시키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차피 믿음의 경주는 그 자체가 힘들고 피곤한 싸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앞서간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스탠드에서 우리를 응원하는 소리를 들으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을 바라보십시오. 이 때부터 상황이 바뀌지 않고 동일한 경주장에 서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과 저는 다리에 힘을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적절한 예가 될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가 늘 사용하는 컴퓨터 안에 백신 프로그램이 있어서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그 프로그램이 작동되어 문제를 치료하듯이 앞서간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을 본다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치료되기도 하고 저항력을 길러주는 백신이 되어 주시기도 하며, 새 힘을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다 당하시고 하늘우편에 앉아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일은 관념적이거나 공허한 일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신비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살아 계셔서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가 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진 자답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되겠지만 세상에 속한 이익 때문에 믿음의 경주를 포기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생자로 대우하시지 않고 아들로 대우하시기 때문에 여러 차례 말씀으로 권면하시다가 듣지 않을 때 징계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징계를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우리 모든 믿음의 가족들이 때로는 질병이나 사업상의 문제나 환경의 변화를 통하여 말씀하실 때 얼른 우리가 믿음의 길에 서 있는지 확인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어렵고 힘든 순간마다 우리 앞서간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스탠드에 앉아 응원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이 때에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과 저는 다리가 고침을 받아 새 힘을 얻어 믿음의 길을 잘 달려갈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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