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하기를 계속하라

사랑하기를 계속하라(히13:1-7)

사랑하기를 계속하라(히13:1-7)


제목: 사랑하기를 계속하라(히13:1-7)

오늘 말씀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사랑하라\"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1-6절 말씀은 형제 즉,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형제라고 함은 주안에서 하나가 된 성도를 뜻합니다. 그렇다고 세속인들을 미워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말씀을 오해하지 말아야 됩니다. 다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인데, 특히 히브리서가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수신자이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한 사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성도로 더욱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우리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이방인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먼저 신앙 안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7절 말씀은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들의 모범을 본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특별히 1-2절을 중심으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받고자 합니다.

1. 계속 사랑해야 합니다.

1절 말씀에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그렇습니다. 사랑은 중단되면 안됩니다. 세상의 사랑은 중단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한이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때도 한량없이 주신다(요3:34)고 하였습니다. 이에 비해서 우리 인간들의 사랑은 한계가 있습니다. 상대방에 의해서 섭섭함을 느낄 때면 사랑이 중단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간성을 미리 아시기 때문에 사랑할 때도 명령으로 \"사랑하라\"고 하셨고, 그것도 \"계속\"하라고 못을 박은 것입니다. 즉, 내가 하기 싫어도 의지적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다가 싫어질 때가 있어도 의지적으로 노력하여 계속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파라스머스\'라는 이상한 병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랑결핍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병은 전쟁고아나 결손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외롭게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나타나는 병이라고 합니다. \'파라스머스\'라는 병의 특징은 외부로부터 병균이 침투하여서 생기는 병이 아니라, 부모의 품에 안겨서 접촉하고 사랑을 받아야 되는 어린 절에 어떤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서 전혀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에게서 주로 나타납니다. 성인들 중에서도 간혹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이웃으로부터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하면 이 병에 걸린다고 합니다.
이 병의 증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섭게 나타납니다. 신체발육이 부진하고 온 몸에 힘이 빠지며 아무리 먹어도 허기지며 배가 고파 특별한 병명도 알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마는 무서운 병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병의 치료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매일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과 관심, 동정을 받으면 어느새 깨끗하게 치료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고 있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족도 대가족에서 핵가족화 되었고, \'우리\'라는 공동체보다 \'나\'라는 개인의 자아실현이 최고로 생각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 교회가 사회에 만연한 \'파라스머스\'라는 병을 막아야 합니다. 교회도, 사회도 사랑이 계속되지 못해서 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즉 사랑이 결핍되고 모자라서 사랑결핍증으로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랑을 받고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야 되겠습니다. 매일 사랑하고, 계속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정부터 매일 남편과 아내, 자녀들에게 관심과 사랑으로 하루를 출발합시다. 우리 교회부터 사랑을 표현하고 밝은 교회가 되도록 나부터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손님을 대접하는 일은 성도가 주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신 명령을 실천하는지 하지 않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됩니다. 창18:장에 아브라함의 사건을 예로 들면서 아브라함처럼 손님대접을 잘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온 손님을 대접하였는데, 이 말은 갑자기 온 손님, 생각하지 않은 손님을 대접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손님 세 명중에 두 명은 천사였고, 한 명은 천사의 모습으로 오신 여호와였습니다(창18:17-26).
손님은 무조건 대접을 잘하여야 됩니다. 저는 뉴욕에서 사역하다가 보니 유명한 강사 목사님들을 많이 접대할 기회를 경험하였습니다. 일 년에 보통 우리 교회에서 5-6차례 강사 목사님을 접대하고, 그냥 금요일이나 수요일 오시는 분까지 합치면 10분은 족히 될 것 같습니다. 자신이 유명한 강사이고 보니까 우리는 한 편으로는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모든 강사 목사님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 두 분에게서 \"내가 누군데 알아서 접대를 잘하라\"는 무언의 압력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근데 간혹 연예인도 오는데 목사님보다 연예인들에게서 이런 느낌을 더 많이 받습니다. 연예인들은 10명 오면 그런 느낌을 받지 않는 분이 1-2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하기를 그래도 주의 종들이 하나님께서 자격이 있어서 세워주셨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야기가 어긋났는데, 사실 접대하는 쪽에서는 그래도 신경을 써서 접대를 합니다. 그렇지만 접대를 받는 쪽에서 \"내가 누군데...\" 이렇게 나오면 참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강사로 불렀으면 대접을 하기 위해서 불렀지 그 손님에게 낭패를 주기 위해서 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름대로의 형편 가운데 그래도 최선을 다하여서 대접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조국교회를 보면 강사들이 얼마나 많은 곳으로 불려 다닙니까? 처음에는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사역을 하지만 10곳, 20곳 불려 다니다가 보니 교만해지기가 쉽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대접을 받는데 서로 비교가 됩니다. \"어느 곳에 갔는데, 특급호텔에다가 사례비가 얼마인데 여기는 왜 이 모양인가?\"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제가 배웠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배우라고 뉴욕에 보내었구나! 내가 뭐 유명해서 불려 다닐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교역자이니까 강사로 한 번씩 나갈 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겸손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접하는 입장에서 아무렇게 대접하자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래도 무조건 대접은 잘해야 합니다. 청탁을 위한 뇌물의 성격 즉, 잘못된 대접이 아닌 이상 대접은 그 축복이 대접하는 자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대접을 받는 손님이 대접을 못 받을 그릇이 되면 그 축복은 대접하는 자에게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한국에 잘못된 접대문화가 퍼져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자신이 한국에서 왕 같은 대접을 받는다고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이 화제가 되어서 신문지상에 소개된 일은 대표적인 일입니다. 매일 한국의 기업으로부터 접대를 받고, 매일 몇 명의 여자로부터 잠자리를 같이 하자는 제의를 받고 그야말로 한국에서의 일이 천국과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조국의 현주소입니다.

이 잘못된 접대문화가 교회에는 들어오지 않았는지 우리가 반성해야 합니다. 이것은 대접이 아니라 뇌물입니다. 청탁입니다. 대접을 할 때도 \"우리교회에 더 많은 축복을 해주십시오. 더 많은 은혜를 끼쳐주세요. 우리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돈도 많고 잘 대접할 수 있어요.\"라는 과시용은 아닌지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유명 강사들 중에는 꼭 유명차로 모셔야 되고 일급 호텔을 선호하고, 유명 식당을 찾는 분들이 많아지지는 않았습니까?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집니까? 대접하는 교회들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교회 나름대로 대접한다고 무리를 해서라도 대접을 하는 것을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대접하는 쪽에서 \"내 친구 교회는 그 정도 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다면 그것보다는 잘 해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그 목회자나 교회의 명예나 힘으로 생각합니다. 마치 우리 한국사람이 좋은 차를 타고 다녀야 대접을 받는다고 인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접하는 것이 성공한 목회의 하나의 척도로 둔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교회 어느 집사님 집에 초대되어서 식사를 하는 일이 점점 사라지고 없어집니다. 조국교회에 좋은 전통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아프게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올바른 접대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되겠습니다. 올바른 대접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대접을 받아주실 것입니다. 마25:40절 말씀에도 소자 한 사람을 대접한 것이 곧 예수님을 대접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10:42에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이 말씀은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올바른 대접이 될 때에는 냉수 한 그릇이라도 상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릇된 대접이 될 때에는 전 재산을 주어도 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성공과 안위와 명예를 드러내기 위해서 대접하는 것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접을 할 때는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주님! 사랑을 한 두 번만 실천하는 자가 아니라 계속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또 손님 대접하기를 늘 잊지 않고 올바르게 대접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고 또 그대로 실천하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