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사랑, 나그네사랑/히13:1-3
히브리서는 웅장한 교리의 설명과 무서운 경고의 말씀으로 가득찼습니다. 11장에 구름 같이 둘러선 중인들인 믿음의 사람들도 그 믿음을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 지켰고, 그들은 생명을 내어놓고 복음을 전한 사람들입니다. 12장에서는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에 대한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13장에 와서는 그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권면하는 말씀의 톤도 조용하고, 아주 세밀한 우리들의 삶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양면을 보여줍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신앙생활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소망과 믿음에 대한 말씀을 굳게 잡고 변치 않는 믿음 을 가져야하겠는데, 실은 그것을 이루는 것은 우리 만난 만난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만 아니라 바울 서신서도 그러한데 교리를 먼저 말씀하고는 반드시 생활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의 삶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보면 안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인정받은 믿음은 그들의 일상의 삶에서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잘 들어야합니다. 성경은 치우친 삶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13장에서 형제사랑과 나그네 사랑, 가정생활, 사회생활들을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대단한 사람으로 알아서 머리는 높아져 있지만, 실제 현실의 삶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성경과 우리들이 깨닫는 교리가 같아야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삶도 그 성경과 우리들이 잡고 있는 교리의 말씀과 같아야합니다.
목회자는 설교와 생활이 성경에서 나와야합니다. 자신이 설교한 말씀대로 행해야합니다. 성도들은 성경과 자신이 알고 있는 교리가 같은지 살펴야합니다. 그리고는 실행을 해야합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인가를 점검해 보아야합니다. 오늘 읽은 13장 1-3절의 말씀은 우리가 무시하여지나치기 쉬운, 그러나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교훈은 세상에서도 볼 수 있는 것 같이 평범한 교훈 같습니다. 그러나 이 교훈은 전체 성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초대교인들의 삶은 이러했습니다.
먼저 1절에서 형제사랑을 계속하라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그들의 신앙공동체 안에 있는 성도들을 누구로 인식했습니까? 많은 성도들이 모여 있는데, 세상의 많은 단체들 같이 한 단체의 회원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본문에서는 그들은 서로를 형제로 인식하고 형제로 불렀습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은 그들의 형제인식이었습니다. 뜨거운 사랑으로 사랑하는 교회들로서 세상에서도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육적으로 형제였기 때문에 형제사랑을 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살붙이, 피붙이가 아니지만, 육적인 형제보다도 더 친밀하고 뜨거운 사랑을 했던 것입니다. 이는 어떤 이성적인 사랑이나 혈육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성적인 사랑을 초월한 진정한 사랑으로 형제사랑을 했습니다.
성도가 사랑하는 것은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한 형제가 되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의 권속,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한 형제요, 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다 한 형제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그 영원한 모든 것을 함께 누리고 살 형제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 형제사랑은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세상의 육적인 형제도, 깡패들이 맺은 의형제도 그 형제애가 계속된다면 우리들의 형제사랑은 영원한 것이어야합니다. 육적으로 자녀되고, 부모되며, 형제된 사람이 영적으로 또한 형제 되었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이 사랑은 계속되어야합니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랑도 잠간이고 변해지는 것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우리들의 사랑은 진실로 하나님이 영원하기 때문에 그 나라가 영원하기 때문에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가 있습니까? 그 친구와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형제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그 친구를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해야합니다. 진정으로 부모님을 사랑하십니까? 영원히 사랑하고 싶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만 영원한 사랑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진실로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자 되었습니다.
앉은자리에서 주위를 둘러봅시다. 우리들은 기차간에서 잠간 만난 것 같은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오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되었음을 고백하시고 사랑해야합니다. 이 사랑이 계속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본문은 우리들의 형제사랑이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사랑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자주 만나는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고 위하는 모습, 이것도 어려운 일이고 좋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형제사랑에서 나아가서 손님대접하기를 잊지말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상황을 알아야합니다. 그 때는 나그네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들 조상들에게서 그런 좋은 관습이 있었는데 유대인들의 관습에도 나그네를 대접하는 좋은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선행 가운데 사막 광야 길에서 지치고 헐벗은 사람들을 돌보지 않으면 그 나그네는 죽게되기 때문에 나그네를 돌보는 일을 선으로 봤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때는 특별히 사랑을 실천하여 오갈 데 없는 나그네를 영접하여 먹이고 입히고 재워 새 힘을 얻게 하여 길을 가게 했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들도 실행해야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들도 이전에는 나그네 걸음을 걸었습니다. 이를 알고서 이름도 주소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긍휼의 마음으로 그들을 영접하여 대접을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는 몰인정한 세대가 되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 누가 죽었는지도 모르는 때입니다. 우리들은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웃도 모르고 나그네도 모르고 자기만 알고 자기 집안에만 박혀 있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도 물질이 없어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전에는 교회가 이런 구제나 봉사의 사역을 했습니다. 이것은 형제사랑의 연장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길가는 나그네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세상살이에 지치고 피곤하여 쓰러졌고, 상처받은 우리들이었습니다. 이제 지칠대로 지쳐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에 찾아오신 그리스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었고 참된 복락을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세상을 구름에 달 가듯이 정처없이 떠도는 세상의 수많은 나그네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따뜻이 대해 줘야합니다.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습니다. 롯도 그러했습니다. 형제 사랑을 계속합시다. 또한 나그네를 대접하고 잊지 말아야합니다. 지금도 많은 고아원, 영아원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예배당을 크게 짓고 교육관을 세우는 일도 해야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급한 일은 복음 선교하는 일이고, 이런 구제와 봉사하는 데 쓰는 돈이 더 많아야합니다. 우리끼리 먹고 마시는 액수보다 이웃을 위해서 쓰는 돈이 더 많아야합니다.
셋째로,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들을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 했습니다.
성도들은 자기들과 함께 있는 자들을 형제로 알고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또 나그네들이 있음을 알고 대접하는 일을 했습니다. 여기에 말씀하는 갇힌 자가 누구겠습니까? 핍박과 학대를 받는 자를 생각하라 했는데 이들이 누구입니까?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옥에 갇히고 박해를 받는 사도들과 선지자들, 성도들이 그 때에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들을 생각하라 했습니다.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라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모든 자들이 다 해야합니다. 자기도 언제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힐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함께 갇혀야할 자인데 그 형제가 먼저 갇혔구나 생각한다면 남은 가족들을 돌보는 일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을 하지 않겠느냐 는 것입니다. 너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그 사람이 학대를 받는 것이 너와는 상관 없다고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도 몸을 가졌으니 너도 복음을 전하다가 계명을 지켜살다가 학대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동정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군인들이 언제 가장 뜨겁게 하나됩니까? 전장에 나가서 옆에 있던 전우가 총에 맞아서 죽을 때입니다. 비겁한 군인을 그 때 도망치겠지만, 거의가 그러면 앞뒤를 보지 않고 뜨거운 전우애를 가지고 전장에 임하게 됩니다. 그 뒤에도 전쟁에 나갔던 전우들은 생명을 함께 나눈 자들이기 때문에 어떤 육신의 형제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느낀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여야한다는 것은 복음으로 구원과 영생을 얻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형제들을 볼때에, 나도 복음을 저렇게 전해야하는데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 힘을 내고 기도하고 응원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히브리서 10:34절은 그 때의 형편을 보여줍니다.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으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했습니다.
말씀을 지켜 살다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쫓겨난 성도들이 있다면 동류 사랑을 느껴야합니다. 위해서 뜨겁게 위로하고 기도하고 도울 길이 있으면 도와야합니다. 선교를 해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이 일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서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합니까? 나도 함께 그 나라와 그 민족에게 갇힌 것으로 여기고 함께 갇힌 자들을 생각해야합니다. 고난과 핍박을 받고 있는 선교사들과 그 가정은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형제사랑을 모르는 잔인한 사람입니다. 너도 몸을 가지지 않았느냐? 그들이 그 몸에 어려움을 감당하고 선교현장에서 역사하는 것을 볼 때에 너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복음 전하는 이들에 대하여 이런 후원과 기도가 없었다면 이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선교의 사역에 우리가 다 동참해야합니다. 이것이 주님 사랑이요, 형제사랑의 극치입니다. 내가 나가지 못한다고 해도 이웃에 전도해야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해야합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돈으로라도 이들을 돕는 일을 해야합니다.
형제사랑을 계속하라는 권면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은 다 주님의 피로 하나가 된 형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만 한 형제 아니고 세계에 흩어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한 형제임을 고백하고 사랑해야합니다. 우리들은 우리 안에 있는 형제사랑에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나아가야합니다. 나그네들을 기억해야합니다. 이들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세상 나그네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영접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야합니다. 나그네 사랑을 해야합니다. 세상을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들이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고 그 무거운 짐을 다 내려 놓도록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우리들은 더 나아가야합니다. 진정한 형제사랑은 복음을 전하는 일로 또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 핍박을 당하는 사역자,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진정으로 뜨거운 사랑으로 기도하고 물질로 돕고 후원해야합니다.
우리들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형제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랑은 성도를 향한 사랑으로 구체화되어집니다. 살벌하고 미움과 시기로 가득한 두려운 마지막 때에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이 아름다운 열매 맺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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