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계19:11-16 <序言> 17-18장은 음녀와 바벨론으로 상징한 로마의 멸망을 예고하므로서 종말의 세상이 왜 멸망하게 되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19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성도를 구원하고 세상을 완전히 심판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9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찬양하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11-16절은 주께서 재림하시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주의 재림 모습은 요한계시록에서 5번이나 나타납니다 (1:7, 6:12-16, 1:12-14, 14:14-16, 19:11-16). 이는 주의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질 사건으로서 그만큼 중대한 사실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의 목적이 주의 재림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의 재림이 여러 장에서 몇 차례 주기적(circle)으로 기록된 것은 요한계시록이 꼭 시간적인 연속 사건으로만 배열된 것이 아니고 목적적 관점이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本論> 1. 재림 주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① 백마를 타고 있었습니다 (11절). 하늘이 열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환상이 보였습니다. 그는 백마(白馬)를 타고 있었습니다. 서신서들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는데 본 계시에서는 흰말을 타고 오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말’은 전쟁을 상징하고 ’흰’색은 의를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흰말을 타고 오신 것은 악의 무리와 싸워 이기고 공의대로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주께서 다시 오심은 짐승(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을 심판하시는 영광스런 승리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초림(初臨)은 비하(卑下)의 모습이었으나 재림(再臨)은 영광스런 승리의 모습입니다. 초림은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당하며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재림은 대적하는 무리와 공의로 싸워 심판하실 것입니다. ② 눈이 불꽃 같았습니다 (12절). 주는 각인의 심령을 감찰하시고 무릇 마음 속 깊은 것까지 살피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그 앞에서는 아무 것도 감출 것이 없습니다. 그의 앞에서는 선악간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감추인 것을 다 아시고 드러내어 그대로 갚으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16:27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불꽃 같은 눈의 위엄 앞에 모두 굴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③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었습니다 (12절). ’면류관’은 상급과 권세의 표입니다. 주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순종하여 성취하였으므로 그에 합당한 상과 권세를 얻은 것입니다. 또한 사단의 권세를 멸하고 승리하셨으므로 만왕의 왕으로서 홀로 영광을 받으심이 합당합니다. ④ 피뿌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13절). 주는 초림하여 핍박자들 곧 사단과 그를 따르는 자들에 의해 피흘려 죽었습니다. 죽임 당한 어린 양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재림 때에는 그들을 공의로 심판하여 피로 보수하십니다. 그들을 응징할 때에 그들의 피가 그의 옷에 튀어 ’피 뿌린 옷’이 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를 두고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뇨. 만민 중에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사63:1-3). 2. 재림 주의 속성이 나타났습니다. 자기 밖에 알 수 없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2절). ’이름’은 인격의 상징입니다. 주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인격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곧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사명과 직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를 따라 믿음으로 승리의 길을 걷는 성도에게도 자기만 아는 비밀이 있습니다 (2:17). ① 이름이 충신과 진실입니다 (11절) 11절에는 그 이름이 ’충신과 진실’이라고 했습니다 (3:14). ’충신’(πιστοs, faithful)은 믿음직한 성품을 말하고, ’진실’(αληθινοs, true)은 진실한 성품을 말합니다. 이는 사단과 정 반대되는 성품입니다. 주는 존재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특히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대로 심판과 구원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참 구주입니다. ②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3절). 13절에는 그의 이름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존재에 있어서 영원 전부터 계신 말씀(λογοs)로 존재하셨습니다 (요1:1,14, 요일1:1). 요한이 요한복음1:1에서 말한 ’말씀’은 창조자에 대한 헬라적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선재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역에 있어서도 주권을 가지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심판과 구원에 관한 말씀을 완전히 실현하실 분입니다. ③ 만왕의 왕, 만주의 주입니다 (16절). 주의 옷과 다리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주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입니다. 모든 세상과 나라와 왕과 만물을 주장하고 통치하고 심판하시는 분으로서 그와 같은 이름을 갖는 것이 합당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왕중의 왕입니다.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입니다. 원수를 발아래 복종시킬 자입니다. 모든 자가 그에게 무릎을 꿇고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마28:18, 고전15:25, 빌2:9-10). 3. 재림 주의 심판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①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뒤를 따릅니다 (14절). 주께서 백마를 타고 나타나실 때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들도 백마를 타고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따랐습니다. 이들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주의 재림 때 천사들도 따르지만 순교자를 비롯한 죽은 성도들도 그 뒤를 따르며 주의 심판과 영광에 동참합니다 (17:14). 그들이 입은 세마포는 주의 보혈의 피로 입혀진 의(義-’옳다’ 인정함 받은 의)이며 그들의 옳은 행실로 보존된 의입니다 (19:8). ②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옵니다 (15절). 주는 이한 검으로 만국을 칩니다. ’이한 검’은 날이 예리한(οξεια, sharp) 칼을 말합니다. 1:6에서는 ’좌우에 날 선 검’이라고 했습니다. 주는 예리한 칼로 만국 곧 악인을 심판합니다 (사11:4). 그 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히4:12). 주께서 자신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심판합니다. 요한복음12:47-48에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했습니다. 예레미야5:14에는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고 했습니다 (23:29). ③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립니다 (15절). 주께서 세상을 심판할 때에 그 파괴력이 철장으로 질그릇 깨트리듯 할 것입니다. 시편2:9에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주를 따르는 성도에게도 그와 같은 권세가 부여됩니다. 주께서 두아디라교회에 주님 말씀도 그러합니다. 2:26-27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주를 따르는 자에게는 권세가 있습니다. 어떤 공격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예레미야1:18-19에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④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를 밟습니다 (15절). 주께서 세상을 심판할 때에 포도즙 틀을 밟음과 같을 것입니다. 이는 이사야63:1-6을 배경으로한 말씀으로서 주께서 대적하는 원수를 완전히 멸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14:19-20, 마25:31, 요5:22, 행17:31). ※ 주의 재림에 관한 개요 1) 재림의 정의(意味) 재림(再臨, the scond coming)에 관련된 용어는 αποκαλυφιs (계시, 나타남), επιφανεια (나나타심, 현현;顯現), παρουσια (임재, 현존) 등이 있습니다. 재림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표현했으나 당시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시면 당연히 두번째 오시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듯이 교회들도 이를 재림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2) 재림의 확실성(確實性)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 종말에 관한 말씀은 성경에 1,518번 (구약 1,218번, 신약 300번)이나 예언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예언했고,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 천사들이 주의 부활과 함께 재림을 주의시켰고, 사도들이 확신 가운데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처럼 재림에 대한 예언도 반드시 성취됩니다 (마24:35). 3) 재림을 부인하는 이론(異論)들 ①재림지연설(再臨遲延說)이 있습니다. 성경에 재림에 대한 약속이 있기는 하나 교회들이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예수는 오지 않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기될 것이라는 이른바 연속적 종말론입니다. ②재림무용설(再臨無用說)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무한한 진보와 발전을 통해서 자체적으로 이상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현대인에게는 예수의 재림은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곧 재림을 정신화 하는 이론입니다. ③우주영원설(宇宙永遠說)이 있습니다. 만물이 조상들의 죽은 후로부터 지금까지 창조 때와 같이 그냥 있는 것 같이 우주는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에 예수의 재림으로 인한 세상 심판은 없을 것이라는 이론입니다. 4) 재림의 징조(徵兆) 예수님이 재림하기 전에 대사건들이 있습니다. ①이방인의 소명(召命)이 있습니다. 재림 전에는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어 모든 사람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외부적 기회가 주어집니다. 인류 개개인에게 다 전파된다는 의미보다 국가와 민족적으로 전파되어 복음이 국민생활의 목표와 능력이 되어지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②이스라엘의 회복(回心)입니다. 재림 직전에 이스라엘의 주권이 회복되고 언약민으로서 이스라엘의 많은 수가 그리스도께로 돌아옵니다. 국가 전체라기 보다 이스라엘의 많은 수를 의미한 것일 것입니다 (롬11:26). ③ 적그리스도의 출현(出現)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교회와 성도를 박해하는 적그리스도가 나옵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높여 하나님 위치에서 자신을 경배하게 합니다. 또한 거짓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도 많이 나옵니다. 그들은 이적과 기사와 거짓으로 미혹하여 많은 사람을 적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합니다. ④ 재난(災難)과 환난(患難)입니다. 재림 전에 각처에 전쟁과 기근과 진진 등의 재난이 있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이 감해 주시지 않으면 육체를 가진 이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환난이 있어 많은 의인들이 핍박을 받고 순교를 당합니다. 5) 재림의 양식(樣式) ①인격적 내림(人格的 來臨)입니다. 합리주의자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재림의 묘사들을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원리들이 점진적으로 사회를 지배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은 초자연적이며 인격적으로 이루어 집니다. ②형태적 내림(形態的 來臨)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오순절 성령 강림을 동일시하여 주께서 이미 영(靈)으로 강림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주의 재림은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육체적으로 있을 것을 말합니다. ③가견적 내림(可見的 來臨)입니다. 렛셀파는 주께서 이미 1914년에 공중에 재림하여 계시는데 사람들이 그를 보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눈으로 볼 수 있게 오십니다. ④돌발적 내림(突發的 來臨)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재림 시기를 단정적으로 말하지만 주님은 밤에 도적같이 알지 못한 때에 홀연히 불시에 오십니다 (마24:27-28). ⑤승리적 내림(勝利的 來臨)입니다. 주님은 초림처럼 비하(卑下)의 몸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고 모든 권세를 이기고 영광과 위엄과 권능으로 오십니다. 6) 재림의 시기(時期)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수없이 재림시기를 예언해 왔습니다. 밀로, 루터포드, 럿셀, 시몰, 박스터, 윌리암스, 와이즈난즈, 노스트라담스, 헤럴드캠핑, 박인선, 서백일, 조광곤, 유재열, 전병도, 김성복, 김갑택, 안상홍, 공용복, 이천성, 장영춘, 정명석, 이장림 등이 예언했으나 모두 빗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징조를 주어 일반적인 시기는 알게 했지만 정확한 날짜는 계시해 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 주권에 맡기고 책임과 직무상 모른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24:36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했고, 사도행전1:7에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시한부 종말론 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성구는 마24:37-39, 살전5:4-6, 암3:7입니다. 마태복음24:37-39에 인자의 임함이 노아의 때와 같다고 했는데, 그것은 노아 때와 같이 날짜를 알게 한다는 말이 아니고 노아 때와 같이 죄악이 관영할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5:4-6은 빛의 자녀에게는 주님이 도적같이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재림 날짜를 안다는 말이 아니고 재림을 준비한 자는 놀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계3:3). 아모스3:7에 하나님은 자기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알리지 않고는 켤코 행하시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시간적 개념으로 날짜를 안다는 말이 아니고 사건 개념으로 재림과 징조를 계시한다는 말입니다 (엡3:5). <結言> 주의 재림은 반드시 있습니다. 주의 임하심은 승리적인 모습입니다. 왕권으로 모든 대적을 멸하고 영광스런 모습으로 임하십니다. 우리는 그에게 속한 자들로서 승리와 영광의 기쁨에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종국에 그리스도로 승리할 것을 생각하며 현재의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쁨으로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전투적인 모습입니다. |